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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5화)
1. 3급 연금술사 리덴(5)
슥.
리덴이 눈을 감았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이븐의 위치를 탐지해서는 정화의 연금 도형을 불러내었다.
우웅.
정화의 연금 도형이 빛을 내었고 납빛으로 질려 가던 이븐의 피부색이 조금씩 제 색을 찾기 시작했다.
“선생님, 가져왔어요.”
세나가 왔다. 지시대로 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 왔다. 보기에는 무색투명했지만 리덴은 죽음의 기운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빠득.
어금니를 한 번 깨문 리덴은 세나에게 대야를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말하고는 물에 호문클루스의 잔재를 부었다. 그러자 물에서 죽음의 기운이 사라지고 황금빛 빛을 토했다.
“설마 내가 이 기술을 사용하게 될 줄은.”
리덴이 그런 말을 하고는 대야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그러자 리덴이 다룰 수 있는 모든 연금 도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공의 10개 도형―압축, 정제, 응집, 변환, 융합, 배열, 질서, 혼돈, 분열, 분리.
속성의 9개 도형―빛, 어둠, 물, 불, 땅, 바람, 에테르, 신성, 무.
정신의 7개 도형―신념, 사랑, 소망, 환상, 이상, 절망, 실의.
형질의 5개 도형―액체, 고체, 기체, 입자, 비물질.
쿠벤베르크 연금술 극의 1개 도형―세계의 구조.
모두 32가지였다.
쿠벤베르크 연금술에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기술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호문클루스의 잔재를 이용하여 누군가를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진화시키는 기술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대상이 된 인간과 호문클루스의 잔재를 섞는 것이다. 지극히 비인도적이고 비상식적인 기술이었다. 이는 단순히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다. 호문클루스는 연금술사에게 있어 극의 중에 하나. 그 가치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걸 잔재라고는 하지만 누군가에게 거저 주는 것이다. 그런 일 보통은 있을 수 없었다. 호문클루스는 설사 파괴되어 잔재가 되었다고 해도 쓰일 곳이 널렸으니까 말이다. 또한 이 기술에는 그런 것 말고도 아주 치명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쿠벤베르크 연금술 역사상 이 기술이 실제로 사용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이론적으로만 만들어진 기술이었다. 누가 만들었냐고? 당연히 리덴의 전생들 중 하나다. 고위 연금술사는 노트와 펜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상천외한 연금 물품을 설계할 수 있는 인간들이니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레인보우 플라워도 그랬다. 그래서 그 열매의 효능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었다. 쿠벤베르크가 설계했고 최초로 만들었다. 실제로 복용한 리덴만이 효능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돈줄.”
리덴이 세나를 불렀다.
“네, 선생님.”
세나가 대답했다.
“살고 싶냐?”
리덴이 물었다.
“그럼요. 당연하죠. 선생님 바보예요?”
세나가 장난스레 대답했다.
“너, 지금 그대로라면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죽을 거다. 하지만 나는 너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 너는 인간이 아니게 될 거다. 정확하게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죽지는 않겠지만.”
리덴이 세나에게 선택지를 내밀었다.
“…….”
세나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빨리 대답해. 너는 정신을 차리고 있으니까 묻는 거야. 노예에게는 선택지가 없어.”
리덴이 대답을 재촉했다.
“선생님, 한 가지만 약속해 줘요.”
세나가 불쑥 조건을 달았다.
“뭔데? 빨리 말해.”
리덴이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
“내가 이상하게 되면 없애 주세요. 괴물 같은 거 돼서 살기는 싫어요.”
세나는 각오를 마쳤다.
“그런 거야 간단하지.”
리덴은 이 대답을 끝으로 호문클루스 잔재의 가공을 완료하였고 대야에 가득 차 있던 물은 살아 있는 것처럼 반으로 나뉘어서는 하나는 세나에게 다른 하나는 이븐에게 향했다. 그리고 세나와 이븐의 몸에서 빛무리가 폭발하듯 일어났다.
‘어떤 결과가 나오려나. 레인보우 플라워의 열매를 먹을 때만큼이나 두근거리는데, 이거.’
리덴은 그렇게 생각하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어째서냐!’라고 속으로 절규를 토했지만 그 이상은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2. 죽음이 내려앉는 풍경(1)
리덴, 세나, 이븐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세나였다. 어째서인지 알몸이었지만 세나는 한동안 자신의 상태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멍하니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리덴과 이븐이 쓰러져 있음을 발견했다.
어째서?
세나는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이 돌아왔다. 선생님의 명령을 받아 지하실을 청소하는 도중 갑작스럽게 시야가 흔들렸었다는 사실을. 그 순간 이븐이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어 유령들을 속박하고 있던 리덴의 결계가 파괴되었다. 세나는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땅을 박차고 주변에 있는 무기를 들어서는 검기를 사용, 유령을 공격해 보았지만 되레 역습을 당해 어깨를 다쳤다. 그에 놀란 세나는 지하실 구석으로 물러나 비명을 질렀다.
얼마 후 선생님, 리덴이 왔다.
그리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대야에 물을 받아 왔다.
선생님이 말했다.
‘돈줄, 살고 싶냐?’라고.
‘죽지는 않겠지만 인간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라고.
매번 자신을 돈줄이라고 부르는 리덴 선생님은, 상대하다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인간이었지만 거짓말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을 속이고 엿 먹이는 데는 도가 텄다.
세나가 알고 있는 리덴 선생님은 그런 인간이었다. 따라서 이번에도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나, 설마 괴물이 된 건 아니겠지?’
세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가늘고 긴 팔과 다리.
백옥 같이 윤기 나는 아름다운 피부.
머리카락을 뽑아 보니 변함없이 자랑스러운 붉은색이었고 허리 라인에도 이상은 없었다. 그 외의 곳도 딱히 변한 곳은 없었다. 한 군데만 빼고. 마이너스 방향이 아닌 플러스 방향이었다. 그렇다고 지나치지도 않았다.
어디냐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가슴이다.
세나는 16세 소녀에다 검술을 연마해서인지 가슴의 발육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매우 나쁜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척이나 좋은 느낌으로 변해 있었다. 이거라면 더스틴을 한 방에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세나는 여전히 도날드 검술 아카데미의 관장 아들 더스틴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이유는 한 가지. 재능이 없어도 열정을 가지고 끈기 있게 노력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리덴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상이었다.
좌우간.
“꺄앗!”
세나는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나 없나를 살펴보다가 문득 자신이 알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리덴과 이븐이 쓰러져 있지만 선생님에게 자신의 나신을 보여 주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유 같은 건 없다. 그냥 싫었다.
스륵.
어째서인지 알몸이었던 세나의 몸에 옷이 생겼다. 사이즈는 딱 맞았고 착용감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파티용 드레스 같은 것이었는데 치마는 무릎이 겨우 보일 정도의 길이였고 색깔은 약간 검은빛이 감도는 붉은색이었다. 소매는 반소매, 가슴과 복부를 비롯한 치마 양옆으로 탁한 은빛의 금속판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등이나 허리 부분도 그랬다.
“우왓!”
세나가 기겁을 하며 괴성을 질렀다. 리덴에게 알몸을 보여 주기 싫다고 생각하는 순간 떠올린 복장을 자신이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 멋지다. 최고야.”
세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다 서둘러 머리를 흔들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런 현상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서둘러 리덴에게 다가가 리덴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 일어나요, 선생님!”
하지만 리덴은 반응이 없었다. 대신 이븐이 깨어났다. 그녀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침착한 얼굴로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세나를 노려보았다.
“뭐하는 겁니까? 지금.”
라고 말하면서.
“어? 일어난 거야? 우와. 너도 알몸이네. 칫.”
감탄사를 내뱉던 세나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뭡니까? 그 ‘칫.’은.”
이븐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무뚝뚝한 얼굴로 자신의 팔과 다리, 몸 전체를 살펴본 후 쓰러져 있는 리덴을 바라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세나에게 시선을 돌려 ‘세나, 저는 제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살아 있습니다. 아픈 곳도 없고 몸이 무척이나 가볍습니다. 체형도 약간은 변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뭔가 다른 힘을 느낍니다. 세나도 알겠지만 저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1써클에 속해 있는 간단한 마법 한두 가지 정도로, 대단한 수준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나 써클의 규모나 매직 라인 상태에 관해서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알고 있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세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물었다.
이븐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세나는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 좀 짧게 해. 왜 이리 긴 거야. 매번, 매번.’이라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븐의 물음에는 답해 주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이에 이븐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지면을 구르고 있는 유리병 하나를 발견했다. 제법 크고 윗부분이 파괴되어 있었다. 기억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리덴의 침실에 있는 것이었다. 요정 형태의 인형이 보관되어 있는.
리덴은 그것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건드리지도 말라고 했다. 관심도 갖지 말라고 했다. 그 태도에서 이븐은 그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리덴에게 있어 추억이 담겨 있는 소중한 무언가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세나는 인형이 아닌 빛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고 했다.
“선생님께 직접 설명을 듣는 편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이븐이 그렇게 말하며 리덴의 곁으로 왔다.
“그전에 옷부터 입지, 그래.”
세나가 한마디 했다.
“옷 말입니까? 그러고 보니 세나, 당신의 옷은 평상시의 옷과는 조금 다른 듯합니다만. 비장의 남자 사냥용 승부 복장입니까?”
이븐이 화제를 돌렸다.
“남자 사냥용 승부 복장이라니, 그거 뭐야. 비꼬는 거? 고의가 아니야. 나는 그저 생각했을 뿐이라구.”
세나는 불쾌하게 대꾸하고는 자신도 깨어났을 때 알몸이었다는 것과 리덴에게 알몸을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옷을 떠올려 버린 것 등을 설명했다. 그러자 이븐이 눈을 감았다. 자신도 혹시나 하고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
스슥.
세나와 마찬가지로 이븐에게도 옷이 입혀졌다.
세나가 드레스와 갑옷을 합친 것 같은 느낌이라면 이븐은 정장과 로브를 합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푸른색 바탕에 몇 개의 탁한 은빛 선이 불규칙적으로 수놓아져 있는 디자인이었다. 오른쪽 가슴에는 쿠벤베르크 연금술사를 상징하는 엠블렘이 그러져 있었다. 이븐이 의도해서 붙여 둔 것은 아니다. 이븐은 그 문양이 뭔지도 몰랐다. 리덴의 옷장을 정리하다 이런 엠블렘이 그려진 옷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것을 보고 이븐은 멋지다고 생각했다.
물론, 리덴의 옷은 회색이었다. 우중충한 느낌으로 하늘에 붙여 두면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낼 것 같은 느낌의 색상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이븐이 세나에게 가세를 하여 리덴을 흔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리덴이 부스스 눈을 떴다. 세나와 이븐의 얼굴을 보더니 게슴츠레한 눈으로 ‘피곤해. 깨우지 마. 깨우면 지하실 청소를 시킬 거야.’라고 말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에 세나와 이븐은 굳어 버렸다. 리덴의 상태가 평상시와는 뭔가 달랐던 것이다. 그렇기에 더는 흔들어 깨우지 않았다. 조금 물러나서는 그냥 멍하니 있었다.
10분이나 흘렀을까? 리덴이 벌떡 상체를 일으키더니 미심쩍은 눈초리로 세나와 이븐을 바라보았고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현실이었어. 이런 망할. 빌어먹을. 거지같은!”
리덴이 한바탕 괴성을 토했다. 그러고는 세나와 이븐에게 안부를 물었다.
“멀쩡해요. 보면 알잖아요. 선생님.”
세나가 대답했다.
“사실은 말입니다. 선생님.”
그리고 이븐은 자신들의 변화와 한 가지 묘한 능력에 대해 설명했다. 가슴이 커졌다거나 생각했더니 옷이 나타나거나 말이다.
“가슴, 가슴? 왜 또 가슴이래? 좋겠구나. 돈줄에게는 좋은 일이지.”
리덴이 솔직하게 감상을 늘어놓았다.
“에?”
세나가 얼굴을 붉히며 묘한 눈초리로 리덴을 노려보았다.
“뭘 그렇게 봐? 너, 가슴 없었잖아. 브래지어도 필요 없을 정도로. 하지만 이렇게 보니, 뭐. 음. 그래, 한결 낫다. 앞으로는 브래지어 꼬박꼬박 해라. 천하게 보이기 싫으면.”
리덴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세나에게 조언을 했고, 세나는 얼굴을 홍당무처럼 빨갛게 만든 후…… ‘선생님! 너무해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진짜, 바보 선생님.’라고 말했다.
“바보? 이게 살려 준 것도 모자라 능력도 주고 여자로서의 매력 포인트를 올려 주었더니 뭐가 어째? 네가 지금 나에게 개기는 거냐? 응?”
리덴이 반발을 하며 세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