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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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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입에서 시작하지



“공작님은 눈이 예쁘시네요.”

외모에 대한 평가도 아니고 갑자기 눈이 예쁘다는 말을 한마디 하고 다시 조용히 루카르테의 눈만 빤히 보고 있는 엘리네시아를 보며 주변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예쁘다뇨? 저 괴물 공작이?”

“설마……. 얼굴에 흉터가 있는데?”

“하지만…….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아요.”

“세상에. 영애의 눈이 어떻게 되신 게 아닐까요?”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당황과 놀람의 수군거림이었다. 그 ‘괴물 공작’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 외모를 보고 느닷없이 예쁘다는 감상을 내뱉다니.

“에이……, 우리가 잘못 들었을 겁니다. 영애가 뭐가 아쉬워서……!”

“그럼요! 우리 같은 귀족도 있는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제국의 귀족들은 얼굴에 흉터를 가진 루카르테 카시미르 공작을 가까이하려 안 하지만, 그를 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괴물 공작’이란 그 이름 때문이었다.

유서 깊은 카시미르 공작 가문에 평범한 사람에게는 볼 수 없는 붉은 눈동자를 가진 갓난아기가 태어났다.

그 갓난아기는 세상의 빛을 보자마자 저주받은 아기라고 불렸다. 그 저주받은 아기는 자라면서 핍박을 받아 가족들의 사랑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하고 음지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그렇게 혼자 스스로를 단련하여 성장하며 아이가 되어 청년이 되고, 청년에서 성년이 된 그 아기는 수많은 몬스터 토벌과 전쟁. 죽고 죽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그곳에서 검으로 살아남아 제국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업적들을 남겼다.

붉은 눈을 하고 전장을 누비는 악마라고도 불리어졌던, 사람 같지 않은 강함을 가진 공작을 사람들은 이렇게 지칭하기 시작했다.

‘괴물 공작.’

피도 눈물도 없으며, 그 잔혹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는 포악한 성품의 공작.

루카르테를 향해 기이한 존재라며 다들 그를 꺼려했다.

그렇기에 황실의 파티장에 모인 귀족들은 그런 공작을 보며 눈이 예쁘다는 감상을 말할 수 있는 엘리네시아를 이상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엘리…….”

엘리네시아의 오빠인 에셀레드는 참담한 얼굴을 하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녀의 애칭을 불렀다. 제 애칭이 불리자 그제야 루카르테에게서 시선을 돌린 엘리네시아는 비로소 수많은 시선이 그녀 자신에게로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째서?’

무슨 말이라도 잘못했나?

조금 전까지 보석같이 반짝이는 눈을 감상하던 것밖에 떠오르지 않은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갔다.

“……또 제가 말로 했나요?”

지금에서야 천천히 상황 파악을 하기 시작한 엘리네시아는 아니라고 말해 달라는 듯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에셀레드를 바라봤다.

‘제발 아니라고 해 줘……!’

하지만 애석하게도 에셀레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무리 생각을 필터링 없이 말해 버린다고 하지만 또다시 이렇게 사고를 칠 줄이야.

엘리네시아는 자괴감이 들 만큼 솔직하고 정직한 자신의 행동이 슬퍼져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녀와 대조적으로 얼굴에 만개한 웃음꽃을 피우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이런. 엘리네시아 영애께서는 저보다 우리 카시미르 공작이 더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조금 전까지 엘리네시아에게서 까맣게 잊혀지고 있던 아렌트 황자였다.

“아까부터 카시미르 공작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계시군요.”

그는 무엇이 그렇게도 즐거운지 만개한 웃음꽃을 화려하게 피우며 루카르테와 엘리네시아를 번갈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카시미르 공작의 눈이 그렇게 예.쁘.던가요?”

유독 예뻤냐는 말을 강조하며 웃는 얼굴에 당황한 마음을 추스른 엘리네시아는 대답 없이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다시 루카르테와 아렌트 황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감상했다.

‘잘생기기는 둘 다 잘생겼는데……. 역시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를 속 시꺼먼 황자보다는 역시…….’

엘리네시아의 시선이 다시 루카르테에게 닿았다.

‘공작이 더 예쁘네.’

어쩐지 잘생겼다라고 하기보다는 예쁘다는 것으로 공식을 마무리 짓는 엘리네시아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렌트는 웃는 낯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에 그는 포복절도했다.

“역시……. 공작님 눈이 더 예뻐요.”

“푸핫! 아하하하!”

“…….”

엘리네시아의 대답을 듣자마자 루카르테의 무표정했던 얼굴에 미미한 찌푸림이 생겼다. 옆에서 기품 없이 큰 소리로 웃고 있는 아렌트와 정말 대조적으로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루카르테.

전혀 상반된 표정을 하고 있는 두 남자를 번갈아 보던 엘리네시아는 다시 한번 자신을 원망했다.

‘이놈의 입! 진짜……. 미치겠네. 또 저질렀어.’

항상 말하는 걸 조심하자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노니 미칠 노릇이었다. 엘리네시아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쁘다니……! 하하! 카, 카시미르 공작, 그대가 예쁘게 생겼다는군!”

“……황자님 그만하시죠.”

“아하하! 미치겠네!”

황자의 웃음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엘리네시아의 표정은 점점 창백해졌다. 이미 반쯤은 해탈한 표정의 에셀레드와 레너드는 한숨만을 쉬고 있었고, 속이 시꺼매 보이는 아렌트 황자는 정말 미친놈처럼 웃느라 바빴고,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당사자인 루카르테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아렌트 거기까지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한참을 그렇게 웃고 있는 아렌트의 뒤로 누군가 다가오자 그 웃음이 거짓말처럼 멈춰졌다.

“아아……. 형님 오셨습니까?”

“무언가 아주 즐거운 얘기를 하는 거 같던데?”

형님? 아렌트 황자가 형님이라고 부를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바로 황실 계승권의 후계자인 제1황자 데페르 로우렌스였다.

아렌트와 닮은 외모를 가졌지만 풍겨 오는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아렌트는 경쾌하면서도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 같은 느낌이었다면, 데페르는 서늘하면서도 강하게 몰아치는 눈보라 같은 느낌이었다.

“황자님께 엘비르 여신의 빛이 닿으시길.”

“영애에게도 제국의 영광이 있으시기를. 무슨 얘기 중이었는지 제가 들어 봐도 괜찮겠습니까?”

이번에는 때를 놓치지 않고 먼저 인사를 건넨 엘리네시아는 제게 의견을 구하는 데페르를 보며 반사적으로 웃음을 띠었다.

‘아무리 황실 파티라지만……. 원작의 주요 인물들을 이렇게 한 번에 만날 수가 있어? 아니, 게다가 왜 다 나한테 다가와서 이래? 내가 뭐 사고 쳤어? 여기 들어와서 평범하게 가족들이랑 대화 나눈 것밖에 없는데! 게다가 넌 또 왜 왔냐, 1황자……!’

웃는 얼굴 뒤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모를 거라며 거짓 웃음을 짓고 있는 엘리네시아였다.

“제가 아주 재밌는 얘기를 들어서 말이죠.”

“……그래? 그게 뭐지?”

“영애께서……, 카시미르 공작의 눈이 아주 예쁘다고 극찬을 하시더군요.”

‘내가 언제?! 예쁘다고 하기는 했지만, 극찬까지는 안 했는데!? 극찬할 정도로 예쁜 눈이기는 한데! 아직 그런 말은 안 했거든? 쟤는 또 무슨 속셈이야!’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말을 자신이 한 것처럼 꾸며 말하고 있는 아렌트를 보며 엘리네시아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죠, 영애?”

“……사실……입니까?”

아니라고 대답하려던 엘리네시아는 멈칫했다.

제1황자랑 약혼하지 않고 또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데페르와 엮이지 않아야 했다. 조건 없이 그와 멀리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른 남자에게 관심이 있다는 쪽으로 말을 돌리면, 자존심도 센 데페르 황자가 엘리네시아 자신을 약혼녀로 선택할 리 없었다.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 대답을 잘 생각해서 해야 한다.

“……네.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주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거짓말이 첨가된 대답을 한 엘리네시아는 또 웃음보가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는 아렌트를 흘겨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공작님의 눈을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공작님은 눈이 참 예뻐서 그렇게 말해 버렸지 뭐예요. 예쁜 건 예쁜 거니까요.”

두 손으로 뺨을 가리고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살짝 띠며 시선을 피하여 대답하자 눈에 보일 정도로 데페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의 약혼녀를 정하는 파티인 데다가 마음에 둔 여인이 다른 남자의 칭찬을 했으니 자존심 강한 데페르는 자존심이 상당히 상했을 것이다.

‘그래, 자존심 상하지? 아니……. 그러고 보니까 남자한테 예쁘다는 좀 아닌가…….’

아까부터 그의 눈이긴 하지만, 루카르테를 자꾸 예쁘다고 말했던 걸 떠올린 엘리네시아의 머리 위로 느낌표가 퐁, 하고 나타났다.

‘아하! 그래서 아까부터 아렌트 황자가 미친놈처럼 웃은 거구나?’

그 무섭다고 소문난 루카르테를 예쁘다고 칭찬하다니.

‘겁 없고 머리에 필터링이 되지 않는 나, 죽어라.’

머릿속에는 이미 목을 매달아 죽는 모습을 상상하고만 엘리네시아는 태연한 척 양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곤란해지면 무조건 웃어야 한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리라.

이윽고 엘리네시아는 데페르와의 관계를 마무리하기 위해 다지기 단계에 들어갔다.

“그리고……, 공작님은 눈이 예쁜 거 말고도 잘생기시지 않으셨나요? 제 눈에는 가장 멋있는 분이세요.”

눈이 예쁜 건 예쁜 거였다. 예쁘다고 생각한 눈을 멋있다는 말로 고치고 싶지는 않아 다른 칭찬을 더 했다. 그래도 가장 멋있어 보이는 사람이라는 건 사실이었다.

채시현으로 살아갈 때 항상 보던 일러스트나 삽화, 루카르테의 명대사들을 접하면서 그녀가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등장인물은 바로 루카르테였다.

잘생기기도 했지만, 왠지 맘이 짠해지는 슬픈 과거, 그의 이야기를 다룬 것들로 인해서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이었다.

“진심입니까? 저 괴물 공, 아니……. 카시미르 공작이 좋으신 겁니까?”

“네. 좋아해요.”

‘얼마나 좋아? 잘생겼지. 무뚝뚝해도 마음씨는 착해. 무서워 보이지만 또 애들을 좋아하는 캐릭터로 알려져서 얼마나 반전 매력이었는데.’

데페르의 질문에 아주 당당하고 당차게 대답한 엘리네시아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무엇이 좋은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다시 자신의 말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한 것은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어라……? 나 또 뭔가 말을 잘못 한 거 같은데……?’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표정에 쩌적 금이 간 데페르에게서 시선을 옮겨 자연스레 루카르테에게로 옮긴 엘리네시아는 확신했다.

‘그래. 내가 미쳤지. 모든 게 내 입이 문제지.’

얼굴이 빨개진 채 당황한 얼굴을 하는 루카르테를 본 엘리네시아는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입을 저주하리라, 맹세했다.

하지만 또 빨개진 얼굴을 한 그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는 것은 엘리네시아 혼자만의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