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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4화)
1. 3급 연금술사 리덴(4)


세나는 오늘도 검술 아카데미에서 점심을 해결하였다. 이후, 연금술사 리덴의 집으로 돌아와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잔뜩 혼났다.
“야, 돈줄. 네 머리는 근육으로 되어 있지? 솔직히 말해. 어째서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거냐. 이건 기본 중에 기본. 10급 연금술사 수준의 지식이다.”
라는 식으로.
리덴은 손톱만큼의 사정도 봐주지 않고 세나를 몰아붙였다.
“선생님, 선생님. 더스틴 멋지죠?”
세나가 화제를 바꿨다.
“뭐?”
리덴은 얼빠진 얼굴로 세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지금 상황을 알고 헛소리를 하는 거냐는 식이었다.
“에이, 선생님도 참. 봐주세요. 전 돈줄이잖아요. 선생님의 소중한 돈줄. 그러니까 대충 놀면서 시간이나 때워도.”
세나가 아양을 떨었다.
“죽고 싶지?”
리덴의 입에서 싸늘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도리도리.
세나가 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돈줄. 너 내일부터 외출하지 마. 8급 연금술사 이론 시험을 통과할 때까지는 이븐 도우면서 공부나 해. 어기면 도날드 검술 아카데미를 뽀개 버릴 테다.”
리덴이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세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입을 잘못 놀린 탓에 일이 커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에 기죽을 세나가 아니었다.
“선생님, 선생니임. 그러지 마시구요. 네? 좀 봐주세요. 제가 아버지께 잘 말씀드려서 돈을.”
세나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후후.”
리덴이 웃었다.
“윽.”
세나가 쏟아 내던 말을 멈추고 헛바람을 들이켰다.
“지하실 3일.”
리덴이 말했다.
“으게에에에엑!”
세나가 절규를 토했다. 지하실에는 유령이 살고 있다. 엑토플리즘 수거용으로 기르고 있는 녀석들로, 사람을 해치기에는 너무나 약했지만 그래도 유령이었다. 한참 때인 소녀 세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물론 세나라면 검기를 사용하여 유령을 없애 버릴 수도 있었다. 그 후에 있을 리덴의 보복이 두렵지 않다면 그래도 되었다.
“선생님.”
이븐이 끼어들었다.
“왜?”
리덴이 시선을 돌렸다.
“그러지 마시고 그냥 쫓아내시는 게 어떨까요? 연금술에는 관심도 없는, 밥만 축내는 밥벌레가 아니어도 돈줄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븐은 한술 더 떴다.
“그럴까?”
리덴이 맞장구를 쳤다.
“자, 자,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구요. 제발 이대로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세요. 아버지께서 어떻게 할지 뻔해요. 제발 봐주세요. 선생님.”
세나가 울상을 지으며 애원을 했다.
“하아.”
리덴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알았으니까, 8급 연금술사 이론 시험 통과만 해. 그래야, 네 아버지께 말해서 돈을 좀 더 뜯어내든지 하지. 이븐이 7급 연금술사가 될 동안 돈줄 너는 9급 연금술사로 1년 반이야. 그것도 모자라 10급 연금술사 이론도 까먹어? 자꾸 그런 식으로 하면 속옷만 입혀서 총각 귀신 꼬여 내는 미끼로 써 주마.’라고 말했다.
히이이이익!
세나는 입만 뻥끗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저, 선생님. 그 역할 제가 하면 안 되겠습니까?”
얼씨구나, 이븐이 끼어들었다.
“너 돌았냐?”
리덴이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이븐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리고 빈약한 세나보다는 제 쪽이 더 적합할 거라 생각합니다.”
이븐은 그렇게 말하며 의욕을 불태웠다.
“노예. 너, 잊은 거냐? 비명을 꺅꺅 지르며 벌벌 떨던 그날의 일을?”
리덴이 물었다.
“이번에는 잘할 자신 있습니다.”
이븐이 답했다.
“호오라. 어깨 너머로 기술을 훔쳐보겠다, 이거냐? 그것도 좋지. 그런데 말이다. 넌 뭐가 그리 급한 거냐? 유령 관련 기술은 5급 연금술사 기술인 건 알지?”
리덴이 물었다.
“선생님에 관한 것은 철저하게 입단속 하겠습니다.”
이븐이 답했다.
“연금술사에게 있어 자신의 기술과 지식을 외부로 유출시키지 않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 따라서 네 제안은 협상 조건이 될 수 없다. 알았으면 나서지 말고 있어. 서두르지 마. 내 밑에서 몇 년 더 썩으면 3급 연금술사 정도는 될 수 있으니.”
리덴은 좋은 말로 이븐을 타일렀다.
“하지만.”
이븐이 저항했다.
“이것들이 오늘 왜 이래. 안 되겠다. 너희 둘 지금부터 지하실 청소다. 엑토플리즘 수거하고 먼지 하나도 없게 만들어라. 아주 반짝반짝 광을 내놔.”
리덴이 지시를 내렸다.
파르르르.
세나의 입술이 파랗게 변하며 부들부들 떨렸다. 이븐 역시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세나는 물론이고 이븐도 유령은 껄끄러웠다. 그럼에도 이븐이 총각 귀신 꼬이는 데 미끼로 쓰이길 자처한 이유는 리덴이 뒤에서 돌봐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술도 가르쳐 줄 테고, 주의 사항도 알려 줄 테고.
이전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 리덴을 믿지 못했기에 겁에 질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잡고 싶었던 건데, 지하실 청소란다. 지하실 청소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리덴은 히죽 웃으며 구경만 하고 있을 테고 아니, 구경만 하고 있으면 다행이었다.
“선생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지하실 청소만은 부디.”
이븐이 사죄를 청했다.
“선생님 저도요. 한 번만 봐주세요. 지하실은 진짜, 진짜 싫어요. 네?”
세나도 빌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리덴은 씨익 웃으면서 벌칙을 바꾸었다. 지하실 청소에서 구더기 100마리 잡아 오기로.
“히익!”
“…….”
세나는 괴성을 질렀고 이븐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귀신보다 구더기 쪽이 100배는 싫었던 것이다.
“시체 파먹은 놈들을 잡아 올 필요는 없어. 너희들에게 그런 담력이 없다는 건 아니까. 똥 구더기면 된다.”
리덴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세부 사항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세나와 이븐은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지하실 청소를 하겠습니다, 선생님.’, ‘지, 지하실로 할래요.’라고 소리쳤다.
“그럼 수업 계속한다. 청소는 저녁 먹고 시작해.”
리덴은 그렇게 말하며 수업을 재개했다. 그러면서 문득 ‘이것들은 기회만 있으면 기어오른단 말이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밤.
리덴은 지하실에서 울리는 두 가지의 색다른 비명들을 배경음으로 웨이랜더 제국의 연금술을 공부하고, 연금 재료들을 가공하고, 점검하였다. 그러고는 일지를 썼다. 오늘 하루 무엇을 얼마나 가공하였고 블러드 엔트를 비롯한 각종 곤충과 식물의 생태 및 호문클루스의 관해서도 기록해 두어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슬슬 블러드 엔트는 막바지군.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무한의 가방을 구해 둬야겠어. 블러드 엔트 퀸이 조만간 각성할 것 같으니.”
리덴은 그런 말을 하고는 유리관에 들어 있는 개미집을 슬쩍 바라보았다. 여왕개미를 구해 사람의 피만으로 키운 지 5년. 슬슬 블러드 엔트 퀸의 자아가 붕괴하여 자신의 일족 모두를 먹어 치울 시기가 되었다. 이때, 연금술사는 블러드 엔트 퀸의 생태에 간섭하여 블러드 퀸 엔트라는 연금 재료로 탈바꿈시킬 수가 있었다.
블러드 퀸 엔트.
블러드 엔트 퀸까지는 곤충이지만 블러드 퀸 엔트는 곤충이 아닌 식인 괴물이다. 크기도 비약적으로 커져서 사람의 팔뚝 정도가 되고, 어지간한 냉기나 화염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귀한 연금 재료였다.
언제든 자신이 만든 연금 재료에 희생당할 수 있음을 각오해라.
쿠벤베르크 연금술의 기본 마음가짐 중 하나였다. 때문에 쿠벤베르크 연금술은 고대의 지식을 통한 신비학의 기술을 비의로써 전수했다.
즉, 재료에게 살해당할 정도의 녀석은 쿠벤베르크 연금술을 배울 자격이 없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리덴은 쿠벤베르크 연금술의 유일한 전인이었다. 쿠벤베르크 연금술에서 말하는 모든 비의와 오의, 극의를 완벽하게 익히고 있었다. 따라서 블러드 퀸 엔트를 제압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간단한 일이었다. 문제는 제압한 후 관리하는 것이다. 못하지는 않지만 귀찮은 일이었다. 연금 재료 가운데 생물 부류는 종류를 막론하고 신선도가 생명이었다. 특히 블러드 퀸 엔트의 경우 반드시 살아 있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무한의 가방이 필요했다. 일단 제압하여 석영 결정―호박이라는 보석에 파리나 곤충 같은 것이 들어 있는 것처럼―으로 포박하여 블러드 퀸 엔트를 가사 상태로 만들고 무한의 가방에 넣어 두면 차후 관리를 해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리덴이 그런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쯤이었다. 이상한 감각이 리덴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
리덴은 소름이 돋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공격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까? 의문이 휩싸인 리덴은 공방을 한 번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웃기지 마.”
“웃기지 말라고.”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마침내 리덴이 괴성을 질렀다. 애지중지 기르고 있던 모든 식물과 곤충이 죽어 있었다. 조만간 결실을 거둘 거라고 생각했던 블러드 엔트 무리는 물론이고 도마뱀, 거미, 전갈 등등의 몸이 터져 체액을 흘리고 있었다. 식물들은 잎사귀가 말랐다.
츠츠츠.
묘한 소음이 울리며 죽어 있던 곤충과 파충류 등 동물들이 언데드화되었다. 이에 리덴은 벌떡 일어나서는 침실로 향했다. 침실에는 호문클루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20년 가까이 공을 들인 물건이었다.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호문클루스를 보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눈을 감은 작은 요정이었던 것이 한 줌의 빛이 되어 있었다.
“노, 노, 농담이지?”
리덴이 인상을 찌푸리며 유리관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호문클루스는 파괴되어 빛의 입자로 돌아간 상태였다.
“꺄아아악! 서, 서, 선생님!”
세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빠득.
리덴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러고는 유리관을 들고 지하실로 향했다. 호문클루스는 파괴되었지만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을 활용하여 다시 호문클루스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귀중한 연금 재료이자 물품이었다. 그러니까 일단 챙겼다. 무슨 일이 더 벌어지기 전에.
지하실.
리덴이 엑토플리즘을 얻기 위해 기르고 있던 유령들은 쿠벤베르크 연금술―연금술사의 비의, 유령 포박의 연금진―에 가두어서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야 소동을 피우지 못하고 안전하게 엑토플리즘을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연금 도형들이 전부 파괴되어 있는데다 유령들이 원기 충전하여 기분 좋게 날뛰고 있었다. 덕분에 지하실도 엉망진창이었다. 이븐은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세나는 어깨를 움켜쥔 채 지하실 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이게 지금.”
리덴이 중얼거렸다.
“어떤 개자식이 이런 짓을.”
리덴이 말했다.
“잡히면 죽었어. 감히…… 감히. 내가 어떻게 해서 일구어 둔 것들인데 그걸 한 번에.”
리덴이 그렇게 말을 끝냈다. 덤으로 어금니를 한 번 깨물고는 손을 뻗었다. 그러자 빛 속성 연금 도형 세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케케케케!
―자유다! 자유다!
―쿠헬헬헬!
유령들이 소란을 피웠다. 리덴의 존재나 리덴이 만들어 낸 연금 도형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었다.
“개그하지 말고 뒈져. 그냥.”
리덴이 말했다. 그러자 빛 속성의 연금 도형들이 빛을 토했고 지하실에서 난동을 피우던 유령들은 한순간에 재로 변했다.
“서, 선생님.”
어느새 정신을 차린 세나가 일어나서는 리덴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과 몸에는 죽음의 기운이 가득했다.
리덴을 훑고 지나간 무언가는 세나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세나만이 아니다. 이븐도 마찬가지였다. 세나는 익스퍼트 중급의 기사였기에 조금은 버틸 수 있었을 뿐이다.
후우.
리덴은 심호흡을 했다. 잠시, 시간으로 치면 약 5초 정도. 생각을 하던 리덴은 마음을 굳게 먹고는 입을 열었다.
“돈줄, 물 떠와. 대야 하나 가득.”
“네? 하지만 선생님, 저 어깨를.”
세나가 뭐라고 토를 달았다. 아니, 달려고 했다.
“그대로 죽어서 언데드 몬스터가 되고 싶으면 그대로 멍청하게 있든지. 아니면 빨리 물 떠와.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븐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세나는 리덴의 지시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평소라면 어떻게든 하지 않으려고 핑계를 대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님을 알기에 순순히 리덴의 지시를 따랐다.
세나가 물을 떠오는 사이 리덴은 파괴된 호문클루스의 잔재가 들어 있는 유리병의 윗부분을 부수었다. 그러자 찬란한 빛이 기체의 형태로 흘러나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