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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강호출도 (2)
“어떻게 된 거야, 준혁아? 리틀 야구 월드시리즈라면… 미국 가는 거니?”
“응. 일단 지역 예선을 먼저 거쳐야 하는데, 올해는 마침 한국에서 열린대.”
“아, 그걸 먼저 해야 하는 거야?”
“응. 그리고 거기서 우승하면 아시아 대표로 미국에 가는 거래.”
“그런데 갑자기 너는 거길 왜 나가는데?”
“하하하, 그게 실은…….”
멋쩍게 웃는 준혁의 모습에 일권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투수 하래.”
투수란다.
지금까지 캐치볼도 제대로 안 해 봤을 텐데, 투수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도대체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권이었다.
***
시간을 거슬러 몇 시간 전.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준혁의 마음은 가벼웠다.
가볍게 테스트를 받고 팀에 입단한 후, 아이들과 야구를 하면 된다.
전혀 어려울 것 없는 오늘의 계획이었다.
“왔냐? 아버지와 통화는 했다.”
털보 감독이 야구장으로 들어오는 준혁에게 아는 체하며 먼저 인사를 했다.
꾸벅.
“안녕하세요, 감독님?”
준혁은 가방을 1루 덕아웃 쪽 의자에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먼저 온 아이들이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그중 코치로 보이는 다른 어른도 한 명 더 있었다.
“자, 일단 이 유니폼을 입으면 된다.”
“유니폼이 벌써 나왔어요?”
“응. 여벌로 몇 개 가지고 있던 것 중에 마침 사이즈가 맞는 것이 있었네.”
준혁은 유니폼을 받아 들고 구석에 가서 갈아입었다.
“오우, 폼 나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기분이 썩 괜찮았다.
그런 후, 준혁은 가방에서 스파이크를 꺼내 신었다.
야구를 하기로 결정한 다음 날, 아빠가 사 온 것이다.
준비를 마친 준혁은 다른 아이들 옆으로 가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힐끔힐끔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에 준혁이 인사라도 건넬까 고민할 때, 털보 감독이 다시 다가왔다.
“일단 스트레칭하면서 들어라. 몸 다 풀고 나서 어떤 포지션을 할지 알아볼 거야. 아마 제대로 야구를 해 본 적은 없다고 했으니까, 이것저것 다 해 보면서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준혁이 털보 감독의 말을 듣고 재깍 대답했다.
“지금은 투수밖에 못해요.”
“응?”
“투수는 할 수 있다고요. 다른 건 아직 제대로 못 하지만.”
“그래서 투수 하겠다고?”
“네.”
“허참…….”
야구도 제대로 안 해 봤다는 놈이 처음부터 투수를 하겠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 나이 때는 야구를 제일 잘하는 아이가 투수도 한다.
감독은 어이가 없었지만, 어차피 확인은 해 봐야 하니 상관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래? 어쨌든 테스트는 해 봐야 하니까, 몸 다 풀면 이야기하자.”
“네!”
모든 것은 기초가 중요하다.
씩씩하게 대답을 마친 준혁은 스트레칭의 동작 하나하나를 신경 쓰며 꼼꼼하게 온몸을 풀어주었다.
얼마 후, 털보 감독이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자, 다들 마쳤으면 이제 모여서 러닝부터 하자.”
줄을 맞춰 그라운드를 도는 아이들 틈에 끼어 준혁도 러닝을 했다.
‘확실히 안 힘들어. 내 몸은 이제 괜찮아.’
달리며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준혁.
다른 아이들과 같은 속도로 똑같이 뛰어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러닝을 마치자 털보 감독이 준혁을 따로 불러냈다.
“이 코치가 애들 데리고 훈련 좀 하고, 나는 준혁이 테스트 좀 할게.”
“네, 감독님.”
“아! 철승아, 너도 포수 장비 입고 이쪽으로 좀 와라.”
“네!”
응?
준혁은 낯익은 이름에 감독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같은 반 친구인 철승이가 활짝 웃고 있었다.
일전에 함께 축구하자고 말한 녀석이었다.
‘전엔 축구를 하자더니, 지금은 야구를 하고 있네.’
이유야 어쨌든 반가웠다.
그러나 지금은 테스트가 우선이라 준혁은 내색하지 않고 가방에서 글러브를 꺼냈다.
지난번 이후로 어느 정도 길들이기를 마친 상태여서 예전보다 공을 잡기는 수월할 것이다.
“투수는 자신 있냐?”
지나가는 투로 물어보는 감독의 말에 준혁은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모든 공이 홈런이 되어 버린 자신의 투구.
급기야 나중엔 주먹으로 공을 터뜨려 버린 이공자의 얼굴이 떠오르자, 준혁의 자신감은 와르르 무너졌다.
“…아니요. 할 수는 있는데, 잘할 것 같지는 않아요.”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준혁의 모습에 오히려 털보 감독이 당황했다.
‘얘, 갑자기 왜 이래? 전에 본 그놈 맞아?’
그때, 장비를 다 착용한 철승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준혁이가 야구를 하다니… 놀랍네. 몸이 약하다고 하지 않았어?”
“응. 이제 괜찮아진 것 같아서.”
철승이는 잠시 준혁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내가 보기에도 전혀 약해 보이지 않아. 애들이 잘못 알고 있었나 봐.”
“고마워. 그리고 내 공, 잘 받아 줘.”
“오케~ 걱정 마시라고.”
사이 좋게 대화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털보 감독도 기꺼운 듯 말했다.
“서로 아는 사이인가 보구나. 마침 잘됐네. 준혁이도 긴장 풀고 마음 편히 던져라.”
털보 감독은 준혁이 갑자기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자, 조금은 기대감이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어쨌든 본인이 투수 지망이었으니, 일단 확인을 해 보고 안 되면 외야수부터 시킬 생각이었다.
“철승이는 거기 앉고, 준혁이는 마운드로 가자.”
“네.”
“네.”
두 아이가 자리를 잡자, 털보 감독은 다음 지시를 내렸다.
“먼저 몸 풀기 차원에서 가볍게 연습구부터 던져 봐라.”
마운드에 자리를 잡은 준혁은 가볍게 캐치볼을 하듯 철승에게 공을 던졌다.
슈우욱― 쾅!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공이 글러브에 들어왔다.
“오케이! 공 좋고!”
철승이 공을 다시 돌려주며 소리를 질렀다.
막상 공을 던져 보니 가라앉아 있던 준혁의 기분도 슬슬 나아졌다.
몇 개의 연습구를 더 던진 준혁은 어깨가 완전히 풀린 것을 느꼈다.
“감독님, 이제 전력으로 던져도 될 것 같아요.”
투구 폼을 유심히 살펴보던 털보 감독이 준혁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어? 아, 그래. 그럼 어디 한번 제대로 던져 봐라.”
“네. 철승아, 이제 전력으로 던질게!”
“오케이!”
큰 소리로 대답한 철승이 가슴을 쫙 펴고 공을 받을 준비를 했다.
투수가 쉽게 공을 던질 수 있도록 자세를 잡은 것이다.
“좋은 포수 같아요.”
그 모습을 보고 슬쩍 말을 건네자, 털보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야구를 취미로 한다는 것이 아까운 녀석이지. 아마 중학교에서 스카웃 이야기도 있었을 텐데.”
“근데 왜 안 하는데요?”
“공부한다더라. 참 아쉽지.”
엥?
준혁이 알기로 철승이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 절대 아니었다.
아무래도 진로를 잘못 잡은 것 같은데… 뭐, 알아서들 하겠지.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 준혁은 슬슬 자세를 잡았다.
기본적인 와인드업 자세.
글러브에 든 공을 패스트볼 그립으로 움켜쥐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확한 자세와 체중 이동이다.
철승이를 똑바로 응시하며 비급에서 배운 것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공을 던지자…….
뻐엉!
굉음을 내며 글러브 속으로 공이 박혀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흐르는 정적.
철승이도 공을 받은 자세로 멈춰 있었다.
“자, 자신 없다며?”
마운드 뒤쪽에 서 있던 털보 감독이 어이없다는 듯 말을 더듬었다.
준혁으로서는 당연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공 따위, 사부는 다 홈런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준혁에게 철승이가 소리를 지르며 공을 돌려주었다.
“좋아! 이대로 던져!”
역시 투수의 기를 살려 줄 줄 아는 좋은 포수였다.
공을 받은 준혁이 다시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슈우욱!
퍼억!
조금 더 빨라진 공.
“좋아! 최고다, 준혁아!”
철승은 같은 나이 또래에게 이런 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털보 감독도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놈, 이거… 절대 중1 수준의 공이 아니다. 어쩌면…….’
슈우욱! 펑!
슈우욱! 펑!
정통 오버핸드 투구 자세.
폼 자체도 완전 교과서, 그 자체였다.
책에서 배웠다더니, 정말 교본의 사진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뿌려 대는 공은 말 그대로 시원하게 쭉쭉 뻗고 있었다.
‘공 끝이 깨끗하긴 한데, 아직 어리니 문제가 되지는 않겠고.’
굳이 단점을 따지자면 테일링이 부족하다는 정도?
하지만 그것은 아직 손아귀의 힘이 온전히 발달하지 못했을 테니 어쩔 수 없었다.
준혁 또래 아이들의 몸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어 갈 것이다.
‘그런데… 변화구도 던질 줄 알려나?’
어린 준혁에게 굳이 변화구를 알려 줄 생각은 없지만, 확인은 해 보고 싶었다.
“준혁아, 혹시 다른 공도 던질 줄 아니?”
“네.”
“그럼 한 번 던져 볼래? 힘들면 무리하지 말고.”
“아니에요. 한번 던져 볼게요.”
철승이도 털보 감독과 준혁이 하는 말을 듣고 잠시 긴장했다.
뭐, 중1 수준의 변화구야 별것 없겠지만, 준혁이 보여 준 패스트볼을 생각하면 약간 기대가 되기도 했다.
무엇을 던질까 고민하던 준혁이 철승에게 말했다.
“밑에서 떠오를 텐데, 미트 중간으로 던질 거야.”
예상치 못한 부상을 입을까 해서 미리 알려 준 것이었다.
“그래! 걱정 말고 던져! 다 잡아 줄게!”
철승이가 전혀 문제없다는 듯 자세를 크게 벌리며 미트를 고정했다.
그에 안심한 준혁도 투수판에 발을 고정한 채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왼다리를 들었다가 앞으로 뻗는 순간, 갑자기 허리를 굽혔다.
팔을 아래로 내렸다가 위로 들어 올리며 던지는 투구법.
일명 언더핸드 스로.
그냥 변화구를 던진 것이 아니라 아예 투구법을 바꿔 버린 것이었다.
언더핸드 스로로 던져진 공은 빠르게 철승이의 글러브로 날아갔다.
퍼어억!
놀라운 사실은 오버핸드의 구속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고, 반면 팔의 궤도 때문인지 공 끝의 움직임이 상당했다는 점이었다.
“와! 와! 언더핸드라니!”
철승이는 그 나이답게 놀라며 소리 질렀고, 털보 감독은 골치가 아파졌다.
“너 뭐야?”
“네?”
“변화구를 보여 달랬더니, 무슨 언더핸드로 공을 던져?”
그제야 준혁은 자신이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전 다른 투구법으로 던지란 건 줄 알았어요. 하하하.”
“보통 다른 투구법을 이 정도로 던질 수 있게 연습하진 않지.”
“그런가요? 전 다 비슷해요.”
털보 감독이 걱정하는 것은 부상의 위험이었다.
특히 성장기의 아이일수록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물론 이것은 이공자의 존재를 모르기에 떠올리는 기우이기도 했다.
“확실히 타자를 상대하기에 효과는 좋을 수 있는데, 잘못하면 부상의 위험이 커.”
준혁은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란 것을 알아차리고는 걱정 말라는 듯 이야기했다.
“그래서 제가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는 거예요. 아마 부상당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준혁의 자신감에는 이공자의 존재도 한몫했다.
“음, 삼촌에게 어떻게 배운 건지는 모르겠다만, 난 약간 걱정이 되는구나. 혹시 사이드암도 던질 줄 아니?”
“네, 당연히요.”
‘역시나.’
감독의 표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그렇다면…….’
“변화구도 배웠겠구나.”
“네.”
‘우리 감독님, 생각보다 스마트한데?’
준혁의 털보 감독에 대한 평가가 한 단계 올라갔다.
“설마 커브나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터, 너클볼, 스크루볼, 포크볼 등등 이걸 다 배운 건 아니겠지?”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왠지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잔뜩 긴장한 채 물어보는 얼굴이 너무 우스워 준혁은 그만 웃고 말았다.
“하하, 당연히 아니죠, 감독님.”
“그렇지? 그럴 리는 없지?”
“네. 그냥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터까지 던질 수 있어요. 그런데 커터는 아직 손가락이 짧아서인지 잘 안 돼요.”
“허참…….”
결국 할 말을 잃고 마는 털보 감독이었다.
어느새 마운드로 다가온 철승이가 놀라며 말했다.
“완전 대박인데? 너, 무슨 야구 만화 주인공 같다.”
“그런가? 난 아직 부족한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야, 대체? 얼마나 더 잘 던지려고?”
철승이의 감탄에도 정작 준혁은 본인의 공에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물론 그렇게 된 원인에는 사부의 지분이 상당했지만.
힘없이 웃고 있는 준혁의 모습에 털보 감독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준혁아, 일단 한번 체크해 보기는 하겠다만, 그 후에 변화구는 잠시 봉인하자.”
“네?”
이해할 수 없는 주문에 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구종이 많으면 그만큼 타자를 상대하기 좋은 것이 아닌가.
하지만 털보 감독의 견해는 전혀 달랐다.
“조금 전에 네가 보여 준 공만으로도 충분해. 지금은 몸이 성장할 때니, 안 다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야구 오래해야지.”
“아니, 오래고 뭐고, 제대로 한 건 아직 하루도 안 됐는데요?”
순진한 준혁의 말에 털보 감독은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느껴졌다.
준혁은 분명 한국 야구의 보배가 될 것이니, 어떻게든 자신이 지켜 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이다.
그때, 준혁의 말이 들려왔다.
“직구만으로는 부족해요, 절대.”
이공자가 무자비하게 공을 때려 대는 모습을 떠올린 준혁은 이를 뽀드득, 갈아붙였다.
그 압도적인 실력 차이는 어찌 보면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치를 떠는 준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털보 감독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삼촌에게 어떻게 배웠기에 이러지?’
그때, 격투기 선수라는 말이 떠오르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다. 너에게 제대로 된 야구를 경험하게 해 줘야겠구나. 준혁이 너, 나랑 세계 대회에 한번 나가 보자.”
“네, 감사합…… 네? 세계 대회요?”
갑자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철승이도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우리 팀이 대회에 나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
철승의 말에 준혁의 유니폼을 가리키며 털보 감독이 말했다.
“그 유니폼, 더러워지기 전에 얼른 벗어라!”
“어떻게 된 거야, 준혁아? 리틀 야구 월드시리즈라면… 미국 가는 거니?”
“응. 일단 지역 예선을 먼저 거쳐야 하는데, 올해는 마침 한국에서 열린대.”
“아, 그걸 먼저 해야 하는 거야?”
“응. 그리고 거기서 우승하면 아시아 대표로 미국에 가는 거래.”
“그런데 갑자기 너는 거길 왜 나가는데?”
“하하하, 그게 실은…….”
멋쩍게 웃는 준혁의 모습에 일권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투수 하래.”
투수란다.
지금까지 캐치볼도 제대로 안 해 봤을 텐데, 투수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도대체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권이었다.
***
시간을 거슬러 몇 시간 전.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준혁의 마음은 가벼웠다.
가볍게 테스트를 받고 팀에 입단한 후, 아이들과 야구를 하면 된다.
전혀 어려울 것 없는 오늘의 계획이었다.
“왔냐? 아버지와 통화는 했다.”
털보 감독이 야구장으로 들어오는 준혁에게 아는 체하며 먼저 인사를 했다.
꾸벅.
“안녕하세요, 감독님?”
준혁은 가방을 1루 덕아웃 쪽 의자에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먼저 온 아이들이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그중 코치로 보이는 다른 어른도 한 명 더 있었다.
“자, 일단 이 유니폼을 입으면 된다.”
“유니폼이 벌써 나왔어요?”
“응. 여벌로 몇 개 가지고 있던 것 중에 마침 사이즈가 맞는 것이 있었네.”
준혁은 유니폼을 받아 들고 구석에 가서 갈아입었다.
“오우, 폼 나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기분이 썩 괜찮았다.
그런 후, 준혁은 가방에서 스파이크를 꺼내 신었다.
야구를 하기로 결정한 다음 날, 아빠가 사 온 것이다.
준비를 마친 준혁은 다른 아이들 옆으로 가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힐끔힐끔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에 준혁이 인사라도 건넬까 고민할 때, 털보 감독이 다시 다가왔다.
“일단 스트레칭하면서 들어라. 몸 다 풀고 나서 어떤 포지션을 할지 알아볼 거야. 아마 제대로 야구를 해 본 적은 없다고 했으니까, 이것저것 다 해 보면서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준혁이 털보 감독의 말을 듣고 재깍 대답했다.
“지금은 투수밖에 못해요.”
“응?”
“투수는 할 수 있다고요. 다른 건 아직 제대로 못 하지만.”
“그래서 투수 하겠다고?”
“네.”
“허참…….”
야구도 제대로 안 해 봤다는 놈이 처음부터 투수를 하겠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 나이 때는 야구를 제일 잘하는 아이가 투수도 한다.
감독은 어이가 없었지만, 어차피 확인은 해 봐야 하니 상관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래? 어쨌든 테스트는 해 봐야 하니까, 몸 다 풀면 이야기하자.”
“네!”
모든 것은 기초가 중요하다.
씩씩하게 대답을 마친 준혁은 스트레칭의 동작 하나하나를 신경 쓰며 꼼꼼하게 온몸을 풀어주었다.
얼마 후, 털보 감독이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자, 다들 마쳤으면 이제 모여서 러닝부터 하자.”
줄을 맞춰 그라운드를 도는 아이들 틈에 끼어 준혁도 러닝을 했다.
‘확실히 안 힘들어. 내 몸은 이제 괜찮아.’
달리며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준혁.
다른 아이들과 같은 속도로 똑같이 뛰어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러닝을 마치자 털보 감독이 준혁을 따로 불러냈다.
“이 코치가 애들 데리고 훈련 좀 하고, 나는 준혁이 테스트 좀 할게.”
“네, 감독님.”
“아! 철승아, 너도 포수 장비 입고 이쪽으로 좀 와라.”
“네!”
응?
준혁은 낯익은 이름에 감독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같은 반 친구인 철승이가 활짝 웃고 있었다.
일전에 함께 축구하자고 말한 녀석이었다.
‘전엔 축구를 하자더니, 지금은 야구를 하고 있네.’
이유야 어쨌든 반가웠다.
그러나 지금은 테스트가 우선이라 준혁은 내색하지 않고 가방에서 글러브를 꺼냈다.
지난번 이후로 어느 정도 길들이기를 마친 상태여서 예전보다 공을 잡기는 수월할 것이다.
“투수는 자신 있냐?”
지나가는 투로 물어보는 감독의 말에 준혁은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모든 공이 홈런이 되어 버린 자신의 투구.
급기야 나중엔 주먹으로 공을 터뜨려 버린 이공자의 얼굴이 떠오르자, 준혁의 자신감은 와르르 무너졌다.
“…아니요. 할 수는 있는데, 잘할 것 같지는 않아요.”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준혁의 모습에 오히려 털보 감독이 당황했다.
‘얘, 갑자기 왜 이래? 전에 본 그놈 맞아?’
그때, 장비를 다 착용한 철승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준혁이가 야구를 하다니… 놀랍네. 몸이 약하다고 하지 않았어?”
“응. 이제 괜찮아진 것 같아서.”
철승이는 잠시 준혁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내가 보기에도 전혀 약해 보이지 않아. 애들이 잘못 알고 있었나 봐.”
“고마워. 그리고 내 공, 잘 받아 줘.”
“오케~ 걱정 마시라고.”
사이 좋게 대화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털보 감독도 기꺼운 듯 말했다.
“서로 아는 사이인가 보구나. 마침 잘됐네. 준혁이도 긴장 풀고 마음 편히 던져라.”
털보 감독은 준혁이 갑자기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자, 조금은 기대감이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어쨌든 본인이 투수 지망이었으니, 일단 확인을 해 보고 안 되면 외야수부터 시킬 생각이었다.
“철승이는 거기 앉고, 준혁이는 마운드로 가자.”
“네.”
“네.”
두 아이가 자리를 잡자, 털보 감독은 다음 지시를 내렸다.
“먼저 몸 풀기 차원에서 가볍게 연습구부터 던져 봐라.”
마운드에 자리를 잡은 준혁은 가볍게 캐치볼을 하듯 철승에게 공을 던졌다.
슈우욱― 쾅!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공이 글러브에 들어왔다.
“오케이! 공 좋고!”
철승이 공을 다시 돌려주며 소리를 질렀다.
막상 공을 던져 보니 가라앉아 있던 준혁의 기분도 슬슬 나아졌다.
몇 개의 연습구를 더 던진 준혁은 어깨가 완전히 풀린 것을 느꼈다.
“감독님, 이제 전력으로 던져도 될 것 같아요.”
투구 폼을 유심히 살펴보던 털보 감독이 준혁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어? 아, 그래. 그럼 어디 한번 제대로 던져 봐라.”
“네. 철승아, 이제 전력으로 던질게!”
“오케이!”
큰 소리로 대답한 철승이 가슴을 쫙 펴고 공을 받을 준비를 했다.
투수가 쉽게 공을 던질 수 있도록 자세를 잡은 것이다.
“좋은 포수 같아요.”
그 모습을 보고 슬쩍 말을 건네자, 털보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야구를 취미로 한다는 것이 아까운 녀석이지. 아마 중학교에서 스카웃 이야기도 있었을 텐데.”
“근데 왜 안 하는데요?”
“공부한다더라. 참 아쉽지.”
엥?
준혁이 알기로 철승이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 절대 아니었다.
아무래도 진로를 잘못 잡은 것 같은데… 뭐, 알아서들 하겠지.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 준혁은 슬슬 자세를 잡았다.
기본적인 와인드업 자세.
글러브에 든 공을 패스트볼 그립으로 움켜쥐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확한 자세와 체중 이동이다.
철승이를 똑바로 응시하며 비급에서 배운 것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공을 던지자…….
뻐엉!
굉음을 내며 글러브 속으로 공이 박혀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흐르는 정적.
철승이도 공을 받은 자세로 멈춰 있었다.
“자, 자신 없다며?”
마운드 뒤쪽에 서 있던 털보 감독이 어이없다는 듯 말을 더듬었다.
준혁으로서는 당연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공 따위, 사부는 다 홈런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준혁에게 철승이가 소리를 지르며 공을 돌려주었다.
“좋아! 이대로 던져!”
역시 투수의 기를 살려 줄 줄 아는 좋은 포수였다.
공을 받은 준혁이 다시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슈우욱!
퍼억!
조금 더 빨라진 공.
“좋아! 최고다, 준혁아!”
철승은 같은 나이 또래에게 이런 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털보 감독도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놈, 이거… 절대 중1 수준의 공이 아니다. 어쩌면…….’
슈우욱! 펑!
슈우욱! 펑!
정통 오버핸드 투구 자세.
폼 자체도 완전 교과서, 그 자체였다.
책에서 배웠다더니, 정말 교본의 사진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뿌려 대는 공은 말 그대로 시원하게 쭉쭉 뻗고 있었다.
‘공 끝이 깨끗하긴 한데, 아직 어리니 문제가 되지는 않겠고.’
굳이 단점을 따지자면 테일링이 부족하다는 정도?
하지만 그것은 아직 손아귀의 힘이 온전히 발달하지 못했을 테니 어쩔 수 없었다.
준혁 또래 아이들의 몸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어 갈 것이다.
‘그런데… 변화구도 던질 줄 알려나?’
어린 준혁에게 굳이 변화구를 알려 줄 생각은 없지만, 확인은 해 보고 싶었다.
“준혁아, 혹시 다른 공도 던질 줄 아니?”
“네.”
“그럼 한 번 던져 볼래? 힘들면 무리하지 말고.”
“아니에요. 한번 던져 볼게요.”
철승이도 털보 감독과 준혁이 하는 말을 듣고 잠시 긴장했다.
뭐, 중1 수준의 변화구야 별것 없겠지만, 준혁이 보여 준 패스트볼을 생각하면 약간 기대가 되기도 했다.
무엇을 던질까 고민하던 준혁이 철승에게 말했다.
“밑에서 떠오를 텐데, 미트 중간으로 던질 거야.”
예상치 못한 부상을 입을까 해서 미리 알려 준 것이었다.
“그래! 걱정 말고 던져! 다 잡아 줄게!”
철승이가 전혀 문제없다는 듯 자세를 크게 벌리며 미트를 고정했다.
그에 안심한 준혁도 투수판에 발을 고정한 채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왼다리를 들었다가 앞으로 뻗는 순간, 갑자기 허리를 굽혔다.
팔을 아래로 내렸다가 위로 들어 올리며 던지는 투구법.
일명 언더핸드 스로.
그냥 변화구를 던진 것이 아니라 아예 투구법을 바꿔 버린 것이었다.
언더핸드 스로로 던져진 공은 빠르게 철승이의 글러브로 날아갔다.
퍼어억!
놀라운 사실은 오버핸드의 구속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고, 반면 팔의 궤도 때문인지 공 끝의 움직임이 상당했다는 점이었다.
“와! 와! 언더핸드라니!”
철승이는 그 나이답게 놀라며 소리 질렀고, 털보 감독은 골치가 아파졌다.
“너 뭐야?”
“네?”
“변화구를 보여 달랬더니, 무슨 언더핸드로 공을 던져?”
그제야 준혁은 자신이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전 다른 투구법으로 던지란 건 줄 알았어요. 하하하.”
“보통 다른 투구법을 이 정도로 던질 수 있게 연습하진 않지.”
“그런가요? 전 다 비슷해요.”
털보 감독이 걱정하는 것은 부상의 위험이었다.
특히 성장기의 아이일수록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물론 이것은 이공자의 존재를 모르기에 떠올리는 기우이기도 했다.
“확실히 타자를 상대하기에 효과는 좋을 수 있는데, 잘못하면 부상의 위험이 커.”
준혁은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란 것을 알아차리고는 걱정 말라는 듯 이야기했다.
“그래서 제가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는 거예요. 아마 부상당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준혁의 자신감에는 이공자의 존재도 한몫했다.
“음, 삼촌에게 어떻게 배운 건지는 모르겠다만, 난 약간 걱정이 되는구나. 혹시 사이드암도 던질 줄 아니?”
“네, 당연히요.”
‘역시나.’
감독의 표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그렇다면…….’
“변화구도 배웠겠구나.”
“네.”
‘우리 감독님, 생각보다 스마트한데?’
준혁의 털보 감독에 대한 평가가 한 단계 올라갔다.
“설마 커브나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터, 너클볼, 스크루볼, 포크볼 등등 이걸 다 배운 건 아니겠지?”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왠지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잔뜩 긴장한 채 물어보는 얼굴이 너무 우스워 준혁은 그만 웃고 말았다.
“하하, 당연히 아니죠, 감독님.”
“그렇지? 그럴 리는 없지?”
“네. 그냥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터까지 던질 수 있어요. 그런데 커터는 아직 손가락이 짧아서인지 잘 안 돼요.”
“허참…….”
결국 할 말을 잃고 마는 털보 감독이었다.
어느새 마운드로 다가온 철승이가 놀라며 말했다.
“완전 대박인데? 너, 무슨 야구 만화 주인공 같다.”
“그런가? 난 아직 부족한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야, 대체? 얼마나 더 잘 던지려고?”
철승이의 감탄에도 정작 준혁은 본인의 공에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물론 그렇게 된 원인에는 사부의 지분이 상당했지만.
힘없이 웃고 있는 준혁의 모습에 털보 감독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준혁아, 일단 한번 체크해 보기는 하겠다만, 그 후에 변화구는 잠시 봉인하자.”
“네?”
이해할 수 없는 주문에 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구종이 많으면 그만큼 타자를 상대하기 좋은 것이 아닌가.
하지만 털보 감독의 견해는 전혀 달랐다.
“조금 전에 네가 보여 준 공만으로도 충분해. 지금은 몸이 성장할 때니, 안 다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야구 오래해야지.”
“아니, 오래고 뭐고, 제대로 한 건 아직 하루도 안 됐는데요?”
순진한 준혁의 말에 털보 감독은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느껴졌다.
준혁은 분명 한국 야구의 보배가 될 것이니, 어떻게든 자신이 지켜 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이다.
그때, 준혁의 말이 들려왔다.
“직구만으로는 부족해요, 절대.”
이공자가 무자비하게 공을 때려 대는 모습을 떠올린 준혁은 이를 뽀드득, 갈아붙였다.
그 압도적인 실력 차이는 어찌 보면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치를 떠는 준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털보 감독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삼촌에게 어떻게 배웠기에 이러지?’
그때, 격투기 선수라는 말이 떠오르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다. 너에게 제대로 된 야구를 경험하게 해 줘야겠구나. 준혁이 너, 나랑 세계 대회에 한번 나가 보자.”
“네, 감사합…… 네? 세계 대회요?”
갑자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철승이도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우리 팀이 대회에 나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
철승의 말에 준혁의 유니폼을 가리키며 털보 감독이 말했다.
“그 유니폼, 더러워지기 전에 얼른 벗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