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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부모님은 도희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무렵에 갈라섰다. 아버지는 늘 바빴다. 일주일에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흘려듣기론 아버지는 승승장구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정계(政界)에 들어설 준비를 한다 했다.

엄마는 밤마다 방문을 틀어 잠그고 울었다.



‘내연녀가 있는 게 확실해.’



엄마의 혼잣말을 들었다.

사건의 전말은 양쪽 입장을 전부 들어 봐야 안다지만 그 당시엔 그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매번 이러니까 당신이 지긋지긋하다는 거야.’



그 말이 엄마에겐 꽤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 듯했다.

마지막 날. 아버지는 묘한 눈으로 도희를 쳐다봤다.

껄끄러움. 원망. 죄책감.

아버지는 그대로 집을 나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혼 후 아버지에게 받은 위자료와 양육비로 몇 달은 버틸 만했다. 하지만 그마저 오래가진 않았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며 연락도, 지원도 끊었다.

엄마는 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찾았다. 몇 번의 이사도 감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뜻하지 못한 사고로 머리를 다쳤다. 병명은 코마(coma), 혼수상태.

운전자는 도주했다.



‘뇌 손상이 심합니다. 기적적으로 눈을 뜨게 되더라도 장애는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사형 선고와 다를 바 없는 진단을 통보받고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아름답던 엄마는 점점 수척해졌고, 그저 평범함을 바랐던 우리의 작은 세상은 볼품없이 무너졌다.

만에 하나 도영이 눈을 뜨게 됐을 때 자신의 망가진 몸을 보고 얼마나 괴로워할지, 엄마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고 했다. 충격에 몸서리칠 막내딸을 곁에서 지켜볼 바엔 차라리 편히 눈감았으면 한다고 버릇처럼 말했다.

“엄마. 방금 백만 원 입금했어요. 다음 달엔 이백 채워서 보낼게요.”

― 됐다 했지! 엄마 혼자 처리할 수 있다니까. 대체 너까지 왜 그래, 정말! 일하느라 출석 일수 부족해서 계절 학기인지 뭔지 그것도 들어야 한다며. 국가 장학금도 떨어졌다며!

동생의 발레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병원비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무려 5년이 흘렀다. 보험금으로 버틸 수 있는 금액은 한참 넘어선 상태였다.

‘그냥 내 돈 받고 노래방 도우미 일 그만두면 안 돼요?’

차마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뒤에서 묵묵히 동생의 병원비와 치료비를 보태며 엄마가 스스로 그 일을 그만두길 바라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차라리 원망할 곳이 있었더라면 이 고통이 덜했을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서.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아서.

“내일은 제가 도영이 옆에 있을게요. 매일 병원에만 있지 말고 집에서 좀 쉬세요.”

― 너 정말 엄마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오기만 해! 졸업할 때까지 병원에 발도 들일 생각 마!

숨이 막혔다.

꿈도, 미래도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배부른 소리라 하겠지만 명문대생이란 타이틀은 그저 조금 더 쉽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물론 처음엔 달랐다.

인정받고 싶었다. 동생과 달리 특별한 재능이 없었다. 그래서 죽어라 공부했다. 그럼 조금이나마 인정받을 줄 알았다.

수고했다. 장하다. 자랑스럽다.

그런 말은 바라지도 않았다. 가뭄 든 엄마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생기를 되찾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쩌려고 그런 선택을 했어. 가운대학교, 거기 등록금 비싸지 않니? 학비는 또 어떻게 감당하려고. 안 그래도 도영이 병원비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전부 부질없었다.



* * *



통화를 끝낸 뒤 다시 교내 카페로 들어서자 선미의 염려스러운 얼굴이 가장 먼저 보였다.

“어머니셔?”

“뭐, 그렇지.”

도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맞은편에 엉덩이를 붙였다.

카페는 한적했다.

아직 기숙사 방을 정리하지 못했거나 도희와 선미처럼 여러 사정 때문에 계절 학기를 수강하는 소수의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내내 도희의 눈치를 살피던 선미가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백구. 혹시, 그날 기억해?”

“그날?”

“그, 왜 있잖아. 한 달 전 종총 때.”

벌써 한 달이 지났나.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느라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선미는 아닌 모양이었다. 가끔 마주칠 때마다 꼭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굴더니 그날 일을 묻고 싶었던 걸까.

“왜? 나 가고 무슨 일 있었어?”

“아니이, 그냥. 그날 집엔 잘 들어갔나 해서…….”

“네 앞에 멀쩡히 앉아 있는 거 보면 알잖아. 당연히 잘 들어갔지.”

고해찬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 거다. 알면서도 도희는 모르는 척 대답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와 관련된 일은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 피차 난처할 테니까. 도희는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는 책들을 하나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벌써 가게?”

“응.”

“강의?”

도희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아. 알바. 너 진짜 괜찮아? 요즘 잠도 잘 못 자는 것 같던데.”

“응. 버틸 만해.”

선미의 걱정이 진심이라는 것을 안다. 답답함을 참지 못해 병상에 누워 있는 아픈 동생을 내버려 둔 채 무작정 병원을 뛰쳐나왔을 때. 기댈 곳 없이 울부짖으며 무너졌을 때. 새벽에 맨발로 달려 나와 두 팔 벌려 꽉 껴안아 준 유일한 사람이 선미였으니까.

“걱정해 줘서 고맙다. 썬. 내일 봐.”

선미는 멋쩍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째 더 말랐네…….”

여름인데도 도희의 옷차림은 무거웠다.

엉덩이를 다 가리는 긴팔 체크무늬 셔츠. 무릎이 늘어난 청바지. 다 해져 버린 스니커즈 운동화. 대충 아무렇게나 올려 묶은 머리.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에코 백. 언제부턴가 사라진 웃는 얼굴.

코끝이 시큰해진 선미는 멀어지는 도희의 뒷모습에서 급히 시선을 떼어 냈다.



* * *



조용한 캠퍼스 교정은 예뻤다.

푸릇한 잎사귀로 뒤덮인 나무가 즐비한 거리와 잘 정돈된 잔디는 누군가의 소중한 관심과 손길이 닿았단 증거일 것이다.

학기 때는 재잘재잘 떠들기 바쁜 학생들로 빼곡했는데, 8월 중순에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덩그러니 홀로 남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을 추억하려면 얼마나 더 긴 시간을 버텨야 하나.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시선을 틀자 대문짝만 하게 걸린 현수막이 시야에 들어왔다.



「<경> 가운대 체육학과 고해찬, 제28회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 자유형 200m, 400m, 800m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 금메달 수상, 신기록 달성 <축>」



올림픽이 끝난 지도 벌써 3주가 지났는데 그 뜨거운 열기는 여전했다.

정문뿐만이 아니었다. 길거리 곳곳마다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전부 고해찬과 관련된 내용이다.

아시아 선수권, 올림픽, 전국체전, FINA 세계 선수권, 아시안 게임, 각종 국가 지역 대회 등등. 대학 홍보를 위한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한참 지난 시합까지 끌어와 고해찬을 내걸었다.

그 대단한 애와 한 침대에서 밤을 보냈다는 사실은 다시 떠올려 봐도 너무 현실성 없다.

고해찬은 생각보다 더 유명했다. 태생부터 자신과는 다른 삶. 그의 세상에 패배란 없다. 늘 최고의 선상에 서서 관중들의 찬사를 받는 인생. 꿈과 열정. 의지가 들끓는 고해찬만의 세계, 천국.

잊고 있던 흐릿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해찬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을 때. 술김을 빌려 물었다.



‘넌, 이제 괜찮아?’



고해찬은 알 수 없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었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해찬과의 첫 만남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날 처음 만났다. 잊을 수 없었다.

죽어 버린 고해찬의 눈동자를.

그때와 지금의 그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날의 기억을 까맣게 잊어버렸다고 생각할 만큼.

꿈에서 깨어나라는 신호처럼, 저 멀리서 휘슬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놈들은 학교 교정 다섯 바퀴 추가다! 이 악물고 뛰어! 전국체전 앞으로 4개월 남았다, 새끼들아!”

남자의 우렁찬 불호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체육학과 남학생들은 악을 써 대며 속도를 높였다. 올림픽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다들 무더운 날씨에 뛰려니 평소보다 일찍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듯, 헉헉거리며 거친 신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중 고해찬은 유독 돋보였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그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너무 쉽게 달리고 있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아…….”

순간 더운 바람이 훅 불어닥쳤다.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휙 지나쳤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저만치 멀어진 고해찬은 벌써 중간 지점을 가뿐히 통과하고 있었다.

“와, 저 미친 새끼. 겁나 빨라!”

“괴물 같은 놈. 수영 말고 그냥 육상을 하라 해!”

남학생들의 투박한 욕설들이 빈 교정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엄청 빠르네.”

한창 여름 방학 시즌이었지만 체육학과는 시합 성수기에 돌입하여 바쁜 모양이었다. 그래. 다들 고생이 많구나. 그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걸음을 돌렸다.

갈 길이…….

“하, 선배.”

멀다. 먼데. 너는 또 왜.

자꾸 불쑥불쑥 찾아와.

“안녕.”

도희는 짧게 인사했다. 거친 호흡을 가다듬는 해찬을 뒤로하고 급히 발을 옮겼다. 정문을 빠져나와 신호등 앞에 섰다. 그러자 반박자 늦게 해찬의 두 발이 옆에서 따라 멈췄다.

도희는 한숨을 내쉬며 경계 어린 눈으로 삐딱하게 해찬을 올려다보았다.

“왜 따라왔어. 훈련 안 해?”

“일찍 끝났어요. 누구 덕분에.”

해찬이 씩 웃어 보였다. 도희는 미간을 구기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인데, 알은척하지 마.”

“왜요?”

그걸 몰라서 묻나. 캠퍼스는 한적했어도 밖은 아니었다. 역 근처라 그런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주목받기 싫으니까.”

“보통은 즐기지 않나. 그런 거.”

“나는 싫어.”

“진짜 이상하네.”

“뭐가.”

“그렇게 싫으면 무시하고 지나치면 될 텐데, 하나하나 다 받아 주고 있잖아요. 새삼 상냥하게.”

정곡에 찔린 듯 도희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뿐이었다. 도희는 해찬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

“이참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그날 너랑 나. 잤니?”

직구로 던진 물음에 해찬이 실소를 터트렸다.

“잤으면.”

도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떻게 되는데요?”

이게 진짜……. 도희는 입술을 잘근 감쳐물고서 확실히 선을 그었다.

“뭐가 됐든 충동적이었어. 더 이상 휘둘려 줄 생각 없으니까 그쯤 해.”

삐뚤어진 말만 나왔다.

깊은 감정을 공유하기엔 처한 현실이 궁핍하다.

무엇보다, 고해찬은 너무 가볍고 벅찬 상대였다.

“재미는 내가 아니라 선배가 본 것 같은데. 지금 나 가지고 놀아요?”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

“화내지 마요. 갖고 놀아도 상관없다고 말하려 했으니까.”

“그만 질척거려.”

“그래도 하룻밤 같이 보낸 사인데 이 정도는 허용되는 범위 아닌가.”

자칫했다간 뻥, 터질 것만 같았다. 선만 넘지 않으면 기억도 못 하는데 누나 동생으로 지내는 정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건만, 돌아온 말은 한 침대에서 뒹굴어 놓고 우리가 어떻게, 였다.

도희는 끓어 넘치려는 감정을 간신히 억눌러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입. 다물어.”

“먼저 언급한 사람은 선배잖아.”

분명 입술은 웃고 있는데 눈빛은 서늘했다. 해찬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도희를 똑바르게 직시했다.

“허락 없이 외박해서 혼나진 않았어요?”

다정한 말투는 어딘가 꺼림칙했다. 마치, 그날 일을 잊지 말라며 못을 박는 것처럼.

“진짜 적당히 까불어, 너.”

“너나 까불지 마.”

갑작스러운 반말에 한 번, 순수하게 웃던 해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짐에 두 번 당황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멍청하게 두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손 안으로 무언가가 강제로 쥐어졌다.

그날 아침 협탁 위에 놓고 나온 오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이었다.

“내가 고작 이딴 게 아쉬워서…….”

다시 생각해 봐도 기막혔는지 해찬이 작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다시는 이런 식으로 굴지 마요. 기분 더러우니까.”

처음 직면했다. 고해찬의 싸늘한 얼굴, 격양된 목소리, 잘게 떨렸던 짙은 눈동자. 전부.



그가 무심히 곁을 스쳐 지나간 뒤,

다시 혼자 남게 된 나는,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