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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생과 교대생
1화
1장.
나는 최근 들어 회상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너무 단순하고 당연했던 일들을 다시금 끄집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니 걸리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건 맞나, 저것도 맞나.요즘 들어 특정한 사람 한 명을 탐구하는 것에 도가 튼 내가 그 이상을 바라보며 회상을 시작했다.
나는 교대생, 저 녀석도 교대생.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 * *
저 남자의 이름은 강원. 내 이름은 최샛별. 강원은 나를 누나라 불렀다.
‘눗나, 샛별 눗나.’
나보다 일 년 늦게 태어난 강원은 내 옆집의 신혼부부가 낳은 아들이다. 태어나기 이전부터 집안의 왕래가 잦았던 두 이웃의 아이들은 친구사이를 보장받으며 태어났다.
누나 누나.
그 애는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눗나 눗나 부르며 나를 따라다녔다. 겨우 한 살 차이 나는 아가들은 쉽게도 친해졌는데, 4년 뒤 강원의 여동생 강가은이 태어나서도 녀석은 나를 퍽이나 잘 따랐다.
내가 아기인 가은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곤 꼭 가은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오곤 했다. 우리는 동네 친구들도 필요 없이 항상 셋이 붙어 다녔었는데, 미취학 아동 시절이 끝나고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원이는 어느 순간부터 정확해진 발음으로 누나를 말하곤 했는데, 우리는 항상 같이 커 와서 사실 그게 언제쯤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작은 항상 내가 먼저 했고, 원이와 가은이는 내 뒤를 따라왔었다. 내가 먼저 들어간 초등학교는 1년 뒤에 원이가 들어왔으며 4년 뒤엔 가은이가 입학했다.
지금 와서 회상해 보니 원이는 참 똘똘해서 인기가 많았었다. 어릴 적엔 그저 한 명이 좋아하면 다 좋아하는 그런 여론에 따른 것인 줄만 알았더니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원이는 꾸준히 인기가 있었다.
나를 따라 초등학교를, 중학교를, 고등학교를, 그리고 대학교를. 어디까지 따라올 거니.
* * *
“원아, 이 쿠키 뭐야? 나 먹는다.”
“먹는 거라면 사족 못 쓰고 알아차리네. 다 먹어라.”
우리 둘의 집은 수도권이고 학교는 지방 교대라 자취방에서 생활을 했다. 부모님의 친분 덕에 우리 둘의 자취방도 참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자취방 문을 열고 들어가 서로의 음식을 먹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항상 당연했다.
“교생 실습 끝났잖아. 애들이 선물이라고 편지랑 쿠키 줬어.”
“아아.”
교생 실습.
그러고 보니 나도 다녀왔었지. 시간 참 빠르다.
“쿠키, 나 중고등학교 때 많이 받았었는데.”
“뭐? 누구한테?”
선물 받아 본 적 있다 하니 원이가 깜짝 놀라 반문을 해 온다. 6년 내내 내가 말하지 않은 로맨스가 있었냐며 아연실색한다.
“너 좋아하는 애들한테.”
“아 그랬어?”
“응, 너랑 친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랬었다. 쿠키, 과자, 음료수, 준비물.
내가 이러한 것들을 처음 느꼈던 것은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새로운 반에 한창 신나 있었을 즈음이었다. 원이와 스스럼없이 지내던 탓에 가끔 등교도 같이 하곤 했는데, 원이는 물건을 곧잘 잃어버려 내게 체육복을 빌리러 오기도 했었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원이와 어쩌다 같이 등교를 하게 되었고, 원이는 체육복을 가져오지 않았고. 해서, 내가 원이와 친하다는 사실을 남들도 알게 되었다.
멋모르던 초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이미 감정을 알게 된 중학교 아이들은 성인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원이와 친하다는 사실 하나로 쿠키도 주고, 과자도 주고, 음료수도 주고. 어른들의 아첨이 어린이들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이에게 자랑했다.
‘아, 누나는 단것을 좋아하는구나.’
네 덕에 누나가 맛난 것을 먹는다며 좋아하니 원이는 해맑게 웃기만 했다. 빼빼로 데이에도, 화이트 데이에도 특별한 날이면 항상 원이네부터 들러 원이 가방을 열어 간식이 잔뜩 있음을 확인하고 좋아했었다.
‘누나, 다 먹어.’
착한 내 동생. 먹지도 않고 고이고이 챙겨 오는 착한 내 동생. 왜 그랬을까. 왜 친구들과 나눠 먹지 않고 고이 싸 오기만 했을까. 왜 그랬을까. 왜 나에게 가방을 열어 줬을까.
* * *
내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심어 준 건 우습게도 원이었다. 내 부모님이 두 분 모두 초등학교 선생님이셨음에도 나는 내 부모님을 보며 꿈을 키운 것이 아니라, 원이를 다루다 보니 꿈을 키우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막 올라갔을 무렵 중3의 원이는 패기가 넘쳤다.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아는 것도 개뿔 없는 게 난폭하기만 했었다. 공부엔 관심이 없었던 탓에 성적은 항상 밑바닥. 뭐가 그리 불만인지 심통 난 얼굴로 세상을 대하는 통에 사람 만드느라 고생했었다.
사실은 원이가 삐뚤어져 있었는지는 몰랐다. 이미지 메이킹을 잘한 덕에 내게 원이는 그저 공부 못하는 착한 동생임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부모님에게도 그리 못난 이미지는 아니었다. 원이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내가 없는 중학교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걸까. 야자를 빠지고 집으로 가는 골목에서 나는 보았다.
여럿이서 곱지 못한 소리로 얽혀 주먹을 휘두르던 싸움판. 그 가운데에 당연하게 서 있던 강원.
‘어쭈.’
그날 원이는 나에게 동네북만큼이나 먼지 날리게 맞았다.
* * *
원이는 정말 무식했다. 저거 저거 머리가 저리 나빠 어찌 생활하나.
하고 싶은 건 하고, 하기 싫은 건 절대 하지 않는 내 성격은 남들이 보면 원이와 도긴개긴이었을 거다. 원이보다 좀 더 기가 셌던 나는 그날부터 원이를 따라다니며 개화시키는 것에 맛을 들였다. 아니, 실은 내 학업 스트레스를 원이를 통해 풀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내 밑에서 내 성질머리를 다 받아 온 원이는 내게 꼼짝 못 했다. 마치 어릴 적부터 날 따라 온 동물 같았다. 다른 이들처럼 어르고 달래는 건 내 사전에 없었기에 있는 대로 성질이란 성질은 다 내고 난 후에야 개운해져 집에 돌아가곤 했다. 난폭했던 원이가 점점 온순해져 가는 걸 볼 때마다 희열감이 샘솟았다.
이게 카타르시스인가. 내일 영어 시험이 있다는 원이를 억지로 앉혀 두고 영어 책을 펴, 이때다 싶어 말했다.
‘원아, 나는 선생님이 될 거야.’
‘……누나가 선생님? 완전 안 어울려.’
기껏 처음으로 내 꿈을 말해 줬더니 눈썹을 찡그리며 안 어울린단다.
‘왜? 공무원인데. 나라에서 꼬박꼬박 돈 넣어 주는 철 밥통인데. 우리 부모님처럼 초등학교 선생님 할 거야. 큰 애들은 싫어.’
‘교대 가려고? 누나 성적 돼?’
‘……간당간당하긴 한데 지방 교대는 노려 볼 만 해.’
‘지방?’
원이의 겉모습을 설명하자면 참으로 허울 좋은 껍데기를 지녔다 할 수 있다. 고양이 눈처럼 눈꼬리가 좀 올라간 편이었는데, 요상하게 순한 인상이면서도 차가운 느낌을 주는 얼굴이다. 우리 부모님 앞에선 순한 강아지. 원이의 친동생 가은이 앞에선 무관심한 고양이.
‘지방은 너무 멀어, 누나.’
가면 같은 걸까. 내 앞에선 실실 내 기분 맞춰 주는 저 한 살 어린 놈은 분명 내가 없는 곳에선 한바탕 유난을 떨 것 같은데.
‘너무 멀어.’
원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너무 멀다.’라는 문장만 반복했다. 원이는 항상 곁에 있던 누나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 봤나 보다. 상실감 어린 얼굴이 바로 보이자 나는 그 얼굴에 당황해 쓸데없는 말만 내뱉었다.
1화
1장.
나는 최근 들어 회상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너무 단순하고 당연했던 일들을 다시금 끄집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니 걸리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건 맞나, 저것도 맞나.요즘 들어 특정한 사람 한 명을 탐구하는 것에 도가 튼 내가 그 이상을 바라보며 회상을 시작했다.
나는 교대생, 저 녀석도 교대생.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 * *
저 남자의 이름은 강원. 내 이름은 최샛별. 강원은 나를 누나라 불렀다.
‘눗나, 샛별 눗나.’
나보다 일 년 늦게 태어난 강원은 내 옆집의 신혼부부가 낳은 아들이다. 태어나기 이전부터 집안의 왕래가 잦았던 두 이웃의 아이들은 친구사이를 보장받으며 태어났다.
누나 누나.
그 애는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눗나 눗나 부르며 나를 따라다녔다. 겨우 한 살 차이 나는 아가들은 쉽게도 친해졌는데, 4년 뒤 강원의 여동생 강가은이 태어나서도 녀석은 나를 퍽이나 잘 따랐다.
내가 아기인 가은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곤 꼭 가은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오곤 했다. 우리는 동네 친구들도 필요 없이 항상 셋이 붙어 다녔었는데, 미취학 아동 시절이 끝나고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원이는 어느 순간부터 정확해진 발음으로 누나를 말하곤 했는데, 우리는 항상 같이 커 와서 사실 그게 언제쯤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작은 항상 내가 먼저 했고, 원이와 가은이는 내 뒤를 따라왔었다. 내가 먼저 들어간 초등학교는 1년 뒤에 원이가 들어왔으며 4년 뒤엔 가은이가 입학했다.
지금 와서 회상해 보니 원이는 참 똘똘해서 인기가 많았었다. 어릴 적엔 그저 한 명이 좋아하면 다 좋아하는 그런 여론에 따른 것인 줄만 알았더니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원이는 꾸준히 인기가 있었다.
나를 따라 초등학교를, 중학교를, 고등학교를, 그리고 대학교를. 어디까지 따라올 거니.
* * *
“원아, 이 쿠키 뭐야? 나 먹는다.”
“먹는 거라면 사족 못 쓰고 알아차리네. 다 먹어라.”
우리 둘의 집은 수도권이고 학교는 지방 교대라 자취방에서 생활을 했다. 부모님의 친분 덕에 우리 둘의 자취방도 참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자취방 문을 열고 들어가 서로의 음식을 먹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항상 당연했다.
“교생 실습 끝났잖아. 애들이 선물이라고 편지랑 쿠키 줬어.”
“아아.”
교생 실습.
그러고 보니 나도 다녀왔었지. 시간 참 빠르다.
“쿠키, 나 중고등학교 때 많이 받았었는데.”
“뭐? 누구한테?”
선물 받아 본 적 있다 하니 원이가 깜짝 놀라 반문을 해 온다. 6년 내내 내가 말하지 않은 로맨스가 있었냐며 아연실색한다.
“너 좋아하는 애들한테.”
“아 그랬어?”
“응, 너랑 친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랬었다. 쿠키, 과자, 음료수, 준비물.
내가 이러한 것들을 처음 느꼈던 것은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새로운 반에 한창 신나 있었을 즈음이었다. 원이와 스스럼없이 지내던 탓에 가끔 등교도 같이 하곤 했는데, 원이는 물건을 곧잘 잃어버려 내게 체육복을 빌리러 오기도 했었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원이와 어쩌다 같이 등교를 하게 되었고, 원이는 체육복을 가져오지 않았고. 해서, 내가 원이와 친하다는 사실을 남들도 알게 되었다.
멋모르던 초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이미 감정을 알게 된 중학교 아이들은 성인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원이와 친하다는 사실 하나로 쿠키도 주고, 과자도 주고, 음료수도 주고. 어른들의 아첨이 어린이들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이에게 자랑했다.
‘아, 누나는 단것을 좋아하는구나.’
네 덕에 누나가 맛난 것을 먹는다며 좋아하니 원이는 해맑게 웃기만 했다. 빼빼로 데이에도, 화이트 데이에도 특별한 날이면 항상 원이네부터 들러 원이 가방을 열어 간식이 잔뜩 있음을 확인하고 좋아했었다.
‘누나, 다 먹어.’
착한 내 동생. 먹지도 않고 고이고이 챙겨 오는 착한 내 동생. 왜 그랬을까. 왜 친구들과 나눠 먹지 않고 고이 싸 오기만 했을까. 왜 그랬을까. 왜 나에게 가방을 열어 줬을까.
* * *
내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심어 준 건 우습게도 원이었다. 내 부모님이 두 분 모두 초등학교 선생님이셨음에도 나는 내 부모님을 보며 꿈을 키운 것이 아니라, 원이를 다루다 보니 꿈을 키우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막 올라갔을 무렵 중3의 원이는 패기가 넘쳤다.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아는 것도 개뿔 없는 게 난폭하기만 했었다. 공부엔 관심이 없었던 탓에 성적은 항상 밑바닥. 뭐가 그리 불만인지 심통 난 얼굴로 세상을 대하는 통에 사람 만드느라 고생했었다.
사실은 원이가 삐뚤어져 있었는지는 몰랐다. 이미지 메이킹을 잘한 덕에 내게 원이는 그저 공부 못하는 착한 동생임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부모님에게도 그리 못난 이미지는 아니었다. 원이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내가 없는 중학교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걸까. 야자를 빠지고 집으로 가는 골목에서 나는 보았다.
여럿이서 곱지 못한 소리로 얽혀 주먹을 휘두르던 싸움판. 그 가운데에 당연하게 서 있던 강원.
‘어쭈.’
그날 원이는 나에게 동네북만큼이나 먼지 날리게 맞았다.
* * *
원이는 정말 무식했다. 저거 저거 머리가 저리 나빠 어찌 생활하나.
하고 싶은 건 하고, 하기 싫은 건 절대 하지 않는 내 성격은 남들이 보면 원이와 도긴개긴이었을 거다. 원이보다 좀 더 기가 셌던 나는 그날부터 원이를 따라다니며 개화시키는 것에 맛을 들였다. 아니, 실은 내 학업 스트레스를 원이를 통해 풀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내 밑에서 내 성질머리를 다 받아 온 원이는 내게 꼼짝 못 했다. 마치 어릴 적부터 날 따라 온 동물 같았다. 다른 이들처럼 어르고 달래는 건 내 사전에 없었기에 있는 대로 성질이란 성질은 다 내고 난 후에야 개운해져 집에 돌아가곤 했다. 난폭했던 원이가 점점 온순해져 가는 걸 볼 때마다 희열감이 샘솟았다.
이게 카타르시스인가. 내일 영어 시험이 있다는 원이를 억지로 앉혀 두고 영어 책을 펴, 이때다 싶어 말했다.
‘원아, 나는 선생님이 될 거야.’
‘……누나가 선생님? 완전 안 어울려.’
기껏 처음으로 내 꿈을 말해 줬더니 눈썹을 찡그리며 안 어울린단다.
‘왜? 공무원인데. 나라에서 꼬박꼬박 돈 넣어 주는 철 밥통인데. 우리 부모님처럼 초등학교 선생님 할 거야. 큰 애들은 싫어.’
‘교대 가려고? 누나 성적 돼?’
‘……간당간당하긴 한데 지방 교대는 노려 볼 만 해.’
‘지방?’
원이의 겉모습을 설명하자면 참으로 허울 좋은 껍데기를 지녔다 할 수 있다. 고양이 눈처럼 눈꼬리가 좀 올라간 편이었는데, 요상하게 순한 인상이면서도 차가운 느낌을 주는 얼굴이다. 우리 부모님 앞에선 순한 강아지. 원이의 친동생 가은이 앞에선 무관심한 고양이.
‘지방은 너무 멀어, 누나.’
가면 같은 걸까. 내 앞에선 실실 내 기분 맞춰 주는 저 한 살 어린 놈은 분명 내가 없는 곳에선 한바탕 유난을 떨 것 같은데.
‘너무 멀어.’
원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너무 멀다.’라는 문장만 반복했다. 원이는 항상 곁에 있던 누나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 봤나 보다. 상실감 어린 얼굴이 바로 보이자 나는 그 얼굴에 당황해 쓸데없는 말만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