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선무지로 1권(25화)
九章. 만남 뒤에 헤어짐이 있고, 그 이별 속엔 새로운 만남을 기다림이니(2)
그 여인의 입가에 그려져 있던 미소는, 지금 목해운의 입에 머물러 있는 미소와 닮아 있었다.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그려 보인 목해운의 신형이, 한순간 장내에서 모습을 감췄다.
은은한 달빛 아래, 아칠의 흐느낌만을 남겨 둔 채…….
‘내 아버지는 조정의 녹을 먹는 관원(官員)이었네. 하지만 그 어느 파당에도 들지 않은 아버지의 굳건함이, 결국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격이 되고 말았지. 후훗, 우습게도 아버님께선 역모란 누명을 쓰고, 극형을 당하고 말았다네. 자네 역모에 관련된 사람의 식솔들이 어찌 되는지 아는가? 심하면 구족을 멸하는 판결을 받아, 그 가문엔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게 되네. 당시 나의 할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죽음을 면치 못했으며, 오직 우리 집안에선 나와 내 여동생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네. 아버님의 절친한 친구였던 한 관리가 우리를 빼돌린 것이지. 대신 다른 천민의 아이를 형장으로 보내고……. 후훗, 난 처음 그자가 다른 이들을 대신 희생해 우리를 살린 것이, 아버지와의 의리 때문이라 여겼네. 하지만 그자가 나와 한 살 어린 여동생을 밀실에 가두고 나서야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 그자는…… 인간이 아닌 더러운 욕정의 탈을 쓴 돼지일세. 놈은 내가 보는 앞에서 그 어린아이를…… 마음껏 능욕했지. 그리고 내가 보며 자신을 증오하는 것을 즐겼네. 내 팔과 다리를 쇠사슬에 묶은 채, 내가 분노에 몸부림치는 것을 즐겼지. 그는 내 목숨을 미끼로 마음껏 내 동생을 능욕했네. 난, 난…… 크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네. 아무것도. 아무것도…… 단지 눈물을 흘리며 바라만 봐야 했지. 그놈이, 그놈이 내 동생을 괴롭히는걸……. 그러던 어느 날 그놈이 친구 놈을 데려오더군. 자기와 같은 취미를, 아니 오히려 그놈보다 더한 놈이었지. 크크, 그 더러운 자식이 나를 탐했으니……. 놈은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날 발가벗겼네. 그리곤 그 더러운 혀로 전신을 핥아 대더군. 소름이 끼쳤어. 당시 난 몸도 마음도 지쳐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았지. 하지만 전신을 훑듯 지나가는 소름에 불현듯 정신을 차렸네. 그리고 그놈을 죽였지. 크크, 옆에 있던 촛대로 힘껏 머리를 찍었네. 어려서부터 신력을 타고났거든. 아버님이 자랑하던 그 힘으로 녀석의 머리를 으깨 버린 후, 미친 듯 그곳을 벗어났네. 달리고 또 달렸지. 정신없이. 달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는가? 힘일세. 방금 그놈을 죽인 것은 힘이 있기에 가능하며, 지금 이 힘보다 더 큰 힘이 있다면 내 동생도 구할 수 있다 생각했지. 난 그 힘을 찾아 조선 전체를 떠돌았네. 그러다 아사 직전에 내 스승님을 만났지. 스승님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네. 단지 나에게 그러더군. 내 증오에 찬 눈을 보며, 힘이 필요하냐고? 크크, 난 힘이 필요하다 했네. 필요하다고 간절히 말했지. 그 답에 스승님께선 말없이 몸을 돌리더군. 따라오라는 듯…… 난 배고픔도 잊은 채 기어서 그분을 따라갔네. 기고 또 기다 결국 정신을 잃었고, 깨어나니 스승님이 그러더군. 근성만은 쓸 만하니 힘을 주겠다고. 그 말에 난 무릎 꿇고 우선 동생을 구해 달라 청했지. 하지만 스승님께선 일언지하에 거절하시더군. 크크, 처음부터 스승님은 내가 가진 증오엔 관심이 없었네. 그분께서 관심 있었던 건 오룡무를 참고 익힐 수 있는 근성이었지. 나 역시 내 힘으로 동생을 찾고 싶었기에, 더 이상 그분께 어떠한 부탁도 하지 않은 채 수련을 행했네. 그 고된 수련은 나에게 힘을 주었고, 난 스승님의 뜻대로 오룡무를 익힌 후 천문의 다음 문주가 되었네. 스승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겨 주셨던 오룡단 중, 화룡단과 수룡단을 복용함으로……. 그 다음은 어찌 되었을 것 같나? 훗,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불쌍하다는 듯……. 적성에 안 맞아, 동정은. 이런,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렀군. 스승님께서 돌아가신 후 난 그 아이를 찾아갔네. 드디어, 드디어 그놈에게서 내 동생을 구할 수 있단 희망에 부푼 채 말일세. 하지만…… 내가 그곳에 도착해서 본 것이 무언지 아는가? 크크, 내 동생의 썩은 육신이었네. 어느새 내가 온 것을 알고, 집안의 무사를 이끌고 다가와선 그자가 비웃듯 말하더군. 내가 이곳을 떠난 즉시 그 아이는 스스로 자결을 하였다고. 견딜 수 없었던 게지. 육신의 수치와 고통을 견딘 것이 모두 이 오라비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는데, 내가 없어지자 더 이상 그 고통을 견딜 이유가 없어졌던 게야. 이 못난 오라비를 구하기 위해 연명했던 목숨을 그 어린것이 스스로 끊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아무런 감정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네. 단지…… 죽이고 또 죽였을 뿐이야. 내 앞에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자들은 모두 죽였지. 그리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피바다 속에 홀로 서 있더군. 피 묻은 손으로 썩은 동생의 육신을 안은 채 말일세. 그 다음은 도망치듯 조선을 벗어났네. 산속에서 동생의 육신을 화장한 후 그 뼛가루를 품에 안은 채 바다로 향했지. 동생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바다. 그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중 아무 곳에나 숨어 탄 뒤, 항해하는 배 위에서 동생의 뼛가루를 흘려보냈네. 천천히…… 천천히……. 그리고 나서 눈을 뜨니 남해도더군. 거친 풍랑에 의해 난파된 배에서 홀로 살아남은 내가 눈뜬 곳은, 생판 보지도 못한 남해도였지. 그 뒤는 자네도 알다시피 이 쓸모없는 놈을 구해 주신 아저씨의 객잔에서 일을 했네.’
‘……저한테 이 이야기를 해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라……. 글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뚜렷이 무엇이라 말해 줄 순 없군. 단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지도. 그동안 너무 답답했거든. 가슴에만 담아 왔더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네. 훗, 하지만 다른 자에게 말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더군. 그러던 찰나 오늘 이렇게 패하고 나니, 왠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네. 자네라면 왠지 말을 해도 될 것 같았거든. 자네라면 내 이 가슴속의 답답함을 풀어도 될 것이라 느꼈던 게지…….’
‘…….’
‘내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닐세. 내가 맨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 아이를 보았지. 내 동생과 꼭 닮은 그 아이. 그 아이를 보고 난 맹세했네. 그 아이를 지켜 주겠노라고. 내 친동생처럼 만들진 않을 것이라고…… 또한 나보다 약한 놈에겐 결코 그 아이를 넘겨 주지 않겠노라고 말일세. 하지만…… 자네는 자격이 있네. 자네라면 믿고 그 아이를 맡길 수 있네. 해운이란 했던가? 자네…… 나 대신 그 아이를 평생 지켜 주겠는가?’
“…….”
유선객잔의 불은 아직 밝혀져 있다.
그 불빛을 보며 선 목해운은 객잔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박건의 말을 떠올려 보았다. 그 말 중에는 이미 이은영이 가진 마음의 뜻이 깃들어 있어, 목해운의 잔잔하던 마음마저 흔들리게 했다.
그 흔들리는 마음속에서 목해운은 자신이 박건에게 던졌던 답을 떠올려 보았다.
거절.
명백한 거절의 뜻에 무미건조하던 박건이 얼마나 흥분했던가.
그러나 그 뒤에 흘러나온 자신의 말에 박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남자와 여자의 연이란, 누군가가 억지로 한다 해서 연결되는 것이 아니란 말에…….
그 말을 들은 박건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홀로 유선객잔을 향했다. 아마도 지금쯤 그는 먼저 객잔 안에 발을 들여 홀로 술을 마시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사랑이란 건 한 사람만의 감정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난 그녀를 이성으로 본 적도, 느낀 적도 없다.’
단지 유난히 밝고, 유난히 활기찬 그녀를 보고 있으면 절로 즐거워진다는 것뿐이다.
단지 그것뿐…….
“이 소저?!”
문득 긴 상념에 잠긴 채 유선객잔을 바라보던 목해운의 눈으로, 술기운이 올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밖에 나온 이은영의 모습이 비쳐 들었다.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찬바람을 쐬러 나왔던 이은영은, 예상치 못한 목해운의 부름에 머리가 아픈 듯 인상을 찡그렸으나 입가엔 반대로 환한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와 더불어 다가온 그녀는, 다짐하듯 목해운을 향해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목 공자님…… 언제라도 좋아요. 아무 때라도 좋으니, 이곳을 잊지 말고 꼭 다시 찾아 주세요! 언제라도……. 기다릴게요. 목 공자님께서 편안히 등을 기댈 수 있는 의자와 고된 여독을 풀어 줄 향긋한 차를 준비한 채 기다릴게요! 그러니까 꼭, 꼭 다시 이곳에 들러 주세요, 네?!”
“…….”
잔잔해진다.
마음을 어지럽히던 상념이 그녀의 말에 다시 평정을 찾으며 잔잔해진다.
그 편안함 속에 미소를 그린 목해운은, 기대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은영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환하게.
더욱 밝고 환하게 눈앞의 소녀가 웃을 수 있도록…….
‘형님…….’
아스라한 달빛 아래 기대어 선 여인의 눈은 눈밭 위의 두 남녀에게 고정된 채 움직일 줄 몰랐다. 어느새 서로 밝게 웃으며, 부끄러움을 장난으로 뒤덮으려는 듯 이은영이 던진 한 움큼의 눈에 의해 시작된 눈싸움.
양이 적으며 부드럽고 만지면 사라지나, 그 적은 것들을 뭉치면 하나로 굳어 드는 눈을 서로에게 던지며 시작된 눈싸움에, 철부지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두 남녀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그러나 그 보기 좋은 모습을 객잔 문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 채 바라보는 여인의 마음은, 알지 못할 감정으로 뒤덮였다.
서연.
취기가 어렸던 이은영을 돕기 위해 나왔던 서연은, 더 이상 두 남녀에게 다가서지 못한 채 하염없이 그들만을 바라본 채 서 있었다.
서산 너머로 기울었던 태양이, 다시금 동쪽 바다 위로 떠오르며 붉은 광망을 뿌린다.
그 붉은 빛줄기는 어둠을 걷어 내며 빛의 공간 속으로 세상을 이끄나, 목재 건물 속의 사람들은 간밤의 피곤을 이기지 못한 채 깊게 잠들어 있다. 모두가 깨어 새로이 시작된 아침을 바쁘게 오가는 중에도, 지독한 술 내음 속에 잠겨 든 유선객잔 안은 오직 누군가의 코에서 흘러나오는 코 울림소리만이 자장가처럼 건물 안을 떠돌 뿐이다.
그 시끄러운 잡음을 천상의 선율처럼 흘려들으며 깊게 잠이 든 수많은 사람 속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
마른 체구 위로 헐렁한 백의를 걸친 채, 허리엔 고색창연한 빛의 검을 찬 사내.
여인의 머릿결처럼 부드러운 선을 가진 사내는, 탁자를 베개 삼아 잠이 든 자부터 나무 바닥 위로 솟아오른 배를 드러낸 채 단잠에 빠져 든 이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뇌리에 새기듯 바라보았다.
이윽고 유선객잔의 주인인 이곽의 얼굴에서 그 시선을 멈춘 사내 목해운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작별을 대신했으며, 답이 없는 이곽을 향해 한줄기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몸을 돌려 객잔 밖으로 향했다.
순간.
“말없이 떠나려 하는가? 다른 자는 몰라도 그 아이는 자네를 원망할 것이네.”
“…….”
돌아본다.
천천히,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온 좌측 구석을 바라본 목해운은, 간밤과 같은 자세로 자음 자작하는 박건을 보며 부드러운 말을 흘렸다.
“그녀라면 절 원망치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가? 잘 가게. 아니…… 또 보세.”
“…….”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진다.
박건은 자신이 던진 말의 뜻을 알고 있다.
지금의 이별은 헤어짐이 아닌, 다시 찾아올 만남을 위한 것이란 걸.
그 뜻을 그녀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과의 약속을 위해서라도 기다릴 것이다.
편안히 기대어 쉴 수 있는 의자와 향긋한 차를 준비한 채…….
그리고 목해운 자신이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그때는 그녀에게 답을 전해 줘야 하리라.
모호함이 아닌 좀 더 명확한 답을.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녀에게 답을 전해 줘야겠지. 내 마음의 답을.’
그 답이 그녀에게 상처가 될지, 기쁨이 될지는 목해운 자신도 알지 못한다.
지금은……. 하지만 그때가 되면 알 수 있으리라.
그 답이 과연 무엇인지를.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
가벼운 목례와 더불어 흘러나온 목해운의 말에 박건은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입가로 흐릿한 미소가 그려졌을 뿐.
그 미소를 뒤로한 채 목해운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을 이용해 객잔 밖으로 나섰다.
여명(黎明).
붉은빛이 쏟아지는 아침의 한산한 거리 속으로 가녀린 인영이 선 채 객잔 밖을 나서는 사내 목해운을 맞이한다. 비록 볼품없는 흑의에, 남정네와 같이 긴 흑발을 틀어 올려 질끈 묶었으나, 그 머리칼 아래로 드러난 투명한 눈망울과 갸름한 얼굴형은 그녀가 사내가 아닌 여인임을 증명한다.
붉은빛 속에 신비스레 선 남장 여인의 모습에, 목해운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던졌다.
“연아…….”
“섭섭합니다. 형님께서 이 아우도 보지 않은 채 가려 하시다니…….”
살짝 토라진 듯, 비스듬히 고개 숙여 땅을 바라보는 서연의 모습에 목해운은 부드러운 말로써 그녀의 마음을 위로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 소저의 방에서 편히 잠들어 있을 널 깨우기가 싫었다.”
“절 위해서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절 당연히 깨우셨어야 합니다. 그것이 절 진심으로 위하는?!”
미소 짓고 있다.
평정심을 잃은 채 발끈했던 서연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미소 짓고 있는 사내의 모습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만두도록 하죠. 어차피 형님께서 정하고 형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니…….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십니까?”
“글쎄다……. 우선은 배를 타야겠지. 그리고 넓은 중원에 발을 디뎌 좀 더 많은 곳을 보기 위해, 걷고 또 걸어야겠지.”
“결국 형님께서도 자신이 어디를 갈지 모른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군. 그렇게 되는구나. 하하.”
멋쩍은 듯 웃음을 흘린다.
그 웃음에 속이 상한 서연이었으나, 마지막 희망을 안고 입을 열었다.
“용봉호투에는 참가하시겠지요?”
“용봉호투?”
짧은 이채가 감돈다.
서연의 질문에 고요하던 목해운의 눈으론 한줄기 이채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빛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듯 사라졌으며, 대신 닫혀 있던 목해운의 입이 열려 기다리는 서연에게 답을 전한다.
“가 볼 생각이다. 비록 참가는 안 하더라도, 내 안목을 넓히기 위해선 꼭 가 볼 생각이다.”
“정말이십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저도 이번 용봉호투에 스승님의 뜻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곳에서.”
“다시 보도록 하자꾸나.”
“……!”
환한 미소가 걸린다.
자신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친 목해운의 한마디에, 서연의 입가론 좀처럼 볼 수 없는 환한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와 더불어 힘차게 서연이 고개를 끄덕이니, 목해운은 다가가 그녀를 다독이듯 어깨를 두어 번 쳐 준 후 말없이 붉은 빛줄기 속으로 걸음을 놀렸다.
“…….”
무언의 인사를 전한 채 사라지는 사내의 모습.
그 등을 바라본 채 선 여인의 입가로 그려져 있던 미소가 천천히 사라진다.
미소가 사라지며 대신 두 눈엔 섭섭함이 이니, 마음엔 서운한 감정뿐이다.
‘끝까지 물어봐 주시지 않는구나.’
씁쓸한 미소와 더불어 자신의 의복을 돌아본 서연.
그녀는 어제와는 전혀 다른 자신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질문도 하지 않은 목해운의 무심함에 섭섭함이 일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았음인가.
문득 걸어가던 발걸음마저 멈춰 세운 채, 뒤를 돌아본 목해운의 입가로 빙그레 미소가 걸렸다.
“지금의 모습도 어울린다만…… 어제의 모습도 예뻤다.”
“……?!”
가볍게 손을 흔든다.
한마디 말과 함께 가벼이 손을 흔들어 보인 사내 목해운은, 다시금 몸을 돌려 앞에 펼쳐진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양 볼을 붉게 물들이며 고개 숙인 여인을 뒤로한 채…….
<『선무지로』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