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화
프롤로그
어릴 때부터 잘하는 것은 게임뿐이었다. 영어와 수학 점수는 매번 바닥을 기었다. 시험지에 비가 내린다고 학창 시절 별명은 ‘장마’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내 본명이 소나기여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국어는 나름 잘했던 것 같은데.
학교가 끝나면 피시방에 가서 줄곧 앉아 있었다. 운동을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 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해서 자연스레 친구를 게임상에서만 사귀었다. RPG 게임에서 던전을 깨며 공략 영상을 종종 올렸었다. 그러자 길드원이 아예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는 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말주변이 없어서 잘 안 될 거라고 거절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나는 수능 고사장에 들어갔다.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그날 하필 운이 좋았던 건지 찍은 것이 대부분 맞아 버렸다. 덕분에 원래 성적으로는 꿈도 꾸지 못하는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이 난 부모님은 선뜻 자취방까지 구해 주셨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1년 후, 내 수준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결국 군대 휴학을 때려서 도망치듯 학교를 나왔다. 어영부영 제대를 하고 나니 스물둘. 학교에 복학하기도 싫었고 알바를 하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당장 하고 싶은 것은 게임뿐이었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 취미마저 없어지니 점점 불안해졌다. 문득 길드원의 권유가 생각나서 반쯤 도박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가장 싼 마이크를 사고 본가에 있던 컴퓨터를 자취방으로 옮겼다.
스트리머 이름은 별명대로 ‘장마’. 시작은 예전처럼 던전 공략 방송으로 했다. 원래 공략을 봐 주던 사람들 덕분에 한 달 만에 시청자가 100명쯤 모였다. 게임을 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소득은 여전히 없었다. 게다가 내가 말없이 게임을 하자, 방송을 시작한 지 두 달도 안 돼서 시청자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즐기던 게임이 서버 종료를 한다는 공지가 떠 버렸다. 중학생 때부터 하던 게임이 사라진다는 말에 말도 못 하게 슬펐다. 결국 서버 종료 날에 소주를 사 들고 와서 취한 채로 게임을 했다.
그날은 어떻게 방송을 이어 나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소주를 병째로 마시며 게임에게 떠나지 말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것 같다.
깽판을 친 다음 날 오후에 겨우 눈을 떴다. 왠지 엄청난 흑역사를 남긴 것 같은 기분에 핸드폰을 켤 엄두도 나지 않았다. 밤이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켰다.
몇 달째 연락이 되지 않던 길드원에게서 엄청난 양의 톡이 와 있었다. 어서 너튜브 채널에 들어가 보라는 독촉이었다. 신고라도 당해서 채널이 터졌나 싶었다. 불안해서 한달음에 채널에 켜 보았다.
그리고 나는 믿지 못할 광경을 봐 버렸다.
자그마치 오만 명이다. 하룻밤 사이에 늘어난 구독자 수만 오만이었다.
심지어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열 명씩 늘어나고 있었다. 처음엔 채널이 해킹당했나 싶었다. 하지만 곧 길드원이 보내 준 링크 덕분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청자 중 한 명이 그날 내 방송을 녹화해서 ‘게임계 구남친’이라는 제목으로 SNS에 올렸단다. 영상 속에 나는 술에 취해서 게임에 대고 가지 말라는 둥, 네가 어떻게 나를 버릴 수 있냐는 둥, 우리의 추억을 잊은 거냐는 둥 별소리를 다 하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 그 영상이 갑자기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이 내 채널 유입된 것이다. 항상 아무것도 없던 댓글 창에는 귀엽다는 말이 가득해졌다. 지루한 공략 방송인데 목소리가 좋다는 코멘트가 달렸다.
지울 수 없는 흑역사가 기회로 바뀌었다.
‘구남친’ 사건 이후로 생방 시청자 수가 무려 천 명이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후원을 하기도 했고 응원도 해 주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러서 나는 고맙게도 십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스트리머가 되었다.
#Stage 1
“어때? 음량 괜찮아요?”
▷ 장하~
▷ 목소리 딱이에요! 좋당
▷ 오늘 설마 또 배틀 운동장?
“아, 오늘도 배틀 운동장 하긴 할 건데…….”
▷ 응 5연패야~
▷ 배린이 하이^^
“탑텐 들 거거든요! 진짜로.”
캠은 켜지 않지만 마이크는 나름 좋은 것으로 바꾸었다. 이제는 던전 공략 방송이 아니라 그때그때 유행을 타는 게임을 플레이했다. 요새는 ‘배틀 운동장’이라는 슈팅 게임이 인기가 많아서 며칠째 그 게임만 하고 있다. 시청자 유입도 잘되고 드립도 칠 수 있어서 좋았지만 문제는 내 실력이었다.
나는 게임을 잘한다고 자부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던전과 몬스터가 있는 RPG 게임에만 해당되었다. 신중하게 조준을 하는 슈팅 게임은 정말 심각하게 못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내가 슈팅 게임을 할 때마다 훈수를 두다 못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아마 오늘도 엄청난 반발 속에서 게임이 진행될 것이다.
“물 좀 떠 올게요~”
게임 대기 화면에 두고 잠시 자리를 떴다. 컵을 들고 다시 컴퓨터 앞으로 돌아오자 화면 하단에 만 원 후원 창이 떴다.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그 시청자가 보내 준 글도 같이 읽었다.
“장마껌딱지 님, 만 원 감사합니다! 1등 하면 오만 원이라구요? 아니, 이번에 진짜 이긴다니까. 나 어제 영상 보고 공부했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채팅 창 스크롤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 ㅋㅋㅋㅋㅋ저걸 누가 믿어ㅠㅠ
▷ 장마형, 어제도 그 소리했어요ㅋㅋ
▷ 어제 빡쳐서 겜 종료한 거 누구임?
옳은 말만 하니 할 말을 잃었다. 조용히 입맛을 다시자 채팅 창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어릴 때 던전을 깨려고 불탔던 승부욕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손가락을 풀며 마우스를 다시 잡았다.
“듀오할 거예요. 랜덤 듀오.”
혼자서 게임을 했다가는 바로 질 것이 뻔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과 함께 두 명이서 플레이하는 쪽이 마음 편할 것 같았다. 가끔 재밌는 사람이 같은 팀으로 걸리면 그걸 컨텐츠로 채널에 영상을 업로드하기도 한다. 채팅 창에서는 버스 타려는 거다, 또 무임승차다, 말이 많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어, 매칭 잡혔다.”
대기실에 입장하자 수많은 캐릭터들이 보였다. 파란색으로 아이디가 쓰여 있는 사람이 이 번 판을 같이 하게 될 상대이다. 저 멀리 기본 남자 캐릭터 머리 위로 ‘IJ970728’라는 아이디가 보였다. 얼른 그쪽으로 다가가서 게임용 마이크를 켜고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혹시 마이크 쓰세요?”
아무 말이 없었다. 안 들렸나 싶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자 캐릭터가 나를 쳐다보더니 그냥 저 멀리로 걸어갔다. 아직 게임 시작 전이라서 따로 다녀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같이 다니고 싶어서 뒤를 졸졸 쫓아갔다.
“안녕하세요~”
캐릭터가 나를 휙 돌아보았다. 그리고 또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내 목소리를 듣고 있기는 하니까 다행이었지만, 왠지 혼자만 말하게 될 것 같았다. 채팅 창이 다시금 불붙었다.
▷ 네 다음 솔플
▷ 저 사람 마이크 안 쓰나 봐요
▷ 장마님 벌써 슬퍼 보임
“아냐, 고수라서 말 안 하는 거 아닌가?”
▷ 지금 본인 입으로 초보라서 마이크 쓴다고 증명한 거임?
▷ 살살 때리세요ㅋㅋㅋ장마님 뼈아플 듯
“빡겜 갑니다. 빡겜.”
저 많은 시청자 중에 내 편 하나 없다. 울분을 삼키며 이번엔 꼭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리라 다짐했다.
마침내 게임이 시작되었다. 나와 그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렀다. 여기서 어디를 기점으로 시작할지 같이 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말도 없이 커다란 맵에 노란 마크 하나를 찍어 버렸다.
“여기로 갈까요? 좋아요. 좋아요!”
역시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왠지 고수의 느낌이 폴폴 풍겨서 믿기로 했다. 노란 마크 근처에서 타이밍 맞춰 뛰어내리는 키를 눌렀다. 바닥에 무사히 도착하자마자 옆에 있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배틀 운동장’은 맵에서 총이나 힐 아이템을 찾고 주워서 플레이해야 한다.
게임을 여러 번 하다 보면 무슨 아이템이 좋은지 척 봐도 안다고들 하지만, 나는 아직 초보여서 보이는 대로 줍곤 한다. 얼른 집 하나를 턴 다음 그가 있는 컨테이너로 들어가서 주위를 경계했다. 아직 근처에 적은 보이지 않아서 아무 말이나 꺼냈다.
“아이제이 님은 과묵한 편이신가 봐요.”
대답이 없다.
“이 게임 얼마나 하셨어요?”
외로운 대화였다. 슬쩍 채팅 창을 흘겨보았다.
▷ 이게 뭐야 ㅋㅋㅋㅋㅋㅋ
▷ 장마님 그만 질척거려요
▷ 저사람 최소 장마인거 알고 조용한 듯
시청자들은 역시나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집 밖으로 나왔다. 묵묵히 파밍만 하던 그가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니맵을 보니 나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같이 다니는 게 낫지 않나? 일단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계속 채팅 창을 확인했다.
그때 저 멀리 총성이 들렸다. 불안해진 나는 숨으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단 몸을 낮추고 벽 뒤로 몸을 숨기려는데, 어디서 날아오는 건지 모를 총알에 맞아 버렸다. 순식간에 체력이 바닥이 나서 힘없이 쓰러졌다.
“엥? 이거 어디서 날아오는 거예요?”
▷ 아이고, 장마야.
▷ 시좁장ㅋㅋㅋ 시야 개 좁아
▷ 장마님 제발 옆 좀 봐요
시청자의 말대로 시야를 옆으로 돌렸다. 풀숲에 상대 캐릭터가 숨어 있었다. 이제 알아 봤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캐릭터 주변 흙바닥에 총알이 팅팅거리며 박힌다. 마지막 발악으로 게임용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어, 어어. 저 죽어요. 저, 어어어어!”
그때 갑자기 탕, 하고 큰 소리가 나더니 총성이 멈췄다.
프롤로그
어릴 때부터 잘하는 것은 게임뿐이었다. 영어와 수학 점수는 매번 바닥을 기었다. 시험지에 비가 내린다고 학창 시절 별명은 ‘장마’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내 본명이 소나기여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국어는 나름 잘했던 것 같은데.
학교가 끝나면 피시방에 가서 줄곧 앉아 있었다. 운동을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 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해서 자연스레 친구를 게임상에서만 사귀었다. RPG 게임에서 던전을 깨며 공략 영상을 종종 올렸었다. 그러자 길드원이 아예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는 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말주변이 없어서 잘 안 될 거라고 거절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나는 수능 고사장에 들어갔다.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그날 하필 운이 좋았던 건지 찍은 것이 대부분 맞아 버렸다. 덕분에 원래 성적으로는 꿈도 꾸지 못하는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이 난 부모님은 선뜻 자취방까지 구해 주셨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1년 후, 내 수준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결국 군대 휴학을 때려서 도망치듯 학교를 나왔다. 어영부영 제대를 하고 나니 스물둘. 학교에 복학하기도 싫었고 알바를 하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당장 하고 싶은 것은 게임뿐이었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 취미마저 없어지니 점점 불안해졌다. 문득 길드원의 권유가 생각나서 반쯤 도박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가장 싼 마이크를 사고 본가에 있던 컴퓨터를 자취방으로 옮겼다.
스트리머 이름은 별명대로 ‘장마’. 시작은 예전처럼 던전 공략 방송으로 했다. 원래 공략을 봐 주던 사람들 덕분에 한 달 만에 시청자가 100명쯤 모였다. 게임을 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소득은 여전히 없었다. 게다가 내가 말없이 게임을 하자, 방송을 시작한 지 두 달도 안 돼서 시청자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즐기던 게임이 서버 종료를 한다는 공지가 떠 버렸다. 중학생 때부터 하던 게임이 사라진다는 말에 말도 못 하게 슬펐다. 결국 서버 종료 날에 소주를 사 들고 와서 취한 채로 게임을 했다.
그날은 어떻게 방송을 이어 나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소주를 병째로 마시며 게임에게 떠나지 말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것 같다.
깽판을 친 다음 날 오후에 겨우 눈을 떴다. 왠지 엄청난 흑역사를 남긴 것 같은 기분에 핸드폰을 켤 엄두도 나지 않았다. 밤이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켰다.
몇 달째 연락이 되지 않던 길드원에게서 엄청난 양의 톡이 와 있었다. 어서 너튜브 채널에 들어가 보라는 독촉이었다. 신고라도 당해서 채널이 터졌나 싶었다. 불안해서 한달음에 채널에 켜 보았다.
그리고 나는 믿지 못할 광경을 봐 버렸다.
자그마치 오만 명이다. 하룻밤 사이에 늘어난 구독자 수만 오만이었다.
심지어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열 명씩 늘어나고 있었다. 처음엔 채널이 해킹당했나 싶었다. 하지만 곧 길드원이 보내 준 링크 덕분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청자 중 한 명이 그날 내 방송을 녹화해서 ‘게임계 구남친’이라는 제목으로 SNS에 올렸단다. 영상 속에 나는 술에 취해서 게임에 대고 가지 말라는 둥, 네가 어떻게 나를 버릴 수 있냐는 둥, 우리의 추억을 잊은 거냐는 둥 별소리를 다 하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 그 영상이 갑자기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이 내 채널 유입된 것이다. 항상 아무것도 없던 댓글 창에는 귀엽다는 말이 가득해졌다. 지루한 공략 방송인데 목소리가 좋다는 코멘트가 달렸다.
지울 수 없는 흑역사가 기회로 바뀌었다.
‘구남친’ 사건 이후로 생방 시청자 수가 무려 천 명이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후원을 하기도 했고 응원도 해 주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러서 나는 고맙게도 십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스트리머가 되었다.
#Stage 1
“어때? 음량 괜찮아요?”
▷ 장하~
▷ 목소리 딱이에요! 좋당
▷ 오늘 설마 또 배틀 운동장?
“아, 오늘도 배틀 운동장 하긴 할 건데…….”
▷ 응 5연패야~
▷ 배린이 하이^^
“탑텐 들 거거든요! 진짜로.”
캠은 켜지 않지만 마이크는 나름 좋은 것으로 바꾸었다. 이제는 던전 공략 방송이 아니라 그때그때 유행을 타는 게임을 플레이했다. 요새는 ‘배틀 운동장’이라는 슈팅 게임이 인기가 많아서 며칠째 그 게임만 하고 있다. 시청자 유입도 잘되고 드립도 칠 수 있어서 좋았지만 문제는 내 실력이었다.
나는 게임을 잘한다고 자부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던전과 몬스터가 있는 RPG 게임에만 해당되었다. 신중하게 조준을 하는 슈팅 게임은 정말 심각하게 못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내가 슈팅 게임을 할 때마다 훈수를 두다 못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아마 오늘도 엄청난 반발 속에서 게임이 진행될 것이다.
“물 좀 떠 올게요~”
게임 대기 화면에 두고 잠시 자리를 떴다. 컵을 들고 다시 컴퓨터 앞으로 돌아오자 화면 하단에 만 원 후원 창이 떴다.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그 시청자가 보내 준 글도 같이 읽었다.
“장마껌딱지 님, 만 원 감사합니다! 1등 하면 오만 원이라구요? 아니, 이번에 진짜 이긴다니까. 나 어제 영상 보고 공부했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채팅 창 스크롤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 ㅋㅋㅋㅋㅋ저걸 누가 믿어ㅠㅠ
▷ 장마형, 어제도 그 소리했어요ㅋㅋ
▷ 어제 빡쳐서 겜 종료한 거 누구임?
옳은 말만 하니 할 말을 잃었다. 조용히 입맛을 다시자 채팅 창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어릴 때 던전을 깨려고 불탔던 승부욕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손가락을 풀며 마우스를 다시 잡았다.
“듀오할 거예요. 랜덤 듀오.”
혼자서 게임을 했다가는 바로 질 것이 뻔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과 함께 두 명이서 플레이하는 쪽이 마음 편할 것 같았다. 가끔 재밌는 사람이 같은 팀으로 걸리면 그걸 컨텐츠로 채널에 영상을 업로드하기도 한다. 채팅 창에서는 버스 타려는 거다, 또 무임승차다, 말이 많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어, 매칭 잡혔다.”
대기실에 입장하자 수많은 캐릭터들이 보였다. 파란색으로 아이디가 쓰여 있는 사람이 이 번 판을 같이 하게 될 상대이다. 저 멀리 기본 남자 캐릭터 머리 위로 ‘IJ970728’라는 아이디가 보였다. 얼른 그쪽으로 다가가서 게임용 마이크를 켜고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혹시 마이크 쓰세요?”
아무 말이 없었다. 안 들렸나 싶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자 캐릭터가 나를 쳐다보더니 그냥 저 멀리로 걸어갔다. 아직 게임 시작 전이라서 따로 다녀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같이 다니고 싶어서 뒤를 졸졸 쫓아갔다.
“안녕하세요~”
캐릭터가 나를 휙 돌아보았다. 그리고 또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내 목소리를 듣고 있기는 하니까 다행이었지만, 왠지 혼자만 말하게 될 것 같았다. 채팅 창이 다시금 불붙었다.
▷ 네 다음 솔플
▷ 저 사람 마이크 안 쓰나 봐요
▷ 장마님 벌써 슬퍼 보임
“아냐, 고수라서 말 안 하는 거 아닌가?”
▷ 지금 본인 입으로 초보라서 마이크 쓴다고 증명한 거임?
▷ 살살 때리세요ㅋㅋㅋ장마님 뼈아플 듯
“빡겜 갑니다. 빡겜.”
저 많은 시청자 중에 내 편 하나 없다. 울분을 삼키며 이번엔 꼭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리라 다짐했다.
마침내 게임이 시작되었다. 나와 그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렀다. 여기서 어디를 기점으로 시작할지 같이 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말도 없이 커다란 맵에 노란 마크 하나를 찍어 버렸다.
“여기로 갈까요? 좋아요. 좋아요!”
역시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왠지 고수의 느낌이 폴폴 풍겨서 믿기로 했다. 노란 마크 근처에서 타이밍 맞춰 뛰어내리는 키를 눌렀다. 바닥에 무사히 도착하자마자 옆에 있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배틀 운동장’은 맵에서 총이나 힐 아이템을 찾고 주워서 플레이해야 한다.
게임을 여러 번 하다 보면 무슨 아이템이 좋은지 척 봐도 안다고들 하지만, 나는 아직 초보여서 보이는 대로 줍곤 한다. 얼른 집 하나를 턴 다음 그가 있는 컨테이너로 들어가서 주위를 경계했다. 아직 근처에 적은 보이지 않아서 아무 말이나 꺼냈다.
“아이제이 님은 과묵한 편이신가 봐요.”
대답이 없다.
“이 게임 얼마나 하셨어요?”
외로운 대화였다. 슬쩍 채팅 창을 흘겨보았다.
▷ 이게 뭐야 ㅋㅋㅋㅋㅋㅋ
▷ 장마님 그만 질척거려요
▷ 저사람 최소 장마인거 알고 조용한 듯
시청자들은 역시나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집 밖으로 나왔다. 묵묵히 파밍만 하던 그가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니맵을 보니 나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같이 다니는 게 낫지 않나? 일단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계속 채팅 창을 확인했다.
그때 저 멀리 총성이 들렸다. 불안해진 나는 숨으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단 몸을 낮추고 벽 뒤로 몸을 숨기려는데, 어디서 날아오는 건지 모를 총알에 맞아 버렸다. 순식간에 체력이 바닥이 나서 힘없이 쓰러졌다.
“엥? 이거 어디서 날아오는 거예요?”
▷ 아이고, 장마야.
▷ 시좁장ㅋㅋㅋ 시야 개 좁아
▷ 장마님 제발 옆 좀 봐요
시청자의 말대로 시야를 옆으로 돌렸다. 풀숲에 상대 캐릭터가 숨어 있었다. 이제 알아 봤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캐릭터 주변 흙바닥에 총알이 팅팅거리며 박힌다. 마지막 발악으로 게임용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어, 어어. 저 죽어요. 저, 어어어어!”
그때 갑자기 탕, 하고 큰 소리가 나더니 총성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