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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소대장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의외로 카트린은 반대하지 않았다.
“소대장님께서는 첫 암행 수사인데, 잘할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걱정할 것 없다. 내가 실패할 게 두렵기라도 하나?”
뭔가 질문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카트린이었으면 두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입 온 지 한 달밖에 안 된 신입 소위, 그리고 이번이 첫 임무였다.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모든 책임을 자신이 다 덤터기 쓸 수도 있다 생각하니, 얼마나 멍청한 질문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카트린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로 두려워할 거였다면 순회순찰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비록 출신이 자작가지만, 저도 귀족입니다. 백성들의 고혈이나 빨아먹고 제 이익밖에 챙기지 못하는 작자들이 벌이는 짓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카트린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노해 있었다.
내가 입대한 첫날에 보여 주던 것보다 훨씬 더.
내 앞이라서 입 발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백성들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만 제 질문의 의도는…….”
카트린은 말끝을 흐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카트린은 내가 실패할 게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가 신경 쓰인 것이었다.
하긴 망나니가 같은 팀원이라면 그다지 듬직하지 않겠지.
게다가 그게 상관이라면 더더욱.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나 역시 이 상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말이야.”
카트린의 기분을 맞춰 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실제로 화도 나 있는 상태였다.
“좋아, 그러면 우선 정보 수집이 먼저군. 우선은 가볍게 이 주위부터 탐색한다.”
“소대장님께서 성내 마을을 탐색하시면, 제가 성의 아랫마을을 탐색하겠습니다.”
“흐음, 상관없다만 그렇게 말하는 무슨 이유라도 있나?”
“아무래도 평민들에게 있어 소대장님께서 접근하시는 것보다 제가 접근하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해서입니다. 자작가에서 있을 때도 자주 평민들과 섞여 지내서 친숙하기도 합니다.”
괜찮을까.
지금이야 화가 나서 쉽게 말을 하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벌벌 떨던 게 그녀였다.
분명 이전에도 몇 번 경험을 했을 텐데도 그렇게 떠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믿음이 가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잘만 한다면 여러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카트린은 누가 봐도 예쁘기에 분명 가만히 있어도 먼저 다가와 말을 걸 남자들이 많을 것이었다.
“게다가… 이런 말씀 드리기는 조금 그렇지만, 소대장님은 너무 귀족스럽게 생기셨습니다. 이런 영지에서 소대장님의 외모는 거부감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말까지 듣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확실히 아멜의 미모는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알았다. 그렇다면 성내 마을은 내가 맡도록 하지.”
***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라는 다소 난감한 구성이었기에 잠을 제대로 자기가 어려웠다.
침대도 하나였기에 차마 여자 둘을 바닥에 재울 수는 없었기에 나는 이불만 덮고 구석 벽에 기대어 잠을 청했다.
그렇게 불편한 밤을 보내고 아직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새벽에 깨어났다.
미리 예정한 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거부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레나를 잠시 내가 데리고 있겠다고 통보했다.
나름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니 병사들도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고 기드온 백작에게 내 뜻을 전했다.
승인이야 뭐, 당연하게 났고.
레나는 그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농가의 여식임에도 불구하고 도통 깨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곤히 자는 아이를 깨우자니,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카트린이 레나를 등에 업고 우리는 저택을 빠져나왔다.
“힘들면 얼마든지 말해라, 카트린. 교대해 주지.”
“괜찮습니다, 소대장님. 레나의 몸이 무척이나 가볍습니다. 너무 가벼운 게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카트린의 말에 의구심이 생겼다.
어제 대충 흩어본 바로는 카트린과 달리… 크흠, 일반적인 사람과 달리 꽤 가슴이 큰 편이었다.
그런데도 영양 상태가 안 좋다니.
내가 그런 생각으로 레나의 커다란 가슴을 보고 있자, 카트린이 그 시선을 눈치채고 나를 바라봤다.
자칫 잘못하면 오해받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다행히 카트린은 내 시선의 의도를 잘 알아차려 줬다.
“마법약물을 썼을 겁니다.”
“마법약물?”
“예. 예전에 교육받을 때, 정보과장님이 불법 마법약물에 대해 교육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특정 부위를 억지로 크게 만드는 물약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왜 억지로 크게 만드는지 그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도구로만 취급하고 있는 거군.”
“후우, 같은 사람으로 여겼으면 치아를 다 뽑고 혀를 자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겠지 말입니다.”
카트린의 말에 공감하며 다시 한번 기드온 백작의 파렴치한 행동에 치를 떨었다.
대체 이 영지에는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있을까.
어서 빨리 이 마도에 빠져든 영주를 체포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러면 저는 레나를 데리고 성 아랫마을부터 바깥 마을들을 다 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레나를 데리고 간다고?”
“소대장님이 데리고 다니시기에는… 그게 더 이상해 보이지 않겠습니까?.”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알았다. 그러면 나는 중대에 보고한 뒤 성내를 돌아 보도록 하겠다.”
“그러면 일단은 성 밖까지는 동행하겠습니다.”
성문으로 가자 다행히도 통행금지가 딱 풀린 시간대였다.
“뭔가… 이상합니다, 소대장님.”
그런데 카트린이 성문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한 마디 했다.
그 말에 성문의 상태를 다시 한번 살폈다.
기드온 백작령 본성은 수성의 기능은 거의 없어 그저 관문의 역할 정도만 할 수 있을 정도로 벽의 높이가 낮았다.
또한 성문 역시 관리를 전혀 안 하는 듯 허름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쪽에서 볼 때 경비병들이 보이지 않기에 혹시 밖에서 있나 싶어 밖을 살폈지만 거기에도 없었다.
초소에라도 들어가 있나 하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초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성벽 아래에 해자가 있는 성도 아닌 야성인데, 지키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걸 보십시오.”
카트린이 성문 뒤에 놓인 바리케이드를 가리켰다.
“버섯?”
바리케이드는 목재로 만들어진 녀석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늘진 부분에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내성 문의 상태가 이러니, 외성은 보나마나 뻔하겠군.”
“일부러 방치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카트린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현재 가진 단서로는 추리할 만한 게 없었다.
“일단 이것과 관련된 부분은 내가 조사하도록 하겠다. 너는 레나를 데리고 성 아랫마을로 향하도록.”
“예. 그러면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대장님, 실전은 처음이시니까 몸조심하십시오! 단결!”
보는 눈이 없었기에 카트린은 격식에 맞춘 경례를 했다.
“그래. 단결.”
카트린과 레나를 보내고, 나는 통신용 마도구를 사용해 중대에 연락을 했다.
중대장은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지원을 요청하라고 했다.
[알았어, 자기. 두세 명 추려서 지원 보낼게. 도착하면 소대원들이 연락할 거야. 아, 맞다. 그리고 좌표기 활성화되어 있지?]
“왜 그러십니까?”
[좌표단말기가 활성화되어 있으면 언제든 자기가 요청할 때 해당 위치로 기간트를 보내 줄 수 있어. 등록 기체는 ‘실버하운드’인데, 혹시 뭐 다른 거 원하는 게 있어?]
내가 아는 기간트라고 해 봤자 치리공공, 티투, 실버하운드, 우리넬, 그리고 토파즈가 탄 신형기체, 마지막으로 샨달폰이 다였다.
그중 우리넬은 연대장의 기체고, 토파즈가 탄 건 적기며, 샨달폰은 사라졌으니, 남은 기간트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은 실버하운드였다.
“그거면 됐습니다.”
[좌표단말기는 일회용이야. 해당 마도구의 원리는 좌표단말기와 기간트의 위치를 바꾸는 거라서 그래. 그러니까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실버하운드를 부르고.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적한테 기간트를 빼앗길 거 같으면 바로 폭파시켜. 알았지?]
마치 나이차 엄청 나는 큰 누나가 어린 동생에게 신신당부하는 듯한 말투.
하지만 그 내용은 임무에 있어 충분히 새겨들을 만한 행동 강령이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면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그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후후, 그래. 보통 신임 소위들은 전입 오면 최소 한 달 정도는 어리버리하던데, 우리 자기는 정말 이 누나를 진급시켜 줄 복덩이인가 봐.]
“…….”
[대답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고생해.]
***
그날 저녁.
낮 동안 계속 돌아다니며 탐문 수사를 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펍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기이한 눈빛으로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술집 손님들.
펍 주인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그네요? 지금 여기는 사실상 용병 숙소나 다름없는데, 괜찮겠소?”
주인장의 말에 고개를 돌려 안을 살피니, 과연 손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용병을 상징하는 흑색매듭을 죄다 팔뚝에 메고 있었다.
“상관없다. 치킨과 맥주, 가능하나?”
“치킨?”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퇴근 후에 주문하던 메뉴로 시켜 버렸다.
“크흠, 기름에 튀긴 닭요리 같은 건 없나?”
“그렇게 고급진 요리를 파는 곳으로 보이오?”
치킨의 가격이 올라가면서 서민 음식 코스프레하는 고급 음식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래도 쉽게 먹을 수 있고 또 자주 먹는 게 치킨이었다.
그런 친근한 음식이 여기서는 고급 음식이라니…….
하긴, 기름을 쉽게 구할 수 없으면 치킨은 고급 음식인 게 맞지.
“닭 수프는 되나?”
아쉬운 대로 그냥 무난하게 닭고기 수프를 시켰다.
“가능하오. 근데 정말 여기서 한잔하고 갈 생각이오?”
주인장의 말에 다시 한번 실내를 둘러봤다.
“안 될 것도 없어 보이는데, 문제라도 있나?”
“허허, 거참… 생기기는 곱상하게 생기신 분이 성격은 엄청 털털하신가 보네. 뭐, 좋을 대로 하슈. 대신 무슨 일 생겨도 저는 책임 못 집니다?”
“주의하지.”
주인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주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가 테이블 위에 놓고 간 주전부리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주전부리는 이름 모를 말린 열매였다.
“쓰으!”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나도 모르게 인상을 구기며 욕을 할 뻔했다.
“하하! 재미있는 오빠네. 그거 씹어 먹는 거 아냐. 빨아 먹는 거야. 봐봐, 이렇게.”
갑자기 장난기 가득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대뜸 내 맞은편에 앉아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민 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인의 혀는 파란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동의 없이 합석을 하면서 대뜸 혀를 내밀어 구강 상태를 보여 주는 여인.
그녀는 갈색 기운이 짙게 묻어 나온 금발을 보기 좋게 한 바퀴 돌려 말아 올린 후 꺾어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앞머리는 내리고 있었고, 재킷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아이돌 연습생 정도로 여겨질 만큼 발랄한 모습이었다.
“누구지?”
“나? 나는 아쿠… 아니, 마린이야.”
자신을 마린이라고 소개하는 여자.
“꽃뱀인가?”
“하하! 진짜 재미있는 오빠네. 내가 왜 꽃뱀이라는 거야? 너무 매력적이어서?”
매력적이라기보다는… 영혼이 너무 자유로운 타입 같은데…….
“이유도 없이 초면인 사람과 합석하는 사람이 흔치 않다 보니 말이야.”
“아하, 그런 거라면 안심해. 오히려 여기서는 오빠 쪽이 더 신기한 사람인걸. 봐봐.”
마린의 말에 주위를 다시 돌려보니 용병들이 여전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술을 마시는 게 그리 이상하나?”
“이상한 건 아니지. 다만 보통은 용병들이 시설을 이용 중일 때는 다들 회피하거든. 사람들은 평민이건 귀족이건 할 것 없이 용병들을 멸시하니까.”
왜 그런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살인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을 싫어하는 법이니까.
그러면서 동시에 마린의 몸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그러는 그쪽도 용병은 아닌 것 같은데.”
“나? 물론 아니지. 흐음, 굳이 어느 쪽이냐면, 고용인보다는 고용주 쪽에 가깝지.”
마린의 대답에 급격하게 호기심이 갔다.
혹시 용병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인가.
“그래서. 같이 술이라도 한잔하겠나?”
“흐응, 글쎄… 어떻게 할까나… 나도 오랜만에 잘생긴 오빠랑 술을 주고받고 싶은데, 지금 내가 여기서 누굴 기다리고 있는 거라서… 어? 왔다!”
마린이 의자를 발판 삼아 일어서더니, 뒷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린의 키는 여자들에게는 표준이라 할 만한 160대 후반이었지만, 펍 내에 큰 덩치의 용병들이 돌아다니고 있어 무척이나 작아 보였다.
“크으! 매번 느끼는 거지만, 몇 번이고 죽는 거는 할 게 못 돼! 도통 익숙해지지가 않는다니까.”
내 뒤쪽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최근에 이 목소리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누구더라…….
상대의 정체를 추리하며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해 봤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아무래도 착각이었나 보다.
…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하하하! 잘 돌아왔어. 토… 흐음…….”
아까 자신을 소개할 때처럼 잠시 머뭇거리는 마린.
“토파즈다! 동료의 이름도 까먹은 거냐, 이 멍청한 년아!”
아… 얘네들, 스틸 브리드다.
“소대장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의외로 카트린은 반대하지 않았다.
“소대장님께서는 첫 암행 수사인데, 잘할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걱정할 것 없다. 내가 실패할 게 두렵기라도 하나?”
뭔가 질문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카트린이었으면 두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입 온 지 한 달밖에 안 된 신입 소위, 그리고 이번이 첫 임무였다.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모든 책임을 자신이 다 덤터기 쓸 수도 있다 생각하니, 얼마나 멍청한 질문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카트린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로 두려워할 거였다면 순회순찰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비록 출신이 자작가지만, 저도 귀족입니다. 백성들의 고혈이나 빨아먹고 제 이익밖에 챙기지 못하는 작자들이 벌이는 짓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카트린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노해 있었다.
내가 입대한 첫날에 보여 주던 것보다 훨씬 더.
내 앞이라서 입 발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백성들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만 제 질문의 의도는…….”
카트린은 말끝을 흐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카트린은 내가 실패할 게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가 신경 쓰인 것이었다.
하긴 망나니가 같은 팀원이라면 그다지 듬직하지 않겠지.
게다가 그게 상관이라면 더더욱.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나 역시 이 상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말이야.”
카트린의 기분을 맞춰 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실제로 화도 나 있는 상태였다.
“좋아, 그러면 우선 정보 수집이 먼저군. 우선은 가볍게 이 주위부터 탐색한다.”
“소대장님께서 성내 마을을 탐색하시면, 제가 성의 아랫마을을 탐색하겠습니다.”
“흐음, 상관없다만 그렇게 말하는 무슨 이유라도 있나?”
“아무래도 평민들에게 있어 소대장님께서 접근하시는 것보다 제가 접근하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해서입니다. 자작가에서 있을 때도 자주 평민들과 섞여 지내서 친숙하기도 합니다.”
괜찮을까.
지금이야 화가 나서 쉽게 말을 하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벌벌 떨던 게 그녀였다.
분명 이전에도 몇 번 경험을 했을 텐데도 그렇게 떠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믿음이 가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잘만 한다면 여러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카트린은 누가 봐도 예쁘기에 분명 가만히 있어도 먼저 다가와 말을 걸 남자들이 많을 것이었다.
“게다가… 이런 말씀 드리기는 조금 그렇지만, 소대장님은 너무 귀족스럽게 생기셨습니다. 이런 영지에서 소대장님의 외모는 거부감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말까지 듣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확실히 아멜의 미모는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알았다. 그렇다면 성내 마을은 내가 맡도록 하지.”
***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라는 다소 난감한 구성이었기에 잠을 제대로 자기가 어려웠다.
침대도 하나였기에 차마 여자 둘을 바닥에 재울 수는 없었기에 나는 이불만 덮고 구석 벽에 기대어 잠을 청했다.
그렇게 불편한 밤을 보내고 아직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새벽에 깨어났다.
미리 예정한 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거부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레나를 잠시 내가 데리고 있겠다고 통보했다.
나름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니 병사들도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고 기드온 백작에게 내 뜻을 전했다.
승인이야 뭐, 당연하게 났고.
레나는 그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농가의 여식임에도 불구하고 도통 깨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곤히 자는 아이를 깨우자니,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카트린이 레나를 등에 업고 우리는 저택을 빠져나왔다.
“힘들면 얼마든지 말해라, 카트린. 교대해 주지.”
“괜찮습니다, 소대장님. 레나의 몸이 무척이나 가볍습니다. 너무 가벼운 게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카트린의 말에 의구심이 생겼다.
어제 대충 흩어본 바로는 카트린과 달리… 크흠, 일반적인 사람과 달리 꽤 가슴이 큰 편이었다.
그런데도 영양 상태가 안 좋다니.
내가 그런 생각으로 레나의 커다란 가슴을 보고 있자, 카트린이 그 시선을 눈치채고 나를 바라봤다.
자칫 잘못하면 오해받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다행히 카트린은 내 시선의 의도를 잘 알아차려 줬다.
“마법약물을 썼을 겁니다.”
“마법약물?”
“예. 예전에 교육받을 때, 정보과장님이 불법 마법약물에 대해 교육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특정 부위를 억지로 크게 만드는 물약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왜 억지로 크게 만드는지 그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도구로만 취급하고 있는 거군.”
“후우, 같은 사람으로 여겼으면 치아를 다 뽑고 혀를 자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겠지 말입니다.”
카트린의 말에 공감하며 다시 한번 기드온 백작의 파렴치한 행동에 치를 떨었다.
대체 이 영지에는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있을까.
어서 빨리 이 마도에 빠져든 영주를 체포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러면 저는 레나를 데리고 성 아랫마을부터 바깥 마을들을 다 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레나를 데리고 간다고?”
“소대장님이 데리고 다니시기에는… 그게 더 이상해 보이지 않겠습니까?.”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알았다. 그러면 나는 중대에 보고한 뒤 성내를 돌아 보도록 하겠다.”
“그러면 일단은 성 밖까지는 동행하겠습니다.”
성문으로 가자 다행히도 통행금지가 딱 풀린 시간대였다.
“뭔가… 이상합니다, 소대장님.”
그런데 카트린이 성문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한 마디 했다.
그 말에 성문의 상태를 다시 한번 살폈다.
기드온 백작령 본성은 수성의 기능은 거의 없어 그저 관문의 역할 정도만 할 수 있을 정도로 벽의 높이가 낮았다.
또한 성문 역시 관리를 전혀 안 하는 듯 허름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쪽에서 볼 때 경비병들이 보이지 않기에 혹시 밖에서 있나 싶어 밖을 살폈지만 거기에도 없었다.
초소에라도 들어가 있나 하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초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성벽 아래에 해자가 있는 성도 아닌 야성인데, 지키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걸 보십시오.”
카트린이 성문 뒤에 놓인 바리케이드를 가리켰다.
“버섯?”
바리케이드는 목재로 만들어진 녀석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늘진 부분에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내성 문의 상태가 이러니, 외성은 보나마나 뻔하겠군.”
“일부러 방치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카트린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현재 가진 단서로는 추리할 만한 게 없었다.
“일단 이것과 관련된 부분은 내가 조사하도록 하겠다. 너는 레나를 데리고 성 아랫마을로 향하도록.”
“예. 그러면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대장님, 실전은 처음이시니까 몸조심하십시오! 단결!”
보는 눈이 없었기에 카트린은 격식에 맞춘 경례를 했다.
“그래. 단결.”
카트린과 레나를 보내고, 나는 통신용 마도구를 사용해 중대에 연락을 했다.
중대장은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지원을 요청하라고 했다.
[알았어, 자기. 두세 명 추려서 지원 보낼게. 도착하면 소대원들이 연락할 거야. 아, 맞다. 그리고 좌표기 활성화되어 있지?]
“왜 그러십니까?”
[좌표단말기가 활성화되어 있으면 언제든 자기가 요청할 때 해당 위치로 기간트를 보내 줄 수 있어. 등록 기체는 ‘실버하운드’인데, 혹시 뭐 다른 거 원하는 게 있어?]
내가 아는 기간트라고 해 봤자 치리공공, 티투, 실버하운드, 우리넬, 그리고 토파즈가 탄 신형기체, 마지막으로 샨달폰이 다였다.
그중 우리넬은 연대장의 기체고, 토파즈가 탄 건 적기며, 샨달폰은 사라졌으니, 남은 기간트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은 실버하운드였다.
“그거면 됐습니다.”
[좌표단말기는 일회용이야. 해당 마도구의 원리는 좌표단말기와 기간트의 위치를 바꾸는 거라서 그래. 그러니까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실버하운드를 부르고.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적한테 기간트를 빼앗길 거 같으면 바로 폭파시켜. 알았지?]
마치 나이차 엄청 나는 큰 누나가 어린 동생에게 신신당부하는 듯한 말투.
하지만 그 내용은 임무에 있어 충분히 새겨들을 만한 행동 강령이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면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그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후후, 그래. 보통 신임 소위들은 전입 오면 최소 한 달 정도는 어리버리하던데, 우리 자기는 정말 이 누나를 진급시켜 줄 복덩이인가 봐.]
“…….”
[대답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고생해.]
***
그날 저녁.
낮 동안 계속 돌아다니며 탐문 수사를 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펍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기이한 눈빛으로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술집 손님들.
펍 주인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그네요? 지금 여기는 사실상 용병 숙소나 다름없는데, 괜찮겠소?”
주인장의 말에 고개를 돌려 안을 살피니, 과연 손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용병을 상징하는 흑색매듭을 죄다 팔뚝에 메고 있었다.
“상관없다. 치킨과 맥주, 가능하나?”
“치킨?”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퇴근 후에 주문하던 메뉴로 시켜 버렸다.
“크흠, 기름에 튀긴 닭요리 같은 건 없나?”
“그렇게 고급진 요리를 파는 곳으로 보이오?”
치킨의 가격이 올라가면서 서민 음식 코스프레하는 고급 음식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래도 쉽게 먹을 수 있고 또 자주 먹는 게 치킨이었다.
그런 친근한 음식이 여기서는 고급 음식이라니…….
하긴, 기름을 쉽게 구할 수 없으면 치킨은 고급 음식인 게 맞지.
“닭 수프는 되나?”
아쉬운 대로 그냥 무난하게 닭고기 수프를 시켰다.
“가능하오. 근데 정말 여기서 한잔하고 갈 생각이오?”
주인장의 말에 다시 한번 실내를 둘러봤다.
“안 될 것도 없어 보이는데, 문제라도 있나?”
“허허, 거참… 생기기는 곱상하게 생기신 분이 성격은 엄청 털털하신가 보네. 뭐, 좋을 대로 하슈. 대신 무슨 일 생겨도 저는 책임 못 집니다?”
“주의하지.”
주인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주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가 테이블 위에 놓고 간 주전부리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주전부리는 이름 모를 말린 열매였다.
“쓰으!”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나도 모르게 인상을 구기며 욕을 할 뻔했다.
“하하! 재미있는 오빠네. 그거 씹어 먹는 거 아냐. 빨아 먹는 거야. 봐봐, 이렇게.”
갑자기 장난기 가득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대뜸 내 맞은편에 앉아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민 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인의 혀는 파란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동의 없이 합석을 하면서 대뜸 혀를 내밀어 구강 상태를 보여 주는 여인.
그녀는 갈색 기운이 짙게 묻어 나온 금발을 보기 좋게 한 바퀴 돌려 말아 올린 후 꺾어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앞머리는 내리고 있었고, 재킷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아이돌 연습생 정도로 여겨질 만큼 발랄한 모습이었다.
“누구지?”
“나? 나는 아쿠… 아니, 마린이야.”
자신을 마린이라고 소개하는 여자.
“꽃뱀인가?”
“하하! 진짜 재미있는 오빠네. 내가 왜 꽃뱀이라는 거야? 너무 매력적이어서?”
매력적이라기보다는… 영혼이 너무 자유로운 타입 같은데…….
“이유도 없이 초면인 사람과 합석하는 사람이 흔치 않다 보니 말이야.”
“아하, 그런 거라면 안심해. 오히려 여기서는 오빠 쪽이 더 신기한 사람인걸. 봐봐.”
마린의 말에 주위를 다시 돌려보니 용병들이 여전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술을 마시는 게 그리 이상하나?”
“이상한 건 아니지. 다만 보통은 용병들이 시설을 이용 중일 때는 다들 회피하거든. 사람들은 평민이건 귀족이건 할 것 없이 용병들을 멸시하니까.”
왜 그런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살인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을 싫어하는 법이니까.
그러면서 동시에 마린의 몸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그러는 그쪽도 용병은 아닌 것 같은데.”
“나? 물론 아니지. 흐음, 굳이 어느 쪽이냐면, 고용인보다는 고용주 쪽에 가깝지.”
마린의 대답에 급격하게 호기심이 갔다.
혹시 용병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인가.
“그래서. 같이 술이라도 한잔하겠나?”
“흐응, 글쎄… 어떻게 할까나… 나도 오랜만에 잘생긴 오빠랑 술을 주고받고 싶은데, 지금 내가 여기서 누굴 기다리고 있는 거라서… 어? 왔다!”
마린이 의자를 발판 삼아 일어서더니, 뒷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린의 키는 여자들에게는 표준이라 할 만한 160대 후반이었지만, 펍 내에 큰 덩치의 용병들이 돌아다니고 있어 무척이나 작아 보였다.
“크으! 매번 느끼는 거지만, 몇 번이고 죽는 거는 할 게 못 돼! 도통 익숙해지지가 않는다니까.”
내 뒤쪽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최근에 이 목소리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누구더라…….
상대의 정체를 추리하며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해 봤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아무래도 착각이었나 보다.
…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하하하! 잘 돌아왔어. 토… 흐음…….”
아까 자신을 소개할 때처럼 잠시 머뭇거리는 마린.
“토파즈다! 동료의 이름도 까먹은 거냐, 이 멍청한 년아!”
아… 얘네들, 스틸 브리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