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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
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1화)
프롤로그 꿈을, 이상을. 연금술사 리덴의 이야기(1)
중세 유럽, 훗날 암흑시대라고까지 불리는 시절.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교회의 영향력이 강화됨에 따라 마녀사냥과 이단 심문이 판을 치는 시대였다.
마녀, 사탄의 앞잡이라고 불리는 인간의 배신자.
대개는 허위로 날조된 경우였지만 가끔 진짜인 것도 있었다. 하지만 진짜 인간을 배신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연금술사―알케미스트.
철을 연성하여 황금을 만드는 자.
실제로 그런 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가짜가 더 많았고 가짜라도 그럴듯하게 입을 놀리면 귀족에게 빌붙어 호의호식할 수 있었다.
리덴이 기억하고 있는 최초의 삶은, 연금술사 쿠벤베르크에게 거두어진 엔버라는 소년의 삶이었다.
엔버.
쿠벤베르크는 나이가 많은 연금술사였다.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고대의 비의를 깨우쳐 철을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존재였다. 호문클루스도 만들 수 있었고, 현자의 돌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자랑은 현자의 돌도 호문클루스도 아니었다.
레인보우 플라워.
식물은 식물인데 에테르로 이루어진 꽃을 피우는 식물이었다. 그 꽃은 소나기가 지나가면 하늘에 걸리는 일곱 색깔 무지개와 같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형형색색의 빛을 토하는 물건이었다.
쿠벤베르크 연금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미숙한 연금술사 엔버가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온갖 금은보화도 그 앞에서는 빛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레인보우 플라워의 정수는 꽃이 아니었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것. 그리고 그 열매는 한순간 피고 지는 인간의 인생을 영원으로 인도하는 발판이었다.
현자의 돌? 호문클루스? 그런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귀한 보물이었다. 하지만 쿠벤베르크는 레인보우 플라워의 열매에는 관심이 없었다. 영원을 걷는다는 것보다 단지 그 꽃이 좋았다.
쿠벤베르크가 계승하여 발전시킨 신비학의 정수.
신비학은 세계의 진실을 이해하고 자신의 영혼을 탐구하며 인간의 손으로 기적을 만드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중세 유럽 사회는 인간은 인간일 뿐이라고 믿었고, 기적은 신이나 악마만이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덤으로 신은 오직 성직자를 통해서만 기적을 이행한다고 믿었으며 그 성직자마저도 등급이 있어 등급이 높은 성직자만이 위대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기도를 통해서.
신비학으로 따졌을 때, 그 믿음은 거짓된 것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진실이라고 판명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엔버 역시 쿠벤베르크의 이상에 동조했다. 레인보우 플라워의 열매보다 그 꽃의 아름다움이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둘은 그것을 지키기로 했다. 그러던 중 엔버의 하찮은 실수, 아니 의도된 행위로 레인보우 플라워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고 그 결과 쿠벤베르크가 마남으로 몰려 화형대에 올랐다.
프리벨라 드마르크.
당시 쿠벤베르크와 엔버는 드마르크 백작의 지원을 받는 연금술사였다. 그리고 프리벨라 드마르크는 드마르크 백작의 막내딸로 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한 소녀였다. 엔버는 프리벨라 드마르크를 사랑하게 되었고 프리벨라 드마르크는 엔버의 마음을 이용하여 레인보우 플라워를 보게 되었다.
프리벨라 드마르크는 레인보우 플라워의 존재를 아버지께 고했고, 드마르크 백작은 레인보우 플라워를 얻기 위해 쿠벤베르크를 악마와 계약하였다고 고발했다. 하지만 엔버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엔버가 프리벨라 드마르크를 사랑하니까 이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쿠벤베르크는 교회에서 파견된 자들에 의해 갑자기 끌려갔지만 엔버를 원망하지 않았다. 엔버가 프리벨라 드마르크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부터 이런 결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쿠벤베르크는 엔버가 프리벨라 드마르크를 사랑하게 되었다며 말했을 때,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레인보우 플라워와 자신의 모든 것을 엔버에게 맡긴다고 말했다.
때문에 엔버는 ‘스승님, 어째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쿠벤베르크는 ‘나는 이미 늙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이루고 싶은 것은 이루었으니 삶에 미련은 없다만 역시, 지키고 싶은 것은 지키고 싶구나.’라고 말했다. 쿠벤베르크는 자신이 예견한 미래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은 것이다. 미래의 걱정은 미래의 일이니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엔버는 쿠벤베르크가 교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고는 쿠벤베르크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말한 스승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리벨라 드마르크의 배신을 깨달았고, 그 뒤에 드마르크 백작이 있음도 깨달았다. 그렇기에 엔버는 쿠벤베르크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레인보우 플라워를 수정시켰다. 자신의 힘으로는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빼앗기느니 차라리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열매를 자신이 먹어 버리자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엔버는 레인보우 플라워의 열매가 정확히 어떤 효능을 가졌는지 알지 못했다. 쿠벤베르크도 엔버도 열매에는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열매가 어떤 효능을 가졌는지에 관해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레인보우 플라워의 열매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꽃과는 달리 무척이나 추한 모습이었다.
회색의 울퉁불퉁한 열매였다.
꽃은 수정을 시키자 반나절 만에 열매가 되었고, 엔버는 그 열매를 먹어 버렸다. 쿠벤베르크가 마남으로 몰려 화형에 처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드마르크 백작이 프리벨라 드마르크를 대동하고 엔버를 찾아와 레인보우 플라워를 요구했다. 딸을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프리벨라 드마르크 역시 엔버에게 레인보우 플라워를 달라고 했다.
“네놈들에게 줄 것은 없다. 더럽고 추한 악녀! 내가 너를 사랑하여 믿고 우리들의 비밀을 보여 주었건만 네년은!”
엔버가 소리쳤다. 그 결과 드마르크 백작은 엔버를 가두고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들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엔버는 거절했고 드마르크 백작은 음식을 끊었다.
엔버는 굶어 죽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레인보우 플라워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꽃이지만 열매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구나, 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엔버는 시간을 넘어 기억을 가지고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태어났다는 의미다.
엔버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신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레인보우 플라워를 잊을 수 없었다.
한순간의 감정이 낳은 비극으로 인해 스승이 화형에 처해진 기억과 스승의 부탁.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레인보우 플라워.
엔버는 전생의 기억을 활용하여 연금술사가 되었고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론적으로는 현자의 돌을 만드는 법도, 호문클루스를 만드는 법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만들어 내려고 하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재료의 수급도 어려웠다. 육체적인 한계도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 늙어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엔버에게는 전생의 기억을 잊지 않는 능력이 있었다.
몇 번의 삶을 통해 엔버는 연금술사로서의 실력을 올렸고, 시대는 변해 21세기가 되었다.
한국, 미국, 영국, 프랑스.
엔버는 흥미롭게도 같은 시대를 몇 번이고 다시 살아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왜일까? 어째서일까? 이유가 궁금했지만 엔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드는 것만이 목표였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이용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전부 했다.
몇 번의 삶을 다시 살아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엔버는 현대 과학과 연금술을 접목시켜 현자의 돌과 호문클루스 제조에 성공하였고,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드는 일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죽어 버렸다. 왜냐고? 늙었으니까. 늙었으니까, 죽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어차피 같은 시대에 태어날 테니, 지금까지 여러 생을 거쳐 얻은 지식을 활용하면 재료 제작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테고 재료 제작 기간을 단축하게 되면 레인보우 플라워를 제작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런데.
웨이랜더 제국이라는 곳에서 태어나고 말았다. 21세기 지구의 과학 문명의 이기는 일체 존재하지 않고, 마법이나 검기, 정령, 몬스터 같은 것은 물론이고 연금술로 만들어 내는 신기한 물건들도 당연시되는 세계였다.
이게 뭐야! 이런 미친 빌어먹을!
엔버는 절망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갓난아이 때 버려졌다거나 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까지 축적한 데이터나 연구 성과들 중 태반이 쓸 수 없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포기하지 않는다.
반드시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들고 말 테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다.
엔버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쿠벤베르크 연금술의 토대가 되는 신비학의 비의를 습득하였고, 이를 이용하여 연금술사 길드에 가입, 웨이랜더 제국 수도 타로스에 상점을 내었다. 연금술사 리덴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리덴.
엔버가 웨이랜더 제국에서 태어나 받은 이름이었다.
1. 3급 연금술사 리덴(1)
연금술사는 모두 10개의 등급과 3개의 특수 신분으로 나눠져 있었다.
견습 연금술사는 7∼10급.
연금술사는 4∼6급.
숙련 연금술사는 1∼3급.
1급 연금술사 중 황실의 선택을 받은 연금술사는 황실 연금술사가 되어 칭호를 수여 받았고, 황실을 위해 봉사했다.
1급 연금술사 중 길드의 선택을 받은 연금술사는 길드 연금술사가 되어 칭호를 수여 받았고, 길드를 위해 봉사했다.
1급 연금술사 중 황실이나 길드의 선택을 받지는 않았지만 특별한 기술을 소유하였거나 두드러진 업적을 쌓은 자는, 황실 연금술사와 길드 연금술사 각각 5인으로 이루어진 연금술사 연합 총의회에서 결정하는 칭호를 수여 받아 FST(Free Special Teacher)로 분류되어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약간의 의무는 지켜야 했지만 어쨌든.
리덴은 연금술사 길드에서 정한 3급에 해당하는 연금술사였다. 숙련 연금술사 입문 등급으로 연금술사 상점을 차릴 수 있는 신분이었다.
3급 연금술사까지는 연금술사 길드에서 제출하는 시험을 통과하면 진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일종의 자격증 같은 것이다.
황실과 연금술사 길드는 6급 연금술사부터 소소한 지원을 해 주었고, 3급 연금술사가 되어 상점을 차리게 되면 남작에 해당하는 지위를 보장하고 그에 따른 혜택과 지원을 해 주었다.
그래서 리덴은 3급 연금술사가 되어 상점을 차렸다.
그리고 상점을 낸 연금술사는 지위와 혜택, 지원을 받는 것과 동시에 의무도 받았다. 길드와 황실이 지정하는 각각 1명의 누군가를 6급 연금술사가 될 때까지 가르치고 돌볼 것. 그렇게 해서 누군가가 6급 연금술사가 되어 독립을 하게 되면 새로운 누군가가 제자로 파견되었다.
1급 연금술사가 되어 3가지 특수 신분 중 하나가 되지 않는 한, 이러한 시스템은 계속 유지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3급 연금술사 리덴에게는 2명의 제자가 있었다. 하나는 세나 메리스, 메리스 백작의 딸로 빨간 머리의 밝고 지나치게 명랑한 아가씨였다. 다른 하나는 이븐이라고 하는 소녀로 길드에서 파견되었다. 언제나 냉정, 침착하며 모든 일을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습관이 있었다.
세나 메리스, 이하 세나는 백작 가문의 딸내미답게 파티 드레스 차림을 좋아하는 16세 소녀로 검기를 다룰 줄 아는 기사였다.
이븐은 연금술사 길드에서 파견된 소녀답게 연금술은 물론이고 마법과 행정 업무 쪽에도 재능이 있는 19세 아가씨였다.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리덴에게 있어 세나는 돈줄이었고 이븐은 노예였다. 이러한 인식은 일상 대화에서도 사용되었다.
“야, 돈줄. 너, 어제 공방 사용하고 청소 안 했지? 밥 먹지 마. 굶어. 오늘 저녁은 없다.”
라는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