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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이수는 망설임도 없이 휴대폰의 불빛을 의존한 채, 단층이었던 테라스 담을 넘었다. 그러곤 그대로 침소 의대와 침실 슬리퍼를 신은 채 태자궁을 향해 달렸다.

여전히 빛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발바닥에 닿는 찬 기운이 제법 스산했다.

“마마, 어디 계시옵니까, 마마!”

어렴풋이 김 상궁이 그녀를 찾는 음성도 들려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소복을 움켜쥔 채 태자궁으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황태자비로 간택이 되어 입궐해 딱 한 번 인사를 나눈 적 있는 태자였다. 하지만 이수는 직감했다. 태자궁에서 들려온 그 비명은 황태자, 이강의 비명이었다는 것을.

“마마! 어디 계시옵니까!”

그녀를 찾는 외침이 사방에서 들려왔지만 이수는 멈출 수 없었다. 어둠도, 그리고 스산한 기운도 이수를 막지 못했다.

비명을 들은 궁인들도 모두 혼비백산이 되어 태자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무리에 이수가 포함되었다.

“황태자비마마!”

소복 차림의 이수가 태자궁으로 헐레벌떡 달려오자, 우왕좌왕하고 있던 태자궁의 궁인들은 모두 고개를 조아렸다.

“무슨 일입니까. 대체 방금 그 소리는 무엇이었사옵니까.”

이수는 태자궁 앞에 막아서는 궁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무래도 태자 전하께 변고가 생기신 것 같은데!”

소복 자락을 꾹 쥔 채, 태자궁을 헤집고 들어섰다.

이수가 막, 굳게 닫혔던 태자궁의 문을 여는 순간.

“아…….”

거짓말처럼 궐이 밝아졌다. 그녀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황태자를 찾기 위해 연신 두리번거렸다.

그때, 이수의 눈앞에는 호위대에 둘러싸인 황태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태, 태자 전하! 황태자 전하……!”

이수는 호위대를 뿌리치고 황태자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의 시야에 담긴 태자는 온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피범벅이 된 채 바닥에 널브러진 그였다. 그녀는 그대로 태자를 끌어안았다.

“전하! 전하 정신 차리시옵소서! 태자 전하!”

이수의 소복에 태자의 검붉은 피가 얼룩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피범벅이 된 태자를 끌어안았다.

너무 놀라,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황태자비마마…… 으악!”

뒤이어 들어온 궁인들 역시 충격적인 모습에 모두 바닥 위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태자 전하! 눈을 뜨시옵소서, 태자 전하!”

이수는 칼에 찔린 듯 피가 넘쳐흐르고 있는 태자의 옆구리를 압박했다.

그제야 심각한 상황임을 깨달은 궁인들이 혼비백산 되어 황제와 황후, 그리고 어의를 부르기 위해 달음박질쳤다.

“전하, 눈을 뜨셔야 합니다, 전하!”

이수의 절규에도 그의 숨소리는 희미해지고 있었다.

태자를 직접 대면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런데 이런 처참한 모습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내일이면 국혼인데.

허망하게 눈을 감으려는 태자를 이수가 품에 끌어안으며 절규했다.

“제발! 눈을 뜨세요, 전하!”

“차……이수…….”

온몸을 파르르 떨며 태자를 끌어안고 있던 이수의 귓전에 그의 음성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수는 황급히 태자의 얼굴에 귀를 갖다 대었다.

“……도망 가.”

“예, 예?”

“도망 가……. 제발.”

생사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태자는 힘겹게 그 말을 내뱉고 있었다. 두 사람의 숨이 격렬하게 섞이는 순간이었다.

“궐에서…… 멀리멀리……. 그래야 네가…… 살아.”

“전하! 전하를 이리 만든 자가 누구이옵니까! 누구냐구요, 대체!”

이수를 힘겹게 쥐고 있던 그 손이 툭, 찬 바닥 위로 떨어졌다. 그녀가 끊임없이 그의 몸을 흔들어 보았지만 태자는 그렇게 눈을 감고야 말았다.

다급히 달려온 의료진이 의식을 잃은 태자를 에워쌌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이 태자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것을.

그녀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허망한 듯, 그의 피로 범벅이 된 소복을 내려다보았다. 이수의 눈에서 눈물이 톡, 떨어져 내렸다.

“흑…… 전하, 태자 전하.”

때마침 기함하며 태자궁을 찾은 황후와 황제는 피범벅이 된 채 의료진에게 둘러싸인 태자와 그 앞에서 오열하고 있는 이수를 발견했다.

황후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황후마마!”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입을 틀어막았다.

황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태자를 향해 달려갔다.

“태자! 태자!”

“폐하, 흐윽……. 전하께서, 전하께서!”

내일은 대한제국 황태자의 국혼이 성대하게 열리는 경사스러운 날이다.

그런데…… 황태자의 국혼 하루 전날 밤, 제29대 황태자 이강이 살해당하고 말았다.



♔ ♔ ♔



모든 것은 단 30분 만에 종료되었다.

태자의 마지막 비명이 태자궁을 흔들고 정확히 30분 뒤, 밤 10시 5분에 태자의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그 비보는 대한제국을 넘어 전 세계에 ‘특보’로 퍼져 나갔다. 태자의 죽음은 대한제국을 넘어 온 세계를 혼란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궐 앞은 해외 특파원을 포함한 취재진과 국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궐 안팎으로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희붐한 어둠 사이로 곡소리가 처연하게 울려 퍼졌다.

한때 전시에 따르는 데프콘(*전투준비태세)을 발령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자의 사망 원인이 테러가 아닌 궐내에서 일어난 단순 살해라는 것이 드러나자 반포되었던 데프콘은 거두어졌다.

한마디로 대한제국은 아비규환이었다.



그 시각, 궐 안.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감찰 궁인을 포함한 경찰들이 궐 안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었다.

황실은 살벌한 긴장감으로 잔뜩 예민해진 상태였다. 걸음을 재촉하는 궁인들의 얼굴엔 저마다 비통함과 참혹함이 번졌다.

긴급으로 마련된 감찰궁(監察宮) 안에서는 태자를 살인한 용의자를 찾기 위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대한제국 건국 이래, 궐 안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황태자 살인 사건이라니. 이것은 가히 충격과 혼란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황태자 살인 사건’은 그 타이틀 만큼이나 수사 또한 타이트하게 이루어졌다. 경찰이 아닌 검찰이 직접 사건을 맡는 직수 사건으로 수사의 방향이 결정되었다. 감찰부와 서울중앙지검이 협력하여 수사가 진행되었다.

“모든 살인 사건이 그렇듯, 초동 수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정전되기 직전까지의 CCTV, 최근 한 달여간 궐 내를 출입한 외부인, 내부인 명단, 증인, 증거 최대한 오염되지 않게 확보 부탁드립니다.”

검찰 총장의 진두지휘 아래 서울중앙지검의 에이스들로 팀이 긴급으로 꾸려졌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담당 부장 검사가 입을 열었다.

모두 고개를 숙인 채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그때였다.

“죄송합니다.”

서울중앙지검의 천재 검사로 알려진 윤강욱이 흐트러진 넥타이를 고쳐 매며 감찰궁 안으로 황급히 들어섰다.

퇴근 후, 모처럼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는 갑작스러운 호출에 다급하게 입궐하였다. 채 마르지 않은 검은 머리칼은 바람에 한껏 흐트러져 있었다. 촉촉이 젖은 자연스러운 컬은 어쩐지 강욱의 차갑고도 시니컬한 이미지와 제격이었다.

“왔나, 윤 검.”

그는 동료들에게도 인정받는 에이스였다. 매번 현장을 직접 확인하며 일을 하며, 혀를 내두를 정도의 냉철함과 허를 찌르는 고도의 심리전으로 사건을 해결했다.

하지만 그가 가진 것 중 제일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꼽으라면 모두가 하나를 일컫곤 했다.

감찰부 안의 사람들은 모두 넋을 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 천재’란 별명이 말해 주듯 그의 황홀한 외모였다.

현실감 없이 잘생긴 그의 얼굴과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환상적인 피지컬은 정말 말 그대로 ‘천재’였다.

강욱은 붉은 자신의 입술을 질끈 깨물며 시계를 확인했다.

“태자 전하의 최후를 최초 목격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매끈한 그의 입술 사이로 딱딱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태자궁의 호위대가 먼저 발견했어.”

“우선 호위대 모든 인원들의 알리바이를 사건 시각 전후로 빠짐없이 조사해야겠네요.”

말을 마치며 강욱이 셔츠 소매를 걷으며, 노트북 앞에 앉았다.

“태자궁 1차 수사는 마쳤을 거고……. 거기서 발견한 증거물은 없었습니까?”

그러자 곁에 서 있던 수석 검사가 머뭇거리며 강욱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왜죠?”

미묘하게 달라지는 공기에 강욱의 반듯한 눈썹이 일그러졌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매서운 강욱의 눈빛에 수석 검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게……. 증거품이라기보다는 태자 전하의 근처에 있던 이상 물건이.”

“말씀하세요.”

“혼례를 앞둔 예비 황태자비인 차이수 씨의 소지품이거든.”

황태자비마마란 말에 강욱은 일순 굳어지고 말았다.

“그게 무슨.”

“태자궁에서 발견되지 말아야 할 물품이었다. 황태자와 한 번도 접촉한 적 없었던 차이수 씨의 립스틱이 발견되었어.”

“립스틱이라면…….”

강욱의 붉은 입술이 힘없이 일그러졌다.

“그 자리에서 차이수 씨는 본인 것이라고 증언했고.”

동료 검사의 말에 이상하게도 감찰 궁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차가워지고 있었다. 강욱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탐스러운 잇새로 흘러나온 음성은 차갑기 그지없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이상 물건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는 다들 아시죠.”

강욱은 사건을 요약 정리한 파일을 거칠게 거머쥐며 동료 검사들과 감찰 궁인들을 돌아보았다. 모두 그 얼굴들이 딱딱하게 굳은 채였다. 강욱 역시 평소와는 사뭇 다르게 말을 힘 있게 내뱉지 못했다.

그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만 아무도 강욱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상 물건이 의미하는 바.

길어지는 침묵에 냉정을 되찾은 강욱이 모두가 꺼려 하는 그 말을 씹어뱉었다.

“용의자가 남긴 치명적인 실수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