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화







한입 베어 문 파이처럼 한쪽이 우그러진 대륙 몽 글래시카. 대륙의 중앙에 있는 센트리아는 자연스레 시장과 숙박업이 발달했다. 유속이 빠르고 깊은 강과 험준한 산맥 등을 이유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려면 센트리아를 통할 수밖에 없는 탓이었다.

홀리는 센트리아에서도 가장 유명한 여관 할리뎀의 15년 차 종업원이었다.

홀리는 테이블을 닦느라 굽혔던 허리를 펴며 침대를 쳐다봤다. 손님은 대낮부터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다.

비싼 솜을 누벼 만든 베개 위로 밝은 은색의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어느 왕국의 귀하신 도련님께서 가출이라도 했나 싶다. 누구는 해 뜨기 전부터 달이 뜰 때까지 일을 하고 있는데 낮잠이라니. 홀리는 부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할리뎀에서 일할 수 있는 건 큰 행운이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솜씨 좋은 주방장님이 해 주는 맛있는 요리도 먹고. 무엇보다 사장님이 좋아서 주급을 떼먹은 적이 없다.

홀리는 부족한 것이 없나, 주변을 둘러봤다. 벽에 걸린 옷가지 말고는 짐도 없어서 정리할 것도 없었다. 더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홀리는 손님이 깨지 않도록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침대 곁을 지나갔다.

‘뭐지?’

반쯤 지나왔을까. 밖에서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단체 손님이라도 왔나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조급한 마음과 별개로 잠든 손님을 의식해 문을 여는 손길은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홀리는 빼꼼 열린 문틈으로 밖을 내다봤다. 막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새 손님을 맞을 생각에 생글생글 웃고 있던 홀리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어서 찾아!”

맨 앞에서 큰 소리로 명령하는 남자는 ‘토리마스’의 대장 앙리였다.

토리마스.

그들은 귀중품이나 집 등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집단이었다. 센트리아에는 도박장도 성행하는지라 돈놀이를 하는 무리는 많았다. 하지만 저들은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이자는 터무니없이 높았고, 약속된 기한까지 돈을 갚지 않으면 대신 사람으로 갚게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저들이 어쩐 일이지?’

홀리는 얼굴 반쪽만 보일 정도로 열린 문에 기대어 밖을 살폈다. 대장의 명령으로 단숨에 뛰어 올라온 남자 둘이 계단에서 가장 가까운 방의 문부터 열었다. 갑작스러운 침입에 안쪽에서 불만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손님 중 누가 돈을 빌렸나?’

이전에도 몇 번 있던 일이다. 센트리아를 지나가는 길로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역이나 도박을 하러 찾아왔다. 행운의 주인공이 될까 봐 호기롭게 방문했다가 전 재산이 털려 노예처럼 일하게 된 사람을 여럿 봤다.

그러는 동안에도 토리마스 일당은 무례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방문을 열었다가 안쪽을 살피고, 다시 닫는 것을 반복했다.

‘이상한데.’

무턱대고 방문을 열어 뒤지는 것은 영업 방해로 치안대에 끌려가기에 딱 좋은 행동이었다. 미리 목표물이 머무는 방을 알아 와서 그곳만 방문하는 게 보통인데.

‘설마…….’

등 뒤를 덮친 불안감에 홀리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아닐 거야.’

도박 중독인 홀리의 부모님은 빚을 지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리고 그 빚을 갚는 건 하나뿐인 자식, 홀리였다.

하지만 빚쟁이들은 여태 한 번도 직장으로 찾아온 적이 없었다. 홀리가 여기에서 잘리면 돈을 받을 방법이 요원해지니까. 게다가 시시때때로 제 몸을 노리는 앙리에게 빚을 갚은 게 겨우 몇 개월 전의 일이었다.

“뭡니까?”

같은 층의 방을 청소하고 있었는지 종업원 레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홀리는 귀를 쫑긋 세웠다.

“마침 잘 만났군. 홀리는 어디 있지?”

제 이름이 언급되자 홀리는 움찔했다. 역시 저들은 자신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호, 홀리는 왜요? 빚은 다 갚은 걸로 아는데…….”

“아아, 알잖아. 걔네 부모.”

앙리는 들뜬 목소리로 빈정거렸다. 레오는 염치없는 두 사람을 떠올리며 탄식을 흘렸다. 이제는 사채업자들마저 홀리를 가엾이 여겨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들이 비빌 구석은 티끌만 한 연민도 없는 토리마스뿐일 것이다. 하필이면 최악의 건달들에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참담한 현실에 홀리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다가 이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들의 손에 순순히 떨어져 줄 수는 없다. 지붕 있는 집에서 먹고 잘 수 있게 해 준 은혜는 지금까지 충분히 갚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어떻게든 담판을 지을 셈이다.

홀리는 절망에 젖어 있기보다 빠져나갈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녀가 지금 있는 방은 복도 끝, 토리마스 일당이 지키고 있는 계단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면 반드시 저들을 지나가야 했다.

“이제 알았으면 어디 있는지 말해 줘야겠는데.”

홀리는 건달들이 위협적인 기세를 뿜으며 레오에게 다가서는 것을 보고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문을 닫았다. 분명 자신을 아껴 주는 좋은 사람이지만, 언제까지 숨겨 줄지는 알 수 없었다. 홀리는 숨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단출한 방 안에 가구라고는 침대와 테이블이 전부였다.

홀리는 나갈 길을 찾기 위해 미끄러지듯 움직여 창틀에 매달렸다. 새로 온 영주가 깨끗한 도로를 만든다며 돌바닥에 자갈을 박아 넣었다. 3층에서 뛰어내리면 다리든, 팔이든 부러지기 좋게 생겼다. 홀리는 비가 와도 흙발이 되지 않아서 좋아했던 과거의 자신마저 미웠다.

“이게 무슨 행패입니까!”

그때 바깥쪽에서 사장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거 놔! 이거 영업 방해입니다.”

비열한 토리마스 일당이 사장을 억류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그들은 사장님에게 해를 끼치지는 못할 것이다. 홀리는 죄책감은 접어 두고 제 살길을 찾느라 바빴다.

“그 애가 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못살게 구는 겁니까.”

당연히 이 유서 깊은 고급 여관에는 쥐구멍 하나 없었다. 홀리는 초조함에 주변만 두리번거렸다.

“치안대가 오기 전에 이 문을 열어야겠군.”

바로 지척에서 벌써 제가 원하는 것을 얻은 양 열에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숨을 구석도, 도망갈 곳도 없다.

‘하지만 저들에게 잡혔다가는…….’

끔찍한 상상만 들어 입술만 잘근잘근 씹던 홀리의 눈에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천 쪼가리가 보였다. 홀리는 더 늦기 전에 당장에 침대에 뛰어들었다.

온몸을 날렸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침대의 주인이 눈을 떴다. 어색하게 웃던 홀리는 손바닥에 닿는 감촉에 깜짝 놀랐다. 얇은 천 한 장 없이 차가운 살갗에 곧장 닿은 탓이다.

“여자는 주문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남자는 막 잠에서 깬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치마를 들치고 들어오는 데 머뭇거림이 없었다. 홀리는 치마 아래서 꿈틀거리고 있는 손을 밀어 내며 빠르게 속삭였다.

“죄송해요. 나중에 제대로 사죄드릴 테니 아주 잠시만 저를 숨겨 주세요.”

남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홀리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팔랑거리는 속눈썹 아래 얼굴이 지나치게 청순했다. 홀리는 살면서 이토록 하얀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요정 같다.’

그렇게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순식간에 시야가 돌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남자의 몸 아래 깔려 있었다.

“내가 왜?”

남자는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맨살을 드러낸 남자에게 깔린 홀리는 마구 버둥거렸다. 하지만 두 손목이 남자에게 잡혀 침대에 딱 붙어서 소용없었다.

“손님들에게 폐가……!”

“침대에 뛰어든 여자를 가만히…….”

문이 열리는 것과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그리고 남자의 입이 열리는 것이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홀리는 겨우 빼낸 한 손으로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리고 있는 남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당겼다.

홀리는 곤란한 소리를 내는 남자의 입술을 제 입술로 틀어막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잠시 멈칫한 남자가 이내 맞닿은 입술 새로 혀를 밀어 넣었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깜짝 놀란 홀리는 혀로 남자의 것을 열심히 밀어 냈다. 그러자 말캉한 혀가 기다렸다는 듯 감겨 왔다. 재미있다는 듯 남자의 눈도 휘어졌다.

“이렇게 마음대로……!”

쳐들어온 사람들은 방 안의 행태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불 아래로 드러난 다리 네 개가 엉켜 있고, 이불은 쉴 새 없이 들썩거렸다. 필사의 다툼이 이불 밖에서는 연인의 뜨거운 행위로만 보였다.

“대낮부터 뜨거운데.”

홀리는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에 환장할 거 같았다. 더 미칠 것 같은 건 처음 해 보는 입맞춤이 전혀 싫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뒷목이 찌릿할 정도로 좋았다.

“으응…….”

홀리는 몸에 힘을 빼고 감겨 오는 혀를 받아들였다. 그녀가 더 이상 반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가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그렇게 비싸게 굴던 홀리가 대낮부터, 그것도 근무 시간에 뒹굴고 있을 리도 없고…….”

“그, 그렇다니까요. 홀리는 내가 심부름을 보내서 옆 마을에 갔다니까.”

‘이거 근무 태만……. 사장님, 죄송해요.’

성실함을 모토로 살아온 홀리는 앙리와 사장님의 대화를 들으며 눈물이 찔끔 나왔다. 몽롱한 와중에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이 대장을 데리고 나간 게 분명했다.

‘이제 밀어 내야 하는데…….’

혀끝이 입천장을 건드렸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흐려지고, 허리가 떨렸다. 홀리는 남자의 목에 팔을 감아 더 당겼다. 혀가 더 깊이 들어왔다.

“하아…….”

눈을 지그시 뜨고 홀리의 얼굴을 바라보던 남자는 그녀의 발목을 잡아 올렸다. 이불이 스르륵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들린 다리 때문에 치마도 허벅지 안쪽까지 흘러내렸다.

앙리의 말대로 이불 속은 너무 뜨거웠다. 옷 속은 이미 땀으로 축축했고, 불쾌감에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 싶던 차였다.

뱀처럼 차가운 손이 다리를 훑었다. 극명한 온도 차에 몸이 떨렸다. 음흉한 손은 미끄러지듯 허벅지 안쪽에 닿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세워 홀리의 속옷 가운데, 균열이 있는 곳을 눌렀다.

“아……!”

이전에 느껴 본 적 없는 감각에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해도 돼?”

갈라진 목소리로 남자가 물었다. 어딘가 조급한 기색이 묻어 있기도 했다. 홀리는 흔들리는 눈으로 남자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