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7화 강호출도 (1)
모든 일은 생각보다 쉽게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사부의 명을 받은 준혁은 다음 날 저녁, 부모님께 야구를 해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아니, 며칠 전에는 야구부 없다고 걱정 말라더니, 이제는 없는 야구팀을 찾아 들어가?”
“그렇긴 하네. 그래도 아빠는 찬성!”
준혁의 몸을 걱정하는 엄마는 걱정 섞인 반응을 보였지만, 아빠는 바로 허락을 해 주었다.
아니, 마치 본인이 야구를 하는 것처럼 흥분한 탓에 엄마에게 혼이 났다.
“좋아. 그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안 다치게 한다면 엄마도 허락할게.”
“고마워, 엄마. 그리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제 건강해져서 괜찮으니까.”
준혁이 힘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결국 그렇게 부모님은 준혁의 강호출도를 허락해 주었다.
“그래, 이 명함이라고?”
준혁에게서 명함을 받아 든 일권은 잠시 밖에 나갔다 오더니, 웃으며 말을 꺼냈다.
“이번 주 토요일에 가 보면 될 거야. 일단 적성을 확인할 겸 테스트는 한다더라.”
“고마워, 아빠.”
“뭘 이런 걸 가지고. 아빠는 준혁이가 건강하기만 하면 뭐든지 다 해 줄 수 있다니까.”
가슴을 내밀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일권의 모습에 준혁은 감사함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게다가 감독님도 좋은 사람 같아서 안심이 되네.”
“근데 어딘가 음흉스러워. 얼굴에 털도 많고.”
“그러냐? 좀 이상해? 그럼 취소할까?”
일권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핸드폰을 바라봤다.
“괜찮아, 그 정도는 아냐. 사람 자체는 좋아 보여.”
“다행이네. 아, 맞다! 준혁이, 너 혹시…….”
일권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삼촌 있었냐?”
“으응?”
갑자기 삼촌을 왜 묻지? 아!
준혁은 일권이 뭘 물으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뭐, 내가 모르는 삼촌이 있었다고 해도 이해해 줄 수 있긴 하지만, 좀 섭섭해서…….”
“아니, 이해하긴 뭘 이해해? 당연히 삼촌 없지.”
“그렇지? 근데 감독님이 자꾸 준혁이가 삼촌한테 야구를 배웠다 하기에 뭔 소리인가 했지. 하하!”
일권이 호탕하게 웃어 보이자, 준혁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하하하,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둘러댄 말이라.”
“그래? 뭐, 상관은 없지. 근데 야구를 배운 적이 있었어?”
궁금해하는 일권의 표정에 준혁은 순간 아차 싶었다.
생각지 않은 부분에서 디테일을 따지신다.
“응. 친구들하고 몰래 했어. 걱정할까 봐 말 안 했지.”
“그러냐? 역시 그렇게 운동을 해서 건강해졌나 보구나. 잘했네, 우리 아들.”
“그렇지, 아빠.”
역시나 우리 아빠는 디테일의 깊이가 얕다.
최고의 아빠다.
***
그렇게 리틀 야구단의 입단이 결정된 준혁은 남은 일주일간 열심히 수련해 투수 파트를 완전히 마스터했다.
역시 투수 파트 부분이 불타오르며 사라졌고, 이번에는 타자 파트가 활성화됐다.
“…지금까지의 자세는 신체의 모든 힘을 모아 최대한 강한 힘으로 정확하게 타격하기 위한 과정이다. 특별히 어떤 타격 자세가 정답은 아니니, 기본자세를 잘 숙지하고 자신에게 맞는 타격 폼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준혁이 타격 파트의 내용을 이공자에게 읽어 주었다.
“이것으로 이론 부분은 다 읽었습니다.”
“그렇구나. 이해했다.”
“오우, 역시 우리 싸부네요.”
준혁이 감탄하며 말하자, 이공자는 별것 아니라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는 기본이지, 그게 뭐 대단하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냐? 자, 그럼 이제 실제로 수련을 해야겠구나.”
“네, 싸부. 잠시만요.”
준혁은 얼른 덕아웃으로 들어가 배트와 헬멧을 두 개씩 가지고 나왔다.
이곳에 준비되어 있는 배트는 나무 배트였다.
배트와 헬멧을 이공자에게 건넨 준혁은 머리에 헬멧을 뒤집어쓰다가 문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무 배트를 한참 바라보는 이공자의 모습이 이상한 탓이었다.
몽둥이를 보더니 무림에서의 추억에 빠진 건가?
“왜 그러세요, 싸부? 예전에 쓰던 무기가 생각나서요? 히얍! 히얍!”
마치 검을 잡은 것처럼 두 손으로 자세를 취한 준혁이 물었다.
이공자가 그런 준혁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네 녀석은 정말 못 하는 말이 없구나. 됐고, 그러니까 이 방망이로 투수가 던진 공을 맞춰서 최대한 멀리 보내야 한다는 거지?”
“네, 맞아요. 저 담장을 넘기면 홈런이고요.”
준혁이 배트로 외야 관중석 너머의 담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실제 경기에서는 아홉 명, 아니, 포수를 제외하면 여덟 명이겠군. 그들을 피해서 공을 날려야 하는 것이고?”
“네, 맞습니다!”
“그리고 공이 잡히거나 베이스라는 곳에 공보다 늦게 들어가면 죽는다, 이 말인데…….”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말끝을 흐린 이공자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중얼거렸다.
“어렵군, 어려워.”
“맞아요. 사부도 잘 아시네요. 그래서 야구 해설자들이 하는 말이 ‘야구 어려워요’, ‘야구 몰라요’ 이런 거라니까요. 제가 첨에 이야기한 그거예요.”
준혁은 이제야 이공자가 야구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신이 난 목소리로 떠들었다.
그런 준혁을 다시 한 번 한심하게 바라본 이공자가 툭 던지듯이 말을 했다.
“다 넘겨 버리면 그만 아니더냐. 이게 시합이 성립되긴 하는 것이냐?”
“네?”
“쓸데없이 복잡해. 야구라는 것… 역시 난 이해가 안 된다.”
“네?”
“두 눈을 감고 공을 치는 것도 아닌데, 이걸 못 넘긴다는 것이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이공자의 표정을 살핀 준혁은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싸부.”
“쉽지 않긴. 좋다. 이제 투수 연습도 끝났겠다, 너도 공을 던질 줄 알겠지?”
“그렇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준혁에게 이공자가 손을 들어 마운드를 가리켰다.
“그럼 저기 가서 한번 던져 보아라.”
“네?”
“그만 ‘네, 네’거리고, 실전처럼 던져 보라니까. 뭐가 문제인지 알려 주마.”
이공자는 헬멧을 머리에 쓰고 배트를 들더니 타석으로 들어섰다.
“뭐 하느냐? 시간 없다!”
“네, 넵! 싸부!”
이공자의 재촉에 준혁이 마운드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말을 꺼냈다.
“싸부, 포수가 없는데요?”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다. 대체 포수를 왜 앉히는지. 차라리 저 앞쪽에서 수비나 시키는 게 훨씬 낫겠다.”
또다시 툴툴거리는 이공자의 말을 무시하고 준혁이 소리 질렀다.
“그럼 던질게요!”
내야의 중앙부에 솟아 있는 마운드.
홈 플레이트에서 18.44미터 떨어진 곳의 중앙에는 투수판이 있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공간.
준혁은 손에 가루를 묻힌 후, 발밑으로 로진백을 던졌다.
이어 오른발로 투수판을 밟고 자연스럽게 왼발을 뒤쪽으로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높이 치켜든 양팔을 가슴으로 내리면서 왼다리를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렸다.
공을 쥔 손을 자연스럽게 글로브에서 빼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뻗어 나오는 왼다리.
다리를 최대한 뻗으며 힘 있게 땅을 딛는 스트라이드 동작.
무게중심이 앞으로 이동하며 앞발로 힘이 전달된다.
양팔을 균형 있게 벌리며 시작된 투구 동작.
앞발로 모든 무게가 쏠리며 축적된 운동에너지가 오른팔로 이어진다.
쭉 뻗으며 릴리스 포인트를 최대한 앞으로 가져와 공을 채는 손가락.
그립은 패스트볼이었다.
손에서 공이 떠나며 자연스럽게 팔로우 스로 동작으로 넘어갔다.
마지막 한 줌의 힘까지 온전하게 공에 실어 보낸 후, 팔은 몸 중심축 뒤로 자연스럽게 향했다.
슈우욱!
힘 있게 회전하며 타석으로 날아가는 준혁의 공.
그 공을 노려보는 이공자.
이때만큼은 준혁의 사부가 아닌, 생사를 겨루는 무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거참, 죽기도 힘들군.”
오만한 눈빛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따아악!
야구장에 울려 퍼지는 경쾌한 소리.
나무 배트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소리를 토해 내며 타구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경기장 밖으로 사라졌다.
털썩.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쳐 날아가는 공을 보며 몸을 돌린 준혁은 털썩, 바닥에 무릎 꿇었다.
정중앙으로 곧게 날아갔다는 것은 공을 때리는 타이밍도 정확했다는 의미였다.
말 그대로 포수나 수비수가 일절 필요 없는 상황.
장외 홈런이었다.
“무릎 꿇지 마라! 어서 일어나라!”
등 뒤에서 들려온 이공자의 목소리가 준혁의 마음을 울리는 듯했다.
“사, 사부님.”
“당연한 결과에 좌절하지 마라! 유니폼 상한다!”
“…….”
그때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휙―
따아아악!
휙―
따아아악!
휘―
따아아악!
우타석에서, 좌타석에서, 심지어 한 손으로…….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찔러 보았지만, 모두가 소용없었다.
심지어 유인구로 던지는 볼까지 때려내는 이공자의 모습에 좌절을 넘어 경외심마저 들 정도였다.
“아아악! 받아랏!”
몇 개나 넘어갔을까?
굳이 셀 필요는 없었다. 모든 공이 넘어갔으니.
결국 눈이 돌아간 준혁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공을 집어 던졌다.
이때만큼은 제자가 아니라 적을 죽이기 위해 악에 받친 무인일 뿐이었다.
“죽어랏!”
하지만 분노가 너무 강했을까?
손에서 약간 빠져 버린 공이 이공자를 향해 강하게 날아갔다.
일명 헤드 샷!
“엇!”
일부러 노린 것은 아니었기에 준혁의 얼굴이 일순 새파래졌다.
“자세가 무너졌군. 하지만…….”
무심하게 바라보던 이공자의 눈빛이 바뀌었다.
“무릇 사내라면 그래야지.”
오히려 대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대해야 하는 법.
이공자가 꽉 움켜쥔 손을 펴자, 방망이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고는 눈앞까지 도달한 야구공을 향해 맨주먹을 힘 있게 내뻗었다.
“타아앗!”
퍼어어억!
굉장한 소리를 내며 공이 터져 버렸다.
그야말로 산산조각.
그렇게 박살 난 야구공의 잔해가 타석 주위로 퍼져 나갔다.
“싸, 싸부!”
그 놀라운 광경에 준혁은 할 말을 잃었다.
“그래, 상대를 죽이겠다는 그 기백만큼은 칭찬해 주마! 하지만 평정심을 잃은 마음은 정확한 자세를 취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로 인한 너의 실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야구장 전체로 울려 퍼지는 이공자의 목소리.
“명경지수! 언제든 흥분하지 않고 냉정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관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무릇 무인의 자세인 것을 잊지 말아라.”
“네, 사부님! 명심하겠습니다!”
준혁은 이공자의 가르침을 들으며 서서히 타석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어디선가 흘러온 바람에 야구공의 잔해가 흩어지듯 사라졌다.
“그런데 그걸 잘 아는 분이 처음에 저를 보고 검을 뽑으셨습니까?”
“…….”
“…….”
“아따~ 속좁네, 이 제자 놈.”
“제가 아직 어려서요.”
준혁은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은 만 12세였다.
그렇게 한 무인의 단순한 무력 과시가 끝나고, 다시 수련이 시작되었다.
웬일인지 다른 날보다 훈련을 일찍 끝낸 이공자는 방망이를 들고 준혁에게 다가왔다.
“저기 엎드려라.”
“…네, 사부.”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했다.
“역시 마음에 담아 뒀어, 그 헤드 샷. 과연 운동부와 빠따는…….”
낮게 중얼거리는 준혁의 옆으로 스트레칭 매트가 떨어졌다.
“너 지금 뭐 하냐? 이상한 자세 취하지 말고, 그 위에 배 깔고 엎드려라.”
“엥?”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달은 준혁은 얼른 매트 위에 바른 자세로 엎드렸다.
“내일이 그 야구팀에 가는 날이지? 시험이라는 것도 보고?”
“네, 싸부.”
대답을 들은 이공자는 준혁의 옆에 앉아 마사지를 시작했다.
“오늘은 내 특별히 내공까지 사용해서 마사지란 것을 해 주마. 아마 내일 도움이 될 것이다.”
툭 던지듯 시크하게 말하는 모습에 준혁은 감동했다.
“아… 싸부.”
“입을 열면 효과가 떨어지니, 가만히 마사지나 받아라.”
곧 따뜻한 기운이 지쳐 있는 근육을 감싸며 몸속 깊이 퍼져 나갔다.
이공자의 손이 닿는 곳마다 근육의 피로가 사라지며 시원함마저 느껴졌다.
‘아, 너무 좋다.’
온몸이 노곤하게 풀리는 느낌.
그렇게 이공자의 손길을 느끼며 준혁은 서서히 잠이 들었다.
***
예정된 테스트 날.
점심을 먹고 야구장으로 향한 준혁은 거의 밤이 되어 집에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힘겹게 앉아 신발을 벗는 준혁의 모습을 보며 일권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많이 늦었네. 잘 다녀왔니?”
“응.”
어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준혁이 일권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 일권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오늘 안 좋았어?”
“그게… 아빠, 나 주니어부가 아니라 리틀부로 가게 됐어.”
보통 주니어부는 중학생, 리틀부는 초등학생이 주축이 된다.
일권도 그 정도는 검색을 통해 미리 알고 있었다.
“이런! 어쩐지 네가 음흉하다 하더니, 내 그놈의 감독을…….”
일권이 참지 못하고 화를 쏟아 내려는 찰나, 준혁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세계 대회에 나가게 됐어.”
“역시 그 감독 놈…… 응?”
“리틀 야구 월드시리즈.”
“…….”
“…….”
생일이 지나지 않은 준혁은 아직 만 12세였다.
모든 일은 생각보다 쉽게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사부의 명을 받은 준혁은 다음 날 저녁, 부모님께 야구를 해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아니, 며칠 전에는 야구부 없다고 걱정 말라더니, 이제는 없는 야구팀을 찾아 들어가?”
“그렇긴 하네. 그래도 아빠는 찬성!”
준혁의 몸을 걱정하는 엄마는 걱정 섞인 반응을 보였지만, 아빠는 바로 허락을 해 주었다.
아니, 마치 본인이 야구를 하는 것처럼 흥분한 탓에 엄마에게 혼이 났다.
“좋아. 그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안 다치게 한다면 엄마도 허락할게.”
“고마워, 엄마. 그리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제 건강해져서 괜찮으니까.”
준혁이 힘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결국 그렇게 부모님은 준혁의 강호출도를 허락해 주었다.
“그래, 이 명함이라고?”
준혁에게서 명함을 받아 든 일권은 잠시 밖에 나갔다 오더니, 웃으며 말을 꺼냈다.
“이번 주 토요일에 가 보면 될 거야. 일단 적성을 확인할 겸 테스트는 한다더라.”
“고마워, 아빠.”
“뭘 이런 걸 가지고. 아빠는 준혁이가 건강하기만 하면 뭐든지 다 해 줄 수 있다니까.”
가슴을 내밀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일권의 모습에 준혁은 감사함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게다가 감독님도 좋은 사람 같아서 안심이 되네.”
“근데 어딘가 음흉스러워. 얼굴에 털도 많고.”
“그러냐? 좀 이상해? 그럼 취소할까?”
일권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핸드폰을 바라봤다.
“괜찮아, 그 정도는 아냐. 사람 자체는 좋아 보여.”
“다행이네. 아, 맞다! 준혁이, 너 혹시…….”
일권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삼촌 있었냐?”
“으응?”
갑자기 삼촌을 왜 묻지? 아!
준혁은 일권이 뭘 물으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뭐, 내가 모르는 삼촌이 있었다고 해도 이해해 줄 수 있긴 하지만, 좀 섭섭해서…….”
“아니, 이해하긴 뭘 이해해? 당연히 삼촌 없지.”
“그렇지? 근데 감독님이 자꾸 준혁이가 삼촌한테 야구를 배웠다 하기에 뭔 소리인가 했지. 하하!”
일권이 호탕하게 웃어 보이자, 준혁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하하하,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둘러댄 말이라.”
“그래? 뭐, 상관은 없지. 근데 야구를 배운 적이 있었어?”
궁금해하는 일권의 표정에 준혁은 순간 아차 싶었다.
생각지 않은 부분에서 디테일을 따지신다.
“응. 친구들하고 몰래 했어. 걱정할까 봐 말 안 했지.”
“그러냐? 역시 그렇게 운동을 해서 건강해졌나 보구나. 잘했네, 우리 아들.”
“그렇지, 아빠.”
역시나 우리 아빠는 디테일의 깊이가 얕다.
최고의 아빠다.
***
그렇게 리틀 야구단의 입단이 결정된 준혁은 남은 일주일간 열심히 수련해 투수 파트를 완전히 마스터했다.
역시 투수 파트 부분이 불타오르며 사라졌고, 이번에는 타자 파트가 활성화됐다.
“…지금까지의 자세는 신체의 모든 힘을 모아 최대한 강한 힘으로 정확하게 타격하기 위한 과정이다. 특별히 어떤 타격 자세가 정답은 아니니, 기본자세를 잘 숙지하고 자신에게 맞는 타격 폼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준혁이 타격 파트의 내용을 이공자에게 읽어 주었다.
“이것으로 이론 부분은 다 읽었습니다.”
“그렇구나. 이해했다.”
“오우, 역시 우리 싸부네요.”
준혁이 감탄하며 말하자, 이공자는 별것 아니라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는 기본이지, 그게 뭐 대단하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냐? 자, 그럼 이제 실제로 수련을 해야겠구나.”
“네, 싸부. 잠시만요.”
준혁은 얼른 덕아웃으로 들어가 배트와 헬멧을 두 개씩 가지고 나왔다.
이곳에 준비되어 있는 배트는 나무 배트였다.
배트와 헬멧을 이공자에게 건넨 준혁은 머리에 헬멧을 뒤집어쓰다가 문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무 배트를 한참 바라보는 이공자의 모습이 이상한 탓이었다.
몽둥이를 보더니 무림에서의 추억에 빠진 건가?
“왜 그러세요, 싸부? 예전에 쓰던 무기가 생각나서요? 히얍! 히얍!”
마치 검을 잡은 것처럼 두 손으로 자세를 취한 준혁이 물었다.
이공자가 그런 준혁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네 녀석은 정말 못 하는 말이 없구나. 됐고, 그러니까 이 방망이로 투수가 던진 공을 맞춰서 최대한 멀리 보내야 한다는 거지?”
“네, 맞아요. 저 담장을 넘기면 홈런이고요.”
준혁이 배트로 외야 관중석 너머의 담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실제 경기에서는 아홉 명, 아니, 포수를 제외하면 여덟 명이겠군. 그들을 피해서 공을 날려야 하는 것이고?”
“네, 맞습니다!”
“그리고 공이 잡히거나 베이스라는 곳에 공보다 늦게 들어가면 죽는다, 이 말인데…….”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말끝을 흐린 이공자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중얼거렸다.
“어렵군, 어려워.”
“맞아요. 사부도 잘 아시네요. 그래서 야구 해설자들이 하는 말이 ‘야구 어려워요’, ‘야구 몰라요’ 이런 거라니까요. 제가 첨에 이야기한 그거예요.”
준혁은 이제야 이공자가 야구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신이 난 목소리로 떠들었다.
그런 준혁을 다시 한 번 한심하게 바라본 이공자가 툭 던지듯이 말을 했다.
“다 넘겨 버리면 그만 아니더냐. 이게 시합이 성립되긴 하는 것이냐?”
“네?”
“쓸데없이 복잡해. 야구라는 것… 역시 난 이해가 안 된다.”
“네?”
“두 눈을 감고 공을 치는 것도 아닌데, 이걸 못 넘긴다는 것이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이공자의 표정을 살핀 준혁은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싸부.”
“쉽지 않긴. 좋다. 이제 투수 연습도 끝났겠다, 너도 공을 던질 줄 알겠지?”
“그렇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준혁에게 이공자가 손을 들어 마운드를 가리켰다.
“그럼 저기 가서 한번 던져 보아라.”
“네?”
“그만 ‘네, 네’거리고, 실전처럼 던져 보라니까. 뭐가 문제인지 알려 주마.”
이공자는 헬멧을 머리에 쓰고 배트를 들더니 타석으로 들어섰다.
“뭐 하느냐? 시간 없다!”
“네, 넵! 싸부!”
이공자의 재촉에 준혁이 마운드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말을 꺼냈다.
“싸부, 포수가 없는데요?”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다. 대체 포수를 왜 앉히는지. 차라리 저 앞쪽에서 수비나 시키는 게 훨씬 낫겠다.”
또다시 툴툴거리는 이공자의 말을 무시하고 준혁이 소리 질렀다.
“그럼 던질게요!”
내야의 중앙부에 솟아 있는 마운드.
홈 플레이트에서 18.44미터 떨어진 곳의 중앙에는 투수판이 있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공간.
준혁은 손에 가루를 묻힌 후, 발밑으로 로진백을 던졌다.
이어 오른발로 투수판을 밟고 자연스럽게 왼발을 뒤쪽으로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높이 치켜든 양팔을 가슴으로 내리면서 왼다리를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렸다.
공을 쥔 손을 자연스럽게 글로브에서 빼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뻗어 나오는 왼다리.
다리를 최대한 뻗으며 힘 있게 땅을 딛는 스트라이드 동작.
무게중심이 앞으로 이동하며 앞발로 힘이 전달된다.
양팔을 균형 있게 벌리며 시작된 투구 동작.
앞발로 모든 무게가 쏠리며 축적된 운동에너지가 오른팔로 이어진다.
쭉 뻗으며 릴리스 포인트를 최대한 앞으로 가져와 공을 채는 손가락.
그립은 패스트볼이었다.
손에서 공이 떠나며 자연스럽게 팔로우 스로 동작으로 넘어갔다.
마지막 한 줌의 힘까지 온전하게 공에 실어 보낸 후, 팔은 몸 중심축 뒤로 자연스럽게 향했다.
슈우욱!
힘 있게 회전하며 타석으로 날아가는 준혁의 공.
그 공을 노려보는 이공자.
이때만큼은 준혁의 사부가 아닌, 생사를 겨루는 무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거참, 죽기도 힘들군.”
오만한 눈빛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따아악!
야구장에 울려 퍼지는 경쾌한 소리.
나무 배트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소리를 토해 내며 타구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경기장 밖으로 사라졌다.
털썩.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쳐 날아가는 공을 보며 몸을 돌린 준혁은 털썩, 바닥에 무릎 꿇었다.
정중앙으로 곧게 날아갔다는 것은 공을 때리는 타이밍도 정확했다는 의미였다.
말 그대로 포수나 수비수가 일절 필요 없는 상황.
장외 홈런이었다.
“무릎 꿇지 마라! 어서 일어나라!”
등 뒤에서 들려온 이공자의 목소리가 준혁의 마음을 울리는 듯했다.
“사, 사부님.”
“당연한 결과에 좌절하지 마라! 유니폼 상한다!”
“…….”
그때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휙―
따아아악!
휙―
따아아악!
휘―
따아아악!
우타석에서, 좌타석에서, 심지어 한 손으로…….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찔러 보았지만, 모두가 소용없었다.
심지어 유인구로 던지는 볼까지 때려내는 이공자의 모습에 좌절을 넘어 경외심마저 들 정도였다.
“아아악! 받아랏!”
몇 개나 넘어갔을까?
굳이 셀 필요는 없었다. 모든 공이 넘어갔으니.
결국 눈이 돌아간 준혁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공을 집어 던졌다.
이때만큼은 제자가 아니라 적을 죽이기 위해 악에 받친 무인일 뿐이었다.
“죽어랏!”
하지만 분노가 너무 강했을까?
손에서 약간 빠져 버린 공이 이공자를 향해 강하게 날아갔다.
일명 헤드 샷!
“엇!”
일부러 노린 것은 아니었기에 준혁의 얼굴이 일순 새파래졌다.
“자세가 무너졌군. 하지만…….”
무심하게 바라보던 이공자의 눈빛이 바뀌었다.
“무릇 사내라면 그래야지.”
오히려 대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대해야 하는 법.
이공자가 꽉 움켜쥔 손을 펴자, 방망이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고는 눈앞까지 도달한 야구공을 향해 맨주먹을 힘 있게 내뻗었다.
“타아앗!”
퍼어어억!
굉장한 소리를 내며 공이 터져 버렸다.
그야말로 산산조각.
그렇게 박살 난 야구공의 잔해가 타석 주위로 퍼져 나갔다.
“싸, 싸부!”
그 놀라운 광경에 준혁은 할 말을 잃었다.
“그래, 상대를 죽이겠다는 그 기백만큼은 칭찬해 주마! 하지만 평정심을 잃은 마음은 정확한 자세를 취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로 인한 너의 실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야구장 전체로 울려 퍼지는 이공자의 목소리.
“명경지수! 언제든 흥분하지 않고 냉정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관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무릇 무인의 자세인 것을 잊지 말아라.”
“네, 사부님! 명심하겠습니다!”
준혁은 이공자의 가르침을 들으며 서서히 타석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어디선가 흘러온 바람에 야구공의 잔해가 흩어지듯 사라졌다.
“그런데 그걸 잘 아는 분이 처음에 저를 보고 검을 뽑으셨습니까?”
“…….”
“…….”
“아따~ 속좁네, 이 제자 놈.”
“제가 아직 어려서요.”
준혁은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은 만 12세였다.
그렇게 한 무인의 단순한 무력 과시가 끝나고, 다시 수련이 시작되었다.
웬일인지 다른 날보다 훈련을 일찍 끝낸 이공자는 방망이를 들고 준혁에게 다가왔다.
“저기 엎드려라.”
“…네, 사부.”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했다.
“역시 마음에 담아 뒀어, 그 헤드 샷. 과연 운동부와 빠따는…….”
낮게 중얼거리는 준혁의 옆으로 스트레칭 매트가 떨어졌다.
“너 지금 뭐 하냐? 이상한 자세 취하지 말고, 그 위에 배 깔고 엎드려라.”
“엥?”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달은 준혁은 얼른 매트 위에 바른 자세로 엎드렸다.
“내일이 그 야구팀에 가는 날이지? 시험이라는 것도 보고?”
“네, 싸부.”
대답을 들은 이공자는 준혁의 옆에 앉아 마사지를 시작했다.
“오늘은 내 특별히 내공까지 사용해서 마사지란 것을 해 주마. 아마 내일 도움이 될 것이다.”
툭 던지듯 시크하게 말하는 모습에 준혁은 감동했다.
“아… 싸부.”
“입을 열면 효과가 떨어지니, 가만히 마사지나 받아라.”
곧 따뜻한 기운이 지쳐 있는 근육을 감싸며 몸속 깊이 퍼져 나갔다.
이공자의 손이 닿는 곳마다 근육의 피로가 사라지며 시원함마저 느껴졌다.
‘아, 너무 좋다.’
온몸이 노곤하게 풀리는 느낌.
그렇게 이공자의 손길을 느끼며 준혁은 서서히 잠이 들었다.
***
예정된 테스트 날.
점심을 먹고 야구장으로 향한 준혁은 거의 밤이 되어 집에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힘겹게 앉아 신발을 벗는 준혁의 모습을 보며 일권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많이 늦었네. 잘 다녀왔니?”
“응.”
어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준혁이 일권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 일권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오늘 안 좋았어?”
“그게… 아빠, 나 주니어부가 아니라 리틀부로 가게 됐어.”
보통 주니어부는 중학생, 리틀부는 초등학생이 주축이 된다.
일권도 그 정도는 검색을 통해 미리 알고 있었다.
“이런! 어쩐지 네가 음흉하다 하더니, 내 그놈의 감독을…….”
일권이 참지 못하고 화를 쏟아 내려는 찰나, 준혁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세계 대회에 나가게 됐어.”
“역시 그 감독 놈…… 응?”
“리틀 야구 월드시리즈.”
“…….”
“…….”
생일이 지나지 않은 준혁은 아직 만 12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