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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어서 오십……쇼오.”
산성에서 제일가는 객잔인 영화루榮華樓. 영화루엔 각지에서 몰려온 각종 대회의 참가자들과 지방인들로 인해 항상 붐빈다. 그런 영화루에서 으뜸이라 불리는 점소이, 공심은 객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을 반기려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이곳이오?”
“그런 것 같네요.”
“청화루랑 느낌이 비슷해요, 아가씨!”
“…….”
외지인이 틀림없어 보이는 네 명의 남녀.
검은 면사로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분명 아름다울 것이라 의심할 여지가 없는 한 여인과 그 여인의 곁에 서 있는 죽립의 키 큰 청의의 공자.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들어온 귀엽게 생긴 여인 하나와 역시 같은 죽립을 쓴 검은 무복의 사내. 왠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네 사람의 등장에 웅성거리던 객잔이 잠시 조용해졌다.
‘상급, 그것도 최상이군!’
영화루에서의 눈칫밥 10년. 은연중에 뿜는 분위기로만 보아도 손님들의 등급을 매길 수 있었던 경지에까지 오른 공심은 눈앞의 손님들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아온다는 최상급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씨익 웃었다.
“여기 빈방 있나요? 두 개면 될 것 같은데.”
눈앞의 귀빈들을 놓치게 된다면 얼마 전 새로 생긴 객잔인 부귀루富貴樓에 빼앗겨 버릴지도 모른다. 반드시 그들을 잡아야 한다고 공심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면사의 여인이 청아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공심은 홀린 듯 그녀를 응시하다 겨우 정신을 차렸다.
“있다 뿐이겠습니까! 음식도 저희가 제일이랍니다! 어서들 들어오십시오. 3층으로 바로 모시겠습니다!”
다행히 마침 최고급의 방이 별채에 남아 있었다. 공심은 그들을 귀빈들만 모신다는 3층으로 안내하며 방긋방긋 웃었다.
“여긴 뭐가 유명하죠?”
정말로 매혹적인 목소리다. 자리에 안내받고 의자에 앉자마자 공심을 올려다보며 묻는 면사의 여인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공심은 이내 얼굴을 휙휙 저으며 말했다.
“저희 객잔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우리 진의 5대 국수 중 하나인 열간면이지요! 천하제일 요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만큼 대단한 주방장이 계시거든요. 진에서 영화루 주방장의 열간면을 먹어 보지 못한 자는 국수를 먹지 못한 자와 같다고 감히 소인은 단언합니다요!”
“어머, 그래요? 그럼 그걸 4인분씩 준비해 주시고 저희가 묵을 방도 부탁드려요. 아! 여아홍도 하나 추가해 주세요. 나머진, 수고비로 받으시구요.”
“가, 감사합니다. 아가씨!”
은자 세 냥을 그에게 내밀며 활짝 웃는 화령의 말에 공심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더니 아래로 내려갔다.
“고작 며칠만 묵을 것인데 은자 세 냥은 많지 않소?”
율은 그런 화령의 씀씀이에 머뭇거리다 입술을 열었다. 은자 열 냥 정도가 평민들의 한 달 생활비라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물주는 자신이 되기로 했다지만 화령이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펑펑 쓰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화령은 그런 율의 말에 피식 웃으며 손을 휙휙 저었다.
“역시 공자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몰라요.”
뭐?
“그게 무슨 소리요?”
율이 미간을 꿈틀거리자 화령은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각종 정보를 얻으려면 점소이에게 점수를 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구요. 척하면 착 아니겠어요? 저 점소이는 이 객잔에서 꽤 지위가 높을 거예요. 그에게서 얻는 정보는 하나같이 중요할 거구요. 게다가 산성에서 머무는 며칠간은 편안하게 지내야지요. 안 그래요?”
율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 이윽고 든 의문점을 내뱉었다.
“그럼 여아홍을 시킨 이유는 무엇이오? 아직 해는 지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술은 이르다 생각하지 않소?”
진에서 가장 유명하고 계급을 불문하며 마시는 여아홍을 선뜻 시키는 화령에게 묻자 화령은 무슨 소릴 하냐는 듯 대답했다.
“어머. 원래 밖에 나와 주면 한잔하는 게 예의예요. 안 그러니, 소미야?”
소미는 율의 눈치를 보다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요, 아가씨.”
“거봐요.”
“…….”
그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은화령이란 여인은, 확실히 이상하다.
진율이 알고 있던 여인관을 모조리 무너뜨린다. 며칠을 알고 지내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여겼지만, 다시금 타인처럼 느껴진다.
수줍게 웃을 줄만 알았던 얼굴을 순식간에 일그러뜨리고, 다소곳한 말을 내뱉다가도 거친 욕설을 서슴지 않는. 두려움 없이 사내의 목에 칼을 겨누고, 본인 입으로 스스로 힘이 세다는 귀여운 협박을 늘어놓는 걸로도 모자라 보통 여인들이라면 꺼려했을 노숙을 반겨하고 술까지 좋아한다는…… 재미난 여인.
왠지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와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 *
“이쪽으로 쭉 가시면 참관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가씨 일행분들을 위해 제가 미리 대회 측에 말씀드려 놓았지요. 제 이름을 대시면 준비된 좌석으로 안내할 겁니다.”
“어머.”
“그럼, 재밌게 구경하십시오. 저녁에 뵙겠습니다.”
“고마워요, 공심.”
“후후, 뭘요.”
확실히 화령의 말은 효력이 있었다.
그들을 전담하는 점소이 공심은 화령이 천하제일 미공자 대회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 하나만을 듣고 대회의 귀빈석에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미공자들을 탐색하느라 청화루에서 오래 지냈던 화령의 처세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율은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며 씩 웃는 화령을 보고 피식 웃었다.
공심이 일러 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화령 일행은 수많은 인파들로 북적거리는 대회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문 앞에 떡하니 서 있는 안내원인 듯한 이에게 공심의 이름을 말하자 기다리고 있었다며 따로 준비된 상석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총 3층으로 되어 있는 참관석 중에서 2층에 자리를 잡은 화령은 대회장이 훤히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뛸 듯이 좋아했다.
천하제일 미공자 대회.
산성이 자랑하는 이색 대회들 중 하나인 천하제일 미공자 대회는 ‘미남’ 대회가 아니라 ‘미공자’ 대회인지라 그 대회에 참석할 수 있는 나이는 지학(15세)에서 약관(20세)까지만 참가가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은 각지에서 몰려온 수많은 참가자들로 인해 예선전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내일까지는 예선전이, 그리고 내일 모레부터 본선과 결승까지 이어진다는 그 대회를 은화령은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꼭 찾고야 말겠어!’
의지를 불태우는 그녀의 눈은 크게 일렁였다. 율은 그런 그녀의 옆에 앉아 주먹을 불끈 쥐는 화령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화령은 옆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고개를 슬쩍 돌리다 천천히 입술을 연다.
“서문 공자.”
얼른 예선전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화령이 돌연 고개를 돌리자 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령은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세요?”
“뭐가 말이오?”
“이 대회 관전하는 거요.”
“아!”
“공자께선 유람을 더욱 즐기시지 않나요? 같은 사내들의 얼굴을 보는 것을 즐기시진 않을 텐데……. 흥미가 없으시다면 전 여기 놔두고 산성의 절경을 돌아보셔도 상관없어요!”
공심에게 오늘 예선 3차전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침 일찍부터 준비를 하면서 그게 조금 걸렸다. 너무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미에게서 ‘미공자 관찰 도감’을 건네받으며 화령이 은근슬쩍 던진 말에 율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은가장을 나온 이래로 난 소저와 함께 움직이기로 소저의 아버님이신 은가주와 약조하지 않았소?”
물론 그랬지.
“난 크게 개의치 않소. 소저가 가는 곳엔 재밌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편이고, 또 이 대회가 여기선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니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소.”
“그래요?”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응?
“대체 그것이 대체 무엇이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말이지.”
그의 말에 쉽게 수긍하는 화령을 응시하던 율은 못내 마음에 걸리던 그녀의 손에 들린 선지 뭉치를 가리켰다. 이상하게 익숙했다. 유한의 청화루에서 화령을 처음 만났을 때도 소미의 품에 그것이 들려 있는 모습을 본 것 같은 기억이 난다. 율의 물음에 화령은 잠시 멈칫했다.
‘이걸…… 보여 줘야 하나.’
화령의 머뭇거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그에게 내숭이고 뭐고 본색을 다 드러낸 순간, 율은 낭군 후보에서 제외되었으니 그녀의 관찰 도감을 보여 주는 것이 나쁘지 않다 여겼다.
율은 면사에 가려 보이진 않지만 웃고 있는 듯한 화령이 그에게 선지 뭉치를 건네자 얼른 그것을 받아 들곤 한 장씩 펼쳐 보았다.
“미공자…… 관찰 도감?”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써내려가는 화령의 모습을 수상쩍게 여기기는 했으나 설마 이런 것이 줄이야!
‘이 여인 진짜…….’
율은 남정네들의 이름, 키, 그리고 외모에 대해 자세하게 적어 놓은 그녀의 관찰일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은 소저.”
“네?”
“이걸…… 대체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소?”
꾸깃꾸깃한 종이를 봐선 적어도 몇 달은 작성한 것이 틀림없다. 아마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걸 적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화령은 율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소미를 응시했다.
“얼마 안 됐어요. 한 일 년? 맞지, 소미야?”
“예, 아가씨.”
정말로…… 못 말리는 아가씨다. 외모 하나만으로 낭군을 찾겠다더니 이런 일까지 벌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알면 알수록 더더욱 모르겠는 여인은 난생처음이다. 화령은 율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자 버럭 외쳤다.
“왜 그렇게 봐요! 마, 말했잖아요. 전 낭군님을 찾아야 한다니까요?”
율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외모만으로?”
“당연하죠! 제 낭군은 외모만 특출 나면 되어요! 모난 점이 있으면 제가 교육시킴 된다구요!”
‘그런데 대체 난 왜 제외한 거요?’ 라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화령은 괜히 기분이 나빠져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율에게 손을 뻗었다.
“줘, 줘요! 공자한테 이젠 안 보여 줄래요!”
“싫소.”
“뭐라구요?”
“안 되겠소. 그냥 지켜볼 수가 없어.”
배필은 얼굴 하나만으로 정하는 게 아니란 말이오, 이 철부지 여인아!
율은 갑자기 선지 뭉치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기더니 눈을 빛냈다. 화령은 어이가 없어 미간을 좁혔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율은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내가 그 관찰 도감에 좀 참여해야겠소.”
“싫어요! 공자가 왜……!”
“은 소저. 본디 멋진 사내는 멋진 사내를 알아보는 법이오!”
“……!”
“적어도 사내를 많이 접해 보지 못했다는 은 소저의 눈보다 내 눈이 더 정확할 수 있지 않겠소? 그러니 날, 믿으시오.”
* * *
울며 겨자 먹기로 율에게 미공자 관찰 도감을 넘겨주게 된 화령은 하는 수 없이 그와 함께 천하제일 미공자 대회를 참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막 제1대회장에 오르는 하얀 얼굴의 사내를 가리켰다.
“저기 저 요산의 장은오라는 남자! 어때요?”
두 손에 관찰 도감을 꽉 붙든 채 화령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눈을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율의 시선이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옮겨 갔다.
“괜찮죠? 백옥 같은 얼굴에 훤칠한 키까지! 순위에 올려놔야겠어요!”
화령은 빙긋 웃으며 얼른 율에게 붓을 움직이라는 듯 그의 팔을 툭툭 쳤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율은 심드렁한 얼굴로 화령이 마음에 들어 하는 요산의 장은오를 응시하며 입술을 움직였다.
“키는 6척에 조금 못 미치는 것 같고, 얼굴은 말할 것도 없소. 눈코 입이 너무 모였지 않소.”
뭐?
“다른 사내를 찾아보시오. 저 공자는 글렀소.”
율은 더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화령은 그런 그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인상을 썼다.
“아닌데. 내 눈에는 괜찮은데…….”
그는 중얼거리는 화령의 말에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건 소저의 눈이 너무 낮아서 그러는 것이오.”
화령은 퉁명스레 그를 노려봤다.
“제 눈이 낮다는 소리는 공자한테서 처음 듣는군요.”
율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소? 그런데 어쩌겠소. 정말로 낮은걸. 다른 이를 찾아보시오.”
단호한 율의 태도에 화령은 기분이 나빠졌다.
‘좋아. 내가 왕건이 네 녀석보다 잘난 인간을 꼭 찾아내고 만다! 에라이!’
그녀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율을 쏘아보다 휙 고개를 돌리며 제2대회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벌써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눈 지 반 시진째. 예선 3차전이 열린 그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동안 수많은 공자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그녀의 마음을 뒤흔드는 훤칠한 외모를 가진 사내들이었지만 율에게 미공자 관찰 도감을 빼앗겨 버린 후로 그들의 이름을 적을 수 없었던 화령의 얼굴은 야차처럼 일그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저만 믿으라며, 가슴을 툭툭 치고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왕건이 녀석에게 넘어간 것이 그녀의 실수였을까.
“7번, 이얼장 공자는 어때요?”
“너무 기생오라비같이 생겼소.”
“11번, 한미모 공자는요?”
“저런 사내와 혼인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쪽박을 찰 것이오.”
“21번, 유명한 공자는?”
“키워 잡아먹을 일이 있소? 이제 겨우 지학을 넘긴 공자요.”
“그, 그럼 30번 성대한 공자는 어떤가요?”
“쯧쯧. 바람 잘 나게 생겼구려.”
반 시진간 대회에 참가한 공자들의 외모를 판단하는 율의 총평은 신랄하기 짝이 없었다. 도적놈, 기생오라비, 백수 등등. 저급한 표현으로 그들을 깎아내리는 율을 보며 놀라면서도 한편 화령은 이상하게 그의 말에 동의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상하게…… 설득력은 있단 말이야.’
미공자 관찰 도감을 들고 있는 율은 깐깐하고 살벌했다. 웃으며 공자들을 가리키는 화령과는 달리 뭐가 그리 탐탁잖은지 연신 미간을 좁히며 그들을 노려보는 그의 얼굴이 꽤 날카로워 화령도 문득문득 놀랄 정도였다.
그러나 화령이 무슨 말을 던질 때마다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율로 인해 머리가 아파 온다. 율의 말에 넘어가 그에게 낭군 후보 물색을 맡긴 반 시진 동안 수확이 없자 그녀는 슬슬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혼자 도감을 작성할걸. 갑자기 끼어든 불청객으로 인해 그녀의 삶의 낙이나 다름없었던 미공자 관찰 도감의 지속성이 불확실해졌다. 미공자 대회 같은 좋은 볼거리를 눈앞에 두고 붓 한 번 휘적거리지 못한다는 사실은 화령을 안달 나게 만들었다.
하는 수 없이 은화령은 율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서문 공자.”
율은 더 이상 화령이 나직이 자신을 부르자 이번에는 어떤 말로 퇴짜를 놓을까 고민하던 것을 멈추었다.
“왜 그러시오?”
율은 태연자약한 얼굴을 하고 화령을 응시했다.
“너무…… 따지고 드는 게 많은 게 아녜요?”
은화령의 낭군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모.
처음도 외모, 끝도 외모.
오직 외모 하나만 뛰어나면 합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세세한 것까지 트집을 잡는 율로 인해 화령은 머리가 아팠다. 제가 뭔데 왜 내 행복을 방해하냔 말이지. 그의 간섭이 꽤 심해지자 하는 수 없이 그를 쫓아내야겠다 여긴 화령이 이를 갈며 묻자 율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냥 저는 얼굴만 잘생기면 된다니까요! 공자처럼 이것저것 따지고 들면 끝도 없잖아요! 사람이 왜 그렇게 깐깐해요!”
물론 얼굴이 잘생겼지만 말이 많다는 이유로 율을 낭군 후보에서 제외시킨 화령이 할 말은 아니었다. 율은 화령을 가만히 응시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건 소저가 아직 뭘 몰라서 하는 말이오.”
뭐?
“자고로 배필을 고를 땐 신중해야 하오.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이가 아니오?”
율의 목소리는 너무나 부드러웠다. 해서 더욱 그녀의 마음을 흔드는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절로 고개를 끄덕일 만큼.
“소저는 얼굴로만 낭군을 고르려고 하고 있소. 그러다 보면 후일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오.”
“하!”
“그래서 난 소저가 후회하기 전, 그런 일이 생기는 걸 방지하려는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소저를 돕고 있는 것이오. 이제 소저와 친구가 된 것 같아 소저를 아끼는 마음에서 우러난 내 행동을 칭찬은 해 주지 못할망정 깐깐하다니? 마음에 꽤 큰 상처를 입었소. 지금.”
율은 과장된 몸짓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처량한 표정을 짓는다. 화령은 연극을 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율의 행동에 기가 차 헛웃음을 터뜨리다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왕건이 자식이 진짜!’
말만 번지르르.
왕건이의 말을 계속 듣고 있다간 아마 그의 묘한 설득에 넘어가 버릴지도 모른다. 산성까지 온 그녀의 목적이 몽땅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화령은 더 이상 그와 함께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거 내놔요!”
화령은 율의 손에 들린 미공자 관찰 도감을 억지로 빼앗고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 대회는 여기까지예요! 저 먼저 갈 거라구요! 서문 공자 혼자 있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요!”
“은 소저?”
“흥! 꼴도 보기 싫어!”
그녀는 놀란 율을 내버려 두고 객잔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제7장. 가끔은 심장이 제멋대로 뛸 때가 있다
“망할 왕건이 자식…….”
정말 얼굴 하나 빼고는 뭣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인간이었다. 서문율이라는 작자는, 도무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설득해서 무림으로 그녀를 나오게 해 준 공로를 인정하여 바닥을 향하던 점수를 조금 올려 주었더니 이젠 그녀의 관찰 도감까지 빼앗아 간섭을 하는 꼴이라니!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가. 하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같으니. 화령은 번쩍번쩍 빛나는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친구는 누가 친구야! 내가 언제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허락했어?”
대체 왜 그렇게 간섭을 많이 하냐고 했더니 안타까운 마음에 우러나온 친구의 정성이란다. 참나. 우리가 안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친구 운운하는 건지 모르겠다.
은화령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그의 말을 떠올리며 행여나 다시 빼앗길까 두려운 마음에 미공자 관찰 도감을 꽉 쥐고 대회장을 나서려 했다.
“은 소저!”
홀로 그녀의 눈을 정화시켜 주는 미공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낭군감이나 찾으려던 오늘의 계획은 모조리 무너졌다. 어쩔 수 없이 내일을 기약하며 객잔으로 돌아가야겠다 다짐하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율이 그녀의 뒤를 쫓아왔다. 화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타타탁!
“은 소저! 잠깐 멈추시오!”
화령은 율을 떼어 내기 위해 좀 전보다 더 빨리 발을 움직였다.
“소저!”
귀찮은 왕건이 같으니. 왜 자꾸 따라오는 거야!
“은 소저! 멈추라니까!”
너 같으면 멈추겠냐!
타탁.
“은 소저!”
아!
빠르게 움직여 객잔으로 향하려던 화령은 어느새 다가와선 제 손을 덥석 잡아 버리는 율로 인해 멈춰 버리고 말았다. 화령은 할 수 없이 자신의 손목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꽉 잡고 있는 율을 쳐다보았다.
“하아, 하아. 은…… 소저. 거, 걸음이 몹시 빠르구려…… 후우.”
율은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숨을 가다듬더니 이내 그녀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다급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내 뜻은…… 그런 게 아니었소!”
그는 화령의 손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불어넣는 듯했다. 화령은 살짝 미간을 좁히면서도 율의 두 눈을 직시했다. 율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말했다.
“단지, 참을 수 없었을 뿐이오…….”
대체, 무엇을?
“그래도 소저의 배필을 구하는 일이지 않소.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물론 외모도 중요하나……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걸 꼭, 알아줬으면 해서…….”
“…….”
“하지만 결코 소저를 화나게 할 생각은 없었소! 확실하오. 정말이오!”
진심을 성토하고 있는 율의 눈빛은 이글거렸다. 화령은 믿어 달라는 얼굴로 외치는 율을 빤히 바라보았다.
‘참, 잘생겼긴 해.’
사실 천하제일 미공자 대회에 출전했던 그 어떤 공자들보다 그녀의 눈앞에 서 있는 남자는 아름답다. 만약 방금 전의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면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겠지. 타고난 외모 덕분에 그녀를 향해 변명을 늘어놓는 말에도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았다. 화령은 율을 용서해 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소저가 화가 나서 날 쳐다보지도 않으면…… 큰일이란 말이오.”
화령은 이어진 율의 나지막한 음성을 놓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가.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화령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율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 봤으나 쉽게 정리할 수가 없었다.
화령이 멍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며 가슴이 떨리는 것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쓸 무렵이었다.
“우리의 여행이…… 위기를 맞게 되니.”
……뭐?
“허니, 부디 화를 푸시오. 은 소저. 그리고…….”
“이, 이 손 놓으세요!”
예상과는 다른 율의 말에 화령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세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율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보인다.
화령은 제멋대로 뛰던 심장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것을 깨닫곤 입술을 쭉 내밀었다. 이상하게 눈앞의 왕건이가 얄밉게 보였다. 화령은 그가 잡고 있던 제 손목을 잠깐 동안 내려다보더니 율을 향해 눈을 치켜떴다.
“서문 공자.”
율은 저를 부르는 화령의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말하시오, 은 소저!”
화령은 머뭇거리다 소리를 내뱉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앞으론 주의하세요.”
“……!”
그녀는 흔들리는 율의 눈을 마주 보았다.
“저는 제 일에 타인이 참견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구요. 알겠어요?”
율은 서둘러 답했다.
“내 그리하리다! 미안하오, 은 소저. 앞으로는 조금만 관여하겠소!”
결코 그는 아예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화령은 율로 인해 분노했던 것을 잊기로 결정했다. 사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절대로 율을 용서해 주지 않겠다며 다짐하던 마음이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 버리면서 깨끗하게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해를 못 하겠네.’
화령은 율과의 접촉으로 인해 화가 수그러들었다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 은 소저.”
다시 대회장으로 돌아가기는 그렇고 어차피 날도 어둑해진 상태였던지라 객잔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욱 나은 선택인 듯했다. 멀리서 달려오는 소미와 함께 움직일 생각으로 율과 나란히 서 있던 화령은 저를 부르는 율의 목소리에 그를 바라보았다.
“산성에서 조금만 더 가면 서강鼠江이라는 도시가 있다고 하던데. 그곳에 가보시었소? 그곳의 경치가 아주 끝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화령은 어디서 새로운 정보를 얻어 왔는지 두 눈을 빛내는 율을 보며 피식 웃어 버렸다.
“가고 싶으세요?”
“아, 뭐 난…….”
“좋아요.”
비록 도중에 나와 버리기는 했으나 그녀가 꼭 보길 원했던 천하제일 미공자 대회에 율 역시 따라가 주었으니 이번엔 그녀가 양보할 차례다. 화령은 아량을 베푼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말에 율의 얼굴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