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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흔히 어떠한 물건의 가치는 그것의 희소성에서 온다고 말한다. 다이아몬드가 금보다 값비싼 까닭은 그것이 금보다 희귀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언제나 이러한 이론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이아몬드의 매장량이 금의 매장량에 비해 현저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다이아몬드는 금보다 값지다. 그렇다면 과연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마케팅! 마케팅입니다, 여러분!”

노쇠한 교수가 칠판을 텅텅 치며 외쳤다. 데시벨 높은 금속성의 마찰음이 강의실을 쩌렁쩌렁 흔들었다.

야단스러운 소음이 강의 시간 내내 졸고 있던 자그마한 머리통의 주인공을 깨웠다.

“흐아아암.”

흘낏흘낏 그녀를 향하는 학생들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브가 하품을 쩍 하며 고개를 들었다. 교수의 가느다란 눈동자가 리브를 실쭉 흘기고 지나갔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슬로건이 만들어 낸 환상! 그리고 다이아몬드를 귀중한 것으로 취급하기로 한 사람들 간의 협의! 그것이 바로 한낱 돌덩어리를 보석으로 만든 것입니다!”

교수가 흡사 웅변하는 연사처럼 외쳤다.

자신이 언제 마케팅 강의를 신청했던가. 리브가 잠이 덜 깬 머리를 꿈지럭꿈지럭 굴렸다. 그러나 기름칠되지 않은 기계처럼 삐걱거리는 두뇌로는 지금의 수업이 무슨 수업이었는지 도통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리브는 큼지막한 가방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각을 확인했다. 수요일 오후 5시 30분. ‘수인의 역사와 이해’ 과목을 수강하는 시간이었다.

그제야 리브는 저 다 끓어오른 주전자처럼 새빨간 얼굴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리브를 몹시 아니꼽게 여기는 수인학 교수였다. 교수란 족속은 대개 비슷하게 생겨서 비슷한 복식을 했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저 대머리 교수는 왜 또 뜬금없는 얘기나 하고 있담.’

턱을 비스듬하게 괸 리브가 다른 손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의문에 젖었다.

그런 리브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교수가 드디어 긴 연설의 본론부에 돌입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수인을 보호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수인에게 특별한 고유 가치가 있어서? 혹은 그들의 개체 수가 갈수록 줄어들어서? 전부 틀렸습니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수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인식을 은밀히 심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수의 입에서 이어진 말은 명백한 차별 발언이었다. 강의실이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누군가는 흥미로워하는 듯했고, 누군가는 불쾌해하는 듯하였으나, 대다수의 학생들은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였다.

뭐, 본인들 일이 아니니 그럴 만도 하다. 리브는 손톱 끝으로 다른 손의 손톱을 긁으며 심드렁하게 생각하였다. 물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한다고 하여 짜증이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이 표 나게 리브를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 넓은 강의실 안에 수인이라곤 리브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리브의 밝은 귀는 학생들이 그녀를 두고 떠드는 소리를 한 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애써 손톱을 매만지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하던 리브는 결국 한숨을 폭 내뱉었다.

‘하는 수 없지. 나가야겠다.’

앉은자리가 가시방석 같았다. 리브는 끝내 저 홀로 수업을 마치기로 결심했다. ‘수인의 역사와 이해’ 강의는 단 한 번도 끝까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교수를 포함한 주위의 모든 이들이 아닌 척 리브를 훔쳐보는 상황에서 리브는 책상에 놓여 있던 만년필과 노트를 가방에 주섬주섬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녀는 원래 마음먹은 일은 바로바로 실천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고, 학점이니 학위니 하는 사소한 것들은 애당초 관심 밖의 일이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됐을 뿐인 어린 제자에게 묘한 승부욕을 가지고 있던 교수는 분노로 얼굴이 잘 익은 문어처럼 벌겋게 달아올랐으면서도 강의실을 떠나는 리브를 발걸음을 저지하지는 않았다.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리브는 눈 깜짝할 새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강의동 건물을 벗어난 리브는 정해진 목적지 없이 한참을 걸었다. 혼자 있고 싶었으나, 혼자 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학교에는 길에 쌓인 가을 낙엽보다 더 많은 수의 학생이 있었고, 그 어디에도 리브 혼자만을 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득 고개를 돌린 곳에선 이름 모를 학생들이 잔디밭에 배를 깔고 누워 재잘거리고 있었다. 뭐 그리 즐거운 일이 있는지 숨이 넘어갈 듯 까르르 웃는 학생들은 마치 리브와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학교라는 작은 세계에서 리브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리브는 학교가 싫었다. 특별히 배우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고향을 벗어나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나고 보면 이 고독한 시간들 속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찾게 될까? 지금으로서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럴 것 같지 않았다.

그동안은 어떻게든 참고 견뎌 왔지만, 이제 리브의 얕은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리브는 더는 이런 생활을 감내할 수 없었다. 엄마 메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졸업까지 얌전히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늘 괴리가 있는 법이다.

그래! 오늘이야말로 메리와 승부를 볼 때다! 어쩌면 오늘은 메리가 리브의 자퇴를 허락해 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리브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발끝에서부터 용기를 쥐어짰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메리를 사랑하는 리브였지만, 왜인지 메리를 마주하는 일에는 매번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때마침 걸음이 멎은 곳은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 폐쇄된 강의동 근처였다. 지어진 지 워낙 오래된 탓에, 종종 낙석이 떨어지곤 한다는 이유로 출입이 통제된 곳이었다.

강의동 건물 옆에는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벤치와 오랜 시간 정원사의 손길이 닿지 않아 키가 들쑥날쑥한 수풀이 있었다.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거미줄을 헤치고 벤치로 다가선 리브는 소복이 쌓인 먼지 더미 위에 손수건 한 장 깔지 않고 털퍼덕 주저앉았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자 마음속에서 긴장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리브는 벤치에 덩그러니 앉아 한동안 발만 동동 굴리다가, 흰 신발이 거뭇해질 때가 되어서야 익숙한 번호 열 자리를 눌렀다.

까만 액정 위로 하얀 글씨가 아롱졌다.



<메리>



리브의 세상에서 가장 자애로우며 동시에 가장 엄격한 절대자의 이름이었다.

―리브? 무슨 일 있니?

신호음이 몇 번 울린 후 메리가 전화를 받았다. 메리의 목소리는 사뭇 다정하고 자상했다.

식기가 작게 부딪치는 소리 같은 것이 수화기 너머로 함께 흘러들어 왔다. 리브가 있는 곳과 메리가 있는 곳 사이에는 두 시간의 시차가 있었고, 메리는 꽤 오붓한 저녁을 보내고 있는 중인 듯했다.

메리의 완벽한 저녁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던 리브는 바싹 마른 입술만 자근자근 씹다가, 메리에게 한 번 더 이름을 불린 뒤에야 화들짝 놀라 성급하게 용건을 내뱉었다.

“메리, 나 학교 그만둘래.”

메리가 전화를 받기 전까지 리브에게는 분명 마음속으로 생각해 두었던 대본이 있었다. 우선 메리에게 요즘 자신이 너무 힘들다는 뉘앙스를 풍긴 후, 메리의 반응을 봐 가며 살살 본론을 들이밀 계획이었다.

그러나 메리의 앞에 서면 계획은 항상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아차 하고 뒷수습을 하고자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다혈질인 메리는 벌써 황소처럼 거친 콧김을 푸푸 내뿜고 있었다.

―얘가 또 이러네! 엄마가 용돈 끊기 전에 얌전히 다니라고 했지!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야!

메리의 잔소리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메리가 화가 난 데에도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리브는 자퇴하겠다는 말을 무려 여섯 번이나 꺼냈던 것이다!

그 여섯 번의 시도 중에 메리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달고 있던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메리는 리브가 단순히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리브는 죽는 한이 있어도 솔직한 사정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열여덟이나 먹었는데 학교에서 따돌림 받고 있다는 말을 어떻게 쉬이 꺼내겠는가! 아예 남이라면 몰라도, 가족에게만큼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리브는 언제나 메리의 자랑스러운 딸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리브는 이제 메리의 잔소리 레퍼토리를 달달 외울 수도 있었다. 집에서처럼 리브에게 외출 금지령을 내릴 수 없게 된 메리는 이제 용돈을 가지고 리브를 을러 댔다.

리브는 귓가에서 휴대폰을 멀찍이 떨어뜨렸다가, 메리의 목소리가 잠잠해진 후에야 다시금 그것에 귀를 붙였다.

“메리? 메리? ……뭐야, 끊은 거야?”

그러나 메리는 이미 모든 할 말을 다 털어 내고 전화를 끊어 버린 지 오래였다. 리브는 메리에게 재차 전화를 걸었지만, 메리는 받지 않았다.

뿔이 난 리브는 종전과는 다른 새로운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뒤 번호 세 자리가 메리의 것과 같은 이 번호는 리브의 아빠 찰스의 것이었다.

―응, 우리 공주.

찰스는 언제나처럼 애정이 담뿍 어린 살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한 찰스의 목소리를 듣자 리브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찰리!”

리브는 코를 훌쩍이며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찰스의 애칭을 불렀다. 리브의 목소리에 밴 울음기를 눈치챈 찰스가 나긋나긋하게 리브를 달랬지만, 그건 오히려 리브의 눈물을 더욱 부추기는 요소가 되었다.

“찰리, 나 집에 가고 싶어. 메리한테 뭐라고 말 좀 해 봐. 응?”

메리와 찰스는 서로를 향한 사랑과 신뢰가 두터운 부부였다. 찰스가 리브에게 힘을 보태 준다면 제아무리 독선가인 메리라도 리브의 의견을 마냥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음……. 글쎄. 그것보다 공주야, 메리가 전화를 바꿔 달라는데.

“아, 안 돼! 찰리, 잠깐만!”

―내 생각엔 네가 메리와 직접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잠시만.

하지만 리브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찰스는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 해도 메리의 편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정한 찰스는 매정하게도 메리에게 전화를 넘겼다.

―보자 보자 하니까 얘가 정말! 찰리에게 말한다고 뭐가 다를 것 같니?

메리는 리브의 얕은꾀에 한층 더 화가 난 듯했다. 그러나 메리에게 순순히 사과하기엔 이미 리브 또한 단단히 토라진 상태였다.

“메리 정말 나빴어! 왜 자꾸 나한테 못되게 굴어? 내가 하는 말도 하나도 들어주지 않고! 무슨 엄마가 그래?”

―해! 얼마나 대단한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말해 보라고 엄마가 몇 번이나 그랬지!

“그건! 그거언…….”

타당한 이유야 있었지만, 결코 그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리브는 그럴듯한 다른 이유를 찾아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이미 메리에게 기각된 바 있는 이유들 외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봐! 별것도 아닌 일로 자꾸 엄마 힘들게 할래?

“내가 언제 메리를 힘들게 했어!”

―자꾸 그렇게 말장난만 칠 거면 이제 전화하지 마!

메리는 또다시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리브는 화가 나서 가슴을 들썩이며 달뜬 콧김을 씩씩 내뿜었다.

그때, 잠잠해진 리브의 휴대폰으로 메시지 한 통이 날아들어 왔다.



<[○○카드] 고객님의 자녀 사랑 가족 카드가 정상적으로 정지 처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