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화





마우스를 휙 돌리자 줄곧 아이템만 줍던 그가 총을 장전하고 있었다. 꽤나 멀리 있는 상대를 깔끔하게 한 발에 맞혀 쓰러트렸다. 예상대로 엄청난 고수였다.

“우와, 감사합니다. 아이제이 님.”

바닥에 엎드린 채 그가 있는 쪽으로 화면을 틀었다.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아이템이 수중에 없다. 혹시나 친구가 있을까 엄폐물 뒤로 숨은 다음 도와 달라는 의미로 그의 뒤통수를 빤히 쳐다보며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볼품없이 쓰려져 있는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주 열심히 언덕 너머를 저격하고 있을 뿐이다.

“이분 설마 제가 기절한 걸 모르는 걸까요……?”



▷ ㅋㅋㅋㅋㅋㅋ 버림받았네

▷ 너무 짐이라서 그냥 죽어달라는 거 아니에여?

▷ 장마님, 눈치 있게 자살해요



설마 아니겠지. 애써 웃어넘기는 사이, 드디어 킬 로그가 뜨면서 그가 저격 총을 내렸다. 이제 나를 살려 주러 오는 건가 싶었건만, 그는 옆에 있는 집으로 홀연히 떠나 버렸다. 채팅 창은 다시금 나를 비웃는 말들로 가득 찼다. 이대로라면 순조롭게 피가 닳아 죽을 것이 뻔하다. 반쯤 포기해서 마우스를 놓은 채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마침 화면 하단에 후원 창이 떴다.

“빡겜의꽃말은빡종입니다 님. ……천 원 감사합니다. 아니야, 저분 나 안 버렸을 거예요. 방금도 나 구해 줬잖아요. 아니라니까. 다시 온다니까?”



▷ 네 안와요

▷ 장마야 울지 말고 말해봐



미니맵을 통해 그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보인다. 어떻게 봐도 나를 살리러 오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불안해진 나는 슬그머니 게임 내 마이크를 켰다.

“저기요……?”

그때 집 안에서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놀란 나머지 히끅, 딸꾹질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짧은 대치 끝에 집 문이 열렸다. 피 하나 닳지 않고 멀쩡한 그의 발아래에 시체 상자 두 개가 있었다. 어떻게 둘을 한 번에 죽일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열심히 앉았다 일어나며 상자를 털던 그가 드디어 나를 발견했다. 바닥에 너부러져 용케 살아 있는 나를.

“봐, 이것 봐! 나 버림받은 거 아니라니까.”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캐릭터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지만, 왠지 적잖게 당황한 것 같았다. 내 피가 줄어 가는 가운데 난데없는 눈싸움 끝에 갑자기 마이크가 켜지는 소음이 들렸다.

―아아.

그 남자의 목소리였다.

―죄송해요. 안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서 거기에 집중하느라.

멍하니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사과는 됐고 일단 살려 달라고 말해야 되는데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어폰을 통해서 들리는 목소리가 무슨 유명한 성우처럼 울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작게 탄성을 내뱉으며 본심을 말해 버렸다.

“……목소리 개좋아.”

방송을 잘해 보려고 많은 스트리머의 영상을 봤었다. 그중에는 목소리가 좋다고 소문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다. 목소리만 들었는데 별의별 상상이 다 되었다. 느와르 장르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을 것 같기도 했고, 새벽에 시를 읊어 주는 라디오 DJ 같기도 했다.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 뭐야, 미친; 이어폰 낍니다

▷ 목소리 무엇? 대박

▷ 장마님 이거 무조건 업로드요



채팅 창의 화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타올랐다. 곧바로 녹화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곤 다시 게임 창을 켰다. 상황을 모르는 그는 나를 살린 뒤 내 주변에 회복 아이템을 후두둑 내뱉고 있었다. 조금 과할 정도로. 바로 마이크를 켰다.

“아…… 저 구해 줘서 고마워요!”

―필요하신 건요?

“혹시 총 남는 거 있으시면 부탁드릴게요.”

그러자 그는 말없이 갖고 있던 총과 다른 파츠, 심지어 방어구까지 벗어 주었다. 다시 시체 상자로 돌아간 그가 가방을 정리하는 동안에 게임용 마이크를 끄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들었어요? 목소리 들었어? 와, 진짜 좋아.”



▷ ㅇㅇ; 대박 건진 듯

▷ 계속 같이 하자고 해요ㅠㅠ



“2단계 헬멧 주셨어요. 대박. 나 반할 것 같아.”



▷ ㅋㅋㅋㅋ왜 형이 설레요

▷ 장마형 뚝배기도 없었어...얼른 파밍좀ㅠ

▷ 개웃겨 장마님 뜬금 소개팅

▷ 더 질척거리자!!!!



시청자들과 떠들며 아이템 몇 개를 줍는 사이 그가 어디론가 걸어갔다. 바로 마우스를 쥐고서 쫄래쫄래 쫓아갔다. 왠지 이 사람만 잘 따라가면 이번 판은 문제없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이동하다가 이따금씩 내가 잘 따라오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마이크를 켜긴 했는데도 워낙 말이 없는 편인 것 같다. 오디오가 비는 것 같아 나름 스트리머의 정신을 살려서 뜬금없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아이제이 님은 이 게임 얼마나 하셨어요?”

―얼마 안 됐어요.

“그런데 진짜 잘하시네요. 방금 전에도 에임 최고였어요!”

―……감사합니다.

금방 입을 다물어 버리니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시청자에게 도움을 받으려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채팅 창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귀찮아하는 거 같은데ㅋㅋㅋㅋ

▷ ㅋㅋㅋㅋㅋ작업실패함

▷ 장마님 모솔이라 그래요ㅎㅎ;



모솔인 건 맞지만 괜히 억울해졌다. 시청자들과 원활한 대화를 포기하고 파밍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때 폐가 가장 위쪽에서 제일 좋은 헬멧을 발견했다. 그도 2레벨 헬멧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걸 주면 좋아할 것 같았다. 해바라기씨를 선물하는 햄스터의 마음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저 이걸로 한번 환심을 사 볼게요.”



▷ 파이팅~ 솔로 탈출 하자~

▷ 핑 안찍고 직접 쓰고가나요~ㅋㅋㅋㅋㅋ

▷ ㅋㅋㅋㅋ이게 뭐야 ㅋㅋㅋ



창밖을 확인하고 있는 그의 뒤로 총을 뺀 채 천천히 걸어갔다. 발소리를 들은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총구를 내 쪽으로 겨누었다. 무장도 안 한 상태로 얌전히 서 있자 그가 총을 내렸다. 이상하게 떨리는 마음에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저, 아이제이 님. 제가 레벨 젤 높은 헬멧을 구했는데요…….”

―예, 삼뚝 쓰셨네요.

“네네. 그래서 혹시…….”

앞에 헬멧을 내려놓고는 한 걸음 물러섰다. 채팅 창이 온갖 자음으로 가득 찼다. 그의 반응을 기다리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떨리는 사람은 나일 것이다. 이게 뭐라고 심장이 잘게 떨렸다. 마른침을 삼켜 넘기는데 이어폰을 통해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쓰라고 주신 거예요?

“네! 잘하시니까 1등까지 가셔야죠!”

용기 내어 말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긴장을 해서 그런지 말끝에서 삑사리가 났다. 착각일지 모르지만 이어폰 너머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좋으니 그것마저 나긋하다. 웃음기는 금방 사라지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딱딱한 사람은 아닌가 보다.

그는 다시금 총을 들고는 헬멧을 지나치며 무심하게 툭 한마디를 던졌다.

―그쪽이 쓰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몸 지켜야죠.

예상치 못한 말에 입을 틀어막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사이에 그는 아무렇지 않게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채팅 창과 게임 화면을 빠르게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 이거 도대체 무슨 분위기임?

▷ 누가 브금 후원 좀 해봐요ㅋㅋㅋㅋ



그 채팅이 올라가기 무섭게 바로 후원이 들어왔다. 너튜브 영상 링크가 걸려 있었다. 제목 미상이어서 어떤 영상인지 알 수 없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영상을 클릭하자 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남성 보컬이 흘러나왔다. 숨겨 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 모두…….

“장마형나는어때 님, 오천 원 감사합니다. 아, 브금 진짜……!”

영상은 또 왜 그렇게 긴지. 그 노래를 듣고 있으니 바닥에 떨어진 헬멧이 화사하게 보였다. 캠을 켜지 않아서 다행이다. 묘하게 두 뺨이 화끈거렸다. 차가운 물컵을 뺨에 대고 한 손으로 헬멧을 주워서 썼다.

시청자들은 벌써 편집 각이 나왔다면서 친절하게도 타임라인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나를 놀리는 데 혈안이 된 사람들뿐이다. 급하게 그의 뒤를 따라가며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들이 자꾸 그러니까 분위기 이상해지잖아요. 저 이제 진짜 게임에만 집중합니다~”



▷ 저 소리만 몇 번 듣냐ㅋㅋㅋ

▷ 장마님 오늘부터 이름 그쪽하세요 ㅠㅠ

▷ 킬 올려서 멋진 모습 보여주자



그 난리를 치는 사이 벌써 플레이어가 반으로 줄어 있었다. 필요한 파츠도 다 모았고 이제는 몸으로 싸우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언덕 너머에서 수류탄이 터졌다. 열심히 달리던 나와 그가 동시에 컨테이너 박스 뒤로 몸을 숨겼다.

그때 갑자기 그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총성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저 좋은 목소리를 내가 놓쳤다는 생각에 다급하게 되물었다.

“네? 뭐라고 하셨어요?”

―그쪽 뒤에서 뭐 움직였으니까 조심하라고요.

“헉, 네.”

뒤를 한 번 돌아보고는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 총성이 끊임없이 울렸다. 플레이어 수도 하나둘 줄어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짐짝만 될 것 같아서 방송은 잠시 뒤로 미루고 게임에 집중하기로 했다. 갖고 있던 저격 총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풀밭에 스치는 다른 색을 발견했다. 사람이다.

작게 숨을 들이쉬고 마우스를 클릭했다. 탕, 소리가 맑게 울리자마자 곧장 한 번 더 눌렀다. 친구가 없었던 모양인지 기절 없이 바로 화면에 1킬이란 알람이 떴다. 이 게임에서 처음으로 저격을 성공한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마이크에 대고 환호성을 질렀다.

“와! 아이제이 님 보셨어요? 저 첫 킬! 첫 킬!”

더 이상 총성이 들리지 않아서 컨테이너 밖으로 나왔다. 내가 잔뜩 신이 나 있는 반면에 그는 조용했다. 게다가 채팅 창도 일제히 같은 말을 쓰고 있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그 순간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에, 뒤에.

“어?”

그걸 유언으로 캐릭터가 바닥으로 엎어졌다. 첫 킬이 터지자마자 내 헬멧도 같이 터질 줄은 몰랐다. 확정 킬을 내려는 듯 총을 갈기는 바람에 치료도 할 수 없게 쓰러져서는 결국 그를 남기고 죽어 버렸다. 내가 저격을 하는 동안에 후방에서 누가 다가오고 있었나 보다.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자 채팅 창이 ‘ㅋ’으로 도배되었다.



▷ 장또죽ㅋㅋㅋㅋ 맨날 죽어

▷ 듀오 잘 걸렸는데 기회를 알아서 날리는 진정한 스트리머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