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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1. 중전 윤씨



“전하께서 오늘 밤 서온돌로 듭신답니다.”

한밤중 급히 달려온 대전 상궁의 기별에, 고요하던 중궁전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궁인들은 부산스레 임금과 왕비의 합궁 준비에 들어갔다.

치마저고리 차림이던 중전 윤씨도 면경을 들여다보며 잠시간 매무새를 가다듬는 것으로 준비를 마쳤지만 옷고름 아래의 가슴이 조금 가쁘게 오르내렸다.

본궁이시던 진성왕후께서 승하하시고 윤씨가 계비로 궐에 들어온 지 세 해가 지나도록 번번이 합궁일을 무시하시어 윤씨를 독수공방시키던 전하께서 이 밤중에 오신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전하께서 드디어 그녀에게서 후사를 보실 작정인 것이다.

전하께 후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진성왕후께서 소생을 남기지 못하시어 후궁에게서 낳은 장자로 하여금 세자를 세우셨으니.

한데 그 세자가 문제였다. 전하께서 윤씨보다 서른 해나 위이시니, 세자 또한 윤씨보다 다섯이나 많아 이미 약관을 훌쩍 넘겼다. 이른바 서연에 정진하고 조례에서 전하 곁에 앉아 정사를 배우고 익혀야 할 나이인 것이다.

한데 서연을 빼먹기 일쑤인 데다가 툭하면 궁인들을 패고 괴롭히는 등의 기행을 일삼다 못해 날로 심해져 대궐 내 두루 근심을 사니 큰일이었다.

성격이 불같으신 전하께서 아실까 다들 쉬쉬하였으나 그것도 한두 번으로 결국 전하의 귀에 들어가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불러다 엄히 훈계하시니 처음에는 좀 나아지나 싶었다. 허나 그것도 결국 헛일이었다.

세자의 생모는 세자에게 귀신이 씌었다며 비밀리에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였고 윤씨가 할 수 있는 것은 부지런히 절에 가 불공을 드리는 것뿐.

한데 그 모든 치성을 세자가 걷어차곤 하였으니. 이번에는 급기야 기생들을 궐로 불러들여 음탕한 연회를 즐겼다지 뭔가. 결국 오늘 전하께서 다른 왕자가 하나라도 더 있었다면 당장 폐세자 하고 말 터라고 한탄하셨다.

전하께서 지금껏 중전인 자신을 멀리하시는 이유를, 궐내에 떠도는 소문처럼 세자의 자리를 보전해 주기 위해서라고 여기고 있었다. 젊은 계비가 대군이라도 생산한다면 후궁 소생의 세자의 자리가 불안해질 테니까. 그래서 윤씨는 청상과부나 다름없는 독수공방을 참고 인내하였다.

한데 그 세자가 스스로 제 체모를 깎고 위신을 세우지 못하니, 전하께서는 늦기 전에 다른 후사를 보려 하심이었다. 바로 이 밤에.

“시위 듭시오.”

저하께서 당도하셨다. 윤씨가 상석에서 내려서자, 분합문이 열렸다. 시선을 바닥으로 한 채 옆으로 물러서자, 쿵쿵 묵직한 발걸음이 중문을 넘어섰다.

이제 상석에 자리하시기를 기다리는데 어쩐 일인지 발걸음이 제 앞에 멈춰 섰다. 조아린 제 뒤통수를 내려다보시는가? 어째서? 허리를 펴고 옥안을 마주 보아서는 아니 되니 조금 더 기다릴까― 하는 순간.

킁.

윤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바로 제 귓가에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소리가 들려온 탓이다. 심지어 숨결이 제 살결에 와 닿자, 비슷한 기억까지 떠오르며 귀 털이 곤두섰다. 사내들은― 모두 이러는가? 먼저 여인의 냄새를 맡고 그러 해?

너무 놀라는 바람에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감히 전하께서 하시는 일에 그런 경망스런 반응을 보여서는 아니 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간신히 참았다. 어깨며 등허리가 경직되어 뒤로 물러나고 싶었지만 그도 안 된다. 윤씨는 눈마저 질끈 감았다.

차다 싶은 코끝이 목덜미에 스치는 듯하더니, 더욱 깊게 숨을 들이마시셨다. 그리고 내쉬는 숨결이 꽤나 만족스럽게 들렸다.

기수는 제대로 배설되었는지 수긴이며 요강 등은 제대로 갖춰졌는지 살피러 들어왔던 숙직 상궁이 아직 나가기도 전이었다. 전하의 그런 성급하신 행동에, 늙은 상궁이 움직임을 서둘렀다.

윤씨는 전하께서 제 얼굴을 들여다보시는 것을 느꼈다. 눈을 떠야 하나 말아야 하는 동안, 상궁이 마지막으로 용촛불을 끄기 시작했는지 감은 눈 바깥이 점점 어둑해졌다.

이윽고 숙직 상궁의 기척이 멀어지더니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이제 방 안에 전하와 단둘뿐이었다. 등에 오스스 소름이 돋는 순간, 방을 둘러싼 여러 문 너머에서 나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중전마마의 저고리를 벗기시옵소서.”

전하께 하실 일을 일러 드리는 상궁의 목소리였다. 드디어 시작인 것이다.

이영은 숨을 죽였다. 그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새긴 내용임에도 막상 실제로 접하고 보니 처녀의 수줍음과 두려움이 밀려온 탓이다. 한데.

전하께서는 움직임이 없으셨다. 상궁의 권유하는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서 사라지고도 남을, 한참 후에까지도 말이다. 다시 상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중전마마의 저고리 고름을 푸시옵소서.”

재촉하는 내용이 마치 문틈 사이로 방 안을 들여다보고 있기라도 한 양이었다.

어인 일인지, 그래도 전하께서는 미동도 없으시다. 여전히 합궁을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가? 이영은 혹시 전하께서 이대로 나가 버리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마저 일었다.

급기야 참던 숨을 쉬어야겠는데, 너무 크게 쉬면 전하께 들릴 터이니, 아주 조용히 들이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벌리던 순간, 윤씨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날 정도로 헛바람을 들이켜고 말았다.

갑자기 다가온 손이 제 저고리 고름에 닿은 것이다. 아니, 닿은 것이 아니라― 조금 전 머뭇거리신 것에 비하면 뜯듯이 잡아당기시니, 이영이 혼비백산하였다. 순식간에 분홍 겉저고리가 벌어지고 그 안에 노란 속저고리가 드러났다. 그때 짜증 섞인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뭐가 또 있어.”

옥음이 너무 낮아서 잘못 들었나? 하지만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속저고리를 열어젖히는 손길은 흡사 잡아 뜯는 것처럼 거칠었다.

뭐가 또 있냐니? 다른 여인들은 속저고리를 입지 않는가? 혹시 전하께서 가까이 하시는 후궁이나 나인들이 그러하다는? 그래서 자주 찾으시는 겐가?

“전하, 중전마마의 속저고리도 벗기시옵소서.”

이영의 그런 생각은 두 겹 저고리가 어깨 너머로 홱 젖혀짐과 동시에 하얀 가슴이 드러나는 순간 멈추었다.



“전하,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전하! 그만하시기를 청하옵니다!”

사방의 문 너머에서 들려온 상궁들의 청이, 기운 없이 늘어져 있던 윤씨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모로 뉘인 채, 허벅지가 가슴에 오도록 말아진 상태였고 수도 없이 몸 안을 짓찧는 움직임에 헐떡임이 목 끝까지 차올라, 간신히 숨을 쉬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터였다.

“전하! 옥체 상하실까 염려되옵니다!”

두 번째던가, 전하의 체액이 제 엉덩이 골로 흘러내릴 즈음부터 시작된 저 청은, 윤씨가 그 횟수를 셈하기를 포기한 지금은 간절함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누가 보면 상궁들이 곡을 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전하!”

거듭되는 간곡한 청에 이영도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비록 전하의 옥체보다 제 몸속이 먼저 상할 것 같은 우려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한데 말을 하거나 전하를 만져서는 아니 된다. 어쩌나 싶다가, 그래서 엉덩이를 앞으로 빼며 조금 멀어지기를 시도하였다. 순간, 무릎 뒤를 잡고 있던 전하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간지러움을 느낀 윤씨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홰홰 젓자, 제 어깨를 물고 있던 전하의 이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가 뿌리치려는 것으로 오해하시고 그를 막기 위해 위협하시는 듯.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쾅, 하는 굉음이 들려온 것이다. 이어 문살이 왁살스레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윤씨가 놀라며 몸을 와들 떨었지만, 바로 뒤에서 몸을 포개고 누워 계시던 전하는 꿈쩍도 하지 않으셨다.

설마, 전하께서 무언가를 집어 던지신 것인가? 아니, 그럴 리 없다. 세자를 혼내실 때에는 엄하시다 듣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폭력적인 분은 아니시라 들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소리인지.

윤씨의 그러한 의문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하께서 저의 몸을 덮다시피 하며 움직임을 다시 시작하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전보다 더 오랜 시간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깥서 들려오던 상궁들의 목소리가 뚝 끊긴 것으로 의문에 대한 답 또한 자연히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