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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부상 (2)
하얀 공이 하늘 높이 날아간다.
낮은 공을 치기 위해 어퍼 스윙으로 퍼 올린 중국 타자이지만, 다행히 공의 위력에 약간 밀렸는지 1루와 우익수 사이로 공이 떠올랐다.
“내가 잡을게!”
준혁이 공의 위치를 힐끔 보고는 낙하지점까지 빠르게 달려갔다.
공이 높이 뜬 상태라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공을 잡으면 3루 주자가 홈으로 뛸 거야.’
준혁은 예측한 낙하지점보다 두 발짝 정도 거리를 지나쳐 멈춰 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정점을 찍은 공이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타이밍을 잰 준혁은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글러브를 들어 공을 잡았다.
그 순간, 3루 주자가 홈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딜!”
준혁이 빠르게 글러브에서 공을 빼며 달리는 힘을 이용해 원투 스텝을 밟았다.
그러고는 민수를 향해 힘껏 공을 던졌다.
슈우욱―!
순간, 하얀 실선이 생겨나며 레이저처럼 공이 날아갔다.
홈 플레이트 옆에 서 있던 민수가 가만히 글러브를 내밀었다.
퍼억!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글러브 안으로 공이 들어왔다.
이어 달려오는 주자를 향해 글러브를 내밀어 태그.
“아웃!”
심판의 콜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응원석에서 커다란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아! 기가 막힌 보살이었습니다. 남준혁 선수의 송구가 포수의 글러브까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기가 막히네요. 절대 리틀 야구 수준의 송구가 아닙니다.]
[네! 대한민국 큰 위기를 넘기는 순간입니다.]
[남준혁 선수, 야구 잘해요. 미리 공을 잡기 전부터 송구까지 염두에 둔 플레이를 합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쓰리 아웃으로 5회 수비를 마무리합니다.]
해설자와 캐스터가 감탄을 쏟아 내는 사이, 한국 팀 선수들이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나이스!”
“쩔어! 남준혁!”
아이들은 어린 나이답게 흥분해서 저마다 소리를 질러 댔다.
“잘했다, 얘들아!”
“잘 막았어. 현준이도 고생했고!”
감독과 코치도 조금은 흥분했는지, 약간 올라간 목소리로 아이들을 치하했다.
그때, 준혁이 한쪽 구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는 치열에게 다가갔다.
“좀 어때?”
걱정이 담긴 말에 치열은 고개를 들어 준혁을 바라봤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만은 않은지, 어딘가 어두운 기색이 느껴졌다.
“아픈 건 괜찮아졌는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봐야 할 거 같아.”
“…그래. 오늘 약간 무리해서 그런가 봐. 큰일은 없을 거야.”
“응.”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준혁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내가 하는 스트레칭 방법이 있는데, 알려 줄까? 부상이나 회복에 도움이 많이 되거든.”
치열이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자, 준혁이 싱긋 웃었다.
그런 준혁을 잠시 바라보던 치열이 조금의 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됐어. 사실 야구 과외 받으면서 그런 것도 다 배우거든. 암튼 고마워.”
“그래? 할 수 없지, 뭐. 암튼 오늘 잘했는데… 아쉽다.”
“…하하, 그래.”
그때, 털보 코치가 서둘러 준혁을 불렀다.
“준혁아! 얼른 대기 타석에 들어가야지!”
“네, 코치님!”
준혁이 자리로 돌아가 부랴부랴 보호 장비를 착용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치열이 분한 듯 이를 악물었다.
***
[왠지 길게 느껴졌던 중국과의 준결승전, 드디어 대한민국의 5대 0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네, 그렇습니다. 다른 날보다 좀 힘들었는데, 그래도 너무 잘 싸워줬어요. 우리의 늠름한 태극전사들, 오늘 아주 고생했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싶네요.]
[이제 내일 2시에 결승전이 벌어집니다. 상대는 잠시 후 벌어질 대만과 홍콩의 준결승전에서 결정됩니다.]
[전력상으로는 대만이 약간 우세합니다만, 홍콩도 만만치 않아요.]
[맞습니다. 이어서 중계되는 준결승전도 많이 시청해 주시고, 저희는 잠시 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위기를 넘긴 한국 팀은 5회 말 공격에서 2점을 추가하고, 이어 6회 초 중국의 공격을 무실점으로 막아 내며 준결승전을 마쳤다.
몇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역시 야구는 잘하는 팀이 잘한다는 격언대로 대한민국 팀이 무난하게 승리를 가져온 것이다.
응원단의 환호성을 뒤로한 채 덕아웃에서 짐을 챙기는 대한민국 팀의 선수들은 아직 승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소란스럽게 떠들어 댔다.
“그럼 나는 치열이 부모님이랑 병원에 좀 들렀다가 바로 들어갈게.”
“네, 선배님. 그럼 저희도 오늘은 일찍 해산하겠습니다.”
“그래, 고생 좀 해 줘.”
감독이 털보 코치에게 마무리를 맡긴 후, 치열과 함께 덕아웃을 나갔다.
아무래도 대회 중에 다친 것이라서 그런지, 병원까지 함께 갈 모양이었다.
“준혁아, 몸은 괜찮아?”
준혁이 덕아웃 밖으로 나오니, 부모님이 앞에 와 계셨다.
“엄마! 아빠!”
준혁이 반갑게 소리 지르자 미래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
“어디 보자. 다친 데는 없어?”
“응, 괜찮아. 약간 뻐근하긴 한데, 어디 쓸린 데는 없는 것 같아.”
“휴우, 다행이다. 다음부터는 조심해. 그런 큰 애들이 덤비면 피하고!”
미래가 다짐을 받듯 다그치자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걱정하지 마. 그리고 사실 내 몸이 센 편이라 잘 안 다쳐.”
“하하하, 그래. 그렇다고 하자, 아들아.”
일권이 귀엽다는 듯 크게 웃자, 준혁은 입을 삐죽거렸다.
“진짠데. 이걸 확인시켜 줄 수도 없고… 아, 괴롭다.”
“됐고. 오늘은 그럼 그냥 가면 되는 거야? 훈련은 더 없고?”
하나둘 빠져나가는 선수들을 살펴보며 미래가 물었다.
“응. 푹 쉬고 내일 결승전 준비하래.”
“잘됐다. 그럼 얼른 가서 점심부터 먹자. 뭐 먹을래?”
“갈비!”
“하하, 그래. 오늘 고생했으니, 갈비 먹자. 아빠가 쏘마!”
“원래 아빠가 사는 거야. 가자.”
***
휴게실에서 격투기 채널을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한 이공자가 그라운드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싸부, 오늘도 이겼어요! 콜드는 못 해서 죄송해요. 생각보다 경기가 좀 꼬여서.”
이공자가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려 준혁을 바라보았다.
언제 가져다 놓은 건지, 스트레칭 매트도 꺼내져 있었다.
오늘은 함께 스트레칭을 하려는 것 같았다.
“왜요, 싸부?”
준혁의 이공자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어봤다.
그러자 별다른 대답 없이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던 이공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에엥?”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 준혁.
이공자가 손을 뻗어 준혁의 팔을 잡더니, 자신의 앞에 멈춰 세웠다.
“가만히 있거라.”
“네? 네.”
이공자의 목소리가 무겁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준혁이 부딪친 곳을 만져 보는 이공자.
가슴과 옆구리 부분을 쓰다듬더니, 몸을 돌려 뒷부분도 꼼꼼하게 살폈다.
“아, 걱정돼서 그러시는구나. 괜찮아요, 이제.”
준혁의 너스레에도 대꾸 없이 계속 준혁의 몸을 더듬던 이공자가 말했다.
“많이 심각하지는 않지만 기운이 뭉쳤다. 이런 상태를 치료하지 않고 놔두면 혈이 꼬이고 기가 뒤틀려서 결국 주화입마에 들게 되는 것이야.”
“네?”
이공자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운동을 하다 보면 이 정도 근육통은 누구나 다 생기는 것 아닌가.
특히나 평소 이공자에게 배운 스트레칭과 호흡법 때문인지 크게 충격을 받지도 않았다.
하지만 준혁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공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몸의 균형이 깨져 온갖 질병과 심마가 몸을 지배하게 된다.”
“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그 자식을 단숨에 처치해 버릴 텐데.”
“워워~ 사부, 진정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끝나고 미안하다고 말한 것 같기도 했어요. 물론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됐다! 넌 아직 어려서 강호를 모른다!”
“네?”
“그놈은 널 볼 수 있었단 말이다. 내가 보기엔 일부러 그런 것이 틀림없어. 자기보다 키도 작은 준혁이 네가 야구를 훨씬 잘하니까 시기를 한 것이지. 그런 놈들 내가 많이 봤다.”
“…….”
사부가 드디어… 미쳤다.
준혁이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봤지만, 이공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말만 계속했다.
“가부좌를 틀고 여기 앉아라. 마침 내가 매트도 준비해 놨다.”
“아, 근데…….”
“쉿! 지금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앉아만 있어라.”
“…네.”
준혁이 매트에 가부좌를 틀고 앉자, 그 뒤로 이공자가 앉는 것이 느껴졌다.
“자, 눈을 감고, 숨 쉴 때 내가 알려 준 호흡법을 사용하도록 해라.”
“네, 사부.”
“대답도 하지 마라.”
“…….”
준혁이 침을 꿀꺽 삼킨 후, 차분하게 숨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이공자가 준혁의 등에 자신의 장심, 그러니까 손바닥을 가만히 가져다 댔다.
‘엇!’
준혁은 무언가 따뜻하면서 청량한 기운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서로 상반된 느낌.
따뜻하면서 시원하고, 잔잔하면서 힘찼다.
그 기운은 일정한 통로를 따라 움직이듯 준혁의 몸 안을 휘돌기 시작했다.
이윽고 거세면서도 부드럽게 이동하던 기운이 준혁의 옆구리와 등 부분에 도착했다.
오늘 준혁이 통증을 느낀 부분이었다.
그곳에 도달하자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기운.
그 기운은 무언가 막혀 있는 부분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계속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모두 제거한 기운은 다시 준혁의 몸 전체로 돌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막히는 부분도 있고,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있었으나, 어루만지듯 자극하며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준혁은 너무나 이질적인 기운이 원래 자신의 것인 양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온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느낌.
자신도 모르게 준혁의 얼굴에 빙그레 웃음이 피어났다.
‘좋다.’
이윽고 시간이 다 되었다는 듯이 몸속을 돌고 있던 기운이 다시 등을 통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
아쉬움이 느껴졌다.
자신의 몸인 것처럼 돌아다니던 기운은 마치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듯 무정하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서운함마저 느껴지는 허탈함.
그때, 이공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되었다. 한번 일어나 보거라.”
그 말에 감고 있던 눈을 뜬 준혁이 가부좌를 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어!”
옆구리의 뻐근함이 사라진 것은 둘째 치더라도 온몸에 알게 모르게 쌓여 있던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괜히 번갈아 팔을 돌리다가 허리도 좌우로 돌려봤다.
그러고는 몸을 홱 돌려 이공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후~ 사부, 제 몸이 완전 젊어졌어요! 한 10년 정도는 어려진 것 같아요.”
따악!
“아야!”
“어린놈이 까부는구나. 그래, 지금 몸 상태는 어떠하신가?”
약간 거만해진 말투로 이공자가 물었다.
어딘가 칭찬을 바라는 모습마저 엿보였다.
암, 사부는 충분히 거만해도 된다!
준혁이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과장되게 소리 질렀다.
“완전! 대박! 역시 싸부! 존경합니다! 리스펙!”
“다행이구나. 이제 어디서 맞고 다니지 말고 제대로 좀 해라. 제자라고 하나 있는 게 약해 빠져서, 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공자의 얼굴에서 뿌듯함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어쨌든 준혁은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됐고. 내일 결승은 선발이니, 콜드로 끝내도록 해라. 지루하게 질질 끌지 말고. 알았지? 자, 난 이제 격투기 좀 보고 올 테니, 스트레칭하고 있어라.”
“넵, 싸부!”
과장되게 포권 자세를 취하며 준혁이 소리를 질렀다.
***
오후 2시부터 열린 대망의 결승전.
모두의 예상대로 어제 준결승전의 승자인 대만과 다시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하지만 준혁이 선발로 나오자 이미 기가 눌린 대만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물론 중계진과 응원단이 오늘도 혹시나 하며 기대한 퍼펙트게임은 시작하자마자 깨지고 말았다.
hit by pitched ball.
일명 몸에 맞는 공.
초반부터 힘이 넘친 준혁의 공이 제대로 제구가 되지 않아 대만의 1번 타자 등을 가격했다.
1루 베이스로 걸어가는 선수에게 다가가 등까지 쓰다듬어 주며 미안하다고 사과한 준혁은 다행히 다시 제구를 잡아 그 이후부터는 노 히터 게임을 진행했고, 3회까지 던진 후 교체되었다.
어제 치열의 경우도 있고 해서 괜히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준혁은 공격에서도 홈런 하나와 안타를 기록해 팀 승리에 크게 이바지했다.
최종 스코어 7대 2.
대한민국 선발팀은 무난하게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아시아―퍼시픽 & 중동 지역 대표 자리를 따냈다.
결국 미국 펜실베니아 주 윌리엄스 포트에서 열리는 세계 대회에 준혁이 속한 대한민국 팀이 출전하게 된 것이다.
승리의 순간에 모든 선수들과 응원단, 그리고 시청자들이 기뻐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미래가 다시 판다가 된 것도, 일권이 놀리다가 등짝을 맞은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리틀 야구 월드시리즈[Little League World Series]!
그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준혁의 팀도 새로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꿈의 구장에서 수비 파트를 모두 마스터한 준혁은 계획에도 없던 포수 파트의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얀 공이 하늘 높이 날아간다.
낮은 공을 치기 위해 어퍼 스윙으로 퍼 올린 중국 타자이지만, 다행히 공의 위력에 약간 밀렸는지 1루와 우익수 사이로 공이 떠올랐다.
“내가 잡을게!”
준혁이 공의 위치를 힐끔 보고는 낙하지점까지 빠르게 달려갔다.
공이 높이 뜬 상태라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공을 잡으면 3루 주자가 홈으로 뛸 거야.’
준혁은 예측한 낙하지점보다 두 발짝 정도 거리를 지나쳐 멈춰 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정점을 찍은 공이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타이밍을 잰 준혁은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글러브를 들어 공을 잡았다.
그 순간, 3루 주자가 홈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딜!”
준혁이 빠르게 글러브에서 공을 빼며 달리는 힘을 이용해 원투 스텝을 밟았다.
그러고는 민수를 향해 힘껏 공을 던졌다.
슈우욱―!
순간, 하얀 실선이 생겨나며 레이저처럼 공이 날아갔다.
홈 플레이트 옆에 서 있던 민수가 가만히 글러브를 내밀었다.
퍼억!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글러브 안으로 공이 들어왔다.
이어 달려오는 주자를 향해 글러브를 내밀어 태그.
“아웃!”
심판의 콜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응원석에서 커다란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아! 기가 막힌 보살이었습니다. 남준혁 선수의 송구가 포수의 글러브까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기가 막히네요. 절대 리틀 야구 수준의 송구가 아닙니다.]
[네! 대한민국 큰 위기를 넘기는 순간입니다.]
[남준혁 선수, 야구 잘해요. 미리 공을 잡기 전부터 송구까지 염두에 둔 플레이를 합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쓰리 아웃으로 5회 수비를 마무리합니다.]
해설자와 캐스터가 감탄을 쏟아 내는 사이, 한국 팀 선수들이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나이스!”
“쩔어! 남준혁!”
아이들은 어린 나이답게 흥분해서 저마다 소리를 질러 댔다.
“잘했다, 얘들아!”
“잘 막았어. 현준이도 고생했고!”
감독과 코치도 조금은 흥분했는지, 약간 올라간 목소리로 아이들을 치하했다.
그때, 준혁이 한쪽 구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는 치열에게 다가갔다.
“좀 어때?”
걱정이 담긴 말에 치열은 고개를 들어 준혁을 바라봤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만은 않은지, 어딘가 어두운 기색이 느껴졌다.
“아픈 건 괜찮아졌는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봐야 할 거 같아.”
“…그래. 오늘 약간 무리해서 그런가 봐. 큰일은 없을 거야.”
“응.”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준혁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내가 하는 스트레칭 방법이 있는데, 알려 줄까? 부상이나 회복에 도움이 많이 되거든.”
치열이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자, 준혁이 싱긋 웃었다.
그런 준혁을 잠시 바라보던 치열이 조금의 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됐어. 사실 야구 과외 받으면서 그런 것도 다 배우거든. 암튼 고마워.”
“그래? 할 수 없지, 뭐. 암튼 오늘 잘했는데… 아쉽다.”
“…하하, 그래.”
그때, 털보 코치가 서둘러 준혁을 불렀다.
“준혁아! 얼른 대기 타석에 들어가야지!”
“네, 코치님!”
준혁이 자리로 돌아가 부랴부랴 보호 장비를 착용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치열이 분한 듯 이를 악물었다.
***
[왠지 길게 느껴졌던 중국과의 준결승전, 드디어 대한민국의 5대 0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네, 그렇습니다. 다른 날보다 좀 힘들었는데, 그래도 너무 잘 싸워줬어요. 우리의 늠름한 태극전사들, 오늘 아주 고생했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싶네요.]
[이제 내일 2시에 결승전이 벌어집니다. 상대는 잠시 후 벌어질 대만과 홍콩의 준결승전에서 결정됩니다.]
[전력상으로는 대만이 약간 우세합니다만, 홍콩도 만만치 않아요.]
[맞습니다. 이어서 중계되는 준결승전도 많이 시청해 주시고, 저희는 잠시 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위기를 넘긴 한국 팀은 5회 말 공격에서 2점을 추가하고, 이어 6회 초 중국의 공격을 무실점으로 막아 내며 준결승전을 마쳤다.
몇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역시 야구는 잘하는 팀이 잘한다는 격언대로 대한민국 팀이 무난하게 승리를 가져온 것이다.
응원단의 환호성을 뒤로한 채 덕아웃에서 짐을 챙기는 대한민국 팀의 선수들은 아직 승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소란스럽게 떠들어 댔다.
“그럼 나는 치열이 부모님이랑 병원에 좀 들렀다가 바로 들어갈게.”
“네, 선배님. 그럼 저희도 오늘은 일찍 해산하겠습니다.”
“그래, 고생 좀 해 줘.”
감독이 털보 코치에게 마무리를 맡긴 후, 치열과 함께 덕아웃을 나갔다.
아무래도 대회 중에 다친 것이라서 그런지, 병원까지 함께 갈 모양이었다.
“준혁아, 몸은 괜찮아?”
준혁이 덕아웃 밖으로 나오니, 부모님이 앞에 와 계셨다.
“엄마! 아빠!”
준혁이 반갑게 소리 지르자 미래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
“어디 보자. 다친 데는 없어?”
“응, 괜찮아. 약간 뻐근하긴 한데, 어디 쓸린 데는 없는 것 같아.”
“휴우, 다행이다. 다음부터는 조심해. 그런 큰 애들이 덤비면 피하고!”
미래가 다짐을 받듯 다그치자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걱정하지 마. 그리고 사실 내 몸이 센 편이라 잘 안 다쳐.”
“하하하, 그래. 그렇다고 하자, 아들아.”
일권이 귀엽다는 듯 크게 웃자, 준혁은 입을 삐죽거렸다.
“진짠데. 이걸 확인시켜 줄 수도 없고… 아, 괴롭다.”
“됐고. 오늘은 그럼 그냥 가면 되는 거야? 훈련은 더 없고?”
하나둘 빠져나가는 선수들을 살펴보며 미래가 물었다.
“응. 푹 쉬고 내일 결승전 준비하래.”
“잘됐다. 그럼 얼른 가서 점심부터 먹자. 뭐 먹을래?”
“갈비!”
“하하, 그래. 오늘 고생했으니, 갈비 먹자. 아빠가 쏘마!”
“원래 아빠가 사는 거야. 가자.”
***
휴게실에서 격투기 채널을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한 이공자가 그라운드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싸부, 오늘도 이겼어요! 콜드는 못 해서 죄송해요. 생각보다 경기가 좀 꼬여서.”
이공자가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려 준혁을 바라보았다.
언제 가져다 놓은 건지, 스트레칭 매트도 꺼내져 있었다.
오늘은 함께 스트레칭을 하려는 것 같았다.
“왜요, 싸부?”
준혁의 이공자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어봤다.
그러자 별다른 대답 없이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던 이공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에엥?”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 준혁.
이공자가 손을 뻗어 준혁의 팔을 잡더니, 자신의 앞에 멈춰 세웠다.
“가만히 있거라.”
“네? 네.”
이공자의 목소리가 무겁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준혁이 부딪친 곳을 만져 보는 이공자.
가슴과 옆구리 부분을 쓰다듬더니, 몸을 돌려 뒷부분도 꼼꼼하게 살폈다.
“아, 걱정돼서 그러시는구나. 괜찮아요, 이제.”
준혁의 너스레에도 대꾸 없이 계속 준혁의 몸을 더듬던 이공자가 말했다.
“많이 심각하지는 않지만 기운이 뭉쳤다. 이런 상태를 치료하지 않고 놔두면 혈이 꼬이고 기가 뒤틀려서 결국 주화입마에 들게 되는 것이야.”
“네?”
이공자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운동을 하다 보면 이 정도 근육통은 누구나 다 생기는 것 아닌가.
특히나 평소 이공자에게 배운 스트레칭과 호흡법 때문인지 크게 충격을 받지도 않았다.
하지만 준혁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공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몸의 균형이 깨져 온갖 질병과 심마가 몸을 지배하게 된다.”
“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그 자식을 단숨에 처치해 버릴 텐데.”
“워워~ 사부, 진정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끝나고 미안하다고 말한 것 같기도 했어요. 물론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됐다! 넌 아직 어려서 강호를 모른다!”
“네?”
“그놈은 널 볼 수 있었단 말이다. 내가 보기엔 일부러 그런 것이 틀림없어. 자기보다 키도 작은 준혁이 네가 야구를 훨씬 잘하니까 시기를 한 것이지. 그런 놈들 내가 많이 봤다.”
“…….”
사부가 드디어… 미쳤다.
준혁이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봤지만, 이공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말만 계속했다.
“가부좌를 틀고 여기 앉아라. 마침 내가 매트도 준비해 놨다.”
“아, 근데…….”
“쉿! 지금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앉아만 있어라.”
“…네.”
준혁이 매트에 가부좌를 틀고 앉자, 그 뒤로 이공자가 앉는 것이 느껴졌다.
“자, 눈을 감고, 숨 쉴 때 내가 알려 준 호흡법을 사용하도록 해라.”
“네, 사부.”
“대답도 하지 마라.”
“…….”
준혁이 침을 꿀꺽 삼킨 후, 차분하게 숨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이공자가 준혁의 등에 자신의 장심, 그러니까 손바닥을 가만히 가져다 댔다.
‘엇!’
준혁은 무언가 따뜻하면서 청량한 기운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서로 상반된 느낌.
따뜻하면서 시원하고, 잔잔하면서 힘찼다.
그 기운은 일정한 통로를 따라 움직이듯 준혁의 몸 안을 휘돌기 시작했다.
이윽고 거세면서도 부드럽게 이동하던 기운이 준혁의 옆구리와 등 부분에 도착했다.
오늘 준혁이 통증을 느낀 부분이었다.
그곳에 도달하자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기운.
그 기운은 무언가 막혀 있는 부분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계속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모두 제거한 기운은 다시 준혁의 몸 전체로 돌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막히는 부분도 있고,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있었으나, 어루만지듯 자극하며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준혁은 너무나 이질적인 기운이 원래 자신의 것인 양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온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느낌.
자신도 모르게 준혁의 얼굴에 빙그레 웃음이 피어났다.
‘좋다.’
이윽고 시간이 다 되었다는 듯이 몸속을 돌고 있던 기운이 다시 등을 통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
아쉬움이 느껴졌다.
자신의 몸인 것처럼 돌아다니던 기운은 마치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듯 무정하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서운함마저 느껴지는 허탈함.
그때, 이공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되었다. 한번 일어나 보거라.”
그 말에 감고 있던 눈을 뜬 준혁이 가부좌를 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어!”
옆구리의 뻐근함이 사라진 것은 둘째 치더라도 온몸에 알게 모르게 쌓여 있던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괜히 번갈아 팔을 돌리다가 허리도 좌우로 돌려봤다.
그러고는 몸을 홱 돌려 이공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후~ 사부, 제 몸이 완전 젊어졌어요! 한 10년 정도는 어려진 것 같아요.”
따악!
“아야!”
“어린놈이 까부는구나. 그래, 지금 몸 상태는 어떠하신가?”
약간 거만해진 말투로 이공자가 물었다.
어딘가 칭찬을 바라는 모습마저 엿보였다.
암, 사부는 충분히 거만해도 된다!
준혁이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과장되게 소리 질렀다.
“완전! 대박! 역시 싸부! 존경합니다! 리스펙!”
“다행이구나. 이제 어디서 맞고 다니지 말고 제대로 좀 해라. 제자라고 하나 있는 게 약해 빠져서, 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공자의 얼굴에서 뿌듯함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어쨌든 준혁은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됐고. 내일 결승은 선발이니, 콜드로 끝내도록 해라. 지루하게 질질 끌지 말고. 알았지? 자, 난 이제 격투기 좀 보고 올 테니, 스트레칭하고 있어라.”
“넵, 싸부!”
과장되게 포권 자세를 취하며 준혁이 소리를 질렀다.
***
오후 2시부터 열린 대망의 결승전.
모두의 예상대로 어제 준결승전의 승자인 대만과 다시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하지만 준혁이 선발로 나오자 이미 기가 눌린 대만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물론 중계진과 응원단이 오늘도 혹시나 하며 기대한 퍼펙트게임은 시작하자마자 깨지고 말았다.
hit by pitched ball.
일명 몸에 맞는 공.
초반부터 힘이 넘친 준혁의 공이 제대로 제구가 되지 않아 대만의 1번 타자 등을 가격했다.
1루 베이스로 걸어가는 선수에게 다가가 등까지 쓰다듬어 주며 미안하다고 사과한 준혁은 다행히 다시 제구를 잡아 그 이후부터는 노 히터 게임을 진행했고, 3회까지 던진 후 교체되었다.
어제 치열의 경우도 있고 해서 괜히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준혁은 공격에서도 홈런 하나와 안타를 기록해 팀 승리에 크게 이바지했다.
최종 스코어 7대 2.
대한민국 선발팀은 무난하게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아시아―퍼시픽 & 중동 지역 대표 자리를 따냈다.
결국 미국 펜실베니아 주 윌리엄스 포트에서 열리는 세계 대회에 준혁이 속한 대한민국 팀이 출전하게 된 것이다.
승리의 순간에 모든 선수들과 응원단, 그리고 시청자들이 기뻐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미래가 다시 판다가 된 것도, 일권이 놀리다가 등짝을 맞은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리틀 야구 월드시리즈[Little League World Series]!
그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준혁의 팀도 새로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꿈의 구장에서 수비 파트를 모두 마스터한 준혁은 계획에도 없던 포수 파트의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