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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수석 검사는 잠시 멍해진 강욱 곁으로 다가가며 곤란하다는 듯 이마를 매만졌다.

“근데 문제가 있어. 태자 전하께서 살해당하기 직전에 궐의 모든 전기가 나갔다는 거야.”

“그렇다면 당연, CCTV에는 살해 장면이 찍히지 않았겠고.”

용의자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증거물이 공중으로 증발했다는데도 강욱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며 사건을 정리한 파일만 뒤적일 뿐이었다.

감찰 궁인들은 모두 참담한 얼굴로 검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감찰부를 이끄는 김 팀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희 쪽에서 확보한 증언은…… 사건 당시, 별궁에 계셔야 할 황태자비마마께서 태자궁에 있었단 것입니다.”

“별궁?”

강욱이 무심한 얼굴로 감찰 김 팀장을 돌아보았다.

“태자궁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당시 별궁의 김 상궁은 정전이 되자마자 황태자비마마를 급히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태자궁의 궁인들도 어둠 속에서 황태자비마마가 갑자기 나타났다고 다들 입을 모았습니다. 별궁 쪽에서 왔다는 말도 있고, 태자궁 안에서 뛰쳐나왔단 말도 있고……. 정전이 된 상태라 다들 정확히 본 것은 아닙니다.”

그 말에 곁에 있던 동료 검사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태자의 시신을 직접 끌어안은 것도 황태자비마마라고…….”

“당시 소복을 입고 계셨는데 그 소복에 황태자의 피가 잔뜩 묻어져 있었거든. 그게 처음부터 묻어 있었는지조차 확실치 않아. 궁인들 모두, 경황이 없어 우왕좌왕할 때라. 아무래도 용의자로 의심해 볼만해. 태자를 살해하고 소복에 묻은 피를 감추기 위해 다시 태자의 시신을 끌어안은 정황일 수도…….”

동료 검사의 말에 강욱이 입술을 질끈 물었다.

“추측일 뿐이잖아.”

“어? 아, 뭐 그렇지.”

“물증 없인 함부로 추측하지 마. 여기 궐 안의 모든 사람이 유력 용의자고 동시에 목격자가 되는 거니까.”

“그건 그렇지만.”

“냉정하게 하자고. 그런 추측. 지금은 이런 상황에선 수사에 혼란만 더 할 뿐이라는 거 잘 알잖아.”

강욱은 파일을 거칠게 덮으며 감찰 궁인들을 돌아보았다. 그의 잘 뻗은 눈매가 매섭게 빛났다.

“그래서 지금 황태자비마마께선 어디에 계십니까.”

그때였다.

그의 물음이 끝나자마자 감찰궁 안으로 한 여자가 휘적휘적 들어섰다.

그녀는 강욱 앞에 반듯이 서서는 고개를 숙였다.

“황태자비마마라뇨.”

“……?”

“국혼도 치루기 전에 황태자 전하께서 승하하셨으니 태자비 후보일 뿐이지요.”

싸늘한 음성에 강욱은 헛웃음이 일 것만 같았다.

검사들은 심상찮은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한 인물을 똑바로 응시했다.

“안녕하십니까, 황후전의 비서 팀장이자 황실 궁인들을 총괄하는 실장, 최미연입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일정하게 벌어졌다, 오므려지기를 반복했다.

강욱은 그런 최 실장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 한 톨도 흐트러지지 않은 반듯한 외양만큼이나 그녀의 성격도 꽤 깐깐할 것 같았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금 건조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수석 검사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강욱을 돌아보았다.

“차이수…… 아가씨겠죠? 황태자비의 교지를 받지 못하였으니.”

“그래서 어디에 계십니까, 지금 그분.”

미사여구는 듣기 싫다는 듯 강욱이 최 실장의 말허리를 잘랐다.

순간 최 실장의 이맛살이 슬쩍 찌푸려졌다.

“별궁에 계십니다. 외부인과의 접촉은 금지된 상황이고요.”

“격리되어 있단 말씀입니까?”

“예. 어찌 되었든 태자 전하의 마지막을 함께한 목격자이시고 또한 아가씨의 물품이 그곳에서 발견되었으니…….”

더 이어져야 할 그 말을 채 잇지 못한 채 그녀가 머뭇거렸다. 감찰궁 안의 공기는 삽시간에 싸늘해지고 말았다. 끝맺지 못한 말을 감찰궁 안의 모든 사람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욱이 건조하게 최 실장을 향해 말을 건넸다.

“지금 상황으로는 안타깝게도 태자비 후보였던 차이수 씨께서 용의자 후보로 전락하였네요.”

어쩐지 그 말을 하는 강욱의 음성에 비웃음이 슬쩍 묻어나 있는 것도 같았다. 최 실장의 기분이 이상하게 언짢아지고 있었다.

“유감이지만 현재 궐은 차이수 아가씨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실행 중입니다.”

“유일한 증인을 보호하겠다는 것입니까, 아님.”

“……?”

“유력한 증거를…… 훼손시키지 않겠다는 것입니까.”

유력한 증거 앞에 ‘살해 용의자의’라는 말이 삭제됐다는 걸 그녀는 눈치챘다.

또한 그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욱이 저를, 그리고 이수를 용의자로 생각하고 있는 궁인 모두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라고.

고고하던 최 실장의 귀 끝이 빨개졌다.

“제가 만나 보죠.”

“수사는 내일부터라고 전해 들었습니다만.”

“그럼 해가 뜰 때까지 차이수 씨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합니까?”

“그런 것이 아니오라.”

“그런 것이 아니면 제가 가겠습니다, 별궁에.”

“외부인과 접촉을 금하라는 황제 폐하의 명이 있으셨사옵니다.”

“아, 그렇다면 제 소개가 늦었군요.”

“……?”

“저는 이번 황태자 전하의 살인 사건을 수사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별팀 윤강욱 검사라고 합니다.”

“예?”

“자, 이제 그럼 전 내부인이 되었겠죠?”

싸늘하게 그 말을 남긴 강욱이 그녀를 두고 걸음을 옮겼다.

그를 바라보고 있던 검사들은 벌겋게 달아오르는 최 실장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참았다.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를 쓰는 그녀의 모습이 꽤 볼만했다.

“제가 차이수 씨를 만나고 오겠습니다.”

“정식 수사는 내일이야. 결례되지 않게 간단하게. 알았나?”

“예, 부장님.”

강욱은 부장 검사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선 감찰궁을 나섰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최 실장이 뚫어지라 응시했다.



♔ ♔ ♔



“어……. 난 괜찮아요, 엄마.”

어둠은 걷혔지만 이수의 세상은 여전히 정전, 그 암흑 속이었다.

휴대폰을 애써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채 씻어 내지 못한 피와 비극의 흔적이 이수의 몸 곳곳에 남아 있었다.

―살인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니!

수화기 너머의 이수의 계모인 조 여사는 악을 질렀다. 그 고함을 모두 받아 내고 있는 이수의 얼굴엔 어쩐지 한 점 동요도 없었다.

“저는 괜찮아요…….”

이수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어쩌면 몸서리치게 무서운 이 상황에서 괜찮아지려고 그 말만 반복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널 왜…… 별궁에 가두었단 거니? 걱정하지 마, 이수야. 지금 네 아버지께서 궐로 가셨어. 곧 나올 수 있을 거야.

“저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 립스틱이 태자궁에서 발견이 되었어요.”

―지금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는 널 용의자로 몰고 있어.

“그러실 분들 아니세요. 아시잖아요, 얼마나 이성적이시고 현명한 분들이신지.”

―우리 그룹이 가진 권위와 명예를 이용하려 들 땐 한없이 현명하고 이성적인 사람들이지. 하지만 이용 가치가 없어진 건 가차 없이 버리는 이들이야. 교활하게 굴 거야.

“어머니.”

―그들은 널 비참하게 버릴 거다. 태자의 죽음에 이유가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이상 너는 그들의 원망과 원성을 받아 내야 할 거야. 왜냐고? 태자를 죽인 용의자가 잡히지 않았으니까! 이용 가치 없는 네가 사건의 범인이 되어서 비난을 받도록 조작할 거다. 그들은 지금 그럴 대상이 필요하니까!

흥분한 조 여사가 다시금 악을 내질렀다.

그 이야기를 모두 예상한 이수는 흥분하지 않았다. 고요한 그녀의 눈망울에 뿌옇게 눈물이 차올랐다.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지만, 그냥 가슴이 너무 아팠다.

“엄마.”

―걱정하지 마라. 넌 황태자비가 되기 위해 태어난 아이야.

“……그게 지금.”

―A&J 그룹이 황실에 어떤 존재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 줄 거야. 범인을 잡고 이강의 장례 절차가 끝나면 곧 다른 인물이 황태자로 올라갈 테지. 황제의 자리를 이을 후계자는 존재해. 그때를 노리면 돼.

“엄마, 태자 전하께서 돌아가셨어요.”

―…….

“전 어제까지 태자 전하의 비(妃)가 되려 했던 사람이에요. 제가 어떻게 다시 황태자비가…….”

이수가 더듬거리며 그 말을 내뱉었다. 가슴이 부서지고 무너져 자꾸만 목이 메어 왔다. 비릿한 피 냄새가 이내 그녀의 코끝을 찔렀다. 이수는 피로 물든 소복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국혼은 치러지지 않았다. 합방도 이루어지지 않았지. 한데 네가 왜 황태자비가 될 수 없어?

“어머니!”

―잊었니? 황태자비가 되면 네가 이룰 수 있는 것. 그걸 영영 놓고 싶은 거야?

“태자 전하께서 죽었다구요, 엄마. 그럼 저를 여기서 꺼내 주셔야죠. 엄마라면 그래야 하잖아.”

―이수야!

“전하를 제가 온몸으로 받아 냈습니다. 제 품에서 전하가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고요!”

그제야 이수는 소리를 내질렀다.

“죽을 것 같아요! 나도 곧…… 태자 전하처럼 죽어 버릴 것만 같아 무섭다구요!”

―이강이 죽은 거지.

“엄마!”

―황태자가 죽은 것은 아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이안(李安). 제2의 후계자, 그의 비가 되어라.

“어머니! 제발 그만 좀 하세요!”

―너는 아직 황태자비가 될 수 있단다. 그러니까…….

이수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양 볼을 거칠게 할퀴었다. 피에 젖은 무릎을 끌어안으며 그녀는 숨죽여 울고야 말았다. 감찰 궁인들이 별궁 밖을 경호하고 있을 것이니, 소리 내 울 수조차 없었다.

태자의 피가 고스란히 말라비틀어진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그녀는 입술을 악물었다.

“누가 나 좀 꺼내 줘. 궐에 있기…… 싫단 말이야.”

덜컹. 굳게 닫혔던 별궁 문이 열렸다. 이수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누구……!”

눈물에 젖어 뿌옇게 흐려진 시야 사이로 한 남자가 휘적휘적 들어섰다.

그녀는 벌벌 떨며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리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젖은 눈가로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는데.

“피 묻었잖습니까.”

갑작스럽게 나타난 남자는 이수의 손목을 턱 쥐었다. 놀란 그녀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누구세요.”

“윤강욱, 내 이름입니다.”

“아.”

“나가고 싶으시면 같이 가 드리겠습니다.”

이수라는 고적한 섬 하나에 강욱이란 나룻배 하나가 닿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소슬하던 그녀의 가슴에 깊숙한 파동이 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