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7화 부상 (1)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은 금방 사라졌다.

‘일시적인 건가?’

팔을 휘휘 돌려보니,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민수에게 받은 공을 오른손으로 힘주어 꾹 쥐어 본다.

‘일단 괜찮은 것 같은데…….’

다시 민수와 사인을 나누고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뭔가 이상한데…….”

한편, 치열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준혁이 중얼거렸다.

잠깐이지만 팔을 빙빙 돌리던 것이, 꼭 어딘가 아픈 사람 같았다.

덕아웃에서도 그런 점을 알아차렸는지, 감독과 코치가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교체 안 해도 되려나?”

지금 타석에 있는 중국의 4번 타자는 무시할 만한 타자가 절대 아니었다.

그 순간, 치열이 슬라이더로 그립을 잡고 힘차게 공을 뿌렸다.

찌릿!

“악!”

결국 팔꿈치에서 다시 통증을 느낀 치열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터트렸다.

그로 인해 확실하게 공을 채지 못해 슬라이더가 가운데로 몰렸다.

까앙!

다행히 중국의 4번 타자도 배트의 중심에 정확히 맞추지 못해 공이 홈 플레이트 앞에서 크게 튕기며 투수 쪽으로 굴러갔다.

치열은 글러브를 뻗어 자신에게 오는 공을 잡았다.

‘괜찮아, 천천히 던지면 돼.’

글러브에서 공을 빼낸 후 1루를 바라보자, 준혁이 베이스를 밟은 상태로 글러브를 내밀고 있었다.

빠르게 던져 아웃을 시키려 했지만…….

“악!”

팔꿈치에서 다시 통증이 올라왔다.

그 탓에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하고 손에서 빠져 버렸다.

[아! 공이 빠졌어요.]

[어! 어! 위험해요!]

치열이 던진 공은 1루를 향해 달리는 중국 선수의 등을 향해 날아갔고, 준혁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으며 몸이 중국 선수에게 쏠리는 상황이었다.

쾅!

결국 달려오던 중국 선수와 강하게 부딪치며 준혁이 쓰러졌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베이스를 지키고 서 있던 준혁이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타임!”

1루심의 다급한 선언에 양 팀 덕아웃에서 코치진이 달려 나왔다.

“준혁아!”

“괜찮아?”

팔꿈치를 움켜쥔 치열도 마운드에서 무릎을 꿇은 채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체급이 너무나 다른 두 명의 충돌인데다 준혁이 쓰러진 모습에 큰 부상이 의심되기도 했다.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치열이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아냐. 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물론 준혁이 얄밉기는 했지만, 다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다만, 팔꿈치가 아픈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학생, 괜찮아? 이게 몇 개야?”

누워 있는 준혁에게 다가온 의료진이 손가락을 펴며 물었다.

“세 개요.”

“그래 몸은 좀 어때?”

“부딪친 곳이 아직 아프긴 하지만…….”

준혁은 가만히 자신의 몸을 확인해 보았다.

크게 뒹굴긴 했지만,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평상시 스트레칭으로 유연한 근육을 유지한 것 때문에 큰 부상을 입지 않은 것 같았다.

“괜찮은 것 같아요.”

서서히 상체를 일으킨 준혁이 곧 완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자신과 부딪친 중국 선수가 당황한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중국 선수도 큰 충격은 없어 보였다.

일어서서 몸을 체크하는 준혁에게 털보 코치가 물었다.

“어때? 교체해 줄까? 뛸 수 있겠어?”

“네. 이제 괜찮아요. 그런데 저보다 치열이가 이상해요.”

“그래. 그쪽에도 지금 사람이 나가 있다.”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치열의 이상을 알아차린 감독이 마운드와 1루 쪽으로 각각 코치들을 보낸 것이다.

털보 코치는 일단 덕아웃으로 준혁이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정말 다행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남준혁 선수. 부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네. 방금 코치가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네요. 다시 일어선 선수들에게 관중의 박수가 쏟아집니다.]

[아, 그런데 신치열 투수가 팔을 잡고 있어요. 괜찮은 걸까요?]

[지금 마운드로 나간 코치가 팔을 엑스 자로 만들어 신호를 보냅니다. 아무래도 더 이상 던지지 못할 것 같아요. 오늘 좋은 투구를 보여 줬는데, 아쉽게 됐어요.]

[그러네요. 현재 5회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투수가 교체됩니다.]

[지금까지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같은 시각, 관중석에서 있는 응원단의 분위기도 푹 가라앉았다.

그중에서도 일권과 미래, 그리고 치열의 부모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여보, 준혁이는 괜찮은 것 같아. 이상 없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일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상황을 전달해 주었다.

하지만 미래의 가슴은 아직도 콩닥콩닥 거칠게 뛰었다.

그 말을 믿고 그냥 넘기기에는 준혁과 부딪친 아이의 덩치가 너무 큰 탓이었다.

“아, 우리 아가. 얼마나 아팠을까……. 여보, 우리 준혁이 괜찮겠지?”

“응, 괜찮은 것 같아요. 오히려 투수를 보던 아이가 더 걱정되는데…….”

치열의 부모님들은 어느새 급하게 응원단을 벗어나 덕아웃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치열이 급하게 다른 투수와 교체되어 나갔다.

그 와중에도 팔꿈치를 움켜쥐고 있는 것이, 꽤나 아파하는 것 같았다.



“크게 다친 건 아니고… 좀 무리를 했나 봐요.”

덕아웃으로 들어온 코치가 감독에게 말했다.

“휴, 다행이군. 일단 아이싱부터 하고, 조금 있다가 검사를 받아 봐야겠다.”

“네.”

그때, 치열의 부모님이 덕아웃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감독의 눈에 보였다.

순간, 그들과 눈이 마주친 코치가 감독에게 말했다.

“잠시 부모님들께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고.”

아직 어린 선수들이다 보니 감독 또한 학부모들의 걱정이 이해되었다.

한편, 어수선한 상황에서 급하게 올라온 대한민국 팀의 투수는 빠르게 몸을 풀었다.

3대 0, 주자 1루, 노아웃 상황.

앞선 중국의 타자는 주루 방해로 인한 세이프를 인정받아 1루에 들어가고, 준혁도 다시 1루를 지켰다.

교체된 한국 팀의 투수는 힐끔 1루를 바라본 후, 투구 자세로 들어갔다.

슈우욱!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베이스를 밟고 있던 주자가 2루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주자의 리드가 허용되지 않아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까지 베이스를 밟고 있어야 했다.

다다다닥!

크게 헛스윙을 한 타자의 뒤에서 공을 받은 민수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후, 베이스 커버에 들어간 2루수에게 공을 던졌다.

하지만 이미 베이스에 거의 도착한 주자는 다리를 쭉 뻗으며 슬라이딩을 시도하고 있었다.

슈욱― 퍽!

“세이프!”

이어지는 심판의 콜은 아쉽게도 아웃이 아니었다.

민수는 어깨가 그리 강한 편이 아닌데다 볼도 약간 옆으로 빠져 제대로 태그를 하지 못한 것이다.

[아, 이번 대회 첫 도루를 허용하는 대한민국 팀입니다.]

[그렇습니다. 중국 팀이 어려운 가운데 희망의 불씨를 살리네요.]

도루를 성공시킨 중국 팀은 5번 타자의 타석이 계속 이어졌다.

현재 카운트는 노 볼, 원 스트라이크.

하지만 아직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인지 교체된 투수의 공이 자꾸만 빠졌다.

결국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포볼로 1루를 채워 버렸다.

무사 주자 1, 2루 상황이 되자 분위기가 역전되며 중국의 대타 작전이 이어졌다.

차분한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대타자.

또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 방망이를 휘두르며 자세를 잡는다.

그러자 대한민국의 덕아웃에서도 타임을 요청했다.

민수와 함께 마운드에 오른 코치는 짐짓 작전을 내리는 척을 했다.

사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투수를 안정시키려는 의도였다.

“현준아, 괜찮아. 차분히 하자. 아직 우리가 3점이나 앞서 있으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어.”

코치가 웃으며 다독여 주자, 새로 교체된 투수 현준도 편안하게 대꾸했다.

“네. 걱정 마세요. 이제 몸도 풀렸으니, 제대로 던질 거예요.”

“그래. 그럼 빨리 끝내고 집에 가자. 별것도 아닌 놈들, 얼른 잡아버리고.”

“하하, 네.”

“그래. 파이팅!”

짧게 용건을 마친 코치가 민수와 함께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다시 곧 경기가 재개되었다.

현준은 한층 안정이 되었는지, 아까보다 힘 있게 공을 던졌다.

“스트라잌!”

초구는 한복판의 스트라이크.

대타로 나온 중국 팀 선수가 크게 헛스윙을 했다.

공은 맞추지는 못했지만, 꽤나 위협적인 퍼포먼스였다.

타자의 성향을 분석한 민수가 2구는 살짝 빠지는 볼을 요구했다.

하지만 중국의 타자가 잘 참아 내서 볼이 선언됐다.

다시 공을 받은 현준이 1루와 2루를 힐끔 쳐다본 후, 세트 포지션 자세로 공을 던졌다.

슈우욱.

그 순간, 타자가 갑자기 몸을 낮추며 번트 자세를 취했다.

동시에 베이스를 밟고 있던 주자들이 일제히 스타트를 끊었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1루 베이스 라인을 따라 굴렀다.

현준이 재빨리 달려 나가 공을 낚아채자, 전체 베이스를 살핀 민수가 급히 지시를 내렸다.

“늦었어! 1루만!”

현준은 주저 없이 몸을 돌려 준혁에게 공을 던졌다

타자는 가볍게 아웃되었지만, 1루와 2루 주자는 무사히 다음 베이스에 도착했다.

[3점 차 리드를 하고 있는 대한민국. 현재 주자 2, 3루의 위기가 계속됩니다.]

[네. 이번엔 허를 찔렸지요? 중국의 대타 선수가 번트를 댈 것이라고 전혀 예상을 못했어요.]

[맞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보면, 작전 수행 능력이 좋은 타자였던 것 같습니다.]

[나무 배트와 달리 알루미늄 배트는 특유의 반발력 때문에 오히려 번트를 대는 것이 어려운 경우도 있거든요. 한마디로 번트 기술이 더 필요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성공적인 대타 작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원 아웃, 주자 2, 3루 상황에서 중국의 7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때, 덕아웃에서 지시를 받은 민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루 작전.

포스아웃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 1루를 채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대신 현준은 전력으로 공을 던지며 아직 완전하지 않은 컨디션을 끌어 올리는 데 집중했다.

[승부수를 걸었어요. 한국이 비어 있는 베이스를 채우네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고의사구를 굉장히 열심히 던졌거든요.]

[맞아요. 갑작스러운 교체 때문에 아직 덜 풀린 몸을 풀기 위한 것으로 보여요.]

[아, 중국도 이번에는 대타 없이 타순대로 이어 갑니다. 지금 타자에게 모든 것을 맡긴 것이죠.]

[네. 어제 투수로 나와 꽤 많은 이닝을 던진 선수예요. 타순에 비해 절대 못 치는 선수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 팀도 각별히 조심을 해야겠습니다.]

원 아웃, 주자 만루.

마침내 대기 타석에 있던 중국의 8번 타자가 타석으로 들어서자, 중국의 응원단에서 큰 소리로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이 최대의 승부처라는 것을 모두가 아는 것이다.

이에 질세라 대한민국의 응원단에서도 커다란 응원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껏 흥분된 열기가 그라운드 전체를 뒤덮었다.

다행스럽게도 현준은 서서히 몸에서 열기가 오르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온몸의 엔진이 정상적으로 불이 붙은 것이다.

어차피 만루 상황이기에 세트 포지션은 필요치 않은 현준이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이어 힘입게 팔을 휘두르며 공을 뿌려 내자…….

펑!

“스트라이크!”

몸 쪽 낮은 코스로 꽉 차게 공이 들어갔다.

가만히 지켜본 중국 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망이를 휘둘러보았다.

이 공은 치더라도 좋은 코스로 보내기가 힘들어 거른 것이었다.

“공 좋아! 나이스 볼!”

민수가 격려하기 위해 크게 소리 지르며 다시 볼을 돌려줬다.

잠시 사인을 주고받은 후, 현준이 다시 힘차게 공을 던졌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유인구였지만, 이번에는 중국 선수도 속지 않았다.

“볼!”

원 볼, 원 스트라이크.

현준의 볼을 타고 한 줄기 땀이 흘러내렸다.

땅볼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공을 낮게 던져야 했다.

심장이 쿵쿵거리는 가운데 3구를 위한 와인드업이 시작되고, 현준은 온 힘을 다해서 공을 뿌렸다.

슈우우욱!

[던졌습니다! 그에 방망이를 휘두르는 중국 선수!]

깡!

알루미늄 배트가 공을 때리는 소리가 그라운드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