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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두부 8화

1. 열일곱 봄 (8)





***



저번 주부터 학교에 최수호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다. 벤츠를 타고 등교한다는 수호가 차에서 내리면서 운전석에 앉은 이를 아버지가 아니라 아저씨라고 부른 거다. 누가 봤는지 몰라도 김혁만큼 입이 싼 애가 본 게 분명했다.

누구냐고 묻는 말에 수호가 기사 아저씨라고 말했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소문은 그가 대한 그룹 최명진의 차남이라는 게 밝혀질 때까지 사그라들지 않았다.

대한 그룹. 구찌를 검색해 보고 나서야 알았던 연두도 대한 그룹은 알았다. 기업이며 브랜드며 하등 모르는 할매도 안다. 집이 잘 산다는 수준이 아니라 계급 자체가 다르단 걸 알고 나서 최수호를 시기하는 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야, 근디 최수호 그거 아니냐? 사생아 막 그런 거.”

“사생아가 뭐야.”

“멍청한 놈아. 그 있냐, 드라마 같은데 보면 숨겨 둔 자식 그런 거.”

“최수호가?”

“어. 근께 지 혼자 목포에 있제. 가족들 다 서울에 있을 건디.”

연두는 인상을 찌푸렸다. 세 번째 줄에 앉은 애들이 요즘 자꾸 최수호가 자리에 없으면 저렇게 확인되지도 않은 가정사를 가져다 씹어 댔다. 오늘은 그래도 좀 덜했다. 당장 저번 주 토요일만 해도 간식을 쏜 반장한테 한다는 말이 ‘돈 지랄 한다.’였으니.

애들이 짝지를 씹는 걸 이 이상 듣고 있기 힘들었던 연두는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제가 좋아하는 수호를 씹는 말에 한마디 대꾸도 못 하는 자기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두부야.”

그러다 자기 앞에 툭, 하고 떨어진 빵에 고개를 올렸다. 상대의 키가 커서 한참이나 올라가야 입술이었다. 반듯한 입매와 빵을 번갈아 보았다.

옥수수 크림빵. 최수호가 가끔 매점에서 사 먹는 거였다.

“뭐야?”

“빵. 먹으려고 샀는데 살 찔 거 같아서.”

연두의 눈에 왜, 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수호는 연두가 이런 식으로 눈알을 데구르르 굴리는 게 웃겼다. 대화를 할라치면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애처럼 꼭 저랬다. 김혁은 연두가 그럴 때마다 답답하다며 욕을 했는데, 수호는 그냥 웃기만 했다.

덥수룩한 갈색 머리에 이상한 보라색 안경을 쓰고 있어서 그렇지 눈도 반짝거리고, 애가 은근히 예쁘게 생겼던데. 수호는 입술 양끝을 끌어올리고 차분히 연두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 응.”

망설이던 연두가 조심스레 빵 봉지를 손으로 쥐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뒤에 있던 혁이 갑자기 연두의 뒤통수를 때렸다.

“존나 답답하게 구네. 병신이.”

통증에 골이 울렸다. 김혁은 여전히 재수가 없다. 불시에 얻어맞은 터라 눈물을 찔끔 흘리며 뒤통수를 손으로 감싸는데, 수호의 웃고 있던 입매가 순간 일자로 굳었다. 퍽 소리가 또 한 번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에 맞은 건 연두가 아니었다.

최수호가 어느새 몸을 돌려 김혁을 향해 웃고 있었다. 연두는 당황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지?

“혁아. 나 진짜 친구끼리 때리고 그런 거 안 좋아해.”

“하…… 씨발. 이 새끼가, 잘 산다고 봐 줬더니. 함 해 보자고?”

자기를 괴롭히던 애를 수호가 때린 모양이었다. 김혁이 연두와 똑같이 뒤통수를 잡고 있었다. 김혁이 수호의 멱살을 붙잡았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멱살을 잡힌 수호는 웃는 얼굴로 태연히 대답했다.

“여기서는 좀 그렇잖아. 이따 수업 끝나고 보자.”



***



<2006. 04. 04. 화요일>

등교를 하는데 겁이 났다. 수호가 다쳤을까 봐 무서웠다. 혁은 초등학교 때부터 날라리 일진이었다. 패싸움을 하다 경찰서에 갔다고 자랑처럼 얘기하던 게 머리에 계속 맴돌았다. 어찌나 걱정이 됐는지, 연두는 7번 버스 아저씨에게 늘 하던 인사도 못 했다.

자리에 앉아 수호를 기다리는 10분이 엄청나게 천천히 흘렀다. 심장도 쿵쿵거렸다.

“연두야, 안녕. 오늘도 빨리 왔네.”

짝꿍의 입가에 피딱지가 져 있었다. 김혁 나쁜 새끼. 개새끼. 연두가 속으로 욕을 하며 울먹거렸다. 어제도 알바를 하러 가야 해서 아무것도 못 봤다. 자기 때문에 대신 얻어맞았을 수호를 생각하니 연두는 마음이 바늘에 찔리는 것처럼 따끔거리고 아팠다.

“어, 어제 김혁이 많이 때렸어? 괜찮아? 안 아퍼? 그러게 왜 나한테 빵 같은 걸 줘 가지고…….”

항상 대답만 하던 연두가 의자에 앉기도 전부터 질문을 쏟아 냈다. 수호가 조금 놀란 눈을 했다. 연두는 자기가 수호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도 몰랐다.

“응. 괜찮아. 빵은 먹었어?”

“어? 어……. 그거 어제 알바 가면서 먹었어. 근데 이제 안 줘도…….”

“고마워는?”

“어?”

“고마워, 해야지.”

분명 수호는 웃고 있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안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한 달 동안 수호에게 고마운 일만 있었는데 고맙단 말을 한 번도 안 한 거 같았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고마운 일투성이인데 왜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지. 바보 같았다. 화가 났을 수도 있겠다 싶어 연두가 냉큼 대답했다.

“고마워! 그, 어제 혁이 때린 것도 고맙고. 빵도 고마워. 그리고 그때 사탕도 고맙고, 칠판 지워 준 것도 고마워. 또…….”

필사적으로 감사를 표하자 수호는 전학 첫날, 연두의 사투리를 들었던 날처럼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귀여워 죽겠다.”

수호가 또 간지러운 말을 하며 짝꿍의 머리를 헝클었다. 연두는 속으로 고맙단 소리를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김혁은 0교시가 시작하고 나서야 학교에 나왔다. 얼굴이 엉망진창이었다. 입술만 빼고 말끔한 수호와 달리 혁은 눈 코 입 말할 것도 없이 울긋불긋했다. 연두는 순간 화가 난 아버지에게 얻어맞은 자신의 얼굴이 겹쳐 보여 잠깐 몸서리를 쳤다. 수호는 싸움도 잘하는 걸까?

그런데 그의 얼굴을 보고 놀란 사람은 연두 하나였다. 이미 어제 그의 얼굴을 본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아 했다. 담임도 그랬다. 기묘한 느낌이었다.

“최수호, 개새끼야.”

1교시 시작 전 뒷자리로 걸어온 혁이 언제나처럼 욕지기를 뱉었다. 연두는 긴장해 바짝 신경을 곤두세웠다. 혹시라도 수호를 때리면 대신 맞을 생각까지 했다. 그동안 아버지에게 맞던 게 있어 맷집은 자신 있었다.

“얼굴 많이 부었네?”

“주먹 존나 세. 존나세냐? 씨바. 아파서 뒤지는 줄 알았다잉.”

“미안. 어젠 말 못 했는데, 나 운동 되게 많이 하거든.”

“뭔 운동한디?”

“그냥 뭐 이거저거 많이 해. 유도도 하고, 특공 무술 그런 것도 하고.”

다부지게 꼭 쥔 주먹이 무색하도록 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호에게 말을 걸었다. 주먹이 오간 건 확실해 보이는데, 싸우자마자 화해라도 한 걸까? 그게 아니면 알바 간 사이에 연두가 모르는 다른 일이 더 있었을까? 연두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점심시간에도 김혁은 평소와 똑같이 수호를 데리고 갔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



어제 준 빵에 이어 점심시간에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시작은 쥬라기 공원 무리 중 하나인 4반의 진오 때문이었다. 연두가 진오를 딜로포사우루스라고 부르는 건 이유가 있었다. 못생기기도 그 무리 중 제일 못생겼고 무엇보다 자꾸 독을 뱉었다. 독이라는 게 다른 건 아니고 두부였다.

진오는 급식으로 두부가 나오면 꼭 연두에게 왔다. 두부를 일부러 많이 받은 다음 그의 식판에 올리는 것이다. 구급차에 실려 가고 싶은 게 아닌 이상 연두가 이를 먹을 리는 없었다. 그럼 남긴 개수만큼 때렸다. 다시 말해서 연두를 때리고 싶은 횟수만큼 두부를 준다는 소리였다.

연두에게 있어서 두부는 독이었다. 먹으면 죽는 독.

오늘 반찬은 하필 두부 부침이었다. 급식실에서 딜로포사우루스가 횡포를 부렸고, 연두는 진오가 먼저 급식실을 나가기만을 바라며 밥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연두야. 여기 자리 있어?”

“왕따 새끼 옆에 자리가 있겄냐?”

분명히 점심시간에 김혁과 일등으로 나갔던 수호가 연두의 옆자리에 앉았다. 얼굴에 멍으로 꽃이 핀 김혁도 있었고 평화도 있었다. 천천히 먹으려고 했는데 글렀다. 연두가 대놓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맞기 싫은데 두부가 다섯 개나 있었다. 젓가락으로 괜히 두부를 반절 가르는데 문득 수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부 나 줄래?”

“어, 왜?”

“나 두부 좋아하거든. 요새 운동해서 그런가. 단백질 엄청 당겨.”

살찔까 봐 빵은 안 먹는다더니 단백질은 당긴다고 했다. 기가 시간에 배웠는데…… 빵은 탄수화물인가, 단백질인가? 머리가 안 좋아서 기억은 안 났다. 하여간 의도한 거든 의도하지 않은 거든 고마운 일이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수호가 연두의 식판에서 두부를 빼앗아 주었다.

연두를 향한 괴롭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최간디는 평화 주의자였고, 비폭력 주의자였다. 수호가 자리에 없을 때 가끔 애들이 연두를 건드리고 가긴 했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선 훨씬 참을 만했다. 최수호라는 이름 석 자가 연두를 많이도 바꿔 놓고 있었다.

열일곱의 4월, 연두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짝사랑을 시작했다. 연두의 마음은 호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