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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제1장
눈 속에서 파초가 푸르고, 불 속에서 연꽃이 자란다
(雪中蕉正綠,火裏蓮亦長)*1
1
상하이(上海), 타이캉루(田子坊), 210롱(弄), 티엔즈팡*2을 지나쳐 구불구불 이어진 미로를 맞닥뜨리면, 어제와 오늘이 교차하는 또 다른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그곳을 자두나무 롱탕*3이라고 불렀다. 화강석을 깎아 세운 틀이 롱탕을 지지하고 있었고, 진한 쪽빛으로 칠한 문을 밀어 롱탕 안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자두나무가 서 있었다.
4월이면 롱탕의 마당엔 하얀색 꽃잎이 소담하게 피어 달콤한 향기가 진동했다. 여름에는 자두나무 열매가 입이 심심한 노인과 늘 허기진 어린아이들의 배를 부르게 했다. 말이 없는 자두나무는 롱탕의 상징이자 롱탕 그 자체였다.
롱탕 길목부터 변덕스러운 7월의 날씨가 기세등등했다. 밤사이 추적추적 내린 비가 그쳐 골목은 눅눅한 습기로 가득 찼다.
드르륵, 드르륵. 낡은 여행 가방의 바퀴가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따금 작은 돌멩이가 걸릴 때면 꼭 비명처럼 귀가 따가운 소리를 냈다. 여행 가방은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였으나 그 주인은 멈추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어린애 몸집만 한 30인치 가방은 몹시 낡아서 제구실하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가방의 주인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 남자는 제 고통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가방이 울고불고 애원하든 말든, 그는 흙탕물을 튀기며 가벼운 발놀림으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이윽고 늦은 새벽, 자두나무 롱탕 앞에 도착한 남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쪽지 한 장을 꺼냈다. 파란색 잉크로 꾹꾹 눌러쓴 글귀엔 빨간색 벽돌을 끼워 넣은 스쿠먼*4이라는 글씨가 유난히 크게 쓰여 있었다. 과연 그 내용대로 이끼가 잔뜩 낀 문틀에 어울리지 않는 빨간색 벽돌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남자는 쪽지를 바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다음 마스크를 벗었다. 파랗게 질린 그의 입술은 조금의 물기도 머금고 있지 않아 메말라 있었다.
이른 새벽 자두나무 롱탕을 방문한 낯선 방문객의 이름은 린치앤(林茜)이었다.
린치앤은 180cm를 훌쩍 넘기는 큰 키에 팔다리가 길쭉하고 마른 사람이었다. 그의 유난히 창백한 피부는 온몸을 칭칭 휘감은 새카만 옷과 대비되어 어딘가 섬뜩하고 기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다만 살짝 처진 길쭉한 눈매가 어딘가 무구하고 순진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오른쪽 눈꺼풀과 미간에 자리 잡은 흉터는 험악한 인상은커녕 가련한 인상을 주기까지 했다.
린치앤은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뚜렷한 윤곽과 우뚝한 콧대가 강한 느낌을 주는가 하면, 여느 사람보다 기다랗고 살짝 처진 눈매는 서글픔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남자의 오묘한 공허 속에서 냉정과 열정, 강인함과 연약함, 섬뜩함과 아련함, 그 모든 희비가 마치 주홍빛 거품처럼 장황하게 부풀었다가 일순간에 사라지고는 했다.
린치앤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정보기관 망양원(罔兩院)의 26기 요원이었다.
망양원은 공식적인 기록에서 단 두 차례 등장한다. ‘1937년 12월 13일, 난징대학살(南京大虐殺) 이후, 상하이의 부호였던 장치앙(張强)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조직된 항일비밀결사단으로 출범한 애국 조직’이 그 첫 번째였고, ‘1960년, 망양단(罔兩團)에서 망양원으로 조직명을 변경하였다’가 두 번째였다.
하지만 신문이 삭아 흙으로 돌아가며, 그 기록마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망양원은 그림자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린치앤은 그림자의 그림자*5였다.
그는 옅은 그늘이다.
그리고 2015년 7월 10일은 망양원 요원 린치앤의 생애 첫 휴가였다.
린치앤은 새파란 문 위로 손바닥을 올리며 심호흡을 했다. 휴가는 지금까지 그가 망양원에서 수행한 임무 중 가장 난해했으며 완수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 다다를 것 같다는 망연함이 일었다.
린치앤은 눈을 질끈 감고 머릿속에서 바로 전날의 어둑어둑한 오후로 시계를 되돌렸다. 오수(午睡)에 잠긴 망양원의 흐린 정원을 내다보며 리양천(李洋晨)과 함께 있던 그 순간으로.
***
망양원은 상하이 깊숙한 곳, 하늘을 찌르는 날카로운 담장과 철제문으로 둘러싸여 은밀하게 숨을 죽이고 있다. 빅토리아 양식을 모방한 고풍스러운 5층 건물 맨 꼭대기에 원장(院長) 리양천의 집무실이 있다. 그 내부는 상하이의 가장 화려했던 1930년대에 멈추어 단 하루도 흐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올해로 62세인 리양천은 큰 키에 체격이 건장하고 정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완고하고 무뚝뚝한 인상이 그를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게 했으며, 검게 염색한 머리카락 뿌리에서 희끄무레하게 올라오는 흰머리가 세월을 더하는 데 거들었다.
리양천의 머리카락은 1992년, 그가 마흔 살이 되던 해, 어떤 비극적인 일로 하룻밤 사이에 새하얗게 세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카락을 검게 물들이는 것은 수많은 망양원의 요원 중 오직 린치앤의 특권이었다.
오후 3시경. 리양천은 일찌감치 집무를 마무리 짓고, 따뜻하게 데운 우유 한 잔과 초콜릿 두 조각을 준비해 집무실 한가운데 자리한 길쭉한 테이블에 갖다 두었다. 그리고 벽지에 시큼하게 찌든 담배 냄새를 지우고자 향을 피웠다.
양천은 오래되어 바닥이 푹 꺼진 낡은 가죽 소파 귀퉁이에 그보다 더 낡은 빨간 고무공을 챙겨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이처럼 세심하게 준비하는 까닭은 전부 린치앤을 위해서였다.
무자비하고 냉정한 원장이 일개 요원에 불과한 린치앤에게 쏟아붓는 막대하고 살가운 애정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적어도 망양원에서 눈칫밥깨나 먹었다면 말이다. 더군다나 양천은 제 친아들인 리윤(李昀)보다 치앤에게 더 각별했다.
이유 없는 선행은 없다. 보답을 바라지 않는 호의도 없다. 가장 순수한 이타심은 곧 가장 순수한 이기심이다.
리양천이 이처럼 린치앤에게 각별한 까닭이 있었다. 린치앤은 리양천의 인생에서 가장 활기차고 열정적이었던 시절을 하룻밤 사이에 시들게 한 쉬라이(徐來)의 아들이었다.
쉬라이 역시 과거 망양원의 요원이었다. 그녀는 17기 요원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으며, 망양원의 호사가들은 오늘날까지 그녀를 우수한 요원의 모범이자 이상적인 요원으로 회자하였다. 그와 동시에 변절자로 낙인찍힌 전례 없는 독특한 인물이기도 했다.
죽은 이는 말이 없고,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리양천과 쉬라이 사이에 있었던 절절한 사연이나, 화기애애했던 옛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세상의 먼지처럼 사라져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쉬라이의 죽음으로 맹렬한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던 청년 리양천은 죽었고, 오늘날 차디차고 비정하며 주도면밀하기까지 한 음습한 사내 리양천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리양천은 쉬라이와 그녀의 남편 린바이화(林白华)가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삶의 종장(終章)을 고한 이후, 세상에 홀로 남겨진 린치앤을 맡아 키웠다. 리양천은 린치앤을 자신만의 쉬라이로 만들었다.
리양천은 치앤의 갸름한 눈매를 보며 죽은 쉬라이를 떠올렸다. 아이는 자랄수록 죽은 쉬라이를 닮아 갔다.
리양천은 치앤이 쉬라이처럼 웃도록 가르쳤다. 영특한 아이는 곧잘 배웠고, 양천이 몹시 노여워하거나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면, 으레 배운 대로 웃어 그를 기쁘게 했다.
리양천에게 린치앤은 자신만의 쉬라이였다.
과거 쉬라이가 그랬던 것처럼 린치앤은 검은 옷을 상복의 뜻으로 갖춰 입으며, 제 손으로 망가뜨린 사람들의 삶을 애도했다. 다리를 반드시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눕혀 꼬는 사소한 습관부터 기호와 식성까지 어디 하나 쉬라이를 닮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린치앤이 반년 전 임무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돌아왔을 때, 양천은 세상이 무너져라 울었고 하룻밤 사이에 또 늙고 말았다.
린치앤의 지난 병상 기록을 살펴보며, 양천은 쉬라이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창문이 깨진 공중전화 부스에서 피 묻은 손으로 수화기를 꼭 붙들고, 핏물이 잔뜩 배어 비리고 쓰디쓴 음성으로 한마디 한마디 온 힘을 다해 내뱉던, 그녀의 그 말을.*6
‘……내 아이가 서로 거품을 뿜어 적셔 주는 물고기처럼 살게 해 줘.’*7
그 말은 유언이자 저주였다.
리양천은 몹시 거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기껏 향을 피운 보람이 없어졌다. 양천은 연달아 담배를 피웠다. 그만큼 치앤의 병상 기록 때문에 심란해진 것이다.
린치앤은 수차례에 걸친 큰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예후는 좋지 않았다. 오른쪽 눈은 동공이 확장되어 끝내 시력을 상실했다. 왼쪽 눈의 시력도 점차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얼굴에 남은 흉터는 수술로도 제거가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다.
리양천은 린치앤의 부상을 자신만의 쉬라이를 만들어 내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파렴치한 행위에 대한 징벌로 여겼다.
예전과 사뭇 달라진 치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양천은 뒤늦은 죄책감과 지독한 회의감에 사로잡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화신이 그 언젠가의 비 오는 밤, 쉬라이처럼 서서히 빛을 잃어 이 광막한 세상에 잠겨 들까 두려웠다.
리양천은 착잡한 심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때, 예고 없이 문이 활짝 열렸다. 양천은 서둘러 종이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앤이 망설임 없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리양천은 치앤이 말도 없이 벌컥 문을 밀어젖힌 것에 대해 노여워하기는커녕 기뻐했다.
치앤의 얼굴은 며칠 전 보았을 때보다 더 해쓱했다. 그는 집무실을 자욱하게 채운 메케한 담배 연기를 보더니, 의미 없이 웃었다. 리양천이 기뻐하기를 바라며.
린치앤은 망양원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내킬 때면 언제든 원장의 집무실을 방문할 특권을 누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적인 자리에서 양천을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자면 그것은 특권이라기보다는 멍에를 지는 것에 가까웠다. 리양천의 호의를 빙자한 부끄러운 욕망과 집착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양천은 치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듦으로써 제 수중에 두고 달아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1) 이유방(檀園集), 『단원집(檀園集)』, 문연각사고전서본(文淵閣四庫全書本) 중에서
2) 田子坊 상하이에 조성된 예술의 거리.
3) 弄堂 상하이 개방 이후 발전하기 시작한 주거 방식으로, 길을 따라 가옥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4) 石庫門 문호가 개방된 이후 상하이에서 유행한 건축 양식. 석재 문틀을 세워 바깥문을 만들었기 때문에 스쿠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5)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그림자와 망양」 중에서,
‘당신은 조금 전에는 걷다가 지금은 멈췄으며, 조금 전에는 앉아 있다가 지금은 섰습니다. 왜 그리 지조가 없습니까.’ 그림자가 말했다. ‘나는 의지하는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내가 의지하는 것도 또한 의지하는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내가 의지하는 것은 뱀이 그 비늘에 의지하거나, 매미가 그 날개에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러한지 알지 못하며, 왜 그렇지 않은지 알지 못합니다.’
(원문 - 罔兩問景曰: 曩子行, 今子止, 曩子坐, 今子起、 何其無特操與? 景曰: 吾有特而然者邪、 吾所待、 又有待而然者邪、 吾待蛇蚹蜩翼邪、惡識所以然、 惡識 所以不然。)
6) 우위썬(吳宇森) 감독의 영화 「영웅본색(英雄本色)」의 한 장면 오마주.
7) 장자, 『대종사(大宗師)』 중에서, 샘물이 말라 물고기들이 바닥에 나뒹굴자 서로 입김을 불어 축여 주고 거품을 내뿜어 적셔 주지만, 서로 잊고 물속을 노니는 것만 못하다.
(원문 - 泉涸、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