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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3화)
1. 3급 연금술사 리덴(3)


하위 단계로 갈수록 재료의 수급도 만드는 일도 간단했고, 상위로 갈수록 재료를 보존해 두는 것만으로도 일이었다. 그렇기에 무한의 가방 레시피는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무한의 가방의 최고 장점은 허용 용량의 100배의 부피를 담을 수 있다는 것과 보관되는 물품에 한해 시간의 흐름이 동결된다는 것이었다.
연금술사의 입장에서 보면 필수 장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무한의 가방을 사용하는 연금술사는 극히 적었다. 오히려 마법사나 모험가, 용병 등이 찾았다. 웨이랜더의 연금술 대부분은 그리 많은 재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다 대부분 집을 떠나지 않았다. 집을 떠나지 않으니까 커다란 집을 가지면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리덴은 달랐다. 냉장고는커녕 발전소도 없고 전기의 쓰임새는 공격이 전부 다인 이 세계에서 리덴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필요한 재료를 보존하는 일이었다. 이를테면, 혈액 같은 거 말이다. 그것 외에도 잔뜩 있지만, 아무튼 내용물의 시간 흐름을 동결시켜 준다는 무한의 가방은 리덴에게 있어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생각해 보면 묘한 이야기였다. 3급 연금술사인 리덴이 이렇게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니 말이다. 하지만 리덴에게는 연금술사 스승이 없고, 연금술사 동료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웨이랜더 제국 연금술사들은 무한의 가방을 필수 아이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돈, 까짓것 벌면 되지.’
결정을 내린 리덴은 서재를 떠나 이븐을 찾아갔다. 연금술사가 돈을 버는 또 하나의 방법, 연금술사 길드의 의뢰를 해결하여 보수를 받겠다는 것이다.
시간은 오후 8시.
이븐은 자신의 공방에서 세나의 피를 이용하여 블러드스톤을 만들고 있었다. 블러드스톤은 3급 연금술사 리덴의 독자적인 아이템으로, 현재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웨이랜더 연금술사 사회를 통틀어 리덴과 이븐, 둘뿐이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이야기였다.
똑똑.
리덴이 이븐의 방문을 두드리고 5분 정도가 흐른 뒤, 구슬땀을 비 오듯 흘리는 이븐이 문을 열고 나왔다.
등허리까지 내려오는 길고 아름다운 머릿결이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색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이븐은 세나와 형태는 다르지만 미인이었고 리덴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해야 하는 노예였으니까 남자라면 침을 삼켜도 이상하지 않았다.
“선생님.”
이븐이 말했다.
“길드 의뢰 있지? 가져와 봐. 돈 좀 벌자.”
리덴은 이븐의 모습이 어떠하든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돌이나 나무를 대하듯 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돈이 되는 의뢰를 추려서 서재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몇 개나 수락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븐이 물었다.
“되는 대로. 무한의 가방을 사야겠다.”
리덴이 답했다.
“지하실을 정리할 생각이 드신 겁니까?”
이븐이 추가로 물었다. 이븐에게 있어 지하실은 마계의 소굴이나 다름없었기에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미쳤냐? 그런 잡동사니들을 무한의 가방에 넣다니, 용량 낭비야.”
리덴은 딱 잘라 이븐의 말을 부정했다.
“…….”
이븐은 말문이 막혔다. 지하실에 있는 물건들을 잡동사니로 취급하다니 해도 해도 너무했다. 다른 연금술사들이 알면 거품을 물고 뒤로 자빠질 이야기였다. 하지만 리덴에게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지하실에 있는 것은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거의가 금속 계열이었다. 미스릴 덩어리나 황금 가루 같은 것들을 비롯하여 각종 보석, 심심풀이로 개량해 둔 무기나 방어구로 굳이 무한의 가방에 넣을 필요가 없었다.
참고로 유령도 몇 마리 살고 있었다. 엑토플리즘을 얻기 위해 기르고 있는 중이었다.
“알았으면 의뢰나 정리해서 가져와. 네 피도.”
리덴은 이븐의 반응이 어떠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하고는 발을 돌렸다. 이븐의 반응에 일일이 대응해 줄 여유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이후, 리덴은 2층에 마련되어 있는 자신의 공방으로 향했다. 2층 공방에는 지하실과는 달리 여러 종류의 식물과 곤충, 파충류 등이 있었다. 개미집이나 거미집, 독사를 가둔 우리 같은 것들 말이다. 공방과 연결된 발코니에는 벌집도 있었다.
리덴은 재료가 되어 줄 생명체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오늘도 순조롭군. 좋아, 이대로만 가면 20년 내로 뭔가 성과를 손에 쥘 수 있을 테지.’라고 중얼거렸다.

리덴은 세상이 어스름하게 밝아 오는 새벽 4시 30분경이면 눈을 떴다. 평균 취침 시간은 고작 2시간. 노는 시간은 별로 없고,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공부나 연구, 연금술 재료의 생성 및 관리 등으로 보냈다. 이번 생애 내로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약간의 시간이라도 허비할 수가 없었다.
꿀꺽꿀꺽.
리덴은 잠에서 깨어나면 손수 만든 특제 활력 드링크 ‘아침 한 병’을 마셨다. 자기 전에는 숙면과 휴식을 위한 드링크 ‘자기 전에 한 병’을 마셨다. 줄여서 아병, 자병이라고 불렀다. 이에 세나가 이름이 뭐 그러냐고 투덜거렸지만 그뿐이었다.
“오늘도 상쾌한 하루를 시작해 볼까.”
리덴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깨끗하게 소독을 끝낸 몇 개의 병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앞마당에 심어 둔 여러 가지 약초들에게서 싱그러운 아침 이슬을 채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직 밖은 어둑했다. 리덴은 어둠이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움직임으로 능숙하게 약초밭으로 이동했다. 춤이라도 추듯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움직이자 병 3개 가득히 이슬을 모을 수 있었다.
“1병이 남는걸. 2병은 아침 햇살을 담아야 하니 낭비할 수 없고, 어디다 쓴다.”
리덴은 아침 이슬 1병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다가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금 있으면 해가 뜰 것 같았다.
“한 병 더 만들어 두지. 어디든 쓸데가 있겠지.”
리덴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연금술사 리덴의 집을 나섰다. 그러고는 전력으로 질주하여 연금술사 리덴의 집에서 약 3km 정도 떨어져 있는 종루로 향했다.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약 10여 m, 낮은 높이가 절대 아니었지만 리덴은 산책이라도 하듯 훌쩍 뛰어올라 종루의 옆을 평지 걷듯 걸어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역시, 여기가 좋아. 모든 게 한눈에 보인다니까.”
리덴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아침 이슬 3병을 하늘 위로 던졌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호흡을 토했다.

쿠벤베르크 연금술 견습 연금술사의 비의.
중력 제어.

절대 견습 연금술사의 비의라고는 치장될 수 없는 기술이었지만, 쿠벤베르크 연금술에서 중력 제어란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가져와야 한다거나 많은 재료들을 한꺼번에 다루어야 할 때나 쓰이는 기술이었다. 따라서 견습 연금술사의 비의였다.
두둥실.
아침 이슬이 담긴 병 3개가 리덴의 눈앞에서 멈추었다. 중력을 순간적으로 완화시켜 무중력 상태로 만든 탓이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보자. 하압!”
리덴이 수인을 맺으며 기합을 토했다. 그러자 아침 이슬 3병 주변으로 각각 3개의 연금 도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응집, 변환, 융합.
각 연금 도형은 하나에 한 가지의 힘을 가지고 있었고 리덴은 그것을 응용하여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아침 이슬이 담긴 병으로 유도하였다.
번쩍.
병의 동쪽에 있는 연금 도형이 빛을 발했다. 응집의 힘을 뜻하는 연금 도형으로 크기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정도였지만 그의 수십 배에 달하는 면적의 빛을 끌어들여 아침 햇살을 광선으로 만들었다. 그 광선은 다시 변환의 연금 도형을 거쳐 아침 이슬이 담긴 병으로 보내졌는데, 이를 마지막 연금 도형인 융합이 아침 이슬과 아침 햇살을 하나로 만들었다.
고오오오.
병이 떨린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소리를 내며 떨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리덴은 정확한 타이밍에 3개의 연금 도형을 없애고, 아침 이슬과 아침 햇살이 융합되고 있는 병들을 중심으로 정삼각뿔 형태로 4개의 새로운 연금 도형을 불러냈다.
압축, 정제, 배열, 질서.
위에 언급한 힘을 가진 4개의 연금 도형이 순서에 따라 차례로 빛을 발했고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나자 병에 담겨져 있던 아침 이슬은 3급 아침 햇살 용액으로 변화하였다.
3급 아침 햇살 용액은 이후의 가공에 따라 2급 혹은 1급 아침 햇살 용액으로 바꿀 수 있었고 이것은 언데드 몬스터를 퇴치하는 데 특효약인 ‘성스러운 아침’을 비롯하여 최상급 생명수, 최상급 큐어 포션 등의 재료로 쓰였다.
물론 리덴은 3급 아침 햇살 용액을 가공할 생각이 없었다. 가공하지 않고 방치해 두면 반나절 정도 아침 햇살을 내뿜는다. 그리 넓은 공간을 비출 수는 없지만 리덴의 공방 정도라면 충분했다.
리덴의 공방에는 아침 햇살만 쐬어 주고 키워야만 연금술 재료가 되는, 혹은 연금술 재료가 되는 열매나 꽃을 맺는 식물이 많이 있었기에 그것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남은 2병 중 한 병은 호문클루스를 만드는 데 쓰였다.
요정형 에테르계 호문클루스 엘빈.
아직은 껍데기만 완성된 녀석이었다. 알맹이를 채워야만 눈을 뜨는데 눈을 뜨게 만들기 위해서는 태산 같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의 재료들이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미완성 호문클루스는 아무거나 다 잘 먹는 잡식형이었다. 철이나 구리는 물론이고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같은 것을 주어도 상관없지만, 그래서는 리덴이 원하는 호문클루스가 되지 않는다. 리덴이 만들려고 하는 것은 빛 속성의 요정형 에테르계 호문클루스였기 때문에 빛과 관련된 연금 물품만 먹여야 했다.
어쨌든.
그렇게 아침에 해야 할 일을 마친 리덴은 남은 1병의 3급 아침 햇살 용액을 어디다 쓸까 고민하며 연금술사 리덴의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 식사 후.
세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도날드 검술 아카데미로 출근을 했다. 메리스 백작이 알면 노발대발할 테지만 세나도 리덴도 이븐도 메리스 백작이 이 사실을 알게 할 생각이 없었다. 알려져 봐야 세나는 끌려갈 따름이고 리덴은 돈줄이 없어질 뿐이며 이븐에게도 좋은 일은 없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이븐은 오늘도 상점을 오픈하여 근무를 시작했다. 어제 밤, 세나의 피를 사용하여 하급 생명수를 만들고 리덴에게 혈액을 제공하여 다소 피곤하였지만 그런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냉정, 침착, 온화.
어제와 같은 오늘이었다. 리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침 식사가 끝난 오전 시간은 연금술사 리덴의 집 상품이나 상품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를 제작 혹은 수집하는 시간이었다. 그게 아니면 연금술사 길드의 의뢰를 해결하였다. 어제 이븐에게 돈 되는 의뢰를 가져오라고 지시를 내렸기에 오늘 오전은 연금술사 길드 의뢰에 관한 작업에 몰두해야 했다. 덕분에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3급 아침 햇살 용액은 버려지게 되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일 아침이면 또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 내일 아침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리덴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웨이랜더 제국을 비롯한 솔라 대륙의 많은 국가들은 연금술사 우대 정책을 폄과 동시에 흑마법사를 배제하는 정책을 폈다.
마녀사냥을 하던 중세 유럽처럼.
흑마법사는 존재 그 자체가 죄악이었다. 때문에 흑마법사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아무 죄 없는 사람이라도 흑마법사라는 증거만 있으면 간단히 사형당했다.
때문에 흑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존재가 부정당하지 않는 사회가 오길 원했다. 기도했고 소원을 빌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흑마법사들이 죽었으며 자신들을 배척하는 사회를 어떻게든 바꾸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다. 주로 파괴적인 방법으로. 그런 탓에 흑마법사는 점점 더 나쁜 인식의 존재로 묘사되었고 공포와 두려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수년 전.
9써클 흑마법사가 나타났다. 그는 모든 흑마법사들의 울분을 풀기 위해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의 첫 단추로 웨이랜더를 비롯한 몇 개 대국의 수도를 죽음의 도시로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밤의 대마법사 카이롯트.
하지만 그의 진실한 정체는 9써클 흑마법사 따위가 아니었다. 9써클 흑마법사는 물론이고 신도 드래곤도 경배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 존재였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 그 자체를 말아먹을 수도 있는 자였다. 하지만 그에게 세계 그 자체를 말아먹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세계 그 자체를 파괴하는 것은 재미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일이었다.
악의 미학.
증오와 살의.
공포와 분노.
슬픔과 절망.
인간의 순수한 욕망이 있는 그대로 활개 치는 세계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또 그 속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보고 싶었다. 어째서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을 가지고 싶으니까. 더럽히고 싶으니까. 자신이 만든 시궁창 속에서 아름다움을 간직한 인간의 마음을 유린하는 것은 그의 유일한 낙이며 취미이고 미학이었다.
카이롯트는 수천 미터 상공에서 자신의 첫 번째 목표들 중 하나인 웨이랜더 제국의 수도 타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크크크크. 오늘이 너희들이 즐기는 최후의 낮이다. 마음껏 놀고, 마음껏 만끽해라. 오늘 밤을 기준으로 대륙의 역사. 아니, 세계의 가치관이 바뀔 것이다.”
카이롯트는 그런 말을 쏟아 내고는 스륵하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