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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일기 1권(25화)
6. 새로운 시작(7)
영원과 범블비, 그리고 50명의 조직원들은 상해 앞의 무인도. 그러니까 일명 베이스캠프에서 작전 성공을 축하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술은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가져온 음료수로 대신하고 있었지만, 일종의 바비큐 파티식으로 돼지와 닭을 통으로 굽고 있었다. 그런데 고기가 양념이 약간 밋밋했는데, 조직원들 중 한 명이 마침 고추장을 가지고 왔었다.
뭐, 하루 만에 거덜 났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작전의 시작은 완벽했다.
물론 천산파에서 청룡파 조직원들, 그러니까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의심하겠지만, 증거가 없으니 뭐라 하리오. 건물 내의 CCTV는 폭파로 인해 부서졌고, 생존자는 확인한 바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중상이니 뭐라 말을 하게 만들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그날 거래한 시간이나 그런 것 등등을 살펴보면 얼추 청룡파이지 않겠느냐 하는 심증은 잡히겠지만, 물증은 없으니 뭐라고 하거나 조직원들을 풀어서 움직일 수 없으리라.
“우하하하! 그놈 봤냐? 통역사 여자가 귀에다 말할 때마다 음흉한 표정 짓는 거!”
“봤지! 그런 놈이 부두목이라니. 넙치 형님이 들으면 폭소하실 거야!”
“부두목이 그런데 두목은 또 얼마나 한심할까?”
“유시후 형님보다는 훨씬 뭐 같겠지. 짱깨들이잖냐.”
“그렇겠지. 끌끌끌.”
뭔가 국가 비하 발언이나 음담으로 조금씩 이야기가 변하고 있기는 했지만, 조직원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리며 작전 성공에 기쁨의 의사를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사실 영원이 유시후에게 부탁해서 데려온 그나마도 유명한 조직원들이었지만, 결국 유시후나 부두목인 넙치 이정훈에게는 똘마니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그리 큰일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원을 따라와서 맘에 안 드는 중국 깡패 놈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니 혹시 이게 잘되면 두목의 눈에 들어서 조직 내의 직위가 높아질 수 있었다. 저번에도 영원의 명령대로 군말 없이 움직였더니 꽤나 많은 돈과 꽤 높아진 조직 안에서의 직위가 돌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그것보다 더 큰일이었다. 과연 보답이 뭐가 될지 기대가 되는 것이었다.
“보기보다 일 처리는 잘하더군.”
“그런가요?”
“음. 군인으로 키우면 꽤 유명한 용병 집단이 될 수 있을 것이야.”
“구…… 군인?”
영원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눈을 범블비에게서 돌렸다.
이 사람이 언제 농담하던가. 이거 진심이었다. 거기다 이 사람이 마음먹고 이들을 키운다면 여느 군대 못지않게 되리라.
“그보다, 여름인데 시원하지도 않고 덥지도 않군요.”
“그렇군.”
“끄응…….”
사실 아까부터 영원과 범블비의 대화 방식이 이러했다.
영원이 조직원들과 저만치 떨어져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범블비와 같이 식사하기 위해 말을 걸면, 범블비는 단답형으로 말의 맥을 끊어 버렸다.
물론 그리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니 길게 대화를 한다는 것을 바라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무언가 화제를 꺼내면 ‘알았다’라든지 ‘그렇군’이라든지 ‘그럴지도’라는 듯이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었다.
아까 군대 이야기를 한 것이, 오늘 동안 가장 오래 범블비와 이야기를 나눈 것이었다.
그러니 영원이 밥을 먹다 말고 신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일기에 그에 관해 어느 정도 적혀 있었지만, 정작 진짜 그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것과는 꽤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범블비 씨, 당신 이야기 좀 해 봐요.”
“됐다.”
범블비는 어느새 밥을 다 먹었는지 밥그릇을 옆으로 치워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지 말고.”
“싫다.”
“왜 그러죠?”
“평화로운 나라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야.”
범블비는 순간 표정이 변했다.
뭔가 슬피 우는 듯한 표정이랄까? 무서운 눈매가 조금 풀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표정을 갈무리하며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를 옮겼다.
“으음…….”
아직 범블비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는 사실이 물씬 묻어 나오는 행동이었다. 아직 그의 가족도 구하지 않았으니 범블비와 영원은 그저 협력 관계에 불과했다.
영원은 한숨을 한 번 쉰 후 텐트로 들어섰다.
밖은 떠들거나 장난을 치는 소리로 소란스러웠지만 의외로 잠자는 데 걸린 시간은 매우 짧았다. 몽롱해지는 정신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영원은 잠에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 그것이.”
한 남성이 책상을 강하게 내리치며 언성을 높였다. 그의 책상에는 차가 한 잔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아무런 구실을 못하고 땅에 떨어져 깨져 버렸다.
남성의 이름은 이황. 천산파의 두목이었다.
그가 지금 이렇게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최근에 일어난 테러 사건 때문이었다.
하루 전에 자신이 아끼는 수하이자, 지금껏 이 천산파를 키워 온 부두목 왕유우가 죽었다. 그냥 죽은 것도 아니었다. 건물의 중요한 주축이 되는 지하 기둥에만 폭탄을 설치해 일시에 폭파시킨 것이었다. 다행히 주축 기둥 외의 다른 기둥들은 피해가 미미해서 건물이 무너지거나 기울지는 않았지만 사상자가 엄청났다. 저번에 일어난 거대 지진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었다.
갑자기 괴한들이 난입했고, 총을 난사했다. 부두목 왕유우의 사인도 압사나 충격사가 아닌 총으로 인한 사망이었다.
그리고 이황은 자신의 수하들을 모두 풀어 뒤를 조사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다행히 도주범으로 보이는 몇 명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고, 그 이후의 종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조사해 보니 왕유우가 청룡파와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접했지만, 청룡파는 이미 중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었다.
“제길. 레지스에서 감금하라 시킨 그 모녀를 담당하는 것이 왕유우였건만…….”
쾅!
그렇게 분노를 못 이기고 안절부절못하던 찰나에 갑자기 문이 열렸다. 정말 좋은 말로 문이 열렸다는 것이지 문이 부숴질듯이 과격하게 열렸다.
“무슨 짓이냐!”
“큰…… 큰일입니다!”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이냐. 내가 소란을 싫어하는 것을 네놈들이 모르는 것이냐!”
“워…… 원로들이 세력 다툼을 시작했습니다!”
“뭣이?”
부두목이 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세력 다툼을 시작하다니. 아무리 자신의 입김이 요즘 그들에게 닿지 않고 있다고 해도 원로들이 지금의 이 급박한 상황을 모르고서야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리 없었다.
‘아니, 그래서인 건가?!’
이황은 심각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천산파의 세력 구조는 두목인 자신, 부두목인 왕유우, 그리고 그 밑에 10개의 조직으로 분산되어 있는 10원로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나 왕유우의 명령이 아니면 절대 힘을 합치지 않았고 서로 견제만을 하였다.
그런 그들에게 자신이 아닌 부두목 왕유우라는 억제력이 사라지자 날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끄럽게 됐어. 귀찮다! 나중에 심해지면 내가 제재를 할 테니 이번에 한 번 서로 싸우다가 깨지라 그래! 쯧!”
혀를 한 번 찬 이황은 생각을 접고 창문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렇게 된 것, 혹시 빨리 끝나서 원로 중 한 명이 부두목이 되면 좋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서로 싸우다가 서로의 세력이 약해지면 그 약해진 만큼 자신의 세력이 강해지니 이황은 별로 상관을 하지 않았다.
혹시 레지스가 알아차리면 자신이 제재하면 되고, 혹시 다툼이 너무 고조되면 그것도 자신이 제재하면 되었다. 원로의 조직원들도 모두 원로들보다는 자신을 더 잘 따르니 말이다.
“뭐 이리 풀리는 게 없더냐.”
이황은 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를 뿜어냈다. 그의 눈에는 수하를 잃은 슬픔이 묻어 나왔다.
그렇게 이황은 세력 다툼을 시작한 원로들을 그대로 방치하였다.
그리고 정확히 부두목의 세력이 전멸한 후 7일째. 상황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레지스는 물론 절대방관주의였다. 천산파가 그들의 직속 조직도 아닐 뿐더러 단순한 하청 조직이니 아무런 명령이 없었다.
하지만 조직 안에서의 분쟁이 엄청난 수로 번졌다. 마치 그동안 꾹꾹 눌러 놓았던 분쟁의 기운이 물고가 트이자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두목인 이황은 명령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고가 트인 저수지의 물은 막는다고 막히는 것이 아니다. 물을 모두 빼고 그다음 다시 수리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황의 명령이 결코 가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심각한 상황이 되자 이황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또 그것이 문제가 됐다. 호시탐탐 천산파의 세력을 노리던 주위의 조직들이 끼어든 것이었다.
그렇게 내전과 외전이 시작되었다. 보통 아무리 큰 나라도, 아무리 큰 조직도 부서지고 무너지는 징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내전이 시작되고, 외세가 공격을 가해 온다. 결국 최고 권력자는 힘을 쓰기 시작하지만 벌써 물은 엎어진 후였고 어떻게 되돌릴 수 없게 되는 것. 딱 지금의 천산파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한 개의 상황이 더 더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어부지리를 노린 청룡파와 황영원, 그리고 범블비의 존재였다.
“크윽!”
퉁! 퉁! 퉁! 타다다다당!
주위가 모두 컨테이너로 되어 있는 항구의 바닷가. 그곳에서는 천산파끼리의 세력 다툼과, 그리고 어부지리를 노리고 그들의 뒤를 친 칠성파라는 중국의 중소 조직, 그것들을 한 번에 처리하려는 청룡파의 세력이 격돌하고 있었다.
사실 수적으로는 청룡파가 가장 적었다. 하지만 그 질이 달랐다. 언제나 육체 대신에 총으로만 해결을 했던 중국의 조직들과는 달리 청룡파는 육탄전만을 해 왔다.
그뿐인가, 그들에게는 미래를 보는 영원이라는 존재가 있었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킬러가 있었다.
청룡파가 나타났다는 정보를 들은 천산파의 지원 병력이 항구에 도착할 때면, 번번이 그들은 자리를 피하고 없었다.
벌써 이런 식으로 중지된 분쟁만 10건이 넘었고, 사망자 수는 천 단위에 육박했다. 그리고 그들은 총만 쓰는 것이 아니라 둔기를 들고 직접 육탄전까지 벌였다.
“이 원한은 우리 두목님이!”
“그 두목은 내일 죽게 된다.”
탕!
마지막 남은 한 명이 숨을 거두자 범블비를 포함한 조직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벌써 중소 조직 두세 개는 부숴진 지 오래였고, 천산파의 세력은 눈에 띌 정도로 약해졌다.
“철수한다.”
범블비가 천산파와 황룡파에게서 필요한 장비들을 회수하고는 이동용 배에 올라탔다. 그를 따라 50명의 청룡파 조직원들이 그 지역을 벗어났다.
그 후 5분 남짓의 시간이 지나자 천산파의 조직원들이 장비를 들고 나타났다. 하지만 벌써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고, 자신들의 조직원들은 전멸한 후였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서 어둠이 가라앉은 바다를 질주하는 몇 척의 배를 보며 이를 갈았다.
그들이 보고 있는 배는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조직원들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확인한 것은 두꺼운 공책을 고심하며 보고 있는 영원이었다.
“형님들, 오셨어요? 어떻게 됐어요?”
“사상자 0, 중상자 0, 경상자 4.”
범블비가 배에서 사뿐히 뛰어내리며 말을 건넸다. 경상자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경상이라고 말하기도 애매모호한 상처를 가진 자들이었다. 우리나라 말대로 침 바르면 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형님들, 조금 피곤하시겠지만 회수한 장비들이나 사용한 장비들을 정비하시고, 언제나 모이는 백암(白岩)에 모여 주세요.”
“알았다. 한 5분 기다리거라.”
그리고 정확히 5분이 지나자 조직원들은 하나둘씩 백암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원래 하얀 바위라고 했지만 부르기가 귀찮아지니 백암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어찌 됐든, 전에는 미소를 짓거나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명령을 내리던 영원의 표정이 지금은 약간 비장해져 있었다. 마치 전쟁을 앞둔 군인이랄까? 눈빛에서 알 수 없는 묘한 기운이 계속 흘러나왔다.
“미리 이야기를 드렸지만 내일은 드디어 중국에서의 모든 일이 끝나는 날입니다.”
“으음…….”
모두가 말을 하지 않고 영원의 말을 경청했다. 솔직히 텐트에서 자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아니, 잠자리 자체는 모래가 쿠션이 돼서 좋았고, 바다 소리가 매우 맘에 들어서 정말 좋았다. 하지만 바다에서 몸을 닦아야 했고,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솔직히 영원의 비장한 표정에 응답해서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고 싶은 조직원들이었지만 계속 입가가 히죽대고 있었다.
“내일 천산파의 본진을 칩니다.”
조직원들은 영원의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다. 영원이 한 말이 매우 심각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원들은 반론을 하거나 의견을 내지 않았다. 요즘의 영원을 보면서 그렇게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계획대로 실행할 것입니다.”
“끄응……. 진짜 할 생각이냐?”
꽤 조용했는데 갑자기 한 조직원이 마지못해 말을 꺼냈다.
사실 영원이 말하는 ‘계획’은 황당무계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제가 언제 장난쳤습니까, 형님들.”
그 한마디에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아마 온도계가 있다면 온도가 한 2도 정도 내려갔으리라.
그런데 범블비는 한가하게 옆에서 불이나 쐬면서 하품을 하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에요. 레지스, 이 망할 녀석들에게 한 방 거하게 먹어야지요.”
영원의 한마디에 주위가 잠잠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파도가 잔잔해지고 바람이 멈췄다. 가끔씩 들려오던 동물의 소리도 멈췄다. 아니, 이 상황이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진 것이었다.
“자, 시작입니다.”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