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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의 저택 3화
1. 참가 (3)
“2월은 경비원이고, 마지막으로 1월은…….”
1월이 언급되자 11월의 인사에 답하려던 시호의 고개가 3월에게로 돌아갔다. 11월 역시 3월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한 박자 쉬었던 3월이 1월을 보며 뒷말을 이었다.
“가족인 딸입니다.”
“아…….”
시호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아까 말을 들어 파악하건대 귀신 연극이란 거창한 이름이 붙긴 했어도 결국 주어진 역할에 맞추어 연기를 하는 연극인 것 같았다. 그런데 역할이 딸이라니. 시호는 자신이 딸이란 사실에 조금 난감한 기색을 내비추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 연기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3월은 계속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우리는 어떤 오래된 저택으로 갈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깨끗하게 청소됐고 리모델링도 끝난 상태이기에 사건의 흔적은 지워져 있습니다.”
‘사건?’
다른 사람들은 얼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시호는 혼자 의문을 가졌다.
“이전에 살던 이들 역시 자신의 생일 달에 맞추어 별명과 방을 받아 생활했고 그 안에서 전부 죽는 사건이 벌어졌죠.”
시호의 얼굴을 보며 마치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에게 알려 주듯 리듬까지 타며 친절히 설명해 준 3월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시호는 왠지 저를 어리게 여기는 것 같아 발끈했지만 실제로 아는 게 없었기에 잠자코 들었다.
“살인 사건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도 눈치는 빨랐던 시호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죽은 이들의 살아생전을 연기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저택은 완전히 피바다가 됐죠.”
검은 매직 끝이 화이트보드에 쿡쿡 찍혔다. 흰색 바탕에 검은 점들이 마치 칼에 찔린 흔적처럼 남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졌습니다.”
검은 점들 위로 직직, 선이 그어졌다.
“그 저택에 죽은 영혼들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거든요.”
선으로 더러워진 보드 위쪽으로 물음표가 그려졌다.
“사실인지 우연인지 어느 재벌가에서 모든 부지를 사들였는데 말입니다. 신기하게도 공사를 하려고만 하면 사람이 죽어 나가요. 심지어 집을 밀 생각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미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최선은 청소와 리모델링뿐이었죠.”
이번엔 더러워진 화이트보드를 깨끗이 지우고 있었다.
“전 그런 건 잘 믿지 않는 편이었지만…… 연극의 주최자 겸 후원자 되시는 분이 용한 무당을 찾아갔대요.”
이젠 지우개도 매직도 내려놓고 팔짱을 끼며 연극 참가자들을 바라본 3월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그 무당이 귀신을 죽일 연극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고 합니다.”
피식, 하고 비웃는 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시호도 허황된 이야기에 재벌의 돈지랄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이런 걸로 보름에 500만 원이나 주면서 열두 명이나 모은 건가 싶었다.
“귀신을 마치 자신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속여서 다시 죽이란 말을 하더라고요.”
3월이 정정했다.
“아니,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곤 등을 돌려 아직 다 깨끗하게 지우지 못한 부분까지 지우개로 문질러 화이트보드를 깔끔하게 되돌렸다.
“여러분들은 보름간, 약 하루 이틀 사이 꼴로 살해당하실 겁니다.”
깜짝 놀란 시호와 달리 다른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첫날 죽든 마지막 날 죽든 똑같이 오백만 원입니다. 단, 오래 계실수록 수당이 더 붙는다고 하니 마지막 날 죽는 분은 너무 억울해하지 마세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시호가 손을 들었다. 3월이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것도 연기죠?”
“죽는 거요? 당연하죠. 저택 밖에도 사람이 대기할 겁니다. 그 사람들이 시체를 수습, 그러니까 시체 연기를 하는 연기자를 수습한 뒤 데리고 나갈 겁니다. 시신이 저택 대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연기가 끝나게 되는 것이니 그때부턴 바로 일어나셔도 됩니다. 나중에 나눠 드릴 설명서 보시면 아실 거예요.”
꽤나 친절한 설명에 시호는 멋쩍게 볼을 긁었다. 진짜로 500만 원에 죽기 위해 여기 온 사람이 있을 턱이 없을 텐데도 이렇게 물어본 자신이 바보같이 보였을 것 같아서였다.
그때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노인이 손을 들었다.
“네.”
“아내 10월은 사건 전에 먼저 죽는다고 저번에 들었었는데…… 혹시 연극 시작하면 가장 먼저 죽습니까?”
그의 질문에 3월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차차 알게 될 겁니다.”
500만 원도 큰돈이었지만 일찍 죽어 수당을 챙기지 못하면 조금 아쉬울 것 같은 마음에 노인이 입맛을 다셨다. 사람들의 집중이 흐려지는 것 같자 3월은 박수를 치며 청중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연극 주최자가 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3월에게 쏠렸다.
“귀신이 자신이라 생각할 정도로 역에 몰입해 그 귀신이 된 후 죽을 것.”
오싹한 기운이 히터가 틀어진 회의 룸을 스쳤다. 3월은 어딘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위화감 가득한 얼굴로 눈을 크게 뜨고 웃었다.
“즉, 빙의된 상태로 죽길 바라고 계십니다.”
시호는 섬뜩함에 절로 팔을 감쌌다. 그러다 11월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운전기사 역할을 맡게 된 20대 초반의 남자 역시 조금 소름 돋았는지 안색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번에는 웃어 주거나 인사도 없이 눈을 깔다 3월을 쳐다보는 게 보였다. 시호도 얼떨결에 그를 따라 3월에게 눈길을 주었다.
3월은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한 손으로 턱을 잡듯 입을 가리고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자세한 건 저택에 지정된 방 안에 들어가시면 맞춤 설명서가 있을 테니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해 주세요. 혹시 궁금한 사항 있으신 분?”
그때 운전기사 11월 역의 청년이 불쑥 물었다.
“진짜로 빙의되면 어떡해요?”
“그러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려고 벌인 일이니까요.”
“아, 뭐야. 그런가……. 그러면 여기 나오는 귀신 말고 다른 귀신한테 씌면 어떡해요?”
그 질문에 3월이 살짝 목을 꺾고 답했다.
“빙의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귀신에게만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추정하고 있죠. 바로, 31일에 저택에서 살해당한 이들이요.”
조사한 바로는 모두 31일 하루에 죽은 건 아니었으나, 3월은 그런 디테일을 알리지 않았다. 어차피 연극도 여러 날에 걸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11월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어서 중년의 남성이 손을 들어올렸다. 3월이 그를 지목했다. 중년의 남성은 9월 총괄 지배인으로 조금 낡고 더러운 패딩을 입고 있었다.
“어떻게 죽습니까?”
거칠고 텁텁한 목소리였다. 3월 심부름꾼은 9월 총괄 지배인에게 말했다.
“그 방법 역시 맞춤 설명서에 있다고 했습니다. 서로 언제, 어떻게 죽는지는 모릅니다.”
이젠 9월에게서 눈을 돌린 3월이 전부를 천천히 훑으며 답했다.
“살해 방법과 시기는 당사자와 살인마만 알고 있습니다.”
3월은 디귿 모양 끝, 화이트보드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시호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크고 두꺼운 손은 섬세하지 못했으나 단단하고 강해 보였다. 시호가 어색한 듯 어깨를 앞뒤로 살짝 움직였다.
하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를 더욱 단단히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외투를 뚫고 남자의 손가락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쪼록 12월 31일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
1월부터 12월까지 총 열두 명을 태운 버스는 그들을 어느 외곽 지역까지 데리고 갔다. 다들 넓은 좌석 버스 안에서 두 자리를 차지하고 편하게 앉아 있었지만 시호는 예외였다. 창가 쪽에 자리 잡은 시호 옆엔 3월이 앉아 마치 선생님처럼 부족한 정보를 채워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덕분에 다른 이들이 사전 미팅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알게 됐으나 조곤조곤 작은 목소리로 다정하게 들리기까지 하는 부드러운 설명에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오랜만에 학생이 된 기분이기도 했고 어려서 헤어진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의 남자에게 받는 관심이 시호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던 시호는 남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저택 안에서 살해당한 사람들의 영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집을 허물려고 할 때마다 저주에 걸린 듯 이상한 일이 일어났고, 심지어는 죽는 이도 발생해 별의별 짓을 다 해 봤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다.
차라리 고층 건물을 부술 때 사용하는 다이너마이트라도 터뜨리자는 말이 나왔는데 그 말을 한 사람이 죽은 뒤로는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고 방치해 둔 지 꽤 오랜 세월이 흐른 현재, 꼭 땅을 써야 하는 땅 주인이 귀신 죽이기 연극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일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론은 연극을 사주한 이들 역시 거짓말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시도하는 것이란다.
이야기를 속으로 정리하던 시호는 자신이 1월생이라 그 집 주인 가족의 딸의 역할을 받고 그 역할을 위해 가발과 옷까지 준비된 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는 왜 원래 1월생이 중도 하차 했는지 기분을 알 것만 같아졌다. 그만큼 당혹스럽고 하기 싫었다. 그렇지만 돈을 생각하니 그만둘 수가 없었다.
“……꼭 원피스를 입어야 해요?”
“네. 가발도 쓰시고요.”
“썼다 벗었다 하면 귀신이 가짜란 걸 알지 않을까요?”
나름 허점을 짚어 낸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3월은 웃으며 답했다.
“그 정돈 상관없어요.”
여자 역할은 총 세 명이었다. 10월인 아내, 그리고 그녀의 친구이자 아들인 12월의 유모인 4월, 딸 1월. 10월은 살아 있을 때부터 원래 가발을 썼고 4월은 짧은 머리였다고 했다. 단지 그 집 딸만이 진짜로 긴 생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 맞춰 제작된 가발을 써 달라 말하며 대신 앞머리는 알아서 잘라도 된다고 했다.
“아, 매일 면도해 주시고요.”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가발 앞머리는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니 이어서 면도 얘기를 꺼내는 모습에 헛웃음이 터졌다.
1. 참가 (3)
“2월은 경비원이고, 마지막으로 1월은…….”
1월이 언급되자 11월의 인사에 답하려던 시호의 고개가 3월에게로 돌아갔다. 11월 역시 3월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한 박자 쉬었던 3월이 1월을 보며 뒷말을 이었다.
“가족인 딸입니다.”
“아…….”
시호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아까 말을 들어 파악하건대 귀신 연극이란 거창한 이름이 붙긴 했어도 결국 주어진 역할에 맞추어 연기를 하는 연극인 것 같았다. 그런데 역할이 딸이라니. 시호는 자신이 딸이란 사실에 조금 난감한 기색을 내비추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 연기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3월은 계속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우리는 어떤 오래된 저택으로 갈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깨끗하게 청소됐고 리모델링도 끝난 상태이기에 사건의 흔적은 지워져 있습니다.”
‘사건?’
다른 사람들은 얼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시호는 혼자 의문을 가졌다.
“이전에 살던 이들 역시 자신의 생일 달에 맞추어 별명과 방을 받아 생활했고 그 안에서 전부 죽는 사건이 벌어졌죠.”
시호의 얼굴을 보며 마치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에게 알려 주듯 리듬까지 타며 친절히 설명해 준 3월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시호는 왠지 저를 어리게 여기는 것 같아 발끈했지만 실제로 아는 게 없었기에 잠자코 들었다.
“살인 사건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도 눈치는 빨랐던 시호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죽은 이들의 살아생전을 연기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저택은 완전히 피바다가 됐죠.”
검은 매직 끝이 화이트보드에 쿡쿡 찍혔다. 흰색 바탕에 검은 점들이 마치 칼에 찔린 흔적처럼 남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졌습니다.”
검은 점들 위로 직직, 선이 그어졌다.
“그 저택에 죽은 영혼들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거든요.”
선으로 더러워진 보드 위쪽으로 물음표가 그려졌다.
“사실인지 우연인지 어느 재벌가에서 모든 부지를 사들였는데 말입니다. 신기하게도 공사를 하려고만 하면 사람이 죽어 나가요. 심지어 집을 밀 생각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미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최선은 청소와 리모델링뿐이었죠.”
이번엔 더러워진 화이트보드를 깨끗이 지우고 있었다.
“전 그런 건 잘 믿지 않는 편이었지만…… 연극의 주최자 겸 후원자 되시는 분이 용한 무당을 찾아갔대요.”
이젠 지우개도 매직도 내려놓고 팔짱을 끼며 연극 참가자들을 바라본 3월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그 무당이 귀신을 죽일 연극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고 합니다.”
피식, 하고 비웃는 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시호도 허황된 이야기에 재벌의 돈지랄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이런 걸로 보름에 500만 원이나 주면서 열두 명이나 모은 건가 싶었다.
“귀신을 마치 자신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속여서 다시 죽이란 말을 하더라고요.”
3월이 정정했다.
“아니,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곤 등을 돌려 아직 다 깨끗하게 지우지 못한 부분까지 지우개로 문질러 화이트보드를 깔끔하게 되돌렸다.
“여러분들은 보름간, 약 하루 이틀 사이 꼴로 살해당하실 겁니다.”
깜짝 놀란 시호와 달리 다른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첫날 죽든 마지막 날 죽든 똑같이 오백만 원입니다. 단, 오래 계실수록 수당이 더 붙는다고 하니 마지막 날 죽는 분은 너무 억울해하지 마세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시호가 손을 들었다. 3월이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것도 연기죠?”
“죽는 거요? 당연하죠. 저택 밖에도 사람이 대기할 겁니다. 그 사람들이 시체를 수습, 그러니까 시체 연기를 하는 연기자를 수습한 뒤 데리고 나갈 겁니다. 시신이 저택 대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연기가 끝나게 되는 것이니 그때부턴 바로 일어나셔도 됩니다. 나중에 나눠 드릴 설명서 보시면 아실 거예요.”
꽤나 친절한 설명에 시호는 멋쩍게 볼을 긁었다. 진짜로 500만 원에 죽기 위해 여기 온 사람이 있을 턱이 없을 텐데도 이렇게 물어본 자신이 바보같이 보였을 것 같아서였다.
그때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노인이 손을 들었다.
“네.”
“아내 10월은 사건 전에 먼저 죽는다고 저번에 들었었는데…… 혹시 연극 시작하면 가장 먼저 죽습니까?”
그의 질문에 3월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차차 알게 될 겁니다.”
500만 원도 큰돈이었지만 일찍 죽어 수당을 챙기지 못하면 조금 아쉬울 것 같은 마음에 노인이 입맛을 다셨다. 사람들의 집중이 흐려지는 것 같자 3월은 박수를 치며 청중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연극 주최자가 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3월에게 쏠렸다.
“귀신이 자신이라 생각할 정도로 역에 몰입해 그 귀신이 된 후 죽을 것.”
오싹한 기운이 히터가 틀어진 회의 룸을 스쳤다. 3월은 어딘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위화감 가득한 얼굴로 눈을 크게 뜨고 웃었다.
“즉, 빙의된 상태로 죽길 바라고 계십니다.”
시호는 섬뜩함에 절로 팔을 감쌌다. 그러다 11월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운전기사 역할을 맡게 된 20대 초반의 남자 역시 조금 소름 돋았는지 안색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번에는 웃어 주거나 인사도 없이 눈을 깔다 3월을 쳐다보는 게 보였다. 시호도 얼떨결에 그를 따라 3월에게 눈길을 주었다.
3월은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한 손으로 턱을 잡듯 입을 가리고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자세한 건 저택에 지정된 방 안에 들어가시면 맞춤 설명서가 있을 테니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해 주세요. 혹시 궁금한 사항 있으신 분?”
그때 운전기사 11월 역의 청년이 불쑥 물었다.
“진짜로 빙의되면 어떡해요?”
“그러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려고 벌인 일이니까요.”
“아, 뭐야. 그런가……. 그러면 여기 나오는 귀신 말고 다른 귀신한테 씌면 어떡해요?”
그 질문에 3월이 살짝 목을 꺾고 답했다.
“빙의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귀신에게만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추정하고 있죠. 바로, 31일에 저택에서 살해당한 이들이요.”
조사한 바로는 모두 31일 하루에 죽은 건 아니었으나, 3월은 그런 디테일을 알리지 않았다. 어차피 연극도 여러 날에 걸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11월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어서 중년의 남성이 손을 들어올렸다. 3월이 그를 지목했다. 중년의 남성은 9월 총괄 지배인으로 조금 낡고 더러운 패딩을 입고 있었다.
“어떻게 죽습니까?”
거칠고 텁텁한 목소리였다. 3월 심부름꾼은 9월 총괄 지배인에게 말했다.
“그 방법 역시 맞춤 설명서에 있다고 했습니다. 서로 언제, 어떻게 죽는지는 모릅니다.”
이젠 9월에게서 눈을 돌린 3월이 전부를 천천히 훑으며 답했다.
“살해 방법과 시기는 당사자와 살인마만 알고 있습니다.”
3월은 디귿 모양 끝, 화이트보드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시호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크고 두꺼운 손은 섬세하지 못했으나 단단하고 강해 보였다. 시호가 어색한 듯 어깨를 앞뒤로 살짝 움직였다.
하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를 더욱 단단히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외투를 뚫고 남자의 손가락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쪼록 12월 31일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
1월부터 12월까지 총 열두 명을 태운 버스는 그들을 어느 외곽 지역까지 데리고 갔다. 다들 넓은 좌석 버스 안에서 두 자리를 차지하고 편하게 앉아 있었지만 시호는 예외였다. 창가 쪽에 자리 잡은 시호 옆엔 3월이 앉아 마치 선생님처럼 부족한 정보를 채워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덕분에 다른 이들이 사전 미팅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알게 됐으나 조곤조곤 작은 목소리로 다정하게 들리기까지 하는 부드러운 설명에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오랜만에 학생이 된 기분이기도 했고 어려서 헤어진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의 남자에게 받는 관심이 시호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던 시호는 남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저택 안에서 살해당한 사람들의 영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집을 허물려고 할 때마다 저주에 걸린 듯 이상한 일이 일어났고, 심지어는 죽는 이도 발생해 별의별 짓을 다 해 봤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다.
차라리 고층 건물을 부술 때 사용하는 다이너마이트라도 터뜨리자는 말이 나왔는데 그 말을 한 사람이 죽은 뒤로는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고 방치해 둔 지 꽤 오랜 세월이 흐른 현재, 꼭 땅을 써야 하는 땅 주인이 귀신 죽이기 연극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일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론은 연극을 사주한 이들 역시 거짓말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시도하는 것이란다.
이야기를 속으로 정리하던 시호는 자신이 1월생이라 그 집 주인 가족의 딸의 역할을 받고 그 역할을 위해 가발과 옷까지 준비된 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는 왜 원래 1월생이 중도 하차 했는지 기분을 알 것만 같아졌다. 그만큼 당혹스럽고 하기 싫었다. 그렇지만 돈을 생각하니 그만둘 수가 없었다.
“……꼭 원피스를 입어야 해요?”
“네. 가발도 쓰시고요.”
“썼다 벗었다 하면 귀신이 가짜란 걸 알지 않을까요?”
나름 허점을 짚어 낸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3월은 웃으며 답했다.
“그 정돈 상관없어요.”
여자 역할은 총 세 명이었다. 10월인 아내, 그리고 그녀의 친구이자 아들인 12월의 유모인 4월, 딸 1월. 10월은 살아 있을 때부터 원래 가발을 썼고 4월은 짧은 머리였다고 했다. 단지 그 집 딸만이 진짜로 긴 생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 맞춰 제작된 가발을 써 달라 말하며 대신 앞머리는 알아서 잘라도 된다고 했다.
“아, 매일 면도해 주시고요.”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가발 앞머리는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니 이어서 면도 얘기를 꺼내는 모습에 헛웃음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