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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발할라.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온 전사들의 혼을 위해 마련된 보상의 공간.

술과 먹을 것이 끊이지 않는 발할라에서 전사들은 오직 먹고, 마시고 싸우고, 자는 등 그저 쾌락에 몸을 맡겨 살아가도 된다고 들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천국인 셈이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했냐 하면, 혹시 내가 그 발할라로 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앞에 존재하는 산해진미들과 알록달록한 칵테일.

그리고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취할 것 같은 도수 높은 맥주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발할라에 전사들을 데려가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발키리마냥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들이 내 옆에서 미소를 머금고 시중을 들고 있었다.

다만, 발키리는 여전사라 갑옷을 입고 있다는데, 내 옆에 있는 여인들은 갑옷이 아닌 빅토리아 시대풍의 메이드복을 입고 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

내가 비록 용맹한 전사는 아니었지만, 여자 한 번 못 사귈 정도로 바쁘게 인생을 살아왔기에 오딘께서도 각별히 여기신 게 아닐까?

여친 없는 경력이 곧 살아온 날짜인 나를 배려해 발할라로 데려오신 게 분명하다.

상황이 어찌된 건지 모르겠지만, 이 맛있는 음식과 마실 것들,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의 메이드들이 나를 시중들고 있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이 상황을 즐기지, 뭐.

그렇게 나는 입가에 함박미소를 머금은 채 여인 하나를 끌어안고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오! 오오!

그, 그렇군!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유압!

말랑말랑하면서도 푹신한 게, 마치 모든 것을 다 끌어안을 법한 포용력에 나도 모르게 정신이 아늑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거라, 아멜! 이제 그만 일어나!”

…아늑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그대로 의식이 끊긴 거였나.

아니면 어제의 그 일이 꿈이었나?

갑자기 아침 일찍부터 어깨가 떡 벌어진 중년기사 하나가 문을 박차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굳게 닫힌 입술과 화가 잔뜩 났는지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눈썹이 그가 보통 성격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듯했다.

“흐어어……?”

숙취 때문에 멍한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으니, 중년기사가 갑자기 나를 어깨에 들쳐 메고는 창가로 데려갔다.

“헨리!”

천장에서부터 밑바닥까지 이어질 정도로 기다랗고 거대한 창문을 활짝 연 중년기사가 갑자기 밖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밀짚모자를 쓴 채 리넨 수건을 목에 두른 중년의 남자가 1층에서 고개를 올려 올려다봤다.

“예! 주인님!”

주인님?

아, 이 중년기사가 이곳의 주인인가 보다.

“던질 거니까, 받아!”

그 말과 함께 중년기사가 대뜸 나를 창밖으로 집어 던졌다.

“으아아아아!”

장난으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다.

그는 진짜로 나를 집어 던졌고, 2층에서 떨어지는 감각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내가 떨어지는 것을 본 집사가 다급하게 정원 손질용 가위를 내려놓고 떨어질 지점을 향해 양팔을 벌렸다.

“잡았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듯, 집사가 매우 안정적인 자세로 나를 잡았다.

덕분에 예상한 것과 달리, 몸에 충격은 없었다.

“마차에 태워! 지금 당장!”

“예!”

크게 울려 퍼지는 중년기사의 사자후에 집사가 나를 안은 채 급하게 어디론가 달려갔다.

어찌된 일인지 상황 파악을 못 해 멍하니 집사를 쳐다보니, 집사가 입을 열었다.

“쯧쯧… 아멜 도련님, 대체 언제쯤 후작님을 실망시키지 않으실 겁니까?”

집사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무래도 나는 아멜이라는 이름의 도련님으로 전생을 한 것 같았다.

좀 더 자세한 사정을 물으려 했지만, 집사의 발이 어찌나 빠른지 벌써 대문에 도착했다.

대문에는 말 두 필이 모는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의 문을 열고 나를 안에 억지로 태우는 집사.

“흐음…….”

잘 짜여진 각본처럼 마차에 강제로 올라타자, 이번에는 어깨가 태평양처럼 넓은 백발의 노인이 올곧은 자세로 앉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대를 환영하네.”

그렇다.

이 마차는 입대…….

…어?

어어? 네?

예에?! 입대요?!

아니, 저 올해로 동원 예비군 훈련도 끝나서 민방위대로 편입된 사람인데요!

이세계까지 와서 또다시 군 생활을 해야 한다니!

나 다시 돌아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