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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따지고 보면 좋은 냄새일 텐데도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배 속이 욱신거렸다. 서겸은 버스 정류장의 긴 의자에 주저앉았다.

조금 쉬었다가 가야 할 것 같았다.

요즘 들어 냄새로 고생하는 일이 잦긴 했지만 이렇게 급속히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는 없었는데 지금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힘 빠진 얼굴로 정류장 앞에 잠깐 멈췄다가 금방 떠나는 버스들을 지켜봤다. 그 모습이 누군가를 마중 나온 것처럼 보이는 건지 내리는 사람마다 그에게 시선을 던지곤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수십 대의 버스를 보내고 몸이 차가워질 때쯤에야 서겸은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도 버스 정류장을 떠났다.

“어? 페로몬 냄새 난다.”

뒤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렸지만, 서겸의 귀에는 닿지 않는 목소리였다.



“다녀왔습니다.”

누구도 듣지 않지만 서겸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인사를 했다. 사람의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서늘한 방을 둘러보며 그는 필요한 것을 챙겼다.

낮에 하는 일이 끝났으니 이제 밤에 하는 일을 하러 가야 했다. 깔끔하게 차려입었던 것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 정리해 두고 빨래 건조대에 걸려 있는 허름하고 닳은 작업복을 꺼냈다. 한 벌 더 챙겨 작업 가방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몸을 쓰는 일이라 저녁부터 챙겨 먹어야 했지만 아까 버스에서 속이 울렁거린 탓인지 밥 생각이 없었다. 현장에 나가게 되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히 빵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서겸은 시멘트와 진흙이 단단하게 굳어 떨어지지 않는 안전화를 꺼내 신고 발끝을 바닥에 툭툭 굴렸다.

현관에 걸려 있는 거울 속엔 대학교에서 여유롭게 데이트를 즐기던 남자는 사라지고, 파리한 안색의 공사장 막노동꾼만 보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습관처럼 서겸은 인사를 남겼다. 그는 돌아온 지 10분 만에 다시 문을 굳게 닫아 놓고 집을 나섰다.

하나둘 돌아오는 이들을 맞이하려 켜진 불빛이 흘러나오는 집은 이 골목에 몇 집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조금 전 그의 집처럼 캄캄했다. 한 집 건너 한 집씩 집을 팔고 이사 갔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수년씩이나 질질 끌던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낡은 동네에 머무는 사람은 이제 몇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살기 힘들다며 버리고 떠난 황량한 동네가 되레 그에게는 좋은 조건이었다. 덕분에 서겸은 보증금 없이 월세로만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뜨내기에게 이보다 더 좋은 동네도 없었다.

가로등 불빛만 빛나는 길을 쭉 내려와 그는 큰길을 따라 걸었다. 두 달 전 새로 생긴 인력 사무소가 그 길에 있었다.

서겸은 그 사무소에서 일을 소개받아 야간 공사 현장에 나갔다. 낮에도 사람은 몰렸지만, 야간 공사 현장을 취급하는 곳이 몇 안 되는 탓인지 사무실은 밤에도 붐볐다.

그는 도로에 낡은 봉고차가 서 있는 것을 확인하고 좁은 계단을 올라갔다. 오늘따라 사람이 없는 건지 아직 현장으로 출발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계단참에 달린 전구가 나간 건지 사람이 움직이는 데도 불이 들어오기는커녕 캄캄하기만 했다.

2층에 있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와 비슷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저마다 볼일을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서겸은 인사부터 했다.

하루치기 일감만 있는 곳이고 다음번에 안 오면 더는 볼 일 없는 사람들이라지만 어딜 가든 싹싹하게 굴면 나름대로 인상이 좋아 보이는 법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쌓아 둔 이미지가 잘 먹히는 곳도 있었다.

“어? 이 군 왔네? 오늘은 안 오는 줄 알았잖아.”

자기 사무실처럼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이들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서겸을 반겼다. 서겸은 고개를 꾸벅거렸다. 일용직이라도 전부 똑같은 건 아니었다. 그 바닥에도 급이 있었다.

방금 서겸에게 인사한 아저씨가 그런 경우였다. 대체 뭐 때문에 인력 사무소에 드나들며 일을 구하는지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기술이 있어 사무실에 나오기만 하면 먼저 뽑혀 가는 아저씨였다.

“이봐! 나 오늘 이 군이랑 같이 붙여서 일 보내 줘. 내 시다로 쓰게.”

책상에 앉아 있던 사무실 직원이 서겸과 아저씨를 번갈아 보고는 조금 불쾌한 기색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원래는 그렇게 해 주지 않았지만 여기 인력 사무소에서 내보낼 수 있는 가장 고급 인력이 아저씨다 보니 직원도 바로 거절하지 않았다.

서겸은 슬쩍 눈치를 살폈다.

“아까 내가 하나 남겨 놓으라 했잖아.”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책상으로 갔다.

컴퓨터 모니터를 뒤적이고 있던 사무실 직원이 한숨을 내쉬며 서겸을 향해 손짓했다. 그쪽으로 가자 직원은 이미 외워 둔 이름을 기록하고 책상 안쪽에 얹어 놓은 장부를 꺼냈다.

서겸은 자신에게 내밀어진 종이에 이름을 한 번 더 기록하고 엄지로 도장을 찍었다.

“어쩐지 오늘은 빨리빨리 사람 뽑기 싫더라.”

아저씨가 씩씩하게 웃으면서 서겸의 어깨를 툭 쳤다.

손쉽게 일을 구한 서겸은 마지막 자리가 채워지기 무섭게 일어나는 사람들 뒤에 따라붙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그의 인사에 앞서 계단을 내려가던 이들이 픽픽 코웃음을 쳤다.

“너 인마, 김 씨 아저씨한테 감사하다고만 하지 말고 절도 해.”

앞에서 걸쭉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소리쳤다.

서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절은 무슨. 됐다. 그나저나 이 군, 밥 먹고 온 거 맞나? 어째 사내놈이 날이 갈수록 빌빌대는 것 같은데.”

“낮에도 일하는 놈이 밤에도 공사판에서 삽질해 대니 당연하지.”

건물 두어 개 올리며 안면을 익힌 이들이 서겸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하듯 하며 계단을 빠져나갔다.

서겸은 조용히 그 뒤만 따라갔다. 아까 봤던 봉고차에 오르자 기사가 차비를 걷었다. 미리 준비해 둔 천 원짜리 세 장을 건네고 안쪽에 앉으니 차가 출발했다.

공사장은 차로 10분 정도 가면 나오는 곳이었다.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가방을 던져 둔 서겸은 아저씨들과 함께 현장에 투입됐다. 적당한 자리에 일감이 생기면 작업반장이 부품을 끼워 넣듯 짝을 지어서 움직이게 했다.

그를 조수로 붙인 아저씨는 에어 프레셔를 사용해서 공업용 타카를 박아 시멘트벽 위에 공간을 띄우고 나무로 마감 벽을 만드는 일을 주로 했다. 그게 현장에서 주로 하는 일이라는 거지, 목수 기술이 필요한 일이면 뭐든 했다.

서겸은 무거운 기계를 들고 마감이 덜된 계단을 올랐다.

“더 바짝 들어!”

균형이 맞지 않아 아래에서 휘청이자 끌고 올라가던 아저씨가 큰 소리를 냈다. 서겸은 턱에 힘을 주고 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

계단을 다 올라 벽을 쳐야 하는 곳에 도착하자 호흡이 딸려 거친 숨을 헉헉댔다. 그런 서겸을 보며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한마디씩 던졌다.

“오늘 따라 애 상태가 영 안 좋은데?”

“맛이 갔네. 갔어.”

김 씨 아저씨가 손을 휘둘렀다.

“시끄러우니까 다들 저리 꺼져. 반장 와서 잔소리하기 전에.”

서겸은 뭐라 대꾸도 하지 못하고 희게 질린 얼굴을 숙였다. 이상하게 아까부터 배 안쪽이 욱신댔다. 배가 고파 그런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쿡쿡 쑤시던 통증이 이제는 내장을 쥐어 짜내는 것처럼 아팠다. 신물이 올라와 구역질이 나기도 했다.

서겸은 숨을 깊이 삼켰다. 뭔가 이상했다. 평상시라면 참아졌을 정도의 통증 같은데 지금은 그게 되지 않았다. 배만 그런 게 아니라 머리도 아팠다.

머리에 망치로 못을 박아 넣는 것처럼 크고 둔하게 통증이 오면 그 뒤를 따르듯 배 안쪽이 꽉 조여들었다.

“내려가서 판 올리자.”

적당히 견적을 낸 김씨가 서겸을 재촉했다. 서겸은 허리를 펴려고 했다. 머리를 들자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뻐근하고 타들어 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뭐야?”

막을 새도 없이 흘러나간 신음에 김 씨가 안전모 아래쪽의 이마를 긁어 대며 가까이 다가왔다.

“인마. 진짜 왜 그래?”

서겸은 두 팔로 배를 감싸고 앉았다.

“어이! 이 군! 이서겸이!”

별거 아니라고. 괜찮다고 대답하고 싶은 그의 마음과 달리 아까부터 바들바들 떨리던 무릎이 크게 휘청이더니 그대로 꺾였다.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김 씨가 다급하게 다가오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보였다.



아팠다.

진짜 아팠다. 흔한 감기 몸살의 통증과는 너무 달랐다. 커다란 칼로 그의 몸을 내리찍어 토막 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구역질은 나는데 누군가가 계속 입을 틀어막고 있는 것처럼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하게 해 왔던 일인데도 그랬다.

서겸은 꼭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머리 위로 긴 형광등이 빠르게 지나갔다. 바닥을 긁는 작은 바퀴 소리가 들리고 그 위로 뭔가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리세요? 이서겸 씨?”

“이 군아! 정신 차려 봐라! 왜 이러는 겁니까?”

그 와중에 아는 목소리라고 안심이 되었다.

서겸은 김 씨 아저씨의 목소리를 향해 눈을 굴렸다. 고개를 옆으로 조금 틀었더니 하얀색 가운이 보였다. 주머니에 가득 꽂혀 있는 형광펜을 보며 그는 조금 더 고개를 돌렸다.

병원에 온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