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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1. 거트루드의 밤(7)
샬롯은 이상하게 몸에 돋는 소름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문을 닫았다. 겨울도 아닌데 이상한 노릇이지.
“까악! 캭! 까아악!”
“야오오오오오옹.”
그녀는 미친 듯이 싸워 대는 포피 이모의 고양이들과 아우디의 비명을 배경 음악 삼아 느긋하게 초콜릿을 홀짝였다. 내일부터는 다시 나가서 남자를 찾아보고 오늘까지는 좀 쉬자. 그녀는 어제도 했던 생각을 오늘도 반복했다.
하지만 밖에 나가기 귀찮은걸.
남자 없이 애를 만드는 마법을 왜 엄마는 발명하지 않았을까.
결국 많은 숫자를 이기지 못한 아우디가 분노에 찬 날개를 퍼덕이며 그녀의 머리 위로 대피했다. 샬롯은 아우디를 위해 몸을 일으켜 날아오는 고양이를 붙잡았다. 샬롯의 품에 강제로 안기게 된 고양이는 어떻게든 아우디를 공격하려는 의지를 내보였지만 그녀는 하품을 하며 더 꼭 고양이를 끌어안았다.
“야오오오오오오옹!”
“그래. 그래. 사이좋게 지내야지.”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샬롯은 실험실에서 잠든 포피 이모를 대신해 잠시만 기다리라고 외친 후 문으로 걸어 나갔다. 아우디가 높은 그녀의 머리 위에서 위풍당당하게 고양이들을 내려다보며 퍼덕거렸다.
“까악!”
현재에 이르러 마녀는 전설 속에 나오는 용 비슷한 존재였다. 기차가 굴러가기 시작한 시대에서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에 대한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것으로 변해 버렸다. 물론 마녀들은 빗자루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탈 수는 있어도 굳이 청소용품을 타고 다닐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덧붙이자면, 마녀 포피의 이동수단은 빨간 소파였다.
그리고 샬롯은 슬프게도 날아서 이동할 수 있을 만한 마력조차 보유하지 못했다. 그녀는 쥐꼬리보다 못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포피는 이전에 샬롯을 향해 마녀인 척하는 인간 같다고 말했다.
샬롯의 마법은 고작 오븐 없이 빵을 맛있게 굽는 것과, 먼지를 깨끗이 바깥으로 날려 버리는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위대한 마녀 위트니가 알면 탄식할 노릇이었다.
물론 그녀는 샬롯을 열 살 때까지 키웠기 때문에 그녀의 마력이 마녀로서는 쓰레기 수준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문물이 발달함에 따라 여전히 인간 세상에 머무르고 있는 마녀들은 더 이상 산이나 동굴이 아닌 도시 속으로 숨어들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가는 것이 좋고, 마녀임을 숨기려면 인간들 사이에 숨는 것이 좋았다. 상식이 떨어지는 여자가 산이나 동굴에 살고 있다면 솔직히 당장 ‘두꺼비를 소환해 봐!’라던가 ‘소원을 들어줘!’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수상하지 않은가.
그들은 인간과 동일한 외형을 지냈지만, 그 속은 그리 인간과 공유될 수 있는 것들로 차 있지는 않았다. 인간의 윤리관으로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무리였다.
마녀 포피도 동일한 이유로 인간이 집에 방문하는 것을 꺼려 했다. 때문에 샬롯은 잠시나마 얹혀사는 입장에서 인간 손님을 초대하는 무례한 짓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화장대 앞에 앉아 고민했다. 밀레나가 보낸 편지처럼 밀레나를 보러 코와르 살롱에 가고 싶었다. 근데 갔다가 혹시라도 레슬리와 마주치면?
샬롯은 길게 한숨을 쉬며 화장품을 집어 들었다. 이런 고민도 다 레슬리 때문이었다. 그녀의 의붓오라비는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샬롯에게 도움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망할 노릇이지.
“어머, 샬롯. 화장하니?”
“네. 포피 이모. 친구 만나러 가려고요.”
걸어 다니는 것보다 굴러다니는 게 좀 더 편할 것 같은 마녀 포피는 하늘색 땡땡이 무늬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화장대에 앉아 있는 샬롯을 보고 통통한 손가락으로 뺨을 감쌌다.
“어머. 어머. 샬롯. 혹시 내 드레스를 갖고 싶다고 편지했던 그 아이니?”
“맞아요.”
샬롯이 고개를 끄덕이자 포피는 주름진 뺨까지 붉히며 좋아했다. 그녀는 손가락을 빠르게 몇 번 튕겼다. 저 멀리서 병 몇 개가 날아왔다.
“그럼 그렇게 단순하게 하고 가서는 안 되지! 특별히 이모가 젊은 시절에 자주 썼던 화장품을 빌려주마. 특히 요 아이. 요 아이가 바로 이모가 직접 만든 거란다!”
금빛 펄이 좌르르 흐르는 연보라색 화장품은 확실히 신비로운 빛깔이 감돌았다. 그걸 얼굴에 발랐을 때 소화할 수 있는 인간이 몇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요 아이도 마녀들 사이에서 유난히 인기가 좋았지.”
진한 초록색에 파란색이 섞여 있는 화장품을 보고 샬롯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쩜 이렇게 색깔이 예쁘지? 물론 색깔은 예뻤다. 그걸 얼굴에 바르는 게 아니라 종이 위에 칠했다면 더 예뻤겠지만.
“제가 다 써 봐도 되나요?”
“물론이지! 넌 내 진짜 조카나 다름이 없단다. 샬롯. 이 정도쯤이야.”
샬롯은 포피의 말에 조금 감동했다. 예쁜 쓰레기인 아버지에게서도 듣지 못한 다정한 말에 그녀는 포피를 꼭 안아 주었다. 포피 또한 그 짤막한 팔로 힘껏 그녀를 끌어안아 주었다.
“감사해요. 포피.”
어쨌든 그렇게 샬롯의 화장은 또다시 순조롭게 망해 갔다. 물론 얼굴을 가리려는 목적으로는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얼마나 포피 이모의 드레스가 갖고 싶었으면 편지까지 보냈을까. 그녀는 포피의 집에서 처음으로 받아 본 편지가 신기해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녀의 첫 번째 친구인 밀레나는 좋은 의미로 그녀에게 첫 번째가 될 경험을 자주 선사했다.
그녀는 밀레나가 좋았다. 예쁘고 상냥한 인간 친구.
샬롯은 편지 속 그녀의 부탁대로 예쁘게 포장한 포피의 드레스를 꼭 안은 채 소지품 중 몇 없는 무난한 드레스를 펄럭이며 경쾌하게 걸었다. 메이핏 11번 골목은 낮에는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고, 덕분에 밝은 햇살 아래에 드러난 샬롯의 보라색 얼굴에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로테.”
“웬일로 복도에 나와 계세요. 마담?”
어쩐지 잠을 설친 것처럼 피곤한 눈을 한 마담이 코와르 살롱의 문을 열자마자 서 있었다. 샬롯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마담 코와르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한숨을 쉬었다.
“밀레나를 보러 왔니?”
“밀레나가 말했나요? 그 애도 이모의 드레스가 갖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샬롯은 작게 그녀를 향해 속삭였다. ‘마담도 원하시면 제가 한 벌 더 선물해 드릴게요.’ 마담 코와르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단다. 올라가 보렴.”
발을 질질 끌며 사라지는 마담 코와르의 등을 보며 샬롯은 작게 혀를 찼다. 아무래도 그녀도 레슬리 같은 남자한테 걸렸는지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샬롯은 갈색으로 칠한 문을 똑똑 두드렸다. 작게 들어오라는 밀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샬롯은 방긋 웃고는 문을 열었다.
“밀레나!”
“오랜만이야. 로테.”
하얀 피부인 건 알았지만 어쩐지 지나치게 창백해 보이는 밀레나가 샬롯을 향해 떨리는 입술로 웃었다. 샬롯은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오랜만이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일주일은 지났나. 그녀는 포피 이모의 댁에서 지내는 평온한 나날들에 날짜 감각을 살짝 잃어버리고 있었다. 아 빨리 애를 가지러 가야 하는데. 밀레나가 웃는 그녀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응. 사실 이렇게 이모랑 함께 지냈던 건 처음인데…… 정말 좋더라고.”
“그랬어?”
밀레나는 대부분 우울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우울한 것을 넘어 좌절한 것처럼 보였다. 샬롯은 열 살 이후로 사람과 지내 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녀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괜찮으셔? 밀레나, 너도 할머니와 함께 좀 쉬는 것도…….”
“안 괜찮으셔. 몇 년 전부터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시고 계신데, 내가 쉬면 누가 할머니 약값을 대.”
“……내가 줄까?”
샬롯의 말에 밀레나는 흐릿하게 웃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 앉아서 한쪽 무릎을 끌어안았다. 샬롯은 화장대에 붙은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밀레나의 긴 금발이 고개를 기울이자 쏟아져 내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샬롯이라고 할지라도 그녀는 밀레나가 아름답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로테, 넌 왜 여기 온 거야? 돈이 필요해서도 아니잖아. 왜?”
“난, 난 그러니까…….”
밀레나의 목소리는 그녀를 탓하는 것 같았다. 샬롯은 어쩐지 솔직하게 대답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레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원해서 몸을 파는 여자는 없어. 다른 뭔가가 너무 절실해서 자기를 내던진 거지. 대부분은 돈이고. 넌 뭐 때문에 여기 있었던 거야?”
“그걸 왜 묻는데?”
밀레나가 우울하게 웃었다.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냥 그 대답을 들으면…… 내 죄책감이 좀 덜할까, 싶어서.”
그녀의 말끝과 함께 문 열리는 소리도 없었는데 누군가 갑작스레 샬롯의 허리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샬롯은 갑자기 변한 시야와 몸을 감싼 묵직한 팔에 높고 짧게 비명을 내질렀다.
“오랜만이야. 로테.”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에 샬롯은 몸을 움츠렸다. 레슬리! 샬롯은 당황한 얼굴로 밀레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우울한 미소가 변함없이 걸려 있었다.
“로테. 난 여기가 정말 싫었어. 아주 끔찍했거든. 그래서 너한테 너무 고마워.”
밀레나의 손에는 짐 가방 하나조차 들려 있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가라앉은 감정이 아닌 것을 얼굴 위에 띠웠다. 진저리가 난다는 듯 신경질적인 얼굴이 방을 쭉 훑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시선이 샬롯의 당혹스러운 얼굴에 도착했다.
“난 가끔 네가 미쳤다고 생각했어. 넌 여기가 끔찍하고 수치스럽지 않잖아. 그러니까, 계속 여기 있어도 괜찮은 거지?”
샬롯은 밀레나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그녀가 울고 싶어 한다고 느꼈다. 그건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감각이 아니었다. 레슬리의 팔이 그녀의 무릎 뒤쪽으로 들어와 샬롯을 좀 더 안정적으로 안아 올렸다.
“그러니까, 넌 있어도 괜찮을 거야.”
밀레나는 혼자 그렇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샬롯이 그녀를 계속 쳐다보자 밀레나는 고개를 돌리고 빠르게 그녀를 지나쳐 방을 빠져나갔다. 방 안은 그대로였다. 그녀가 쓰던 물건, 쓰던 드레스, 쓰던 것들.
샬롯은 밀레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샬롯이 가져온 선물마저도.
“무슨 생각해?”
레슬리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샬롯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상황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간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밀레나가 갔네요.”
샬롯은 밀레나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또 싫어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레나는 왜 그녀와 레슬리를 부르고, 떠나 버린 걸까?
순진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레슬리는 그녀를 고쳐 안았다. 얼굴을 마주하게 된 샬롯의 얼굴은 늘 그렇듯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이상한 화장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레슬리는 그녀의 눈에 집중했다.
“넌 배신당한 거야. 로테.”
그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 있었다. 샬롯은 하나도 기뻐 보이지 않으면서 웃고 있는 레슬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는 순순히 수긍하며 눈을 깜빡이는 샬롯을 보다 결국 짜증스럽게 눈매를 찌푸렸다.
“안 우나?”
“울어야 하나요?”
샬롯은 밀레나와 레슬리의 태도에 그들이 그녀에게 뭔가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도대체 그게 어떻게 나쁜 건지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밀레나가 그녀를 레슬리와 함게 있도록 한 것은 물론 샬롯에게 기분 나쁜 일이었지만, 친구끼리도 서로 기분 나쁜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어디까지가 우정의 범위에서 허용되는 나쁜 짓인 거지?
샬롯은 그들의 생각보다 성격이 많이 무딘 편이었다. 그녀는 레슬리와 다시 만나게 된 것에 대해서 싫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끔찍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레슬리에게는 애석하게도, 애초에 샬롯은 그렇게 레슬리를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녀의 계획을 방해하는 인물 정도 외의 의미를 그가 갖고 있을 리가.
1. 거트루드의 밤(7)
샬롯은 이상하게 몸에 돋는 소름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문을 닫았다. 겨울도 아닌데 이상한 노릇이지.
“까악! 캭! 까아악!”
“야오오오오오옹.”
그녀는 미친 듯이 싸워 대는 포피 이모의 고양이들과 아우디의 비명을 배경 음악 삼아 느긋하게 초콜릿을 홀짝였다. 내일부터는 다시 나가서 남자를 찾아보고 오늘까지는 좀 쉬자. 그녀는 어제도 했던 생각을 오늘도 반복했다.
하지만 밖에 나가기 귀찮은걸.
남자 없이 애를 만드는 마법을 왜 엄마는 발명하지 않았을까.
결국 많은 숫자를 이기지 못한 아우디가 분노에 찬 날개를 퍼덕이며 그녀의 머리 위로 대피했다. 샬롯은 아우디를 위해 몸을 일으켜 날아오는 고양이를 붙잡았다. 샬롯의 품에 강제로 안기게 된 고양이는 어떻게든 아우디를 공격하려는 의지를 내보였지만 그녀는 하품을 하며 더 꼭 고양이를 끌어안았다.
“야오오오오오오옹!”
“그래. 그래. 사이좋게 지내야지.”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샬롯은 실험실에서 잠든 포피 이모를 대신해 잠시만 기다리라고 외친 후 문으로 걸어 나갔다. 아우디가 높은 그녀의 머리 위에서 위풍당당하게 고양이들을 내려다보며 퍼덕거렸다.
“까악!”
현재에 이르러 마녀는 전설 속에 나오는 용 비슷한 존재였다. 기차가 굴러가기 시작한 시대에서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에 대한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것으로 변해 버렸다. 물론 마녀들은 빗자루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탈 수는 있어도 굳이 청소용품을 타고 다닐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덧붙이자면, 마녀 포피의 이동수단은 빨간 소파였다.
그리고 샬롯은 슬프게도 날아서 이동할 수 있을 만한 마력조차 보유하지 못했다. 그녀는 쥐꼬리보다 못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포피는 이전에 샬롯을 향해 마녀인 척하는 인간 같다고 말했다.
샬롯의 마법은 고작 오븐 없이 빵을 맛있게 굽는 것과, 먼지를 깨끗이 바깥으로 날려 버리는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위대한 마녀 위트니가 알면 탄식할 노릇이었다.
물론 그녀는 샬롯을 열 살 때까지 키웠기 때문에 그녀의 마력이 마녀로서는 쓰레기 수준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문물이 발달함에 따라 여전히 인간 세상에 머무르고 있는 마녀들은 더 이상 산이나 동굴이 아닌 도시 속으로 숨어들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가는 것이 좋고, 마녀임을 숨기려면 인간들 사이에 숨는 것이 좋았다. 상식이 떨어지는 여자가 산이나 동굴에 살고 있다면 솔직히 당장 ‘두꺼비를 소환해 봐!’라던가 ‘소원을 들어줘!’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수상하지 않은가.
그들은 인간과 동일한 외형을 지냈지만, 그 속은 그리 인간과 공유될 수 있는 것들로 차 있지는 않았다. 인간의 윤리관으로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무리였다.
마녀 포피도 동일한 이유로 인간이 집에 방문하는 것을 꺼려 했다. 때문에 샬롯은 잠시나마 얹혀사는 입장에서 인간 손님을 초대하는 무례한 짓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화장대 앞에 앉아 고민했다. 밀레나가 보낸 편지처럼 밀레나를 보러 코와르 살롱에 가고 싶었다. 근데 갔다가 혹시라도 레슬리와 마주치면?
샬롯은 길게 한숨을 쉬며 화장품을 집어 들었다. 이런 고민도 다 레슬리 때문이었다. 그녀의 의붓오라비는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샬롯에게 도움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망할 노릇이지.
“어머, 샬롯. 화장하니?”
“네. 포피 이모. 친구 만나러 가려고요.”
걸어 다니는 것보다 굴러다니는 게 좀 더 편할 것 같은 마녀 포피는 하늘색 땡땡이 무늬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화장대에 앉아 있는 샬롯을 보고 통통한 손가락으로 뺨을 감쌌다.
“어머. 어머. 샬롯. 혹시 내 드레스를 갖고 싶다고 편지했던 그 아이니?”
“맞아요.”
샬롯이 고개를 끄덕이자 포피는 주름진 뺨까지 붉히며 좋아했다. 그녀는 손가락을 빠르게 몇 번 튕겼다. 저 멀리서 병 몇 개가 날아왔다.
“그럼 그렇게 단순하게 하고 가서는 안 되지! 특별히 이모가 젊은 시절에 자주 썼던 화장품을 빌려주마. 특히 요 아이. 요 아이가 바로 이모가 직접 만든 거란다!”
금빛 펄이 좌르르 흐르는 연보라색 화장품은 확실히 신비로운 빛깔이 감돌았다. 그걸 얼굴에 발랐을 때 소화할 수 있는 인간이 몇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요 아이도 마녀들 사이에서 유난히 인기가 좋았지.”
진한 초록색에 파란색이 섞여 있는 화장품을 보고 샬롯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쩜 이렇게 색깔이 예쁘지? 물론 색깔은 예뻤다. 그걸 얼굴에 바르는 게 아니라 종이 위에 칠했다면 더 예뻤겠지만.
“제가 다 써 봐도 되나요?”
“물론이지! 넌 내 진짜 조카나 다름이 없단다. 샬롯. 이 정도쯤이야.”
샬롯은 포피의 말에 조금 감동했다. 예쁜 쓰레기인 아버지에게서도 듣지 못한 다정한 말에 그녀는 포피를 꼭 안아 주었다. 포피 또한 그 짤막한 팔로 힘껏 그녀를 끌어안아 주었다.
“감사해요. 포피.”
어쨌든 그렇게 샬롯의 화장은 또다시 순조롭게 망해 갔다. 물론 얼굴을 가리려는 목적으로는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얼마나 포피 이모의 드레스가 갖고 싶었으면 편지까지 보냈을까. 그녀는 포피의 집에서 처음으로 받아 본 편지가 신기해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녀의 첫 번째 친구인 밀레나는 좋은 의미로 그녀에게 첫 번째가 될 경험을 자주 선사했다.
그녀는 밀레나가 좋았다. 예쁘고 상냥한 인간 친구.
샬롯은 편지 속 그녀의 부탁대로 예쁘게 포장한 포피의 드레스를 꼭 안은 채 소지품 중 몇 없는 무난한 드레스를 펄럭이며 경쾌하게 걸었다. 메이핏 11번 골목은 낮에는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고, 덕분에 밝은 햇살 아래에 드러난 샬롯의 보라색 얼굴에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로테.”
“웬일로 복도에 나와 계세요. 마담?”
어쩐지 잠을 설친 것처럼 피곤한 눈을 한 마담이 코와르 살롱의 문을 열자마자 서 있었다. 샬롯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마담 코와르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한숨을 쉬었다.
“밀레나를 보러 왔니?”
“밀레나가 말했나요? 그 애도 이모의 드레스가 갖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샬롯은 작게 그녀를 향해 속삭였다. ‘마담도 원하시면 제가 한 벌 더 선물해 드릴게요.’ 마담 코와르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단다. 올라가 보렴.”
발을 질질 끌며 사라지는 마담 코와르의 등을 보며 샬롯은 작게 혀를 찼다. 아무래도 그녀도 레슬리 같은 남자한테 걸렸는지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샬롯은 갈색으로 칠한 문을 똑똑 두드렸다. 작게 들어오라는 밀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샬롯은 방긋 웃고는 문을 열었다.
“밀레나!”
“오랜만이야. 로테.”
하얀 피부인 건 알았지만 어쩐지 지나치게 창백해 보이는 밀레나가 샬롯을 향해 떨리는 입술로 웃었다. 샬롯은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오랜만이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일주일은 지났나. 그녀는 포피 이모의 댁에서 지내는 평온한 나날들에 날짜 감각을 살짝 잃어버리고 있었다. 아 빨리 애를 가지러 가야 하는데. 밀레나가 웃는 그녀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응. 사실 이렇게 이모랑 함께 지냈던 건 처음인데…… 정말 좋더라고.”
“그랬어?”
밀레나는 대부분 우울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우울한 것을 넘어 좌절한 것처럼 보였다. 샬롯은 열 살 이후로 사람과 지내 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녀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괜찮으셔? 밀레나, 너도 할머니와 함께 좀 쉬는 것도…….”
“안 괜찮으셔. 몇 년 전부터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시고 계신데, 내가 쉬면 누가 할머니 약값을 대.”
“……내가 줄까?”
샬롯의 말에 밀레나는 흐릿하게 웃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 앉아서 한쪽 무릎을 끌어안았다. 샬롯은 화장대에 붙은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밀레나의 긴 금발이 고개를 기울이자 쏟아져 내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샬롯이라고 할지라도 그녀는 밀레나가 아름답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로테, 넌 왜 여기 온 거야? 돈이 필요해서도 아니잖아. 왜?”
“난, 난 그러니까…….”
밀레나의 목소리는 그녀를 탓하는 것 같았다. 샬롯은 어쩐지 솔직하게 대답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레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원해서 몸을 파는 여자는 없어. 다른 뭔가가 너무 절실해서 자기를 내던진 거지. 대부분은 돈이고. 넌 뭐 때문에 여기 있었던 거야?”
“그걸 왜 묻는데?”
밀레나가 우울하게 웃었다.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냥 그 대답을 들으면…… 내 죄책감이 좀 덜할까, 싶어서.”
그녀의 말끝과 함께 문 열리는 소리도 없었는데 누군가 갑작스레 샬롯의 허리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샬롯은 갑자기 변한 시야와 몸을 감싼 묵직한 팔에 높고 짧게 비명을 내질렀다.
“오랜만이야. 로테.”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에 샬롯은 몸을 움츠렸다. 레슬리! 샬롯은 당황한 얼굴로 밀레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우울한 미소가 변함없이 걸려 있었다.
“로테. 난 여기가 정말 싫었어. 아주 끔찍했거든. 그래서 너한테 너무 고마워.”
밀레나의 손에는 짐 가방 하나조차 들려 있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가라앉은 감정이 아닌 것을 얼굴 위에 띠웠다. 진저리가 난다는 듯 신경질적인 얼굴이 방을 쭉 훑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시선이 샬롯의 당혹스러운 얼굴에 도착했다.
“난 가끔 네가 미쳤다고 생각했어. 넌 여기가 끔찍하고 수치스럽지 않잖아. 그러니까, 계속 여기 있어도 괜찮은 거지?”
샬롯은 밀레나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그녀가 울고 싶어 한다고 느꼈다. 그건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감각이 아니었다. 레슬리의 팔이 그녀의 무릎 뒤쪽으로 들어와 샬롯을 좀 더 안정적으로 안아 올렸다.
“그러니까, 넌 있어도 괜찮을 거야.”
밀레나는 혼자 그렇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샬롯이 그녀를 계속 쳐다보자 밀레나는 고개를 돌리고 빠르게 그녀를 지나쳐 방을 빠져나갔다. 방 안은 그대로였다. 그녀가 쓰던 물건, 쓰던 드레스, 쓰던 것들.
샬롯은 밀레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샬롯이 가져온 선물마저도.
“무슨 생각해?”
레슬리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샬롯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상황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간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밀레나가 갔네요.”
샬롯은 밀레나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또 싫어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레나는 왜 그녀와 레슬리를 부르고, 떠나 버린 걸까?
순진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레슬리는 그녀를 고쳐 안았다. 얼굴을 마주하게 된 샬롯의 얼굴은 늘 그렇듯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이상한 화장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레슬리는 그녀의 눈에 집중했다.
“넌 배신당한 거야. 로테.”
그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 있었다. 샬롯은 하나도 기뻐 보이지 않으면서 웃고 있는 레슬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는 순순히 수긍하며 눈을 깜빡이는 샬롯을 보다 결국 짜증스럽게 눈매를 찌푸렸다.
“안 우나?”
“울어야 하나요?”
샬롯은 밀레나와 레슬리의 태도에 그들이 그녀에게 뭔가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도대체 그게 어떻게 나쁜 건지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밀레나가 그녀를 레슬리와 함게 있도록 한 것은 물론 샬롯에게 기분 나쁜 일이었지만, 친구끼리도 서로 기분 나쁜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어디까지가 우정의 범위에서 허용되는 나쁜 짓인 거지?
샬롯은 그들의 생각보다 성격이 많이 무딘 편이었다. 그녀는 레슬리와 다시 만나게 된 것에 대해서 싫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끔찍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레슬리에게는 애석하게도, 애초에 샬롯은 그렇게 레슬리를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녀의 계획을 방해하는 인물 정도 외의 의미를 그가 갖고 있을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