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본 도서는 실제 인물, 사건, 배경, 회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설정, 인물, 장소 등은 전개상의 허구임을 밝힙니다.
프롤로그
두 사람의 거리는 겨우 한 뼘. 강욱은 뜨겁게 숨을 내뱉었다.
“눈물, 닦아 줘도 됩니까.”
그러자 이수는 기다렸다는 듯 작게 고갤 끄덕인다. 젖은 그녀의 눈이 느른하게 풀려 있다. 취기가 가시지 않은 걸까. 아니면, 꿈속을 아직 헤매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눈물을 닦아도 좋다는 그녀의 허락이, 그의 명치끝을 저릿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훔쳤다. 손끝에 닿는 액체가 뜨겁고도 차갑다.
“아.”
그리고 이수 역시 기다렸다는 듯 그의 손목을 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뜨겁게 흡입하고 탐한다.
“조금만 더 같이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
“그럴게. 근데…… 미안.”
“네……?”
“미안해, 차이수.”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말이 강욱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동시에 그는 무너지듯 그녀의 얼굴 위를 덮쳤다. 그의 달아오를 때로 달아오른 입술이 그녀의 여린 입술을 집어 삼킨다.
강욱이 자신의 입술을 덮치는 그 순간, 이수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팔을 그의 목에 두른다. 마치 오래전부터 갈망했었던 사람들처럼 키스했다.
참고 참고 꾹 참고.
서로를 내리눌렀던 두 사람은 욕망을 터뜨리듯 순식간에 엉겨 붙었다.
금방 불이 붙어 피어오른 불씨였지만 밤하늘의 달처럼 빛을 잃을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이수는 그 순간에도 끝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의 이유도 모르면서 강욱은 그녀의 눈물에 다정히 굴었다. 강욱은 본능적으로 그녀의 뺨을 쓸며 그 뜨거운 눈물을 닦아 냈다.
‘울지 마.’
온힘을 다해 그녀를 위로하는 그였다.
사고일까, 실수일까.
아니면 서로를 향해 기우는 이 마음을 주체 못해 욕망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일까.
이수는 울면서 그의 품속으로 더 파고들었고 강욱 역시 그녀를 달래듯 다정히 보듬었다.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 이 키스의 끝이 후회라고 할지라도 두 사람은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원초적 상태로 돌아간 듯, 나체로 서로를 바라본다 해도 부끄러움 따윈 못 느낄 듯했다.
“하……읏.”
이수는 그의 입술을 받아들이고 삼키면서도 끝없이 고뇌한다.
하지만 강욱은 그런 그녀의 갈등을 해소시키듯, 시리고 따뜻하게. 혹은 다정하고 거칠게 그녀를 감싸 안았다.
황태자비 후보로 살아온 지난 시간 동안 이수는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했다.
거기엔 지극히 개인적인 연애도 포함됐다. 교제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수는 그마저도 숨겨야 했고 대내외적인 황태자비 후보였기에 사생활도 관리 당해야만 했다. 오로지 황태자비 후보로서 살아왔다. 그런데 키스라니.
이수는 스스로도 자신이 건전하고도 건조한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지금 이 순간, 이수는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자신의 행동에 묘한 일탈감마저 느끼고 있다.
고작 이게 뭐라고.
이 입맞춤 한 번이 뭐가 어려웠을까.
막상 그와 입을 맞추고 보니, 별거 아니란 생각도 들면서도 무서웠다.
참, 우습다. 평생 자신을 끝없이 괴롭혔던 황태자비란 고고한 타이틀이 무자비하게 허물어지고 있는 순간이다. 이렇게 허무하고 황망하게.
“……하.”
두 사람의 입술이 잠깐 떨어졌다. 터지듯 참았던 숨이 그와 그녀의 잇새에서 터지고 서로는 서로를 분주히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까,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수가 그 찰나에 고민했지만, 이내 그녀의 말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강욱이 그녀를 다시 삼켰다.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첫 일탈이, 이 남자라서. 아니, 어쩌면 이 남자였기에 가능한 탈선일지도 모르겠다.
강욱은 이수의 입술을 살금살금 담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예민하고 가볍게 빨아들이다가 깊은 파도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보드랍게 훑었다. 키스 하나에 고통뿐이었던 지난 나날을 위로 받는 기분이 든다.
정말 위로 받고 싶은 밤이었는데…….
끝을 잡고 싶은 밤이, 끝없이 깊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