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사랑하는 나의 두부 1화
서장
[뮌하우젠 증후군 (münchausen syndrome 뮌하우젠 신드롬)
분류 : 정신병
국제 질병 분류 기호 (ICD-10) : F68.1
진료과 : 정신 건강 의학과
관련 증상 : 기억장애, 구역, 구토, 복통, 어지럼증, 객혈, 발진, 발열
관련 질병 : 조현병, 중독
----------------------------------------------------
목차
1. 개요
2.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 (MSBP)
3. 사회적 뮌하우젠 증후군
4. 사례
1. 개요
정신 질환의 일종으로, 실제로 신체적인 증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끌기 위해 질병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자해를 하는 것을 뜻한다. 꾀병을 부리는 것과는 다르다.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의 목적은 환자 롤플레잉에서 오는 관심에 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리처드 애셔(Richard Asher)가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의 주인공 뮌히하우젠 남작의 이름을 따서 1951년 처음으로 발표했다.
주로 어린 시절 과보호로 인해 자립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상황회피를 위해, 또는 어린 시절의 정신적인 상처로 타인의 관심을 끄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남자에게, 그리고 청소년기-성인기 초반에 더 나타난다. 아픈 척을 하는 것이 증상이니만큼 진단도 까다롭다고 한다. 특징적으로는 의료 관련 지식이 풍부한 모습을 보이며, 약의 처방 및 효능도 신기하게 잘 알고 있다.]
1. 열일곱 봄 (1)
<2006. 03. 06. 월요일>
3월의 둘째 주 월요일이었다.
아직 꽃샘추위라 날이 찼다. 등교를 하려고 계단을 내려오다 맞은 칼바람에 살이 에일 것 같았다. 버스를 타러 가면서도 어찌나 추웠는지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시장 통에서 삼만 원을 주고 사 온 싸구려 솜 패딩은 무게에 비해 보온성이 형편없었다.
고등학교까지 가는 버스는 7번이 가장 빨랐다. 달동네를 굽이굽이 내려와 상공 회의소에서 7번을 타고 딱 스무 정거장가량을 가면 마고였다. 마리아회 고등학교. 평준화 전까지만 해도 꼴통 학교로 유명해서 겁을 잔뜩 집어먹었는데, 중학교 때와 그렇게 달라진 것도 없었다.
연두는 흔한 말로 왕따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 왕따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가난 때문이었다. 셋이나 되는 양육자 중 어느 누구도 어린 연두를 매일 씻기지 않았다. 등교 준비를 할 시간에 연두의 엄마는 항상 자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연두를 키운 할매는 나이 40줄에 늦둥이로 얻은 아들의 손주까지 키우게 된, 운이라고는 지지리도 없는 옛날 사람이었다. 평생을 가난했던 할매는 따뜻한 물만 틀어도 가스비에 벌벌 떨었다.
손발을 씻고, 세수를 하고 아래만 씻는 게 샤워가 아니라는 걸 열 살이 되어서야 겨우 알았다. 꼬질꼬질 땟국물이 나오는 옷, 부엌 가위로 대충 잘라 놓은 머리카락, 갑자기 나빠진 시력 때문에 안경점에서 가장 싼 걸로 맞춘 안경. 목포에서도 노인네들이나 쓸 법한 옛날 꼰날 사투리. 거기다 혼혈. 잡종. 연두가 따돌림 당할 이유는 그야말로 차고도 넘쳤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건 대두 알레르기였다.
멀쩡하던 연두는 열 살의 어느 날, 급식으로 나온 마파두부를 먹다 전교생이 다 있는 급식실에서 배 속을 게워 냈다. 그 이후로 연두는 이름보다 ‘두부 새끼’라고 불릴 때가 많았고 그 별명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남들 다 있는 친구 하나가 없었다. 이제는 찬물에 머리가 띵해질지언정 매일 씻고, 옷도 스스로 빨아 입고, 밖에 있을 때는 사투리도 안 쓰려고 노력하는데 한번 시작된 따돌림은 끝날 줄을 몰랐다.
3월 2일에는 연두와 같은 중학교를 나온 일진 하나가 연두의 뒤통수를 내리쳤고, 3월 3일에는 그 애의 친구가 책가방 속에 급식으로 나온 두부 부침을 쑤셔 박았고, 3월 4일은 토요일이라 애들이 안 건드렸다.
3월 5일은 어제였고, 일요일이었다.
“으……. 추워.”
오동통한 입술 틈을 비집고 입김이 새 나왔다. 호, 하고 입김에 언 손을 녹이는데 멀리서 7번 버스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습관처럼 기사에게 인사를 한 연두가 버스에 올라 교통 카드를 찍었다. 잔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려고 했는데, 숫자가 금방 사라져 버렸다. 연두는 중간의 창가 자리로 가 앉았다. 버스 안의 온기에 싸구려 뿔테 안경 위로 김이 서렸다. 연두는 눈을 가리고 있던 안경을 벗어 손에 들었다. 눈꼬리가 살짝 휘어 올라간 커다란 눈이 원래 색을 되찾았다.
연두의 연한 갈색 눈동자는 햇빛을 받으면 호박처럼 반짝이며 빛났는데, 그마저도 어린아이들에게는 자신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거리가 되곤 했다.
***
반 총원은 서른셋이었다. 하필 또 홀수였다.
당연한 듯 연두는 복도 쪽 맨 끝자리에 혼자 앉았다. 앉은키가 작은 데다 눈까지 안 좋아서 필기를 하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도 앞자리보다는 뒷자리가 나았다. 괴롭히는 사람이 앞뒤, 좌우에 있는 것보다는 앞과 옆에만 있는 게 나았으니까. 담임이 이번 주에 자리 배정을 다시 한다고 했는데, 그때까지라도 조용히 지냈으면 싶었다.
0교시 자율 학습 시간 동안 주말에 깜빡하고 못한 수학 숙제를 풀었다. 다항식 문제 중 절반은 알고 절반은 헷갈렸다. 조립제법에 대해 알려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냥 찍고 싶었는데 수학 선생님이 무서웠다.
연두가 그를 무서워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저번 주에 반 아이 중 하나가 수학 시간에 핸드폰을 보며 낄낄대다 선생님에게 매를 맞았다. 엉덩이를 맞은 그 애는 수업이 끝나고도 한참이나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수학 선생님은 깡마른 데다 개량 한복을 입고 있어서 하나도 안 무서워 보였는데, 의외였다. 얼마 뒤에 애들이 말하는 걸 훔쳐 들으니 별명이 독사인 모양이었다.
고개를 책상에 처박고 문제와 씨름을 하고 있는데 담임이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말이 자율학습이지 쉬는 시간처럼 요란하던 아이들은 문소리와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다. 담임 선생님의 뒤를 따라 키가 아주 큰 남학생이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따라 들어왔다.
전학생인가. 전학생이면 옆자리에 앉을 텐데. 차라리 혼자 앉는 게 편한데. 전학생 혼자 앉으라고 하고 뒷자리에 따로 앉을까. 담임이 그렇게 하게 해 주려나. 날 모르는 애였으면 좋겠다. 어느 중 나왔을까.
연두의 조그만 머리통에 많은 생각이 빠르게 굴러갔다. 휙휙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연두는 미간을 좁혀 전학생의 얼굴을 쳐다봤다. 멀리서만 봐도 시원시원하고 잘생긴 얼굴이었다. 중학교 때 얼짱으로 나름 유명했던 동급생이 있었는데, 그 동급생도 저 옆에 서면 못생겨 보일 것 같았다.
나이 지긋한 담임이 양팔로 교탁을 지탱하고 선 채 목소리를 몇 번 다듬었다.
“아그들아, 주목. 주말 잘 보냈제?”
“네!”
반 아이들이 대답했다. 연두는 입 모양으로만 네, 하고 소리는 내지 않았다.
“오늘은 전학생이 왔다. 서울서 목포까지 유학 왔응께, 느그들이 잘 챙겨 줘라잉. 잘생겼다고 따 시키고 그러지 말고. 알았지? 전학생, 자기소개해 봐.”
담임이 교탁에서 팔을 떼고 걸음을 옮기자 전학생이 교탁 가운데 섰다. 키가 얼마나 큰지 담임 선생님이 어깨에도 못 미쳤다. 그의 얼굴을 조금 더 자세히 쳐다보려는데 입을 떼려던 전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연두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반 아이들 모두 그를 쳐다보고 있을 텐데, 연두만이 그랬다.
교실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여유로운 표정이었던 전학생은 연두를 보고는 한쪽으로 얼굴을 갸우뚱했다. 서늘한 표정이 아주 잠깐 얼굴에 스쳤지만 아무도 몰랐다.
“음……. 내 이름은 최수호야. 서울에서 왔고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그려. 저기 끝에 연두 옆에 가서 앉어.”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호가 긴 다리로 휘적휘적 연두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 그냥 뒷자리에 따로 혼자 앉으면 안 될까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연두는 속으로 생각한 말 중 ‘선생님’이라는 세 글자도 꺼내지 못했다. 아이들은 연두의 옆자리에 당첨된 전학생을 흘끗 쳐다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기도, 자기네들끼리 낄낄대기도 했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을 뿐인 연두는 왜인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시선이 집중되는 바람에 심장이 콩닥콩닥 빨라졌다. 눈가에 웃음기를 머금은 전학생이 끼익, 하는 듣기 싫은 소음과 함께 옆자리에 앉았다.
“연두야, 안녕?”
전학생에게서는 소다 맛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한 향이 났다. 옆자리에서 자신을 보며 속닥대는 목소리는 냄새만큼이나 부드러웠다.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목소리 같았다.
연두가 고개를 돌려 수호를 올려다봤다. 남의 눈을 잘 못 보는 고질병 때문에 그와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다. 대신 연두는 심혈을 기울여 조각한 듯 날렵한 콧날 윗부분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연두는 크게 곡선을 그린 입술로 시선을 더 내렸다. 김혁의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서장
[뮌하우젠 증후군 (münchausen syndrome 뮌하우젠 신드롬)
분류 : 정신병
국제 질병 분류 기호 (ICD-10) : F68.1
진료과 : 정신 건강 의학과
관련 증상 : 기억장애, 구역, 구토, 복통, 어지럼증, 객혈, 발진, 발열
관련 질병 : 조현병, 중독
----------------------------------------------------
목차
1. 개요
2.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 (MSBP)
3. 사회적 뮌하우젠 증후군
4. 사례
1. 개요
정신 질환의 일종으로, 실제로 신체적인 증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끌기 위해 질병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자해를 하는 것을 뜻한다. 꾀병을 부리는 것과는 다르다.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의 목적은 환자 롤플레잉에서 오는 관심에 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리처드 애셔(Richard Asher)가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의 주인공 뮌히하우젠 남작의 이름을 따서 1951년 처음으로 발표했다.
주로 어린 시절 과보호로 인해 자립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상황회피를 위해, 또는 어린 시절의 정신적인 상처로 타인의 관심을 끄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남자에게, 그리고 청소년기-성인기 초반에 더 나타난다. 아픈 척을 하는 것이 증상이니만큼 진단도 까다롭다고 한다. 특징적으로는 의료 관련 지식이 풍부한 모습을 보이며, 약의 처방 및 효능도 신기하게 잘 알고 있다.]
1. 열일곱 봄 (1)
<2006. 03. 06. 월요일>
3월의 둘째 주 월요일이었다.
아직 꽃샘추위라 날이 찼다. 등교를 하려고 계단을 내려오다 맞은 칼바람에 살이 에일 것 같았다. 버스를 타러 가면서도 어찌나 추웠는지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시장 통에서 삼만 원을 주고 사 온 싸구려 솜 패딩은 무게에 비해 보온성이 형편없었다.
고등학교까지 가는 버스는 7번이 가장 빨랐다. 달동네를 굽이굽이 내려와 상공 회의소에서 7번을 타고 딱 스무 정거장가량을 가면 마고였다. 마리아회 고등학교. 평준화 전까지만 해도 꼴통 학교로 유명해서 겁을 잔뜩 집어먹었는데, 중학교 때와 그렇게 달라진 것도 없었다.
연두는 흔한 말로 왕따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 왕따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가난 때문이었다. 셋이나 되는 양육자 중 어느 누구도 어린 연두를 매일 씻기지 않았다. 등교 준비를 할 시간에 연두의 엄마는 항상 자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연두를 키운 할매는 나이 40줄에 늦둥이로 얻은 아들의 손주까지 키우게 된, 운이라고는 지지리도 없는 옛날 사람이었다. 평생을 가난했던 할매는 따뜻한 물만 틀어도 가스비에 벌벌 떨었다.
손발을 씻고, 세수를 하고 아래만 씻는 게 샤워가 아니라는 걸 열 살이 되어서야 겨우 알았다. 꼬질꼬질 땟국물이 나오는 옷, 부엌 가위로 대충 잘라 놓은 머리카락, 갑자기 나빠진 시력 때문에 안경점에서 가장 싼 걸로 맞춘 안경. 목포에서도 노인네들이나 쓸 법한 옛날 꼰날 사투리. 거기다 혼혈. 잡종. 연두가 따돌림 당할 이유는 그야말로 차고도 넘쳤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건 대두 알레르기였다.
멀쩡하던 연두는 열 살의 어느 날, 급식으로 나온 마파두부를 먹다 전교생이 다 있는 급식실에서 배 속을 게워 냈다. 그 이후로 연두는 이름보다 ‘두부 새끼’라고 불릴 때가 많았고 그 별명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남들 다 있는 친구 하나가 없었다. 이제는 찬물에 머리가 띵해질지언정 매일 씻고, 옷도 스스로 빨아 입고, 밖에 있을 때는 사투리도 안 쓰려고 노력하는데 한번 시작된 따돌림은 끝날 줄을 몰랐다.
3월 2일에는 연두와 같은 중학교를 나온 일진 하나가 연두의 뒤통수를 내리쳤고, 3월 3일에는 그 애의 친구가 책가방 속에 급식으로 나온 두부 부침을 쑤셔 박았고, 3월 4일은 토요일이라 애들이 안 건드렸다.
3월 5일은 어제였고, 일요일이었다.
“으……. 추워.”
오동통한 입술 틈을 비집고 입김이 새 나왔다. 호, 하고 입김에 언 손을 녹이는데 멀리서 7번 버스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습관처럼 기사에게 인사를 한 연두가 버스에 올라 교통 카드를 찍었다. 잔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려고 했는데, 숫자가 금방 사라져 버렸다. 연두는 중간의 창가 자리로 가 앉았다. 버스 안의 온기에 싸구려 뿔테 안경 위로 김이 서렸다. 연두는 눈을 가리고 있던 안경을 벗어 손에 들었다. 눈꼬리가 살짝 휘어 올라간 커다란 눈이 원래 색을 되찾았다.
연두의 연한 갈색 눈동자는 햇빛을 받으면 호박처럼 반짝이며 빛났는데, 그마저도 어린아이들에게는 자신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거리가 되곤 했다.
***
반 총원은 서른셋이었다. 하필 또 홀수였다.
당연한 듯 연두는 복도 쪽 맨 끝자리에 혼자 앉았다. 앉은키가 작은 데다 눈까지 안 좋아서 필기를 하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도 앞자리보다는 뒷자리가 나았다. 괴롭히는 사람이 앞뒤, 좌우에 있는 것보다는 앞과 옆에만 있는 게 나았으니까. 담임이 이번 주에 자리 배정을 다시 한다고 했는데, 그때까지라도 조용히 지냈으면 싶었다.
0교시 자율 학습 시간 동안 주말에 깜빡하고 못한 수학 숙제를 풀었다. 다항식 문제 중 절반은 알고 절반은 헷갈렸다. 조립제법에 대해 알려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냥 찍고 싶었는데 수학 선생님이 무서웠다.
연두가 그를 무서워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저번 주에 반 아이 중 하나가 수학 시간에 핸드폰을 보며 낄낄대다 선생님에게 매를 맞았다. 엉덩이를 맞은 그 애는 수업이 끝나고도 한참이나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수학 선생님은 깡마른 데다 개량 한복을 입고 있어서 하나도 안 무서워 보였는데, 의외였다. 얼마 뒤에 애들이 말하는 걸 훔쳐 들으니 별명이 독사인 모양이었다.
고개를 책상에 처박고 문제와 씨름을 하고 있는데 담임이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말이 자율학습이지 쉬는 시간처럼 요란하던 아이들은 문소리와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다. 담임 선생님의 뒤를 따라 키가 아주 큰 남학생이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따라 들어왔다.
전학생인가. 전학생이면 옆자리에 앉을 텐데. 차라리 혼자 앉는 게 편한데. 전학생 혼자 앉으라고 하고 뒷자리에 따로 앉을까. 담임이 그렇게 하게 해 주려나. 날 모르는 애였으면 좋겠다. 어느 중 나왔을까.
연두의 조그만 머리통에 많은 생각이 빠르게 굴러갔다. 휙휙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연두는 미간을 좁혀 전학생의 얼굴을 쳐다봤다. 멀리서만 봐도 시원시원하고 잘생긴 얼굴이었다. 중학교 때 얼짱으로 나름 유명했던 동급생이 있었는데, 그 동급생도 저 옆에 서면 못생겨 보일 것 같았다.
나이 지긋한 담임이 양팔로 교탁을 지탱하고 선 채 목소리를 몇 번 다듬었다.
“아그들아, 주목. 주말 잘 보냈제?”
“네!”
반 아이들이 대답했다. 연두는 입 모양으로만 네, 하고 소리는 내지 않았다.
“오늘은 전학생이 왔다. 서울서 목포까지 유학 왔응께, 느그들이 잘 챙겨 줘라잉. 잘생겼다고 따 시키고 그러지 말고. 알았지? 전학생, 자기소개해 봐.”
담임이 교탁에서 팔을 떼고 걸음을 옮기자 전학생이 교탁 가운데 섰다. 키가 얼마나 큰지 담임 선생님이 어깨에도 못 미쳤다. 그의 얼굴을 조금 더 자세히 쳐다보려는데 입을 떼려던 전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연두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반 아이들 모두 그를 쳐다보고 있을 텐데, 연두만이 그랬다.
교실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여유로운 표정이었던 전학생은 연두를 보고는 한쪽으로 얼굴을 갸우뚱했다. 서늘한 표정이 아주 잠깐 얼굴에 스쳤지만 아무도 몰랐다.
“음……. 내 이름은 최수호야. 서울에서 왔고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그려. 저기 끝에 연두 옆에 가서 앉어.”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호가 긴 다리로 휘적휘적 연두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 그냥 뒷자리에 따로 혼자 앉으면 안 될까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연두는 속으로 생각한 말 중 ‘선생님’이라는 세 글자도 꺼내지 못했다. 아이들은 연두의 옆자리에 당첨된 전학생을 흘끗 쳐다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기도, 자기네들끼리 낄낄대기도 했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을 뿐인 연두는 왜인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시선이 집중되는 바람에 심장이 콩닥콩닥 빨라졌다. 눈가에 웃음기를 머금은 전학생이 끼익, 하는 듣기 싫은 소음과 함께 옆자리에 앉았다.
“연두야, 안녕?”
전학생에게서는 소다 맛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한 향이 났다. 옆자리에서 자신을 보며 속닥대는 목소리는 냄새만큼이나 부드러웠다.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목소리 같았다.
연두가 고개를 돌려 수호를 올려다봤다. 남의 눈을 잘 못 보는 고질병 때문에 그와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다. 대신 연두는 심혈을 기울여 조각한 듯 날렵한 콧날 윗부분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연두는 크게 곡선을 그린 입술로 시선을 더 내렸다. 김혁의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