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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1. 거트루드의 밤(6)
에드워드는 레슬리의 여자 취향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솔직히 뭔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취한 상태에서 여자를 고르는데 뭐가 보이기는 할까. 때문에 그는 이전에 이미 왔던 곳에서 레슬리를 또 찾았을 때는 약간 신기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 경계심 없이 평온하게─그 단어가 레슬리를 묘사하는데 쓸 수 있다는 것에 에드워드는 신비로움을 느꼈다─ 잠들어 있는 레슬리를 목격했을 때, 에드워드는 저도 모르게 혀를 깨물었다.
아픈 것을 보니 아무튼 꿈은 아니었다.
“레슬리?”
그럼 저기 누워 있는 게 사실 레슬리가 아니라 닮은 인간이라든지. 그는 미심쩍은 어조로 속삭였다. 저 미모가 또 있을 리는 없겠지만 에드워드는 이 평화로운 풍경에 무서움을 느꼈다.
마른 침구의 냄새와 햇볕의 향이 났다. 인위적인 방향제의 향도 섞여 있었지만, 문제는 술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현 상황이 천사 같은 얼굴과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어울렸지만, 그래서 더 이상했다.
“……누구?”
이불 안쪽에서, 그것도 레슬리의 품에서 꾸물꾸물 눈을 내민 여자의 목소리에 에드워드는 할 말을 잃었다. 번진 화장과 부스스한 머리카락, 전형적으로 밤을 같이 보낸 행색이었다. 물론 화장이 기괴할 정도로 심하게 번져 있었지만 말이다.
술에 취해 기절한 것도 아닌 레슬리가 평온하게 여자와 꼭 안고 잠들었다고? 꿈에도 안 나올 호러였다.
말없이 넋 놓고 서 있는 에드워드를 향해 여자가 졸린 눈을 접어 웃었다. 곧 침대 아래로 팔이 하나 뻗어지더니 바닥에 떨어진 레슬리의 셔츠를 주웠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며 셔츠 하나만 걸친 여자가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손님이에요? 마담이 보냈나요?”
덩치 차이 덕분에 거의 무릎까지 오는 셔츠였다. 노출은 심하지 않았지만, 에드워드는 일부러 시선을 얼굴에 고정했다. 노랗고 빨간 화장으로 문대진 얼굴은 사실 좀 웃겼다. 그는 알리시아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닙니다. 단지…….”
“나가요. 내가 잘 해 줄게요.”
여자의 손이 그의 어깨를 둥글게 쓸었다. 레슬리와 잔 여자가 그를 유혹하는 상황이 처음은 아니었다. 단 한 번도 허락한 적은 없었지만. 그에게는 알리시아가 있었다.
“저분은요?”
생존에 특화된 그의 본능이 경고음을 울려 댔다. 에드워드는 한 발자국 물러난 채 침대 쪽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레슬리는 특정한 여자를 찾지 않는다. 사실 누구랑 잤는지도 잘 기억 못 했다. 그러니 이 여자와 잔 사실도 기억하지 못 할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이 여자와는 접촉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깨면 가시겠죠.”
여자의 어투는 뭔가 레슬리를 잘 아는 것처럼 들렸다. 에드워드는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단골인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남을 왜 신경 써요? 중요한 건 우리지.”
그녀는 단골이라는 에드워드의 말에 부정을 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한 발자국 더 물러났다.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그는 레슬리가 인간에게 애착을 갖는다는 것을 믿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지 않는가.
그는 이제 방문턱에 서 있었다. 여자는 키득거리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로테.”
낮게 갈라진 목소리는 익숙한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빠르게 방을 빠져나와 문을 닫았다. 우렁찬 문 닫는 소리와 함께 그는 빠르게 눈앞에서 사라진 기괴한 장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민트색 방문 안은 아무래도 들어가서는 안 될 곳 같았다.
평소보다는 누그러진 눈매가 샬롯을 응시했다. 샬롯은 뻗었던 손을 뒤로 감춘 채 문 앞에서 가만히 서서 어색하게 웃었다.
“누구야?”
“……친구요.”
그는 샬롯의 말에 별다른 추궁 없이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앉은 몸은 근육으로 꽉 짜여 있었지만, 사실 샬롯은 그것보다 그 맨살 위에 문대진 그녀의 화장에 좀 더 시선이 갔다.
저렇게 묻어났으면, 지금 내 얼굴에는 화장이 제대로 남아 있기는 한 걸까?
“이리 와.”
팔을 벌리며 하는 말에 샬롯은 머뭇거리면서도 그의 품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좁은 방 탓에 힐끗 바로 보이는 화장대의 거울을 보자 무서울 정도로 화장 범벅이 된 얼굴이 보였기에 마음이 오히려 좀 편해졌다.
“누구야?”
레슬리는 샬롯의 허리에 단단하게 팔을 감고는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었다. 샬롯은 단추를 풀어 내리고 있는 그의 왼손을 붙잡았다. 꺼끌거리는 붕대의 감촉이 손에 느껴졌다. 물론 근력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샬롯의 손은 레슬리의 손을 제재하는 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친구에요. 밀레나라고, 이 가게에서 제일 예쁜…….”
“내 친구인 에드워드가 언제부터 이 가게에서 일했지?”
레슬리는 특별히 친구라는 발음에 힘을 줘 속삭였다. 친구라기보다는 편리한 개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였지만, 그냥 그녀의 앞에서는 그런 말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살짝 굳는 어깨에 입을 맞추면서 레슬리는 조금 세게 그녀의 목을 깨물었다.
“다른 손님 받을 생각하지 마.”
“손님과 있을 때는…….”
어느새 다 풀린 단추 덕분에 맨살이 드러난 허리를 꽉 움켜쥐는 손에 샬롯은 속으로 시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애처롭게 입을 열었다.
“레슬리 님과 있을 때는, 레슬리 님만 생각해요.”
“경칭도 빼.”
왕자 새끼야. 샬롯은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욕설을 현명하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이 바닥을 빨리 뜨고 만다. 내가.
“레슬리.”
“예쁜 말인데, 이제는 없을 때도 생각해.”
“여기는…….”
“돈만 주면 되잖아. 로테. 얼마든지 줄 테니까, 그냥 가격이나 제시해. 다른 손님 받지 말고.”
기분 좋게 속삭여지는 목소리에 샬롯은 황금으로 만든 몽둥이로 그의 뚝배기를 깨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황금을 집에 처바르고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았다. 위대한 마녀 위트니는 107살에 죽었고, 그녀가 백여 년 동안 모은 황금은 이제 전부 샬롯의 것이었다.
“……왜요?”
그러나 이제 가슴까지 깨물기 시작하는 레슬리를 두고, 샬롯이 할 수 있는 말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제 도대체 왜 자기가 코와르 살롱을 택했는지까지 비난하고 있었다. 만약 과거의 자신이 눈앞에 있다면 멱살을 잡고 싶었다.
“그게 중요해?”
레슬리는 가슴까지 내려갔던 얼굴을 들고 샬롯의 입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비위도 좋지. 샬롯은 그의 입가에 묻어나는 붉은 립스틱을 보고 떨떠름하게 생각했다.
“내가 널 살 거야. 하룻밤이 아니라, 널 살 거라고.”
깊게 파고드는 혀에 샬롯은 순순히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레슬리는 약이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약하게 헐떡거리는 신음과 함께 레슬리의 목소리가 달콤한 어조로 그녀에게 떨어졌다.
“편할 거야. 이제 나만 보면 되니까.”
샬롯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튀자.
엉망이 된 침구 위에 샬롯은 약병에 있는 액체를 쏟아부었다. 짐이라도 줄일 겸, 어차피 쓸 일도 없는 약이었다. 아니 사실 좀 궁금하긴 했다. 그래서 레슬리가 애를 가질 수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다시 볼 일이 없다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해결하자는 생각에 샬롯은 잠자코 싸 둔 짐 가방 위에 앉아 변화를 기다렸다. 하반신이 아직도 찌르르 울렸다. 제기랄.
“뭐가 문제야. 도대체…….”
샬롯은 불임이라면 파랗게 변한다는 약이 아무 변화도 없이 투명하게 침구에 흡수된 것을 보고 얼굴을 가렸다.
레슬리도 불임이 아니고, 그녀도 불임이 아니다. 그럼 도대체 이렇게 미친 듯이 붙어먹었는데도 애가 안 생기는 이유는 뭔데. 시발.
“잊자. 잊어.”
샬롯은 몸을 일으켰다. 짐 가방을 들고 방을 둘러보자, 처음 왔던 그대로였다. 뭐 침대가 푹 꺼진 것 말고는 말이다.
“아우디!”
창문을 넘어 아우디가 그녀의 손바닥에 안착했다. 어린 까마귀의 부리가 그녀의 손바닥을 콕콕 쪼았다. 샬롯은 한숨을 내쉬고 호칭을 정정했다.
“예쁜 아우디야. 그래서 포피 이모가 뭐래?”
솜털을 파닥파닥 날리며 아우디가 캬악하고 글자를 토해 냈다. ‘어서 오렴.’ 황금색 글자가 손바닥 위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사라졌다. 샬롯은 히죽 웃고는 아우디를 머리 위로 올렸다.
둥지 틀듯 정수리에 얌전히 자리 잡은 아우디의 꺄악거리는 울음소리와 함께 그녀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빌어먹을 의붓오라버니는 다시 볼 일 없기를!
마담 코와르는 젊었을 적 메이핏 11번 골목에서 제일 예쁜 여자였다. 뭐 그 정도가 아니면 마담이라는 호칭을 달고 자기의 살롱을 운영할 수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마흔이 넘고서도 예뻤다. 물론 젊은이들의 싱그러움은 없었으나 연륜이 주는 매력도 상당했기에 마담 코와르는 많은 남자를 겪었고, 어느 정도 남자를 잘 다룬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돈은, 그대로…….”
그녀의 앞에 서 있는 남자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위압적으로 느껴질 만큼 큰 체격의 남자는 아름다운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결코 선해 보이지 않았다. 노란 눈이 느리게 깜빡이는 게 오싹했지만, 그녀는 애써 가슴을 폈다.
“받았던 돈은 그대로 돌려 드릴게요. 저도 그 애가 그렇게 빨리 일을 그만둘 줄은 몰라서…… 원하시면 비슷한 아이를 붙여 드리죠.”
기괴한 화장과 괴상망측한 드레스가 특징인 샬롯과 비슷한 아이는 당연하게 코와르 살롱에 없었겠지만, 그녀는 샬롯이 선물한 드레스를 떠올리고는 그걸 아무한테나 입히면 되는 게 아니냐고 생각했다.
남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어쩐지 슬금슬금 남자의 곁에서 멀어지고 있는 그의 동행을 이상한 눈으로 응시했다. 적갈색 머리카락을 한 청년은 순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금발 사내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에드워드.”
그 말에 적갈색 머리카락을 한 청년은 깊게 한숨을 내쉬면서 멈춰 섰다.
“이리 와.”
레슬리는 입꼬리를 위로 끌어 올렸다. 천사 같은 금발 미인의 미소에 마담 코와르는 소름이 끼쳐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미동도 없는 뱀 같은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
절대 다가가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절절히 담긴 에드워드의 발걸음이 느리게 움직였다. 레슬리는 그가 옆에 다가오자마자 그의 무릎 뒤쪽을 발로 거세게 걷어찼다.
쾅 하는 소음과 함께 레슬리는 휘청거리는 에드워드의 뒤통수를 붙잡아 나무 탁자 위로 찍어 눌렀다. 레슬리는 느긋한 손길로 에드워드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정신을 잃고 기절한 에드워드를 확인한 레슬리는 그대로 뒷덜미를 붙잡고 있던 손을 털어 냈다.
“기절했네.”
마담 코와르는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에 숨을 들이켰다. 움푹 파인 탁자의 모서리와 바닥에 풀썩 쓰러진 남자가 지나치게 현실감이 없었다. 그 모든 걸 만든 눈앞의 정신 줄 놓은 미인도.
레슬리는 뻣뻣하게 굳은 목을 한 채 그를 향해 눈동자를 굴리는 여자를 향해 상냥하게 웃었다. 아니 상냥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그녀를 위협할 생각이 없었다. 눈앞이 새까맣게 변할 만큼 화가 났지만, 그는 겨우 입꼬리를 그럴듯하게 올려 낼 수 있었다.
그는 발로 툭툭 에드워드를 걷어찼다. 확실하게 기절한 몸은 꿈틀거리지도 않았다. 레슬리는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주인도 제대로 못 알아보는 개가 촉새처럼 알리시아나 어머니께 제 위치를 나불거릴 것을 막을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화가 나 있었다. 기분이 끔찍하게 더러웠고, 속이 역겨울 만큼 울렁거렸다. 화가 머리를 짜증스럽게 열기로 헤집었다. 그래서였다. 레슬리는 쉽게 자기 합리화 했다.
마지막으로 에드워드의 허리를 발로 걷어차 밀어 낸 뒤에야 레슬리는 고개를 들어 다시 마담 코와르와 얼굴을 마주했다. 에드워드의 머리를 깨부수고도 누그러지지 않는 분노 탓에 웃음이 일그러져 있었다.
“대충 아무 방에나 가둬 놔.”
“손님, 저희는…….”
“그녀가 그러던데, 친한 친구가 있다고.”
레슬리는 매끄럽게 중얼거렸다. 마담 코와르는 떨리는 손을 붙잡아 겁먹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어쩔 줄 모르고 굴러가는 눈동자는 어쩔 수가 없었다.
“밀레나. 그런 이름이었지.”
그는 사납게 명령했다.
“데려와.”
1. 거트루드의 밤(6)
에드워드는 레슬리의 여자 취향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솔직히 뭔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취한 상태에서 여자를 고르는데 뭐가 보이기는 할까. 때문에 그는 이전에 이미 왔던 곳에서 레슬리를 또 찾았을 때는 약간 신기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 경계심 없이 평온하게─그 단어가 레슬리를 묘사하는데 쓸 수 있다는 것에 에드워드는 신비로움을 느꼈다─ 잠들어 있는 레슬리를 목격했을 때, 에드워드는 저도 모르게 혀를 깨물었다.
아픈 것을 보니 아무튼 꿈은 아니었다.
“레슬리?”
그럼 저기 누워 있는 게 사실 레슬리가 아니라 닮은 인간이라든지. 그는 미심쩍은 어조로 속삭였다. 저 미모가 또 있을 리는 없겠지만 에드워드는 이 평화로운 풍경에 무서움을 느꼈다.
마른 침구의 냄새와 햇볕의 향이 났다. 인위적인 방향제의 향도 섞여 있었지만, 문제는 술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현 상황이 천사 같은 얼굴과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어울렸지만, 그래서 더 이상했다.
“……누구?”
이불 안쪽에서, 그것도 레슬리의 품에서 꾸물꾸물 눈을 내민 여자의 목소리에 에드워드는 할 말을 잃었다. 번진 화장과 부스스한 머리카락, 전형적으로 밤을 같이 보낸 행색이었다. 물론 화장이 기괴할 정도로 심하게 번져 있었지만 말이다.
술에 취해 기절한 것도 아닌 레슬리가 평온하게 여자와 꼭 안고 잠들었다고? 꿈에도 안 나올 호러였다.
말없이 넋 놓고 서 있는 에드워드를 향해 여자가 졸린 눈을 접어 웃었다. 곧 침대 아래로 팔이 하나 뻗어지더니 바닥에 떨어진 레슬리의 셔츠를 주웠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며 셔츠 하나만 걸친 여자가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손님이에요? 마담이 보냈나요?”
덩치 차이 덕분에 거의 무릎까지 오는 셔츠였다. 노출은 심하지 않았지만, 에드워드는 일부러 시선을 얼굴에 고정했다. 노랗고 빨간 화장으로 문대진 얼굴은 사실 좀 웃겼다. 그는 알리시아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닙니다. 단지…….”
“나가요. 내가 잘 해 줄게요.”
여자의 손이 그의 어깨를 둥글게 쓸었다. 레슬리와 잔 여자가 그를 유혹하는 상황이 처음은 아니었다. 단 한 번도 허락한 적은 없었지만. 그에게는 알리시아가 있었다.
“저분은요?”
생존에 특화된 그의 본능이 경고음을 울려 댔다. 에드워드는 한 발자국 물러난 채 침대 쪽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레슬리는 특정한 여자를 찾지 않는다. 사실 누구랑 잤는지도 잘 기억 못 했다. 그러니 이 여자와 잔 사실도 기억하지 못 할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이 여자와는 접촉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깨면 가시겠죠.”
여자의 어투는 뭔가 레슬리를 잘 아는 것처럼 들렸다. 에드워드는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단골인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남을 왜 신경 써요? 중요한 건 우리지.”
그녀는 단골이라는 에드워드의 말에 부정을 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한 발자국 더 물러났다.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그는 레슬리가 인간에게 애착을 갖는다는 것을 믿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지 않는가.
그는 이제 방문턱에 서 있었다. 여자는 키득거리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로테.”
낮게 갈라진 목소리는 익숙한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빠르게 방을 빠져나와 문을 닫았다. 우렁찬 문 닫는 소리와 함께 그는 빠르게 눈앞에서 사라진 기괴한 장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민트색 방문 안은 아무래도 들어가서는 안 될 곳 같았다.
평소보다는 누그러진 눈매가 샬롯을 응시했다. 샬롯은 뻗었던 손을 뒤로 감춘 채 문 앞에서 가만히 서서 어색하게 웃었다.
“누구야?”
“……친구요.”
그는 샬롯의 말에 별다른 추궁 없이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앉은 몸은 근육으로 꽉 짜여 있었지만, 사실 샬롯은 그것보다 그 맨살 위에 문대진 그녀의 화장에 좀 더 시선이 갔다.
저렇게 묻어났으면, 지금 내 얼굴에는 화장이 제대로 남아 있기는 한 걸까?
“이리 와.”
팔을 벌리며 하는 말에 샬롯은 머뭇거리면서도 그의 품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좁은 방 탓에 힐끗 바로 보이는 화장대의 거울을 보자 무서울 정도로 화장 범벅이 된 얼굴이 보였기에 마음이 오히려 좀 편해졌다.
“누구야?”
레슬리는 샬롯의 허리에 단단하게 팔을 감고는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었다. 샬롯은 단추를 풀어 내리고 있는 그의 왼손을 붙잡았다. 꺼끌거리는 붕대의 감촉이 손에 느껴졌다. 물론 근력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샬롯의 손은 레슬리의 손을 제재하는 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친구에요. 밀레나라고, 이 가게에서 제일 예쁜…….”
“내 친구인 에드워드가 언제부터 이 가게에서 일했지?”
레슬리는 특별히 친구라는 발음에 힘을 줘 속삭였다. 친구라기보다는 편리한 개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였지만, 그냥 그녀의 앞에서는 그런 말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살짝 굳는 어깨에 입을 맞추면서 레슬리는 조금 세게 그녀의 목을 깨물었다.
“다른 손님 받을 생각하지 마.”
“손님과 있을 때는…….”
어느새 다 풀린 단추 덕분에 맨살이 드러난 허리를 꽉 움켜쥐는 손에 샬롯은 속으로 시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애처롭게 입을 열었다.
“레슬리 님과 있을 때는, 레슬리 님만 생각해요.”
“경칭도 빼.”
왕자 새끼야. 샬롯은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욕설을 현명하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이 바닥을 빨리 뜨고 만다. 내가.
“레슬리.”
“예쁜 말인데, 이제는 없을 때도 생각해.”
“여기는…….”
“돈만 주면 되잖아. 로테. 얼마든지 줄 테니까, 그냥 가격이나 제시해. 다른 손님 받지 말고.”
기분 좋게 속삭여지는 목소리에 샬롯은 황금으로 만든 몽둥이로 그의 뚝배기를 깨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황금을 집에 처바르고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았다. 위대한 마녀 위트니는 107살에 죽었고, 그녀가 백여 년 동안 모은 황금은 이제 전부 샬롯의 것이었다.
“……왜요?”
그러나 이제 가슴까지 깨물기 시작하는 레슬리를 두고, 샬롯이 할 수 있는 말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제 도대체 왜 자기가 코와르 살롱을 택했는지까지 비난하고 있었다. 만약 과거의 자신이 눈앞에 있다면 멱살을 잡고 싶었다.
“그게 중요해?”
레슬리는 가슴까지 내려갔던 얼굴을 들고 샬롯의 입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비위도 좋지. 샬롯은 그의 입가에 묻어나는 붉은 립스틱을 보고 떨떠름하게 생각했다.
“내가 널 살 거야. 하룻밤이 아니라, 널 살 거라고.”
깊게 파고드는 혀에 샬롯은 순순히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레슬리는 약이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약하게 헐떡거리는 신음과 함께 레슬리의 목소리가 달콤한 어조로 그녀에게 떨어졌다.
“편할 거야. 이제 나만 보면 되니까.”
샬롯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튀자.
엉망이 된 침구 위에 샬롯은 약병에 있는 액체를 쏟아부었다. 짐이라도 줄일 겸, 어차피 쓸 일도 없는 약이었다. 아니 사실 좀 궁금하긴 했다. 그래서 레슬리가 애를 가질 수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다시 볼 일이 없다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해결하자는 생각에 샬롯은 잠자코 싸 둔 짐 가방 위에 앉아 변화를 기다렸다. 하반신이 아직도 찌르르 울렸다. 제기랄.
“뭐가 문제야. 도대체…….”
샬롯은 불임이라면 파랗게 변한다는 약이 아무 변화도 없이 투명하게 침구에 흡수된 것을 보고 얼굴을 가렸다.
레슬리도 불임이 아니고, 그녀도 불임이 아니다. 그럼 도대체 이렇게 미친 듯이 붙어먹었는데도 애가 안 생기는 이유는 뭔데. 시발.
“잊자. 잊어.”
샬롯은 몸을 일으켰다. 짐 가방을 들고 방을 둘러보자, 처음 왔던 그대로였다. 뭐 침대가 푹 꺼진 것 말고는 말이다.
“아우디!”
창문을 넘어 아우디가 그녀의 손바닥에 안착했다. 어린 까마귀의 부리가 그녀의 손바닥을 콕콕 쪼았다. 샬롯은 한숨을 내쉬고 호칭을 정정했다.
“예쁜 아우디야. 그래서 포피 이모가 뭐래?”
솜털을 파닥파닥 날리며 아우디가 캬악하고 글자를 토해 냈다. ‘어서 오렴.’ 황금색 글자가 손바닥 위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사라졌다. 샬롯은 히죽 웃고는 아우디를 머리 위로 올렸다.
둥지 틀듯 정수리에 얌전히 자리 잡은 아우디의 꺄악거리는 울음소리와 함께 그녀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빌어먹을 의붓오라버니는 다시 볼 일 없기를!
마담 코와르는 젊었을 적 메이핏 11번 골목에서 제일 예쁜 여자였다. 뭐 그 정도가 아니면 마담이라는 호칭을 달고 자기의 살롱을 운영할 수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마흔이 넘고서도 예뻤다. 물론 젊은이들의 싱그러움은 없었으나 연륜이 주는 매력도 상당했기에 마담 코와르는 많은 남자를 겪었고, 어느 정도 남자를 잘 다룬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돈은, 그대로…….”
그녀의 앞에 서 있는 남자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위압적으로 느껴질 만큼 큰 체격의 남자는 아름다운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결코 선해 보이지 않았다. 노란 눈이 느리게 깜빡이는 게 오싹했지만, 그녀는 애써 가슴을 폈다.
“받았던 돈은 그대로 돌려 드릴게요. 저도 그 애가 그렇게 빨리 일을 그만둘 줄은 몰라서…… 원하시면 비슷한 아이를 붙여 드리죠.”
기괴한 화장과 괴상망측한 드레스가 특징인 샬롯과 비슷한 아이는 당연하게 코와르 살롱에 없었겠지만, 그녀는 샬롯이 선물한 드레스를 떠올리고는 그걸 아무한테나 입히면 되는 게 아니냐고 생각했다.
남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어쩐지 슬금슬금 남자의 곁에서 멀어지고 있는 그의 동행을 이상한 눈으로 응시했다. 적갈색 머리카락을 한 청년은 순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금발 사내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에드워드.”
그 말에 적갈색 머리카락을 한 청년은 깊게 한숨을 내쉬면서 멈춰 섰다.
“이리 와.”
레슬리는 입꼬리를 위로 끌어 올렸다. 천사 같은 금발 미인의 미소에 마담 코와르는 소름이 끼쳐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미동도 없는 뱀 같은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
절대 다가가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절절히 담긴 에드워드의 발걸음이 느리게 움직였다. 레슬리는 그가 옆에 다가오자마자 그의 무릎 뒤쪽을 발로 거세게 걷어찼다.
쾅 하는 소음과 함께 레슬리는 휘청거리는 에드워드의 뒤통수를 붙잡아 나무 탁자 위로 찍어 눌렀다. 레슬리는 느긋한 손길로 에드워드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정신을 잃고 기절한 에드워드를 확인한 레슬리는 그대로 뒷덜미를 붙잡고 있던 손을 털어 냈다.
“기절했네.”
마담 코와르는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에 숨을 들이켰다. 움푹 파인 탁자의 모서리와 바닥에 풀썩 쓰러진 남자가 지나치게 현실감이 없었다. 그 모든 걸 만든 눈앞의 정신 줄 놓은 미인도.
레슬리는 뻣뻣하게 굳은 목을 한 채 그를 향해 눈동자를 굴리는 여자를 향해 상냥하게 웃었다. 아니 상냥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그녀를 위협할 생각이 없었다. 눈앞이 새까맣게 변할 만큼 화가 났지만, 그는 겨우 입꼬리를 그럴듯하게 올려 낼 수 있었다.
그는 발로 툭툭 에드워드를 걷어찼다. 확실하게 기절한 몸은 꿈틀거리지도 않았다. 레슬리는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주인도 제대로 못 알아보는 개가 촉새처럼 알리시아나 어머니께 제 위치를 나불거릴 것을 막을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화가 나 있었다. 기분이 끔찍하게 더러웠고, 속이 역겨울 만큼 울렁거렸다. 화가 머리를 짜증스럽게 열기로 헤집었다. 그래서였다. 레슬리는 쉽게 자기 합리화 했다.
마지막으로 에드워드의 허리를 발로 걷어차 밀어 낸 뒤에야 레슬리는 고개를 들어 다시 마담 코와르와 얼굴을 마주했다. 에드워드의 머리를 깨부수고도 누그러지지 않는 분노 탓에 웃음이 일그러져 있었다.
“대충 아무 방에나 가둬 놔.”
“손님, 저희는…….”
“그녀가 그러던데, 친한 친구가 있다고.”
레슬리는 매끄럽게 중얼거렸다. 마담 코와르는 떨리는 손을 붙잡아 겁먹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어쩔 줄 모르고 굴러가는 눈동자는 어쩔 수가 없었다.
“밀레나. 그런 이름이었지.”
그는 사납게 명령했다.
“데려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