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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후우, 잭스. 누누이 말하지만, 나대지 좀 말라고 했지.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과 달리, 간부님들은 전부 귀족 출신이라고 몇 번을 말해. 다른 간부님들 바보 취급하지 말라고 매번 말하는데 왜 안 되냐고. 죄송합니다, 소대장님. 잠시 잭스랑 빠져 있겠습니다.”
쉐인 상병이 크게 당황하며 잭스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됐어. 난 분명 괜찮다고 말했다.”
“아, 예에…….”
쉐인 상병이 잭스를 노려봤지만, 잭스는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쉐인 상병이 잭스를 억압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잭스를 챙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들 귀찮아하고 엮이기 싫은 것처럼 보이는데, 유일하게 쉐인 상병만이 같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그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 주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계속하겠습니다.”
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잭스, 너도 대단하다.
속으로 웃음이 비집고 나올 뻔했다.
잭스도 참 대단한 녀석인 게,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눈치가 보여서 말을 하지 못하거나 사리게 되는데, 어떻게 된 건지 한 말을 끝까지 다하려고 했다.
아무렴 어때.
도움이 되기만 하면 되지, 뭐.
“소대장님이 말씀하신 전략에는 세 가지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모루입니다.”
“모루?”
“아, 네. 소대장님이 설명하신 전략이 뭔가 망치랑 모루같이 느껴져서…….”
와…….
망치와 모루.
실제로 한국에서도 쓰는 전략적 용어였다.
아래서 버티고 있는 아군 병력이 모루, 별동대가 망치와 같은 형태를 띄고 있어서 흔히 망치와 모루라고 불렀다.
사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순간 나는 소름이 돋았다.
잭스에게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군 병력에 문제가 있다?”
잭스는 내가 그린 네모 박스 앞에 또 다른 박스를 그렸다.
모양 자체는 내가 그린 것과 유사한 직사각형이었지만, 내 것과 달리 매우 얇았다.
“저희 3소대는 2소대에 비해 사람이 적습니다. 그 상황에서 타격팀과 견제팀을 나눠 버리니까, 원래부터 불리하던 요소가 더 극대화됩니다. 망치가 우회해 적의 머리를 칠 때까지 과연 모루가 버틸 수 있까 싶습니다.”
음, 듣고 보니 확실히 모루에 가해지는 부담이 크게 느껴졌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의 온건한 반응에 조마조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쉐인 상병의 표정이 풀어졌다.
“다른 건 뭐지?”
“망치 쪽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흐음…….”
“저는 농가에서 자라 배운 게 없습니다만, 그런 제가 이해한 이 전략의 핵심은 결국 적의 머리를 치는 망치 아닙니까?”
“그렇지.”
“그렇다면 망치는 모루와 달리 유지력보다는 기동성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만, 다 같은 기종의 기간트로 훈련하게 될 텐데, 기동력의 차이를 어떤 방식으로 벌리실 겁니까? 그것도 이런 개활지에서 말입니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반응속도나 컨트롤에 있어서 자신은 있지만, 기체 간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치 못했다.
“최악의 경우, 오히려 팀을 나눈 것 때문에 각개격파 당할 수도 있겠군.”
내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좋은 지휘관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나쁜 지휘관이 뭔지는 잘 알았다.
틀린 게 분명함에도 생각을 굽히지 않고 아군을 사지로 내모는 지휘관.
꼰대스러운 오더 때문에 말아먹은 게임이 몇 판인지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었다.
게임도 그러한데, 현실은 어떻겠나.
“마지막은?”
“소대장님께서는 머리를 치러 가는 거라고 하셨지만, 제가 보기에는 머리가 스스로 적의 검에게 들이대는 것처럼 보입니다.”
소대장인 내가 샤를 중위를 치러 가는 것은 관점에 따라 잭스가 말한 대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내가 역으로 잡힌다는 위험성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리스크를 동반하지 않은 전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잭스는 아군을 상징하는 화살표가 그려진 흙을 앞으로 조금 흩트려 놓았다.
그러자 2소대를 상징하는 직사각형이 조금 뭉개졌고, 그와 동시에 잭스가 직사가형의 양옆에 있던 흙으로 아군을 감쌌다.
“전투가 개시되면 필시 이런 국면에 처하게 될 겁니다. 소대장님은 이걸 뚫고 우회하겠다는 말씀이시죠?”
“흐음…….”
아무리 아군 전열이 2소대의 양익전개를 막는다고 해도 개활지라는 필드 조건, 그리고 아군이 적보다 수가 적다는 상황 때문에 잭스가 말한 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컸다.
“설령 소대장님께서 뚫고 갔다고 합시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소대장님을 쫓으려 아무도 추격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중앙도 멍청하게 계속 우리만 보고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에 조금 말이 과격해졌지만, 일리가 있었기에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잭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아 보이나?”
후우, 역시 전문적인 군사 교육을 받지 않은 내가 작전을 짜려고 하니 허술한 점이 많네.
내 스타일은 앞장서서 마음대로 날뛰는 거지, 이렇게 작전을 수립하고 오더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괜히 오더를 잘하는 형을 떠올리며 따라하려 했다가 괜히 망신살만 뻗쳤네.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이등병이 이런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상치 않은 내 느낌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어쩌면 심상치 않은 녀석이 잭스 하나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앞으로의 소대장 생활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숲이나 협곡같이 공간이 협소한 곳에서 전투를 벌이면 소수라는 점을 오히려 살려 유격전을 하면 됩니다만, 여기는 개방된 장소… 전장이 저희의 장점을 살릴 수 없는 곳이라면 살리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굳이 협소한 지형에서 싸우려 하는 것은 부딪치는 면적을 줄여 수 때문에 불리한 것을 최대한 줄이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점돌파를 시도하는 게 이번 모의전에서는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일점돌파?”
뭔가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까는 상대의 벽이 두꺼워 우리 측 모루가 버티지 못한다고 했는데, 상황 자체는 변한 게 없는 거 아닌가?”
“아닙니다. 2소대장님은 영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이번 모의전에서 저희를 포위해 힘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큽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 주려 말입니다.”
전투면적을 줄여야 하는 게 소수 부대의 전투법이라면, 다수 부대는 오히려 전투면적을 넓혀 노는 인원을 없게 하는 게 전법일 것이었다.
“상대가 이기는 법을 알고 있기에 역으로 그것을 노리자는 말이냐?”
“예. 2소대가 날개를 펼치면 저희는 그 순간에 창이 되어 일점돌파를 해 적의 머리를 따낸다, 그게 제가 생각한 이번 모의전의 승리법입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봐도 이번 모의전에서 우리가 승리할 방법은 잭스가 제시한 게 가장 승률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의문점이 생겼다.
“잭스, 넌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잭스와 이야기를 하면서 내내 들었던 의구심.
의외로 전문적인 용어도 알고 있고, 또 전략 전술 전법의 개념 역시 명확히 잘 파악하고 있었다.
단순히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아, 그건 제가 가르친 겁니다.”
소리를 낸 것은 다름 아닌 네드 분대장이었다.
“분대장 교육을 받으며 배웠던 것을 신병에게 떠벌린 건가?”
“그건 아닐 겁니다. 네드는 분대장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네드를 대변한 것은 카트린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네드는 원래 장교 출신입니다. 복무 도중에 가문이 몰락해서 일반 병사로 강등된 케이스 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네드에 대해 급격히 호감이 갔다.
나 말고도 군대를 두 번 입대한 사람이 또 있을 줄이야.
“그래서 장교시절에 배우고 터득했던 것을 말해 줬다는 건가?”
“예에. 뭐 그렇기는 합니다만…….”
네드 분대장이 말끝을 흐리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따로 각을 잡아서 가르친 것도 아니고, 그저 자유시간 때 한두 마디 툭 내뱉었던 건데, 그걸 스스로 이해하고 터득한 것 같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천재라는 건가.
종종 커뮤니티에 보면 김태희가 밭을 가는 나라라든지, 메시가 양을 치는 나라라든지, 자기의 재능을 평생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 가득한 국가에 대한 농담들이 있었다.
하지만 제갈량이 밭을 가는 나라라니…….
아, 생각해 보니 제갈량도 유비를 만나기 전에 밭을 갈고 있었지.
생각치도 못한 원석 발굴에 나도 모르게 흐뭇해졌다.
“잭스의 계획대로 진행하겠다. 잭스는 나를 보좌해라.”
“예!”
“자, 그러면 잭스. 네 계획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면 되나?”
“계속 망치를 하시면 됩니다.”
“망치? 아까는 그렇게 하면 기동성의 차이를 벌릴 수 없다 하지 않았나?”
“우회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럼?”
잭스가 바닥에 그려져 있는 전장 한 곳에 동그란 원을 그렸다.
“소대장님은 이 부분을 맡아 주시면 됩니다.”
잭스가 제시한 내 역할군을 보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게임을 할 때마다 내가 맡던 포지션.
그것과 비슷한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좋아. 오랜 시간 겪어 온 수모를 되갚아 줄 차례다.”
***
공터를 가운데에 두고 대치 중인 여러 대의 기간트.
그런 그들을 보며 외곽 수풀 지대에 여러 명의 군인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소대장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대치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몸이 근질거리는지, 2소대 1분대장이 통신으로 샤를 중위에게 교전 허가를 요청했다.
[기다려라.]
먼저 호전적으로 모의전을 건 것과 달리, 냉정해 보이는 샤를.
입이 걸걸하고 행동에 거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침착하고 냉정한 게 샤를의 본 모습이었다.
‘이상하군. 아무리 망나니라고 하지만,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터. 이길 생각이라면 먼저 와야 할 텐데, 왜 이쪽의 상황을 탐색하고 있는 거지?’
샤를은 아멜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면, 그것을 간파한 뒤 완벽하게 파훼해 아멜의 멘탈을 박살낼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3소대가 이렇게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은 계산 밖의 이야기였다.
‘아주 천둥벌거숭이는 아니라는 건가? 흐음…….’
그렇게 몇 분간 이어진 대치 상황.
슬슬 구경꾼들마저 지루해질 시간이었다.
[소대장님, 아직입니까?]
계속되는 소대원들의 재촉에 샤를은 더 이상 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러다간 오히려 사기가 꺾일 판이었다.
설마 아멜이 이런 부분을 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제 아버지랑 다르게 치사한 면이 있군. 하지만 아멜, 네가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다. 바로 내가 마도학자라는 거지.’
샤를이 콕핏 내에 있는 히든 패널을 개방한 뒤, 열심히 조작했다.
패널 내 버튼들을 두들길 때마다 정면 디스플레이에 출력되는 U.I가 모습을 바꾸었다.
우웅―
이윽고 마석이 위치한 코어부로부터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샤를의 대장기.
[지금부터 마법을 캐스팅하겠다. 너희들은 나를 지키도록.]
[예!]
발밑에 마법진이 형성되는 대장기를 2소대원들이 보호하기 시작했다.
***
[지금입니다! 양익 전개!]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샤를 녀석이 잭스가 말한 대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 행동거지와 다르게 2소대장님은 매우 냉정하신 분입니다. 이쪽에서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함부로 공격하기보다는 마법을 사용할 게 분명합니다. 소대장님이 아까 말씀하신 일방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잭스 녀석은 배움이 빠른 녀석이었다.
설마 대화 도중에 내가 했던 말조차 기억해서 인용해 버릴 줄이야.
[쉐인! 로이! 우리는 좌익으로 이동한다!]
통신을 통해 울려 퍼지는 왕고 발터 병장의 말.
[예!]
[예!]
총 세 대의 C급 기간트가 각부 아래에 달린 바퀴를 돌려 흙먼지를 일으키며 이동했다.
[우리도 간다! 임벨 병장! 볼보! 나를 따라 우익 전개!]
좌익의 움직임에 질세라 알렉스 병장이 맡은 우익 역시 전개를 시작했다.
[칫, 귀찮아 죽겠네.]
[볼보! 갑니다!]
가만히 있던 우리가 날개를 펼치자, 방벽을 굳히던 2소대원들 사이에 약간의 소동이 일어났다.
마치 학이 날개를 편 것 같은 진형이 서서히 2소대를 덮치기 시작했다.
“후우, 잭스. 누누이 말하지만, 나대지 좀 말라고 했지.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과 달리, 간부님들은 전부 귀족 출신이라고 몇 번을 말해. 다른 간부님들 바보 취급하지 말라고 매번 말하는데 왜 안 되냐고. 죄송합니다, 소대장님. 잠시 잭스랑 빠져 있겠습니다.”
쉐인 상병이 크게 당황하며 잭스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됐어. 난 분명 괜찮다고 말했다.”
“아, 예에…….”
쉐인 상병이 잭스를 노려봤지만, 잭스는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쉐인 상병이 잭스를 억압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잭스를 챙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들 귀찮아하고 엮이기 싫은 것처럼 보이는데, 유일하게 쉐인 상병만이 같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그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 주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계속하겠습니다.”
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잭스, 너도 대단하다.
속으로 웃음이 비집고 나올 뻔했다.
잭스도 참 대단한 녀석인 게,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눈치가 보여서 말을 하지 못하거나 사리게 되는데, 어떻게 된 건지 한 말을 끝까지 다하려고 했다.
아무렴 어때.
도움이 되기만 하면 되지, 뭐.
“소대장님이 말씀하신 전략에는 세 가지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모루입니다.”
“모루?”
“아, 네. 소대장님이 설명하신 전략이 뭔가 망치랑 모루같이 느껴져서…….”
와…….
망치와 모루.
실제로 한국에서도 쓰는 전략적 용어였다.
아래서 버티고 있는 아군 병력이 모루, 별동대가 망치와 같은 형태를 띄고 있어서 흔히 망치와 모루라고 불렀다.
사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순간 나는 소름이 돋았다.
잭스에게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군 병력에 문제가 있다?”
잭스는 내가 그린 네모 박스 앞에 또 다른 박스를 그렸다.
모양 자체는 내가 그린 것과 유사한 직사각형이었지만, 내 것과 달리 매우 얇았다.
“저희 3소대는 2소대에 비해 사람이 적습니다. 그 상황에서 타격팀과 견제팀을 나눠 버리니까, 원래부터 불리하던 요소가 더 극대화됩니다. 망치가 우회해 적의 머리를 칠 때까지 과연 모루가 버틸 수 있까 싶습니다.”
음, 듣고 보니 확실히 모루에 가해지는 부담이 크게 느껴졌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의 온건한 반응에 조마조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쉐인 상병의 표정이 풀어졌다.
“다른 건 뭐지?”
“망치 쪽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흐음…….”
“저는 농가에서 자라 배운 게 없습니다만, 그런 제가 이해한 이 전략의 핵심은 결국 적의 머리를 치는 망치 아닙니까?”
“그렇지.”
“그렇다면 망치는 모루와 달리 유지력보다는 기동성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만, 다 같은 기종의 기간트로 훈련하게 될 텐데, 기동력의 차이를 어떤 방식으로 벌리실 겁니까? 그것도 이런 개활지에서 말입니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반응속도나 컨트롤에 있어서 자신은 있지만, 기체 간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치 못했다.
“최악의 경우, 오히려 팀을 나눈 것 때문에 각개격파 당할 수도 있겠군.”
내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좋은 지휘관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나쁜 지휘관이 뭔지는 잘 알았다.
틀린 게 분명함에도 생각을 굽히지 않고 아군을 사지로 내모는 지휘관.
꼰대스러운 오더 때문에 말아먹은 게임이 몇 판인지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었다.
게임도 그러한데, 현실은 어떻겠나.
“마지막은?”
“소대장님께서는 머리를 치러 가는 거라고 하셨지만, 제가 보기에는 머리가 스스로 적의 검에게 들이대는 것처럼 보입니다.”
소대장인 내가 샤를 중위를 치러 가는 것은 관점에 따라 잭스가 말한 대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내가 역으로 잡힌다는 위험성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리스크를 동반하지 않은 전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잭스는 아군을 상징하는 화살표가 그려진 흙을 앞으로 조금 흩트려 놓았다.
그러자 2소대를 상징하는 직사각형이 조금 뭉개졌고, 그와 동시에 잭스가 직사가형의 양옆에 있던 흙으로 아군을 감쌌다.
“전투가 개시되면 필시 이런 국면에 처하게 될 겁니다. 소대장님은 이걸 뚫고 우회하겠다는 말씀이시죠?”
“흐음…….”
아무리 아군 전열이 2소대의 양익전개를 막는다고 해도 개활지라는 필드 조건, 그리고 아군이 적보다 수가 적다는 상황 때문에 잭스가 말한 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컸다.
“설령 소대장님께서 뚫고 갔다고 합시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소대장님을 쫓으려 아무도 추격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중앙도 멍청하게 계속 우리만 보고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에 조금 말이 과격해졌지만, 일리가 있었기에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잭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아 보이나?”
후우, 역시 전문적인 군사 교육을 받지 않은 내가 작전을 짜려고 하니 허술한 점이 많네.
내 스타일은 앞장서서 마음대로 날뛰는 거지, 이렇게 작전을 수립하고 오더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괜히 오더를 잘하는 형을 떠올리며 따라하려 했다가 괜히 망신살만 뻗쳤네.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이등병이 이런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상치 않은 내 느낌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어쩌면 심상치 않은 녀석이 잭스 하나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앞으로의 소대장 생활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숲이나 협곡같이 공간이 협소한 곳에서 전투를 벌이면 소수라는 점을 오히려 살려 유격전을 하면 됩니다만, 여기는 개방된 장소… 전장이 저희의 장점을 살릴 수 없는 곳이라면 살리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굳이 협소한 지형에서 싸우려 하는 것은 부딪치는 면적을 줄여 수 때문에 불리한 것을 최대한 줄이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점돌파를 시도하는 게 이번 모의전에서는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일점돌파?”
뭔가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까는 상대의 벽이 두꺼워 우리 측 모루가 버티지 못한다고 했는데, 상황 자체는 변한 게 없는 거 아닌가?”
“아닙니다. 2소대장님은 영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이번 모의전에서 저희를 포위해 힘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큽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 주려 말입니다.”
전투면적을 줄여야 하는 게 소수 부대의 전투법이라면, 다수 부대는 오히려 전투면적을 넓혀 노는 인원을 없게 하는 게 전법일 것이었다.
“상대가 이기는 법을 알고 있기에 역으로 그것을 노리자는 말이냐?”
“예. 2소대가 날개를 펼치면 저희는 그 순간에 창이 되어 일점돌파를 해 적의 머리를 따낸다, 그게 제가 생각한 이번 모의전의 승리법입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봐도 이번 모의전에서 우리가 승리할 방법은 잭스가 제시한 게 가장 승률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의문점이 생겼다.
“잭스, 넌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잭스와 이야기를 하면서 내내 들었던 의구심.
의외로 전문적인 용어도 알고 있고, 또 전략 전술 전법의 개념 역시 명확히 잘 파악하고 있었다.
단순히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아, 그건 제가 가르친 겁니다.”
소리를 낸 것은 다름 아닌 네드 분대장이었다.
“분대장 교육을 받으며 배웠던 것을 신병에게 떠벌린 건가?”
“그건 아닐 겁니다. 네드는 분대장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네드를 대변한 것은 카트린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네드는 원래 장교 출신입니다. 복무 도중에 가문이 몰락해서 일반 병사로 강등된 케이스 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네드에 대해 급격히 호감이 갔다.
나 말고도 군대를 두 번 입대한 사람이 또 있을 줄이야.
“그래서 장교시절에 배우고 터득했던 것을 말해 줬다는 건가?”
“예에. 뭐 그렇기는 합니다만…….”
네드 분대장이 말끝을 흐리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따로 각을 잡아서 가르친 것도 아니고, 그저 자유시간 때 한두 마디 툭 내뱉었던 건데, 그걸 스스로 이해하고 터득한 것 같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천재라는 건가.
종종 커뮤니티에 보면 김태희가 밭을 가는 나라라든지, 메시가 양을 치는 나라라든지, 자기의 재능을 평생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 가득한 국가에 대한 농담들이 있었다.
하지만 제갈량이 밭을 가는 나라라니…….
아, 생각해 보니 제갈량도 유비를 만나기 전에 밭을 갈고 있었지.
생각치도 못한 원석 발굴에 나도 모르게 흐뭇해졌다.
“잭스의 계획대로 진행하겠다. 잭스는 나를 보좌해라.”
“예!”
“자, 그러면 잭스. 네 계획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면 되나?”
“계속 망치를 하시면 됩니다.”
“망치? 아까는 그렇게 하면 기동성의 차이를 벌릴 수 없다 하지 않았나?”
“우회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럼?”
잭스가 바닥에 그려져 있는 전장 한 곳에 동그란 원을 그렸다.
“소대장님은 이 부분을 맡아 주시면 됩니다.”
잭스가 제시한 내 역할군을 보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게임을 할 때마다 내가 맡던 포지션.
그것과 비슷한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좋아. 오랜 시간 겪어 온 수모를 되갚아 줄 차례다.”
***
공터를 가운데에 두고 대치 중인 여러 대의 기간트.
그런 그들을 보며 외곽 수풀 지대에 여러 명의 군인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소대장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대치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몸이 근질거리는지, 2소대 1분대장이 통신으로 샤를 중위에게 교전 허가를 요청했다.
[기다려라.]
먼저 호전적으로 모의전을 건 것과 달리, 냉정해 보이는 샤를.
입이 걸걸하고 행동에 거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침착하고 냉정한 게 샤를의 본 모습이었다.
‘이상하군. 아무리 망나니라고 하지만,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터. 이길 생각이라면 먼저 와야 할 텐데, 왜 이쪽의 상황을 탐색하고 있는 거지?’
샤를은 아멜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면, 그것을 간파한 뒤 완벽하게 파훼해 아멜의 멘탈을 박살낼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3소대가 이렇게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은 계산 밖의 이야기였다.
‘아주 천둥벌거숭이는 아니라는 건가? 흐음…….’
그렇게 몇 분간 이어진 대치 상황.
슬슬 구경꾼들마저 지루해질 시간이었다.
[소대장님, 아직입니까?]
계속되는 소대원들의 재촉에 샤를은 더 이상 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러다간 오히려 사기가 꺾일 판이었다.
설마 아멜이 이런 부분을 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제 아버지랑 다르게 치사한 면이 있군. 하지만 아멜, 네가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다. 바로 내가 마도학자라는 거지.’
샤를이 콕핏 내에 있는 히든 패널을 개방한 뒤, 열심히 조작했다.
패널 내 버튼들을 두들길 때마다 정면 디스플레이에 출력되는 U.I가 모습을 바꾸었다.
우웅―
이윽고 마석이 위치한 코어부로부터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샤를의 대장기.
[지금부터 마법을 캐스팅하겠다. 너희들은 나를 지키도록.]
[예!]
발밑에 마법진이 형성되는 대장기를 2소대원들이 보호하기 시작했다.
***
[지금입니다! 양익 전개!]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샤를 녀석이 잭스가 말한 대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 행동거지와 다르게 2소대장님은 매우 냉정하신 분입니다. 이쪽에서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함부로 공격하기보다는 마법을 사용할 게 분명합니다. 소대장님이 아까 말씀하신 일방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잭스 녀석은 배움이 빠른 녀석이었다.
설마 대화 도중에 내가 했던 말조차 기억해서 인용해 버릴 줄이야.
[쉐인! 로이! 우리는 좌익으로 이동한다!]
통신을 통해 울려 퍼지는 왕고 발터 병장의 말.
[예!]
[예!]
총 세 대의 C급 기간트가 각부 아래에 달린 바퀴를 돌려 흙먼지를 일으키며 이동했다.
[우리도 간다! 임벨 병장! 볼보! 나를 따라 우익 전개!]
좌익의 움직임에 질세라 알렉스 병장이 맡은 우익 역시 전개를 시작했다.
[칫, 귀찮아 죽겠네.]
[볼보! 갑니다!]
가만히 있던 우리가 날개를 펼치자, 방벽을 굳히던 2소대원들 사이에 약간의 소동이 일어났다.
마치 학이 날개를 편 것 같은 진형이 서서히 2소대를 덮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