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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본격적인 수련 (2)
갑자기 수련해야 할 내용이 늘어나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무슨 하이퍼링크도 아니고, 손을 갖다 대니까 다른 메뉴가 나오냐?”
준혁이 비급을 만지작거리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응?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메뉴는 많이 들어서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하이퍼링크는 또 뭐냐?”
야구 교본을 수련하면서 왠지 영어 공부에 눈을 뜬 것 같은 사부의 모습이었다.
“그건 많이 안 쓰는 단어니까 몰라도 될 거예요, 사부. 그나저나 이제야 원인을 알겠네요.”
“결국 이 숨겨진 초식까지 다 연마해야 한다는 거지?”
“네. 뭐 숨겨진 것도, 초식도 아니긴 하지만요.”
준혁은 이공자의 물음에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이놈아, 정해진 동작이 있으면 초식이지, 그게 아니면 뭐냐?”
“아, 그렇긴 하네요.”
“어쨌든 초식을 수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동작이다.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시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너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해서 응용할 수 있는 거야.”
“네. 잘 알겠습니다, 싸부!”
하여간 은근 잔소리가 심하다니까.
차마 말로는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는 준혁이었다.
“좋아, 그럼 오버핸드 스로는 이미 끝났으니, 사이드암 스로다.”
“흠, 근데 이거… 주로 쓰는 근육의 쓰임새도 다르고 숙련도도 달라질 텐데, 괜찮을까요?”
오버핸드나 사이드암은 팔의 각도 차이니 좀 괜찮다고 하더라도 언더스로는 메커니즘이 너무 달랐다.
준혁이 조심스레 물어보자, 이공자가 당당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서 나의 개량 스트레칭과 호흡이 중요한 거다. 대충 하지 않고 전심으로 한다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 정도 동작은 무공에 비하면 쥐똥만큼도 어렵지 않다.”
“아, 쥐똥! 명심하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이공자가 다시 말했다.
“혹시 모르니, 훈련이 끝나면 내가 몸을 좀 만져 주마. 아마 도움이 되겠지.”
“앗! 설마 추궁과혈? 내공 전달?”
추궁과혈이란 내공으로 혈도를 문질러 내상을 치유하는 방법의 일종인데, 내공을 전달해 주는 것이라 착각한 준혁이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다.
“제자야, 그럴 리가 있겠느냐. 그냥 네 몸을 약간 교정하거나 뭉친 근육을 풀어 주는 것이다.”
“아, 그럼 마사지군요. 뭐, 어쨌든 좋아요, 싸부.”
“마사지란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다.”
이공자가 졸지에 스승에서 마사지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
“자, 이제는 언더핸드 스로다!”
“다음은 세트 포지션이랍니다, 싸부!”
“스트라이드를 힘 있게 뻗어야 공도 힘 있게 날아가는 거라니까!”
“그렇게 견제를 하면 도루 못 하는 바보가 없겠네!”
“아악! 싸부님! 다리에 쥐났어요. 야옹, 야옹~”
“그게 커브냐? 아리랑 볼이지!”
“이 구질은 부상 위험이 크니, 근력 운동 추가다!”
“발차기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야! 야구도 중요하지만, 어디 가서 맞고 다니는 것도 안 된다!”
“투수도 공을 던진 후에는 수비수라고 하는데, 도대체 넌 정체가 뭐냐!”
“힘들다고 언더핸드로 던지면 안 된다! 구속도 안 나오고, 그러다가 다친다니까!”
“으아아악! 그런데 전 왜 이렇게 열심히 연습을 해야 하나요?”
“이것이 야구인가요? 아아악!”
“닥치고 달려! 달리기는 체력의 기본이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렇게 불꽃같은 훈련이 이어져 어느새 투수 파트도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집에서 혼자 점심을 먹은 준혁은 심심한 기분이 들었다.
“밖에나 나갔다 올까?”
준혁은 더 이상 예전처럼 허약하지 않다.
무엇보다 본인이 가장 많이 느끼고 있었다.
꿈에서의 훈련도 그렇지만, 혼자 있을 때마다 틈틈이 호흡법과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이 점점 더 건강해진 것이다.
아직 밖으로 터져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안으로 기운이 모이는 느낌이랄까.
한마디로 준혁의 몸은 크게 성장할 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었다.
마음을 정한 준혁은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내야수용 글러브와 야구공, 야구 배트를 힐끔 바라보았다.
며칠 전, 사고 치지 말라는 엄마의 당부에도 아빠는 기어코 선물이라고 들고 와 안겨 주셨다.
물론 아빠의 사랑을 느끼기는 했지만, 무대책인 것도 사실이다.
“단지 야구는 좀 안다는 말에 상의도 없이 저렇게 바로 사 오시다니.”
준혁이 꿈에서 야구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만약 엄마의 경고가 없었다면, 더 큰 사고를 쳤을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아빠가 너무 소심해졌는지 글러브를 하나만 구입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냥 넘어갈 엄마가 아니었다.
“야, 남일권. 글러브를 선물할 거면 두 개를 사서 같이 캐치볼을 해 주든가, 아니면 친구까지 구해 오든가 했어야지. 정 못 구하겠으면 친구까지 사 오든가!”
큰일 날 소리를 아무렇게나 내뱉는 엄마지만, 결국 아빠는 또 혼나고 말았다.
어쨌든 캐치볼을 하려고 해도 같이할 사람이 없어 글러브는 한동안 방에 처박혀 있었다.
“일단 나가자.”
상념을 접은 준혁은 검은색 트레이닝복의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는 모자를 눌러썼다.
“어?”
오랜만에 입어서 그런지, 팔과 다리 부분이 살짝 짧게 느껴졌다.
“키가 컸나? 앞으로 얼마 못 입겠네.”
그래도 아직은 그럭저럭 봐줄 만해서 그냥 입기로 했다.
글러브와 야구공 하나를 챙긴 준혁이 집 밖으로 나왔다.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파란 하늘.
따뜻한 햇살과 서늘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공을 공중으로 던졌다 받으며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지난번에 발견한 야구장이 나왔다.
“아, 여긴 다시 봐도 후지네.”
누가 들으면 섭섭해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준혁은 야구장을 향해 다가갔다.
지난번에는 사람이 없어 조용했는데, 오늘은 꽤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슬그머니 다가가 보니,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하얀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채 운동을 하고 있었다.
“어디 야구부인가?”
출입구 옆 철조망에 붙어 천천히 살펴보았다.
아이들은 이제 막 운동을 시작하려는 것인지, 여기저기서 캐치볼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이미 캐치볼의 고수가 된 준혁이 아니던가.
흥미를 가지고 아이들이 하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봤다.
“뭐야, 다들 왜 저래?”
개중에는 곧잘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엉성해 보였다.
공을 놓치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던지지 못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준혁의 눈에 거슬리는 것.
“하, 대체 저게 지금 뭐야?”
바로 자세였다.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저마다 제각각인 폼이 준혁의 눈에는 어설프게만 보였다.
물론 각자의 특성에 맞게 최적화된 폼으로 던지는 아이들도 있지만, 준혁은 아직 그런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어휴~ 저렇게 하면 안 되지. 보는 내가 다 답답하네.”
“뭐가 말이냐?”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준혁은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수염이 숭숭 난 털보 아저씨가 아이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서 있었다.
“우리 팀 아이들이 답답하다고?”
약간 화가 난 것인지, 목소리의 느낌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네? 아니, 그게 아니고요…….”
당황한 목소리로 얼버무리는 준혁을 놔둔 채 털보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철조망의 문을 열었다.
“어디, 잠깐 들어와 봐라.”
그러고는 준혁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아, 어떡하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소심한 면이 남아 있는 준혁이다 보니, 들어가면 왠지 야구 배트로 맞을 것만 같았다.
난처한 듯 눈알을 돌리고 있는 준혁의 모습에 털보 아저씨가 다시 말했다.
“안 혼낼 테니 들어와 보라니까. 사내자식이 왜 이렇게 겁이 많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공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제자야! 어디 가서 쫄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부끄럽게 행동하지 마라! 알았지? 그러라고 무술도 가르쳐 주는 거야! 맘에 안 들면 다 받아 버려!”
그래. 난 성질 급하고 목소리 큰 싸부의 제자다!
우리 싸부는 야구도 금방 배우는 사람이다!
쫄지 마!
나름 무림 고수인 사부가 들으면 어딘가 섭섭해 할 이야기였다.
포인트가 약간 이상하게 벗어나긴 했지만, 덕분에 마음을 다잡은 준혁은 고개를 들어 털보 아저씨를 바라봤다.
“겁이 많긴 누가 그래요?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런 거예요.”
아까보다 조금 큰 목소리로 대답한 준혁은 털보 아저씨를 따라 당당하게 야구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부님이 알려 준 권법의 초식을 하나둘 떠올렸다.
‘배트가 날아오면 팔을 뻗어 막으면서 몸통의 회전과 함께 발을 들고…….’
그러거나 말거나, 털보 아저씨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 좀 보기 좋네. 그나저나 넌 중학교 야구부니? 아니면 초등학교?”
“중학생이고, 야구부는 아닌데요.”
“그럼 혹시 리틀 야구팀에서 운동하는 거냐?”
아직 체구가 크지 않은 준혁은 약간 성숙한 초등학생으로도 보였지만, 혹시 몰라 물어보았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닌데요.”
순간,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털보 아저씨.
“흠, 그럼 어디서 야구를 좀 해 봤니?”
점점 곤혹스러워지는 질문에 준혁은 적당한 대답을 생각하느라 머리를 굴렸다.
꿈속에서 했다고 말하면 정말로 혼나거나 생사결의 결투를 벌여야 할 것만 같은 상황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아, 저희 삼촌이 야구를 잘하셔서 좀 배웠어요.”
졸지에 삼촌이 되어 버린 이공자이지만, 이 대답이 최선인 것 같았다.
나름 그럴듯했다는 생각에 웃음도 약간 나왔다.
한편, 예상치 못한 대답에 털보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준혁을 훑어봤다.
‘흠, 자세가 곧고 균형이 잡혀 있는 것이, 운동을 하는 몸 같은데…….’
준혁이 들었다면 기뻐할 만한 말이었다.
지금껏 힘들고 지루하게 이어 온 훈련의 시간들이 나름 의미 있었다는 것이니까.
물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준혁은 털보 아저씨를 그저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예상한 것과 똑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그럼 야구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놈이 우리 팀 아이들을 비웃었다는 것이군.”
어찌 보면 자신뿐 아니라 팀 전체가 무시를 당한 셈이니, 그럴 만도 했다.
리틀 야구.
초등학생이 주축인 리틀부와 달리 중학생이 주축인 주니어부는 사실 모든 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보통 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하거나 리틀 야구에서 두각을 보인 아이들은 중학교를 진학하면서 학교 야구부로 소속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 털보 감독이 이끄는 팀은 취미로 하는 아이와 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실력이 부족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제대로 야구를 배우지도 않은 놈한테 무시당할 만한 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건방진 꼬마 놈이군.’
일단 화를 내기 전에 테스트를 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부모님을 소환해서 자신의 팀에 가입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리틀 야구 주니어부는 항상 선수가 부족한 탓에 언제 어디서나 영업이 우선이니까.
털보 감독은 음흉한 계획을 숨긴 채 슬쩍 도발을 걸었다.
“어디 나의 팀을 비웃을 만한지, 확인 좀 해 봐야겠다.”
“네?”
“글러브를 끼도록 해라. 일단 캐치볼을 해 보자.”
느닷없는 털보 감독의 제안에 준혁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 보자면… 지금 다 큰 어른이 자신 같은 아이의 말에 어그로가 끌려 덤벼드는 상황인 것이다.
준혁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갑자기 캐치볼을 한다고요?”
“그래. 넌 나에게… 아니, 나의 팀에게 모욕감을 줬어. 과연 너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꼭 확인해 봐야겠다.”
본인 스스로도 억지라고 느끼는 털보 감독이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준혁을 팀에 끌어들이겠다는 영업 의지가 더 컸지만 말이다.
“아니요. 그러니까 캐치볼을 하는 건 좋은데, 갑자기 그러시면 안 되죠.”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큰 소리로 반박하는 준혁.
‘이런 건방진 꼬마 놈 봐라? 정신부터가 기본이 안 되어 있군.’
털보 감독은 지금까지의 마음과 달리 진짜로 화가 나려고 했다.
그래서 준혁에게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일단 스트레칭부터 해야 부상의 위험이 없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응?”
“전 야구를 정석으로 배웠거든요. 기본이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잠시만요.”
준혁의 말에 새삼 놀라는 털보 감독.
‘이놈, 기본이 제대로 박혀 있다.’
갑자기 수련해야 할 내용이 늘어나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무슨 하이퍼링크도 아니고, 손을 갖다 대니까 다른 메뉴가 나오냐?”
준혁이 비급을 만지작거리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응?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메뉴는 많이 들어서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하이퍼링크는 또 뭐냐?”
야구 교본을 수련하면서 왠지 영어 공부에 눈을 뜬 것 같은 사부의 모습이었다.
“그건 많이 안 쓰는 단어니까 몰라도 될 거예요, 사부. 그나저나 이제야 원인을 알겠네요.”
“결국 이 숨겨진 초식까지 다 연마해야 한다는 거지?”
“네. 뭐 숨겨진 것도, 초식도 아니긴 하지만요.”
준혁은 이공자의 물음에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이놈아, 정해진 동작이 있으면 초식이지, 그게 아니면 뭐냐?”
“아, 그렇긴 하네요.”
“어쨌든 초식을 수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동작이다.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시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너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해서 응용할 수 있는 거야.”
“네. 잘 알겠습니다, 싸부!”
하여간 은근 잔소리가 심하다니까.
차마 말로는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는 준혁이었다.
“좋아, 그럼 오버핸드 스로는 이미 끝났으니, 사이드암 스로다.”
“흠, 근데 이거… 주로 쓰는 근육의 쓰임새도 다르고 숙련도도 달라질 텐데, 괜찮을까요?”
오버핸드나 사이드암은 팔의 각도 차이니 좀 괜찮다고 하더라도 언더스로는 메커니즘이 너무 달랐다.
준혁이 조심스레 물어보자, 이공자가 당당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서 나의 개량 스트레칭과 호흡이 중요한 거다. 대충 하지 않고 전심으로 한다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 정도 동작은 무공에 비하면 쥐똥만큼도 어렵지 않다.”
“아, 쥐똥! 명심하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이공자가 다시 말했다.
“혹시 모르니, 훈련이 끝나면 내가 몸을 좀 만져 주마. 아마 도움이 되겠지.”
“앗! 설마 추궁과혈? 내공 전달?”
추궁과혈이란 내공으로 혈도를 문질러 내상을 치유하는 방법의 일종인데, 내공을 전달해 주는 것이라 착각한 준혁이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다.
“제자야, 그럴 리가 있겠느냐. 그냥 네 몸을 약간 교정하거나 뭉친 근육을 풀어 주는 것이다.”
“아, 그럼 마사지군요. 뭐, 어쨌든 좋아요, 싸부.”
“마사지란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다.”
이공자가 졸지에 스승에서 마사지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
“자, 이제는 언더핸드 스로다!”
“다음은 세트 포지션이랍니다, 싸부!”
“스트라이드를 힘 있게 뻗어야 공도 힘 있게 날아가는 거라니까!”
“그렇게 견제를 하면 도루 못 하는 바보가 없겠네!”
“아악! 싸부님! 다리에 쥐났어요. 야옹, 야옹~”
“그게 커브냐? 아리랑 볼이지!”
“이 구질은 부상 위험이 크니, 근력 운동 추가다!”
“발차기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야! 야구도 중요하지만, 어디 가서 맞고 다니는 것도 안 된다!”
“투수도 공을 던진 후에는 수비수라고 하는데, 도대체 넌 정체가 뭐냐!”
“힘들다고 언더핸드로 던지면 안 된다! 구속도 안 나오고, 그러다가 다친다니까!”
“으아아악! 그런데 전 왜 이렇게 열심히 연습을 해야 하나요?”
“이것이 야구인가요? 아아악!”
“닥치고 달려! 달리기는 체력의 기본이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렇게 불꽃같은 훈련이 이어져 어느새 투수 파트도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집에서 혼자 점심을 먹은 준혁은 심심한 기분이 들었다.
“밖에나 나갔다 올까?”
준혁은 더 이상 예전처럼 허약하지 않다.
무엇보다 본인이 가장 많이 느끼고 있었다.
꿈에서의 훈련도 그렇지만, 혼자 있을 때마다 틈틈이 호흡법과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이 점점 더 건강해진 것이다.
아직 밖으로 터져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안으로 기운이 모이는 느낌이랄까.
한마디로 준혁의 몸은 크게 성장할 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었다.
마음을 정한 준혁은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내야수용 글러브와 야구공, 야구 배트를 힐끔 바라보았다.
며칠 전, 사고 치지 말라는 엄마의 당부에도 아빠는 기어코 선물이라고 들고 와 안겨 주셨다.
물론 아빠의 사랑을 느끼기는 했지만, 무대책인 것도 사실이다.
“단지 야구는 좀 안다는 말에 상의도 없이 저렇게 바로 사 오시다니.”
준혁이 꿈에서 야구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만약 엄마의 경고가 없었다면, 더 큰 사고를 쳤을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아빠가 너무 소심해졌는지 글러브를 하나만 구입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냥 넘어갈 엄마가 아니었다.
“야, 남일권. 글러브를 선물할 거면 두 개를 사서 같이 캐치볼을 해 주든가, 아니면 친구까지 구해 오든가 했어야지. 정 못 구하겠으면 친구까지 사 오든가!”
큰일 날 소리를 아무렇게나 내뱉는 엄마지만, 결국 아빠는 또 혼나고 말았다.
어쨌든 캐치볼을 하려고 해도 같이할 사람이 없어 글러브는 한동안 방에 처박혀 있었다.
“일단 나가자.”
상념을 접은 준혁은 검은색 트레이닝복의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는 모자를 눌러썼다.
“어?”
오랜만에 입어서 그런지, 팔과 다리 부분이 살짝 짧게 느껴졌다.
“키가 컸나? 앞으로 얼마 못 입겠네.”
그래도 아직은 그럭저럭 봐줄 만해서 그냥 입기로 했다.
글러브와 야구공 하나를 챙긴 준혁이 집 밖으로 나왔다.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파란 하늘.
따뜻한 햇살과 서늘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공을 공중으로 던졌다 받으며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지난번에 발견한 야구장이 나왔다.
“아, 여긴 다시 봐도 후지네.”
누가 들으면 섭섭해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준혁은 야구장을 향해 다가갔다.
지난번에는 사람이 없어 조용했는데, 오늘은 꽤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슬그머니 다가가 보니,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하얀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채 운동을 하고 있었다.
“어디 야구부인가?”
출입구 옆 철조망에 붙어 천천히 살펴보았다.
아이들은 이제 막 운동을 시작하려는 것인지, 여기저기서 캐치볼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이미 캐치볼의 고수가 된 준혁이 아니던가.
흥미를 가지고 아이들이 하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봤다.
“뭐야, 다들 왜 저래?”
개중에는 곧잘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엉성해 보였다.
공을 놓치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던지지 못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준혁의 눈에 거슬리는 것.
“하, 대체 저게 지금 뭐야?”
바로 자세였다.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저마다 제각각인 폼이 준혁의 눈에는 어설프게만 보였다.
물론 각자의 특성에 맞게 최적화된 폼으로 던지는 아이들도 있지만, 준혁은 아직 그런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어휴~ 저렇게 하면 안 되지. 보는 내가 다 답답하네.”
“뭐가 말이냐?”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준혁은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수염이 숭숭 난 털보 아저씨가 아이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서 있었다.
“우리 팀 아이들이 답답하다고?”
약간 화가 난 것인지, 목소리의 느낌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네? 아니, 그게 아니고요…….”
당황한 목소리로 얼버무리는 준혁을 놔둔 채 털보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철조망의 문을 열었다.
“어디, 잠깐 들어와 봐라.”
그러고는 준혁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아, 어떡하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소심한 면이 남아 있는 준혁이다 보니, 들어가면 왠지 야구 배트로 맞을 것만 같았다.
난처한 듯 눈알을 돌리고 있는 준혁의 모습에 털보 아저씨가 다시 말했다.
“안 혼낼 테니 들어와 보라니까. 사내자식이 왜 이렇게 겁이 많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공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제자야! 어디 가서 쫄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부끄럽게 행동하지 마라! 알았지? 그러라고 무술도 가르쳐 주는 거야! 맘에 안 들면 다 받아 버려!”
그래. 난 성질 급하고 목소리 큰 싸부의 제자다!
우리 싸부는 야구도 금방 배우는 사람이다!
쫄지 마!
나름 무림 고수인 사부가 들으면 어딘가 섭섭해 할 이야기였다.
포인트가 약간 이상하게 벗어나긴 했지만, 덕분에 마음을 다잡은 준혁은 고개를 들어 털보 아저씨를 바라봤다.
“겁이 많긴 누가 그래요?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런 거예요.”
아까보다 조금 큰 목소리로 대답한 준혁은 털보 아저씨를 따라 당당하게 야구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부님이 알려 준 권법의 초식을 하나둘 떠올렸다.
‘배트가 날아오면 팔을 뻗어 막으면서 몸통의 회전과 함께 발을 들고…….’
그러거나 말거나, 털보 아저씨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 좀 보기 좋네. 그나저나 넌 중학교 야구부니? 아니면 초등학교?”
“중학생이고, 야구부는 아닌데요.”
“그럼 혹시 리틀 야구팀에서 운동하는 거냐?”
아직 체구가 크지 않은 준혁은 약간 성숙한 초등학생으로도 보였지만, 혹시 몰라 물어보았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닌데요.”
순간,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털보 아저씨.
“흠, 그럼 어디서 야구를 좀 해 봤니?”
점점 곤혹스러워지는 질문에 준혁은 적당한 대답을 생각하느라 머리를 굴렸다.
꿈속에서 했다고 말하면 정말로 혼나거나 생사결의 결투를 벌여야 할 것만 같은 상황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아, 저희 삼촌이 야구를 잘하셔서 좀 배웠어요.”
졸지에 삼촌이 되어 버린 이공자이지만, 이 대답이 최선인 것 같았다.
나름 그럴듯했다는 생각에 웃음도 약간 나왔다.
한편, 예상치 못한 대답에 털보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준혁을 훑어봤다.
‘흠, 자세가 곧고 균형이 잡혀 있는 것이, 운동을 하는 몸 같은데…….’
준혁이 들었다면 기뻐할 만한 말이었다.
지금껏 힘들고 지루하게 이어 온 훈련의 시간들이 나름 의미 있었다는 것이니까.
물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준혁은 털보 아저씨를 그저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예상한 것과 똑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그럼 야구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놈이 우리 팀 아이들을 비웃었다는 것이군.”
어찌 보면 자신뿐 아니라 팀 전체가 무시를 당한 셈이니, 그럴 만도 했다.
리틀 야구.
초등학생이 주축인 리틀부와 달리 중학생이 주축인 주니어부는 사실 모든 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보통 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하거나 리틀 야구에서 두각을 보인 아이들은 중학교를 진학하면서 학교 야구부로 소속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 털보 감독이 이끄는 팀은 취미로 하는 아이와 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실력이 부족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제대로 야구를 배우지도 않은 놈한테 무시당할 만한 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건방진 꼬마 놈이군.’
일단 화를 내기 전에 테스트를 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부모님을 소환해서 자신의 팀에 가입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리틀 야구 주니어부는 항상 선수가 부족한 탓에 언제 어디서나 영업이 우선이니까.
털보 감독은 음흉한 계획을 숨긴 채 슬쩍 도발을 걸었다.
“어디 나의 팀을 비웃을 만한지, 확인 좀 해 봐야겠다.”
“네?”
“글러브를 끼도록 해라. 일단 캐치볼을 해 보자.”
느닷없는 털보 감독의 제안에 준혁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 보자면… 지금 다 큰 어른이 자신 같은 아이의 말에 어그로가 끌려 덤벼드는 상황인 것이다.
준혁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갑자기 캐치볼을 한다고요?”
“그래. 넌 나에게… 아니, 나의 팀에게 모욕감을 줬어. 과연 너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꼭 확인해 봐야겠다.”
본인 스스로도 억지라고 느끼는 털보 감독이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준혁을 팀에 끌어들이겠다는 영업 의지가 더 컸지만 말이다.
“아니요. 그러니까 캐치볼을 하는 건 좋은데, 갑자기 그러시면 안 되죠.”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큰 소리로 반박하는 준혁.
‘이런 건방진 꼬마 놈 봐라? 정신부터가 기본이 안 되어 있군.’
털보 감독은 지금까지의 마음과 달리 진짜로 화가 나려고 했다.
그래서 준혁에게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일단 스트레칭부터 해야 부상의 위험이 없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응?”
“전 야구를 정석으로 배웠거든요. 기본이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잠시만요.”
준혁의 말에 새삼 놀라는 털보 감독.
‘이놈, 기본이 제대로 박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