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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 *



우리 고등학교의 음악 수업 중에는 특이한 수행 평가가 있는데, 바로 수준에 맞는 곡을 어떤 악기로든 연주하는 것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없어 목소리로 때우곤 했지만 간혹 음악을 전공하거나 좀 배웠다는 아이들은 누가 봐도 화려한 곡을 선사하기도 했었다. 때문에 항상 정상 수업 시간보다 늦게 끝나지만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급식을 먹으러 몰려가는데 급식실이 평소보다 시끄러웠다. 음악실 방음 공사를 새로 하는 탓에 급식실과 연결된 강당에서 특이한 음악 수행 평가를 하는 모양이었다.

‘누나!’

와, 좋은 음악 감상하며 밥을 먹겠네 싶어 친구들과 좋아하고 있을 때 원이가 나를 부르며 내 앞에 섰다.

‘누나, 조금 있으면 내 차례야.’

‘넌 뭐 해? 노래? 탬버린?’

‘나는……’

원이의 얼굴에 수상쩍은 웃음이 피어난다. 저건 분명 곧 일이 터질 테니 기대하란 뜻이었다.

‘피아노.’

‘…….’

중3 원이는 피아노를 배우겠다며 나에게 선포한 지 1년 만에 고등학교 강당,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약속을 지켰다. 그날 학교에서는 원이에게 관심이 없던 아이도 반했다며 원이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교복을 입은 소년이 기다란 손가락으로 아련한 곡을 쳐 대니 여간 멋 나는 게 아니었으리라. 피아노 치는 남자가 좋다 했던가. 저 정도면 정말 좋아할 만했네.

내가 좋아하는 곡. 이건 우연이었을까.

‘누나, 나 어땠어? 완전 멋있었지.’

‘응! 멋있었어. 나도 그 곡 좋아해.’

단지 원이와 나의 취향이 겹쳤던 것뿐일까.

‘알아, 누나 좋아하는 거.’



* * *



원이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가 되자마자 공부에 열을 올렸다. 밑바닥이던 성적이 중간 수준으로 껑충 뛰어올랐으나 한계를 맞았는지 학원을 다녀야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해서 원이는 내가 다니는 학원에 자신도 등록해 다니기 시작했는데, 나는 상위권 반, 원이는 중위권 반이기에 같은 수업을 듣진 않았다. 나이 상관없는 수준별 수업이라 반에는 고1부터 고3까지 다양하게 있었으나 딱히 친목이 있진 않았다. 월, 수, 금 두 시간 분량의 수업을 쉬는 시간 없이 주구장창 뇌 속에 박고 집에 가 쓰러져 자는 게 일상이었다. 뭐, 인원수도 고작 3명이 다였으니.

그런 일상 속에서 황급히 오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한다.

‘강원, 나도 날 좋아하는 애들이 한두 명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

거울을 봤다. 야무진 눈, 앙증맞은 코와 입. 정석 미인상은 아니었지만 어디 가서 못생겼다는 이야긴 안 듣게 생겼다. 좀 예쁘네.

‘무슨 일 있어?’

‘나한테 스토커 붙은 것 같아.’

‘뭐?’

내가 좀 귀엽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몰랐다며 과장 섞인 농을 던졌지만 원이는 한순간에 분위기가 내려가 제대로 설명하라며 화를 냈다.

[안녕?]

처음은 이게 다였다. 모르는 번호라 잘못 보냈나 보다 생각해 답을 보내지 않았는데 주인 제대로 찾은 문자였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지금 학교겠구나.]

[체육복 입고 집에 가는 너, 잘 어울린다.]

그러다 점점 수위가 올라 내 생활 반경을 문자해 주기도 하고 내가 무슨 옷을 입고 집에 들어가는지도 알려 주었다.

[오늘 나랑 너랑 눈이 마주쳤어.]

[오늘은 왜 학원 안 왔어?]

유난히도 내 일에 관해선 둔하게 반응하던 나도 이때쯤이면 무서워할 만도 했건만, 무서워하기는커녕 현명한 추리가 가능할 정도의 사고가 존재했다. 왜 학원 안 왔어? 왜 학원 안 갔어도 아니고 안 왔어? 게다가 내가 뒤를 돌아봐? 이외에도 몇 가지 문자가 더 있었지만 제일 유력한 증거 속에 점점 조각이 맞춰졌다. 그 말은 즉 영어 학원 같은 반의 누군가라는 소리. 아마…….

후…….

같은 상위권 반 매일 맨 뒤에서 우중충하게 앉아 있는 고3 찌질이가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 걸려도 저런 게 걸려, 짜증 나게.

‘다음 레벨 테스트가 언제지?’

‘2주일 뒤?’

내 핸드폰 속, 스토커가 보낸 문자를 정독하던 원이가 다음 레벨 테스트를 물어 온다.

‘번호는 차단해 둘게.’

강원의 키는 중3부터 확확 자라기 시작했는데, 고1 원이는 이미 나를 넘어 건장한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아직 앳되지만 발육만큼은 참 빠르다. 원이가 상위권 반으로 올라가겠다는 소리가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다. 애초에 기본이 깔려 있던 원이가 2주일 동안 물불 안 가리고 영어만 파니 성적 향상도 당연한 말이었다. 2주 뒤 레벨 테스트를 가까스로 턱걸이로 통과해 상위권 반에 들어온 원이는 얼씨구나 활짝 웃으며 내 옆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원래도 친한 원이었지만 역시 함께하면 더 친해지는 법이라고 원이와 나는 더욱더 죽이 맞아 갔다. 책을 안 가져왔다며 내게 찰싹 붙어 수업을 듣기도 하고 수업이 끝난 뒤 같이 야식을 먹고 집에 돌아가기도 했다. 집 방향이 같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둘이 화기애애하니 점점 더 우중충하게 변해 가는, 매일 맨 뒤에만 앉아 있던 고3 찌질이가 걱정되기도 했다. 원이는 유독 학원 안에서 나에게 더 친한 척을 했는데, 마치 어릴 적의 원이를 보는 것 같아 귀여웠다.

그렇게 일주일을 함께 보냈을까. 드디어 원이에게도 스토커의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같이 앉지 마.]

원이는 문자가 온 핸드폰을 보며 소리 나게 비웃었다. 한순간 마치 중3 무식한 게 패기만 넘치던 양아치 강원이 씐 것 같은 웃음이었다.

‘누나 오늘은 내 가방 가지고 먼저 가. 나 어디 들를 곳 생겼어.’

‘어? 그래.’

들를 곳이 생겼다며 눈을 빛내던 강원은 무서웠다. 속이 검은데 숨기려 실실 웃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디 가냐며 물어볼 생각도 안 했다. 원이의 가방을 들고 원이네 집부터 들러 가방을 내려놓는데 생각 외로 가방에 무게가 있었다. 별생각 없이 가방 문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는데, 학원에서 쓰는 영어 책이 보기 좋게 자리 잡고 있다. 오늘 원이는, 책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내 옆에 찰싹 붙어 있었는데. 저번에도, 저저번에도. 원이는 책 없다고 했는데.

그리고 다음 날 고3 스토커는 학원을 끊었다. 그 뒤로 문자도 전화도 모습도 전부 자취를 감추었다.

‘너 뭔 짓 했어?’

‘응? 아니.’

분명 원이가 뭔가를 했다는 건 알겠는데 딱히 깊게 알고 싶지는 않아 관두었다. 원이는 왜 있는 책을 없다며 잡아뗀 거였을까. 필기를 하기도, 글씨 보기도 힘들었을 텐데. 왜 내 스토커를 떼 줬던 걸까. 상관없던 일이었는데.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하던 일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 * *



나는 그렇게도 되지 않았으면 하던 고3이 되었고 그렇게도 오지 않았으면 하던 수능도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고2때까지도 공부를 열심히 한 편이었지만 고3과 비교할 건 아니었다.

나는 눈치는 빨랐으나 머리는 나빴다. 아슬아슬한 긴장감에 손이 떨리고 가슴이 쿵쿵거렸다. 공부를 하지 않던 아이들도 반쯤 돌아 공부를 해 대니 내 순위를 유지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차라리 죽는 게 더 편할 것도 같았다.

‘누나, 많이 힘들어?’

‘죽을 것 같아. 너무 졸리고, 너무 불안해.’

임용 고시를 겪고 있는 지금과 비교하자면 임용 쪽이 훨씬 힘든 것 같으나 이때의 나에게 수능이란 건 정말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존재였다.

‘내가 먼저 태어났으면 좋을 뻔했다. 같은 나이로 태어나거나……’

‘난 네가 동생이라서 좋은데.’

‘난 동생이라서 싫은데.’

원이는 나를 따라 공부에 열을 올렸었다. 자신도 교대에 갈 거라며 자신했었다.

‘몸은 내가 더 커, 알아?’

‘알아.’

‘힘도 내가 훨씬 더 세고.’

‘…….’

‘키도 내가 더 크고, 목소리도 남자 목소리고.’

‘강원.’

‘그래도 난 동생이잖아.’

강원은 동생인 게 억울한 모양이었다. 몸집도, 힘도, 키도, 목소리도 전부 자신 있는데 그저 동생이란 게 억울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