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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셋이 무인도 가면 누가 제일 먼저 죽을 것 같냐?”
하민이 대뜸 방에 옹기종기 모여 게임기를 두들기고 있는 친구 둘에게 물었다.
20대 남자 셋이 한방에 모여 손바닥만 한 게임기를 두드리고 있는 광경.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모습이었지만,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러고 놀았다.
오늘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은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무인도의 숲>이었다. 2등신의 귀여운 캐릭터가 되어 무인도에서 살아남고 이웃과 친해지는 단순한 힐링 게임이었는데, 타 플레어어와 교류하는 통신 서비스가 있어 다들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하민의 뜬금없는 물음에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덩치가 곰처럼 커다란 곽도형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너, 하민이 아니냐?”
“뭐? 내가 왜?!”
“그냥 그렇게 생겼어.”
도형이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그에 하민이 눈살을 콱 찌푸렸다. 그냥 장난으로 물어본 거긴 했으나, 가장 먼저 죽을 것 같은 멤버로 꼽히자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민은 기분 나쁜 걸 억지로 숨기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이 새끼는 빡치게 하는데 뭐 있네……. 야, 돈 떨어져 봐. 나처럼 총명한 애가 살아남지.”
“제 입으로 총명하댄다. 쪽팔리지도 않냐?”
도형이 비웃듯 키득거리며 하민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밀었다.
딱히 아프게 민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게 더 기분 나빴다. 하민이 앙칼지게 도형의 손가락을 치워 내고 있을 때, 느긋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안유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왜, 하민이 잘 살아남을 것 같은데? 그것보다 나는 도형이 네가 제일 먼저 뒤질 것 같다.”
“뭐, 인마?”
도형이 기분 나쁘다며 발끈하자, 유현이 입꼬리를 부드럽게 말아 올리며 하민의 어깨를 손으로 감쌌다. 그리곤 목소리는 낮추지 않고 속닥거리듯 하민에게 말했다.
“영화 보면 저렇게 불같은 성격인 애들이 제일 먼저 죽더라고. 나랑 하민이는 오붓하게 집 지어서 잘살듯. 그렇지?”
“뭐야, 같이 가는 거였어?”
“당연하지. 하민이 없는 무인도를 내가 왜 가겠어.”
딱히 진짜 가자고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었는데 어느새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어찌됐든 가장 먼저 죽을 것 같은 멤버로 꼽히는 것보다야 이쪽이 훨씬 나았다.
하민이 유현이와 함께 킬킬거리며 웃자, 도형은 답도 없는 새끼들을 봤다는 양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 새끼들이 다 돌았나……. 야, 한번 가 봐? 가 보면 알 거 아니야. 누가 먼저 뒤지는지.”
곽도형이 대화를 하다 말고 갑자기 핸드폰을 가지고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는 모양새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하민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길 줄은.
***
맴, 맴, 매앰―.
“이게 뭔 일이야…….”
하민은 아침에 눈을 뜰 때까지만 해도 제게 이런 불행이 닥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여유롭게 대학교 여름 방학을 즐기며 셋이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잠들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자고 일어나니 집이 아닌, 나무가 우거진 숲 한가운데였다.
하민은 몸에 묻은 나뭇잎과 흙을 털어 내며 주변을 살폈다. 한국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빽빽하게 가득 찬 푸릇푸릇한 나무.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는지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섬? 섬인 건가?
하민은 혼자 지레짐작하다가 일단 널브러져 있는 녀석들의 몸을 양손으로 흔들었다.
“야야, 일어나 봐!”
“으음……, 뭐야?”
도형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민은 눈을 비비적거리는 녀석에게 다짜고짜 버럭 화부터 내질렀다.
“그렇게 자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여기 뭐야? 왜 이런 곳으로 데려왔어? 몰래카메라야?”
“뭔 개소리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도형이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하민을 쳐다봤다.
하민은 그의 시선을 받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얘가 억지로 납치한 게 아닌가? 그럼 유현이? 하지만 유현이는 그럴 만한 놈이 아닌데…….
시선을 반대쪽으로 돌리자, 잠에서 깬 유현이 놈도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역시 제가 왜 이런 곳에 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럼 어떻게 된 일이지? 이렇게 생생한 감각이 정녕 꿈이라는 건가?
하민이 머리채를 쥐어 잡고 있을 때, 도형이 말도 없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형이 망설임도 없이 어디론가 향하기에 하민은 다급하게 그의 옷가지를 붙잡았다.
“어, 어디 가?”
“여기 계속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여기가 어딘지 돌아다녀 봐야지.”
“…….”
자고 일어나니 이상한 곳에 떨어졌는데 저렇게 멀쩡할 수가 있다니. 상황 파악이 너무 빠른 거 아닌가? 하민이 당혹스러움에 눈을 깜빡이고 있는 사이 유현이 역시 일어났다.
너도? 유현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그가 붙잡고 일어나라는 듯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하민아, 같이 다녀오자.”
“……으응.”
하민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유현의 손을 맞잡았다. 혹 야생 동물이 서식하는 곳일지도 모르니 돌아다니는 것은 삼가고 싶었지만, 혼자 남는 게 더 무서웠다.
아는 것 하나 없이 주변을 둘러보자니 하민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유현에게 달라붙은 채 한껏 쪼그라든 몸은 사소한 것에도 기겁을 했다.
“으아아악! 뭐야! 저기서 푸드덕 소리 났어!”
“하민아, 그냥 새였어.”
“허어억, 뭐야! 방금 발목에 뭐 스쳤어!”
“하민아……, 풀이었어.”
그럴 때마다 유현이는 다정하게 괜찮다며 하민을 다독여 줬다. 반면 도형이 놈은 뭐가 불만인지 점점 미간 주름이 깊어져만 갔다.
연달아 이어진 비명에 도형은 결국 앞서가다 말고 뒤를 돌아 하민에게 버럭 언성을 높였다.
“시끄러워 인마! 너 때문에 내가 더 놀랐네.”
“흐어엉, 무서운 걸 어떡해!”
하민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으니 무서운 티를 내고 싶진 않았다. 그렇지만 무서운 걸 어쩌나! 저기 무성한 풀 사이에서 대뜸 독사가 튀어나와 저를 물어 버리는 장면이 머릿속에 자꾸만 그려졌다.
하민이 진심을 담아 울먹거리며 대답하자, 도형이 화낸 것이 허무하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참나, 그렇게 앙탈 부리는 것도 정성이다.”
“뭐? 이 새꺄, 너는 이게 앙탈로 보이냐? 벌써 고추가 시린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귀여워?!”
“이 새끼가 돌아 버렸나. 아오, 이 주먹만 한 놈을 때릴 수도 없고…….”
도형이 때리려는 시늉을 보이다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다시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하민이 그에 툴툴대며 슬리퍼를 찍찍 끌자, 유현이 그의 허리를 손으로 감싸고서 다정한 목소리로 달랬다.
“괜찮아, 하민아. 이거 꿈일지도 모르잖아. 게임처럼 별거 아닐 수도 있고.”
“으응…….”
하민이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이나 꿈이라기엔 오감이 너무 생생한 듯했지만,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하루아침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긴 했다.
그나저나 집에는 돌아갈 수 있을까? 하민은 아직도 이게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어 벌써 미래가 무서워졌다.
하민은 피부가 하얗고 연해서 뜨거운 볕에 금방 화상을 입었고, 힘도 세지 않았다. 더해 가장 큰 문제는 겁도 많고 벌레도 무서워하고 동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런 제가 이런 곳에 떨어지다니…….
유현이는 몰라도 도형이 새끼는 도와주지 않을 텐데…….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라인을 잘 타는 게 중요했다. 하민은 유현의 옷깃을 꽉 부여잡으며 신신당부했다.
“유현아, 너 나랑 같이 다녀야 해? 나 죽을 것 같으면 꼭 살려 주고?”
“그래, 그래.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어.”
유현이 듬직하게 웃으며 하민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유현이는 언질도 없이 갑자기 이런 곳에 떨어졌는데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먼저 앞장선 도형을 따라 걸음을 옮기자 곧 아주 자그마한 집 하나가 나왔다. 무인도 같은 곳에 웬 집이 있담? 하민이 혹 집에서 다른 사람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는데, 도형이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문을 열려고 했다.
저기에 식인종이라도 살면 어쩌려고……! 하민은 다급하게 도형의 손목을 붙잡아 행동을 저지했다.
“아니, 누구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막 들어가도 돼?”
“쫄리면 뒤지시든가.”
“야아……!”
아무래도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도형은 거침없이 문을 열어 버렸다.
도형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유현의 눈짓을 따라 하민도 집 안으로 들어가 안쪽을 살폈다. 다행히 식인종이나 다른 사람이 사는 흔적은 없었다.
좁은 원룸이었지만 그래도 무인도에 있는 집치곤 꽤 괜찮았다. 집 밖에는 불을 때는 아궁이도 있었다.
하민은 방 안쪽을 두리번거리다 이상한 기시감을 느끼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애들아, 그런데 이 집…… <무인도의 숲>이랑 느낌이 비슷하지 않아?”
왠지 눈에 익다 싶었는데 어디서 많이 본 구조였다. 요 며칠간, 그리고 어젯밤 자기 전까지 플레이했던 <무인도의 숲>이랑 느낌이 엇비슷했다. 생각해 보니 집 외관도 유사한데…….
하민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현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했다.
“와, 하민이 눈치 되게 빠르다. 그러게, 비슷하다.”
“…….”
도형이 놈은 별다른 말 없이 이곳저곳을 살필 뿐이었다. 하민은 그에 입술을 꾹 다물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설마…… 이거 게임 빙의라든지, 그런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