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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18화)
第七章 동정혈전(洞庭血戰) - 저분이 바로 우리들의 조장님이시다!(1)
사흘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호남지부가 일거에 쓸려 버리자 척사대는 천사혈명대의 추격을 피해 동정호(洞庭湖)에 있는 비밀 장원으로 숨어들었다. 혹여나 해서 지어 놓은 최후의 피신처이자 적도들을 상대하기 매우 적합한 환경으로 배치된 곳이었다.
장원이 있는 곳은 동정호 가운데 떠 있는 많은 섬들의 중심에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섬이었는데, 주위의 섬들과 교묘하게 방위를 맞춰 운무진(雲霧陳)이 펼쳐져 있었다.
그밖에도 장원은 설계될 때 여러 개의 무서운 기관을 뼈대로 잡고 지어진 것이었다. 멋모르고 달려들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자신의 혼백이 이승을 떠나는 것조차 모르게 절명해 버릴 것이다.
짙은 운무로 드리워져 그 형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인공도(人工島).
후우우우우―
가끔 부는 바람만이 안개를 유린하고 있었다.
느릿하게 흐르는 안개는 구름과 같았다.
주운은 그런 보기 쉽지 않은 장관에 감탄하며 화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캬아! 이거 안주가 따로 없구나. 천지사방, 보이는 모든 게 절로 군침을 돌게 하는군.”
호심에 위치한 섬의 호변에서 바라보는 동정호는 스스로 도원경 속 신선이 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만큼 신비로웠고 몽환적이었다.
밖에서 보는 동정호가 바다처럼 넓고, 어린아이의 눈동자처럼 맑은 호수라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동정호 본연의 정취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동정호의 정취를 한껏 음미하던 주운이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뒤에 시립해 있는 사람은 바로 진호방이었다.
“너냐?”
잔뜩 짜증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한동안 자신을 찾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진호방이 이렇게 뒤에 서 있는 것이 바로 그걸 의미했다.
“이번엔 무슨 일이야?”
주운의 물음에 진호방이 대답했다.
“각조 조장 소집령이 떨어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거 꼭 가야 해? 나 하나쯤 참석하지 않아도 잘 돌아가잖아. 아니, 내가 있어 봤자 아무도 내 의견은 묻지도 않으니까, 그냥 이렇게 동정호 구경이나 하고 있는 게 더 낫잖아.”
진호방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꼭 조장님이 가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왜? 흉터 놈한테 몇 대 맞을까 봐 겁나?”
“아시잖아요. 몇 대론 끝나지 않을 것.”
“하여간 고놈이 제일 문제야. 잊을 만하면 남의 사색을 휴지 조각처럼 꾸겨 버리는 양반 되긴 그른 놈. 대주면 뭐 하나, 입에 발린 말만 골라 내뱉는 머리밖에 없는데.”
주운의 불평에 진호방이 풋, 하고 웃었다.
“조장님, 재미있긴 한데 다른 데선 저얼대 그러지 마세요. 그 흉터 놈 귀가 여간 밝은 게 아니랍니다. 그러다 경이라도 치면 어쩌시려고요.”
“쓸데없는 걱정이다, 쓸데없어. 그깟 경쯤이야 팔에 쥐나도록 맘대로 쳐 보라 그래. 내가 눈 하나 깜짝하나.”
주운이 취기 어린 눈빛으로 한숨을 내쉬는 진호방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지 마시고 제발 조장님 수하들을 생각해서라도 소집령에 따라 주세요.”
조아봉의 오만한 눈빛을 떠올린 진호방이 으슬으슬함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알았다, 알았어. 이거 수하란 놈이 직속상관은 제쳐 두고 그 윗대가리한테 벌벌 기는 꼬락서니라니. 안 되겠다, 내가 다녀올 동안 나머지 애들 데리고 마보참춘이나 하고 있어라.”
“예에?”
“중간에 요령 피우지 마라. 다 아는 수가 있다. 뭐, 곤죽 되기 싫음 알아서 잘하겠지. 잊지 마, 지금부터 하는 거야.”
진호방이 멀어지는 주운을 향해 울상을 지으며 소리쳤다.
“조, 조장님? 조장님!”
주운은 짐짓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듯 화주만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빠른 걸음으로 대청으로 향했다.
대청 안에서는 조아봉의 말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조아봉은 좌중을 훑어보며 말했다.
“……임의로 편성한 수색조가 전서구를 보내왔소. 적도들이 동정호 변에 있다는 내용이오. 그들의 수효가 물경 일천에 달하니 우리로서는 이곳을 사수하며 운무진과 장원의 기관을 적절히 사용할밖에 다른 방도가 없소. 하지만 우리들의 인원은 육백여 명, 지형적 유리함과 지닌 바 수단을 총동원한다면 그들을 격파하는 것도 결코 우스갯소리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오.”
조아봉의 말에 척사대 조장들이 그럴싸하다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기관이 작동될 동안 그들을 묶어 둘 조를 편성하려고 하는데…… 마침 오는군.”
조아봉이 말을 하다가 조용히 대청 안으로 들어서는 주운을 웃으며 쳐다보았다.
각조 조장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는데, 얼큰하게 취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주운의 얼굴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제삼조 조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설마 주 조장에게 그 일을 맡기겠다는 겁니까?”
“그렇소. 나는 주 조장이 잘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소. 그의 조는 단 한 번 사망자가 나왔을 뿐, 그 이후로 전원 무사 귀환의 신화를 이룩했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을 거요. 이게 단순히 조원들의 능력이 뛰어나서라고 보시오?”
솔직히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처음에는 우연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횟수가 늘고, 겹칠수록 그 이상의 알 수 없는 무엇이 신경을 거슬렀다.
그러나 늘 술독에 빠져 사는 주운의 행태는 그런 조장들의 눈에는 영락없이 실없는 주정뱅이에 지나지 않았다. 흐리멍덩한 눈빛 하며 공적 하나 제대로 세우지 않은,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인식된 지 오래였다.
한데 그처럼 중한 역할을 맡긴다니?
조장들의 얼굴이 떫은 감을 씹은 것처럼 떨떠름했다.
물론 그들은 모를 것이다. 주운이 귀찮은 일을 피하려고 모든 공적을 조원들에게 돌리고, 진호방에게 빙마선 구양절에 대한 일을 절대 언급하지 말라고 한 것을.
더구나 남해검마 좌불복을 술병으로 쳐 죽인 것을 아는 사람은 주운이 유일했다. 아마도 빙마선 구양절에 대한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주운의 무공이 절정의 경지라는 데 한 번 발칵 뒤집혀지고 나서 금세 시들해질 게 틀림없었다.
주운에 대한 대접은 조금 달라져 있겠지만.
“저렇게 술만 퍼마시는 술고래가 과연 잘하리라 믿는 겁니까? 정말 진심입니까?”
심드렁하니 화주를 벌컥 마셔대는 주운의 방만함에 대한 못마땅한 마음마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조아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을 맡길 사람은 주운밖에 없었다. 아니, 꼭 그가 해야만 한다. 그래야 자신의 오랜 숙원 중 하나가 풀릴 게 아닌가? 밀어붙이기로 작정했다.
“그렇소, 진심이오. 더는 이에 대한 토를 달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소. 본 대주의 굳은 결심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요.”
조아봉의 말에 조장들이 노골적으로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구태여 하극상을 범할 사람은 없었다. 자칫 죽을지도 모르는 역할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주운이 그 일을 맡게 됐다.
조아봉은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본대는 일전에 천사혈명대와의 전투에서 사백여 명에 달하는 인명 손실이 있었고, 지금은 총 십팔 개 조로 편성해 제십팔조를 제외한 열일곱 조는 각기 서른일곱 명의 인원으로 재결성한 것은 이미 알고들 있을 거요. 하지만 제십팔조의 인원이 이 일을 해내기엔 너무 적다는 판단을 했소. 해서 각 조에서 두 사람씩 차출해 주 조장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데…….”
조장들은 딱히 그러마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여 동조의 뜻을 밝혔다. 한두 사람쯤 빈다고 해서 그리 치명적일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할 필요도 없었다.
조아봉과 조장들은 그 자리에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순식간에 조장인 주운을 포함해 딸랑 다섯뿐인 제십팔조를 사십 가까이 되는 규모로 불려 놓았다.
참으로 빠른 조처였다.
주운은 그런 조아봉과 조장들을 곁눈질하며 가볍게 눈살을 찡그렸다.
‘이거 나만 귀찮아지게 생겼군. 빌어먹을, 술맛만 버렸어.’
얼마 남지 않은 화주를 목구멍 너머로 삼키며 주운이 소태 씹은 표정으로 침을 퉤퉤 뱉었다.
조아봉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잘 부탁하네, 주 조장.”
주운은 갑자기 엄습해 오는 불길함에 건성으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 예.”
그 불길함은 주운의 경험상 무언가 음모가 진행되고 있을 때 곧잘 느끼곤 했던 것이다.
‘이 임무…….’
정말 불길했다.
***
“빌어먹을, 어쩐지 불길하더라니!”
주운이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무시무시한 살기를 온몸으로 감미하며 자신만의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 뒤에서 진호방과 두호, 사씨 형제를 비롯한 서른대여섯 명의 조원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지시받은 매복지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치는 주운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진호방, 두호, 사씨 형제가 뒤늦게 이를 알아차리고 덩달아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그때였다.
쒸쒸쒸쒸이이잉―
좌우 절벽 위에서 수십, 수백의 화살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주운이 외쳤다.
“모두 흩어져!”
조원들이 해연히 놀라 뿔뿔이 흩어져 각자 무기를 뽑아 들고 화살을 튕겨 내기 시작했다.
띠디디디디딩!
마치 칠현금을 쓸어내리는 듯 불규칙한 금속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소리가 들리는 횟수마다 반 토막 난 화살이 우수수 바닥에 제 몸을 눕혔다.
주운은 굳은 얼굴로 뒤를 살펴보았다.
“죽거나 다친 사람 있나?”
없었다.
다행히 일찌감치 주운이 예고한 덕분에 한 사람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다. 단지 눈에 띌 만큼 호흡이 흐트러져 있었고, 무기를 든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개인당 수십 개의 화살을 쳐 냈으니 손아귀가 저릴 만도 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라고 속삭이는 놈, 그 다행 중 도사리고 있는 불행이란 놈이 있었다.
다시 폭우가 쏟아졌다.
쏴쏴쏴쏴아아아―
주운의 안색이 더욱 굳어 버렸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방금 전보다 훨씬 많은 개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주운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번엔 딱히 예고한 바가 없었던 것이다. 푸푸푹,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조원들의 몸을 꼬치 꿰듯 꿰뚫어 버렸고, 십여 명이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도 못하고 픽픽 쓰러져 버렸다.
사격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발 늦어 버렸다. 애꿎은 십여 명의 인명만 화살꼬치가 되어 망신창이 몰골로 이승과 작별을 고했다.
어이없고 노화가 치밀었다.
주운은 진호방 등을 향해 말했다.
“적당히 물러서서 내가 저놈들 휘저어 놓으면 한꺼번에 달려들어. 알았지?”
진호방 등은 미처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주운의 신형이 지면을 박차고 좌측 절벽을 날아 올라갔다. 막 시위에 화살을 걸고 있는 백의를 걸친 수십 명의 사내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운은 확인하자마자 재차 신형을 뽑아 올리고 한 입 크게 진기를 마셨다. 주운의 쌍장이 벼락처럼 교차했다.
검붉은 장력이 십여 장의 공간을 격하고 작렬했다.
꽝! 꽈아앙!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대여섯 사내의 몸이 산산조각 나며 허물어져 내렸다.
“으허어억!”
산전수전 다 겪은 천사혈명대의 무사들조차 기겁을 하며 물러섰다.
그 앞에 선 주운이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크게 외쳤다.
“지금!”
그러자 제십팔조 조원들이 쏜살같이 달려가 우측 절벽을 손과 발을 놀려 순식간에 등반해 올라갔다. 곧이어 그쪽에서도 격전의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