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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2화)
1. 3급 연금술사 리덴(2)
“에에! 선생님, 너무해요.”
세나가 항의를 했다. 백작 가문의 막내딸로 응석을 실컷 부리며 살다가 2년 전 대뜸 아버지의 명령을 받아 리덴의 제자로 오게 되었다.
메리스 백작은 세나가 여자의 몸으로 검기를 사용하는 기사가 된 것이 불만이었기에 연금술이나 배우라며 보내 버린 것이다. 메리스 백작에게 있어 딸은, 자수나 음악, 요리 같은 것을 배우고 외모를 가꾸어 정략결혼의 도구가 되면 그만인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딱히 메리스 백작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귀족 가문은 대개 그런 식이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세나에게는 저녁 식사를 제공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별칭 노예인 이븐이 답했다. 가사 전반을 책임지고 있기에 리덴의 지시를 받아들인 것이다.
“너무해? 뭐가 너무해. 연금술사에게 있어 공방은 고유의 영역이며 생명과도 같아. 사용을 했으면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해야지. 그게 기본이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지? 천 번은 될 거다. 아마.”
천 번? 아니, 백 번도 되지 않을 테지만 리덴은 그렇게 말하며 눈알을 부라렸다. 세나는 2년이나 배웠으면서 연금술사로 불릴 자격도 안 되는 9급 연금술사였다. 대신 검술이 늘었다. 하라는 건 안 하고 틈만 나면 근처에 있는 검술 아카데미에 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요. 어제는 너무 피곤했단 말이에요. 오늘 저녁 굶으면 내일 아카데미에 어떻게 가라구요. 돈줄이잖아요. 선생님, 밥 주세요.”
세나가 항의를 했다.
세나는 메리스 백작의 청탁을 받은 황실이 리덴에게 보낸 제자로, 세나의 숙식비를 비롯해 세나를 가르치는 데 사용되는 연금술 재료비, 교재비 등을 포함한 일체의 비용, 그리고 수고비가 매달 지급되었고, 거기에다가 따로 메리스 백작이 1년에 4번 상당한 액수의 사례금을 보내왔다.
따라서 돈줄이었다.
“네가 지금 개기냐?”
리덴이 사납게 한마디 던졌다.
도리도리.
세나가 서둘러 머리를 흔들었다. 저 질문에 토를 달았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험상 알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수업을 계속하셨으면 합니다. 바보에게는 약이 없습니다.”
이븐이 한마디 했다.
이븐은 세나와 입장이 달랐다. 이븐은 연금술사 길드에서 지원하는 고아원 출신으로, 마법에 재능이 있음이 알려져 예비 길드 연금술사가 되었다. 마법사에 재능이 있는데 예비 연금술사라고 하니 뭔가 이상하지만 연금술에는 마법의 재능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기에 발탁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1급 연금술사가 되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이븐을 위해 나오는 돈은 한 푼도 없었다. 대신 연금술사 길드에서 3급 연금술사 리덴에게 요구하는 행정 업무 처리 및 연금술사 리덴의 집의 운영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예였다. 세나와 마찬가지로 리덴의 밑에서 2년째 수행 중이고 얼마 전 7급 연금술사 자격을 손에 넣었다. 한 단계만 더 올라가면 졸업이었다.
“어쭈. 노예, 너 많이 컸다. 그렇게도 6급 연금술사가 되어 내 밑을 떠나고 싶은 거냐? 응?”
리덴은 그렇게 말하며 이븐을 노려보았다.
“아닙니다, 선생님.”
이븐이 서둘러 부정했다. 리덴이 말하고자 바를 알기 때문이었다.
세나에게는 가족이 있고 배경이 있다. 하지만 이븐에게는 없다. 매달릴 것이라고는 연금술사 길드와 연금술사 길드에서 지정해 준 스승뿐이었다. 그러한 사정은 6급 연금술사가 되어도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6급 연금술사가 되면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리덴이야 이븐을 부려 먹는 것 정도로 지식을 가르쳐 주지만, 그렇지 않은 연금술사도 세상에는 많았다. 연금술사 길드도 마찬가지다. 배경도 가족도 없는 고아를 키워서 연금술사로 만들었다. 본전을 뽑지 않으면 수지가 맞지 않았다. 그렇기에 예비 길드 연금술사들 중 진짜로 길드 연금술사가 되는 경우는 천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7급 연금술사로 리덴의 밑에 있으면서 실력을 갈고닦아 단숨에 3급 연금술사가 되는 편이 좋았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이야기였다.
리덴의 등급은 3급 연금술사다. 그 밑에서 공부를 계속한다고 해서 스승인 리덴과 같은 등급의 연금술사가 되는 것은 보통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리덴의 실력이 3급 연금술사 이상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3급 연금술사나 1급 연금술사나 대우의 차이는 별로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3급 연금술사 중에서는 3급 연금술사의 실력을 아득히 뛰어넘은 자들이 간혹 있었고 리덴도 거기에 속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이븐, 저 바보에게 연금술사가 공방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피 좀 뽑아.”
리덴이 말했다.
“으엑. 피, 피. 또 블러드스톤인가 뭔가 하는 거 만들려고요?”
세나가 기겁을 하며 말했다.
“네 녀석의 머리는 바보지만 피는 쓸 만해. 대신 저녁을 주지.”
리덴이 제안을 했다.
“으. 선생님은 악마.”
세나는 그렇게 투덜거리고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 좀 뽑히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기에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배가 고프면 잠이 오지 않았고 잠을 못 자면 내일 검술 아카데미에 출석할 수가 없었다.
밤을 지새워 몸이 피곤해도 근성으로 어떻게든 한다, 라는 행위는 귀족 가문의 영양으로 곱게 자란 세나에게는 무리한 일이었다.
“이븐, 들었지? 돈줄한테 피 뽑아서 블러드스톤으로 만들어 와. 대신 밥은 넉넉하게 주고. 굶기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이븐에게 지시를 내린 리덴은 교재를 정리해서 발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저, 선생님.”
이븐이 불렀다.
“왜?”
리덴이 대답했다.
“블러드스톤으로 무엇을 하실 건지 알고 싶습니다. 혹시 재고가 떨어진 하급 생명수를 만드실 거라면 제게 맡겨 주셨으면 합니다.”
이븐이 제안을 했다.
“네가 만들겠다고? 오호라. 급하구나, 급해. 그것도 좋겠지. 대신, 너도 피 뽑아라.”
리덴이 씨익 웃으면서 그런 소리를 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븐이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언뜻 생각하면 감사를 표할 일이 아니었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하급 생명수라는 것은, 간단한 외상 정도는 가볍게 적시기만 해도 5분 이내로 치료할 수 있는 ‘물약’을 뜻했다.
그리고 이 하급 생명수라는 액체는 만드는 연금술사들마다 방식이나 기법에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비슷했다. 약초나 동식물의 일부를 그들만의 고유한 기법으로 가공하여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덴의 방식은 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주 완벽하게 달랐다.
리덴의 하급 생명수는 피를 사용하여 제작한 블러드스톤으로 만드는 물약으로, 앞서 언급한 하급 생명수의 기능 외에도 피로 회복제, 자양 강장제, 혈액응고제 등으로도 쓰이는 다양한 용도의 물약이었다. 때문에 수요가 아주 많았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명품이었다. 칼에 살짝 베인 정도라면 그 자리에서 30초 내로 치료되는 약품이었다. 이 하급 생명수의 재료인 블러드스톤은, 피를 뽑은 당사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품질이 달라졌다.
검기를 사용할 줄 아는 세나의 피는 상당량의 마나를 함유하고 있기에 이븐이 만들어도 중급 블러드스톤 정도로 변환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 중급 블러드스톤은 견습 연금술사라도 하급 생명수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물건이었다. 반면, 이븐의 피는 리덴이 직접 가공해 품질을 높여도 중급 블러드스톤이 한계였다. 마법사의 피는 기사와는 달리 피에 마나 함유량이 적기 때문이었다.
정리하자면 다소 실수를 하거나 실력이 허접해도 하급 생명수를 만들 수 있는 세나의 피를 이븐에게 주고, 실력이 매우 좋고 실수를 하지 않는 리덴이라도 중급 블러드스톤으로 변환시키는 것이 전부인 이븐의 피를 리덴이 쓰겠다는 이야기다. 다른 연금술사라면 절대 허락하지 않을 이야기였다.
물론.
리덴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결론만 보면 재고가 떨어진 하급 생명수가 보충되고 덤으로 이븐의 신선한 피가 손에 들어온다는 전개니까 말이다.
연금술사 리덴의 집.
오후 4시경.
Close라고 되어 있던 팻말이 Open으로 바뀌었다. 리덴의 수업 시간이 끝났다는 증거였다. 리덴이 세나와 이븐을 가르치는 시간은 매일 오후 1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로, 하루 중 2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과제를 하거나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이븐과 세나는 입장이 달랐기에 시간을 보내는 법도 달랐다.
이븐은 연금술사 리덴의 집 영업을 재개하였다. 세나는 목검을 들고 인근에 있는 검술 아카데미로 향했다.
도날드 검술 아카데미.
대개의 검술 아카데미는 검기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익스퍼트 상급 이상의 사람만이 열 수 있었다. 학원 같은 것으로, 기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나 기사가 되었지만 막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단계인 익스퍼트 초급 정도의 사람들이 다녔다.
세나는 익스퍼트 초급과 하급을 넘어 중급의 실력자로 슬슬 검술 아카데미를 졸업할 시기였지만 세나는 졸업할 생각이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도날드 검술 아카데미 원장의 아들 더스틴이라는 청년 때문이었다.
더스틴은 세나보다 나이가 10살쯤 많았지만 이제 막 익스퍼트 초급이 된 청년이었다. 하지만 상냥하고 사랑스러운 미남이었다. 적어도 세나의 눈에는 왕자님이었다.
아무튼.
그 시간 리덴은 서재에 틀어박혀 웨이랜더의 연금술을 공부하고 있었다.
웨이랜더의 연금술의 기초는 리덴이 알고 있는 연금술의 기초와 비슷하였지만 가면 갈수록 내용도 방식도 목적도 달라졌다.
웨이랜더의 연금술 그러니까 이 세계의 연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신이나 드래곤도 벨 수 있는 무기 혹은 신이나 드래곤의 공격에서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는 방어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들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생명수, 큐어 포션 등을 만드는 약사.
무기나 방어구를 가공하고 마력을 부여하는 부여사.
골렘을 제작하는 크리에이터.
결계석, 스트롤 등을 만드는 아이템 메이커.
이상이 연금술사의 4대 세부 직업이었다. 리덴의 경우 쿠벤베르크 연금술을 사용하면 4가지 모두 가능했지만 의미는 없었다. 지구의 연금술사는 대개 세계의 진리와 그 이치를 탐구하여 자기 좋을 대로 산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로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좋은 약을 만들어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한다거나 적을 물리친다거나 세계를 지킨다거나 하는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연금술이라는 것 자체가 일반 사회에서 격리된 기술이었고 힘이었기 때문이었다.
연금술 따위 없어도 세계는 잘 굴러갔다.
지구에는 과학이 있었다. 리덴이 살고 있는 웨이랜더 제국에 연금술이 필수라면, 지구에서는 과학이 필수였다. 아니, 전부 다였다. 의료, 편의, 오락, 전투 등. 모든 분야에서 과학이 우선이었고 그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니까 연금술이 나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신비학이라는 것도 있었다. 과학의 사각지대를 메우며 일반 사회에 해를 가할 만한 모든 존재를 배제하였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이 세계에는 마법이라는 것이 당연시되고 과학이 천시되기 때문일까? 결과물은 비슷해도 과정이 다른 것이 태반이었다. 그렇기에 리덴은 하루의 4∼5시간 정도를 할애하여 웨이랜더의 연금술을 공부하였다. 목적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을 얻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대개의 지식은 별 쓸모가 없었다. 대개 그렇다는 거지 전부 그렇다는 뜻은 아니었다.
‘무한의 가방 레시피, 라…… 요건 좀 쓸 만하겠네. 흠흠. 그래그래, 그렇군. 하지만 재료가…… 끙. 사는 게 정신 건강에 좋겠어. 하지만 돈이…… 끙.’
리덴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연금술사에게 있어 재료 수납이란 언제나 두통을 수반하는 골칫덩이였다. 특히 지구의 연금술사는 까놓고 말해서 세상의 모든 것이 연금술 재료였다. 뭔가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해괴한 종류의 재료가 산더미같이 필요했고 그 재료는 자연에서 채취한 일반 재료를 가공해서 만들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것은 고위 물품으로 갈수록 심화되었고 목표인 레인보우 플라워는 궁극의 궁극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방대한 양의 기초 재료가 필요하였다.
레인보우 플라워는 현자의 돌, 레인보우 메탈, 소울 스톤, 요정의 씨앗, 죽은 호문클루스의 심장, 오리하르콘 결정. 이상 6종류의 재료가 있어야 만들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상 6종류의 재료는 각각이 연금술의 종착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물건들이었다. 그런고로 따로 하위 재료를 가지고 있었고 그 하위 재료들 역시 하위 재료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하위 재료의 하위 재료 역시도 하위 재료를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현자의 돌―황금의 두뇌, 정령의 심장, 태양의 1급 결정, 달의 1급 결정, 엘릭서, 레인보우 잼.
황금의 두뇌―영혼의 가루, 다크 아이론, 천 년 묵은 나무로 만든 종이, 개량된 1급 수은, 마녀의 뇌, 황금 달걀.
영혼의 가루―정제된 엑토플리즘 1급 결정, 개량된 1급 죽음의 흙가루, 만드라고라의 절규, 블러드 퀸 엔트(Blood Queen Ant), 사후 세계의 공기, 악마의 숨결.
정제된 엑토플리즘 1급 결정―엑토플리즘, 블러드 엔트(Blood Ant), 100년 이상 묵은 떡갈나무의 잎사귀, 순도 99.99%의 은을 빻아 만든 순백의 가루, 처녀(동정)의 혈액.
라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