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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본능 6화
2. 진강우(6)
그가 변명으로 말하던 것을 떠올리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악! 진짜 엄청 귀여웠어.”
두 볼이 약간 상기된 채로 말하던 돌덩이 같은 얼굴은 무척 우습고도 사랑스러웠다. 그의 무뚝뚝해도 해 줄 건 다 해 주는 성격 때문인지 가슴 안쪽은 갈수록 간질간질했다.
“으- 정말 미치겠다고!”
그때를 떠올리는 나도 바보가 따로 없다.
……그만 생각해야지.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진강우가 일하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웃기게도 그가 얼마나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을까 싶어서, 변태처럼 또 설레고 두근거렸다.
편의점 안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금방 진강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아까 생각하다 만 그에게 건넨 커플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다. 그립톡뿐만이 아닌 또 다른 아이템이었는데 가령,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그의 손목에 착용된 실 팔찌가 바로 그것이었다.
여전히 첫 인사말은 뻔뻔하게 내 쪽에서 먼저 건넸다.
“강우 씨, 저 왔어요. 오~ 이렇게 보니까 팔찌가 정말 강우 씨랑 잘 어울리네요.”
“아, 네. 뭐.”
역시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진강우가 너무 귀여워서 놀리고 싶어졌다.
……안 돼. 참자, 참아.
나는 양쪽 손목에 그가 착용한 것과 똑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실 팔찌를 앞으로 내보이며 물었다.
“저도 착용해 볼까 하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둘 중에 하나만 골라 주실래요? 강우 씨는 왼쪽? 아니면 오른쪽?”
양팔에 각기 다른 실 팔찌를 끼고선 그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음…….”
진강우는 심각한 표정을 하고 턱을 괴어 가면서까지 고민했다. 진지한 그의 모습에 괜스레 웃음이 터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골랐는지 굵다란 손가락이 한쪽을 콕 집어 가리켰다.
“오른쪽보단 왼쪽이 낫네요. 심차연 씨는 붉은색보단 파란색이 잘 어울려요.”
“네?”
‘삼차연, 너는 파란색이 어울려. 그게 좀 더 너다운 색이야.’
……아아.
바보같이 현재의 그와 회귀 전 그의 모습이 겹친 채로 어른거렸다. 당황했지만, 침착하려 노력했다. 나는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파란색을 보면 파트너 적의 진강우가 떠올랐다. 그게 너무 그리워서 코끝이 살짝 시큰거렸다.
“고, 고마워요. 그럼 파란색으로 할게요.”
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습관처럼 오른쪽 귀에 달린 파란색 피어싱을 만지작거리며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회귀 전 진강우는 활짝 미소 짓는 얼굴을 무척 좋아했으니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그의 옆에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
커플 아이템인 실 팔찌를 차고, 오늘도 진강우를 만나기 위해서 그가 일하는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줄기차게 찾아온 끝에 나는 비로소 새로운 진강우와 친해질 수 있었다. 늘 그랬듯이 그는 책 한 권을 든 채로 핸드폰에 의지하여 무엇인가 열심히 시청 중이었다. 나는 고민만 하다가 슬며시 다가가 집중하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강우 씨?”
“아, 심차연 씨. 또 오셨네요.”
“네. 그런데 뭘 그렇게 집중해서 보시길래 사람이 들어오는 줄도 몰라요?”
“아……그게.”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평소와는 다르게 시선을 회피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내가 재차 물으려고 할 때였다. 그가 틀어 놓은 핸드폰에선 어느 누가 보더라도 심각해 보이는 내용이 흘렀다.
-속보입니다. 최근, 부쩍 에스퍼 각성이 늘어남에 따라서 정부에선 이를 막고 제어할 수 있는 가이드 인력을 징용하기로 발표했습니다. 적어도 이르면 다음 주 안에,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해당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가이드로 발현하는 경우 기관으로 이동하여 임의적 테스트를 거친 뒤 가이딩 실습을 일정 기간 진행하며…….
“…….”
뉴스에 나온 내용을 듣고 나자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두 눈만 깜빡이며 허무맹랑한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가이드 인력 충원이라 하면, 내가 회귀 전 기억하는 가이드 프로젝트를 의미하는 듯했다. 물론 익히 예상했던 부분이었으니 이 정책에 대한 발표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내가 의아했던 점은 정책 발표에 대한 부분이 아니었다. 여태껏 알던 정부의 발표 시기와는 기간이 너무 많이 앞당겨져 버렸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대체 왜? 설마 내가 강제 회귀를 하고 순리대로 흘러가야 할 시간을 틀어 놓은 탓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랬다. 진강우와 나는 원래대로라면 지금 시점에서 서로 몰랐어야 했다. 각자 서로의 위치에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게 맞는 이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로 시간이 틀어지다니.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저, 저기 강우 씨.”
“심차연 씨는 에스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내 물음을 자르고 들어온, 진강우의 뜬금없는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에스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이런 말은 갑작스레 왜 물어보는 걸까 싶었지만 나는 최대한 정직하게 답하려고 기를 썼다.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여태까지 쌓아 왔던 관계가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을 알았다. 이 때문에 나는, 천천히 침착하게 조심스러운 말을 얹었다.
“저는 에스퍼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멋지고 강하고. 그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잖아요.”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 음. 네, 그렇겠네요.”
말을 하다 만 진강우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는 얕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표정을 슬슬 살폈다. 그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희게 질려 있었는데,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도대체 왜?
나는 회귀 전 진강우가 에스퍼로 각성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늘 불안정한 생활에 버거워했고, 힘겨워했으니까.
항상 집에 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로 마치 저승사자처럼 날 노려보곤 했다. 꼭 집어삼킬 듯한 그 어둠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건 우울한 눈을 하고 평생 외롭게 살았던 사람의 비참한 감정이었다.
진강우와 소중했던 3년 후 기억을 떠올리자 다시금 심장이 저렸다. 그는 절대 모를 것이다. 내가 어떻게 너를 찾아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지금 왜 이렇게 불안감에 떨고 있는지. 나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어긋나고 틀어져 버렸다는 것조차도. 더 틀어지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를 만난 이상 행동을 멈출 수가 없다는 사실도.
나는…… 진강우를 또 한 번 잃고 싶지 않았다. 기껏 힘들게 찾았는데. 그건 죽어도 싫다. 하지만 그를 포기해야 하는 때가 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가 없으면 내가 살아갈 이유 따윈 없을 텐데. 불안해. 너무 불안해서 미칠 것 같다.
“저기요, 심차연 씨. 전화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벨 소리도 듣지 못한 내게, 진강우가 요란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못 이겨서 어깨를 툭툭 쳐 왔다.
“네? 아, 받아야죠. 받을게요.”
이상하게도 멈출 수 없는 싸한 기운에 절로 손이 떨려 왔다. 이런 나를 그가 이상하게 여기지 않도록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멋대로 운명을 틀어 버리면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버린다고.
“여보세요.”
-저기 심차연 씨 되십니까?
“네, 제가 심차연인데, 누구시죠?”
-아, 저는…….
불안감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한번 찾아온 악몽은 멈추지 않고 여러 번이고 내 목을 옥죄였다. 귓가에는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우습게도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손을 벌벌 떨며 옆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진강우가 눈을 크게 뜨며 날 응시하고 있었다. 아직도 내 귀에는 잔인한 말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아아, 왜 어째서…….
“심차연 씨?!”
“아, 안 돼…… 이러면 안 되는데…!”
일순 눈 앞이 아찔해졌다. 친동생의 비보. 단 한 마디만 들었음에도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재앙에 숨이 막혀 왔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진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여러 번 뒤흔들어 깨워 댔다.
편의점 바닥은 짜증 날 정도로 차가웠고, 이 암울하고 축축한 상황과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아, 이런 게 아닌데.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동생이 왜 지금…….
귓가에는 여러 번 굵은 음성이 웅웅 울려 댔다. 나를 일깨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
이리저리 몸이 흔들렸다. 옆에서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고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만, 삐- 하며 긴 이명만 머문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서 여러 번이나 꺽꺽거렸는데, 이 상황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멍청하게 눈물만 뚝뚝 흘렀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내 손을 꽉 움켜쥐며 진강우는 연신 나의 이름을 불렀다. 심차연 씨. 차연 씨. 여러 번 목이 터져라 부르는 음성을 들으며 온몸에선 힘이 쭉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나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그지없이 나약해서 목 뒤로 넘어가는 숨을 겨우 가다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힘겹게 손을 들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쪽으로 뻗어 보았다. 금방 대기하고 있던 그의 손에 닿았다. 아아…… 내 곁엔 진강우가 있구나. 하는 작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심차연 씨. 괜찮아요. 내가 옆에 꼭 있어 줄 테니, 숨 천천히 쉬어요.”
내 손을 꽉 쥔 진강우의 말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극도로 노력하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여기, 조금만 흔들리지 않게 가 주세요!”
“강우…… 씨.”
매일 불러도 그리운 이름이었다. 계속 입안에 맴돌아서 나를 힘들게 하는 이름. 그의 이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를 너무나도 아프게 했다. 힘을 짜내어 외친 이름에 이상한 감정이 벅차올랐다.
이 아픈 마음이 모든 게 틀어져 버린 갑작스러운 동생의 운명 때문인지, 진강우 너 때문인지 정말로 모르겠어.
그가 나를 부드럽게 쳐다본다. 예쁘게 두 눈을 휘어 웃으며 땀 때문에 얼룩진 내 이마에 커다란 손을 얹었다. 차가운 감각이 삐- 하는 이명을 드디어 멈추게 해 주었다. 진강우의 체온은 뜨거운 날 내리는 달콤한 단비 같아서 너무나도 시원하고 행복감을 만끽하기엔 차고 넘쳤다.
“계속 곁에 있어 줄 테니 안심해요.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날 믿어요.”
“흐으…….”
“울지 말고. 아니, 그냥 울어. 괜찮으니까, 울어요.”
그의 말이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인 줄 안다.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하는 그를 바라보며 무서움을 떨쳐 내려고 손만 꽉 잡았다. 회귀 후에도 진강우를 지키긴커녕 안 좋은 모습만 보여 주는 듯해서 고통에 찬 쓴맛이 넘어왔다.
아아, 역시 나는 안 될 것 같아. 이 사람만 보면 머릿속이 멍해지고 너무 마음이 아파. 강우 씨.
‘미안해요. 내가 못나서 정말 미안해.’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힘을 짜내어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여태껏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들을 떠올려 봤지만, 결국 마지막은 진강우가 이별을 고하는 슬픈 장면만이 펼쳐졌다. 나는 도돌이표처럼 끔찍하게 반복되는 기억을 이기지 못하고 힘겹게 두 눈을 감았다.
2. 진강우(6)
그가 변명으로 말하던 것을 떠올리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악! 진짜 엄청 귀여웠어.”
두 볼이 약간 상기된 채로 말하던 돌덩이 같은 얼굴은 무척 우습고도 사랑스러웠다. 그의 무뚝뚝해도 해 줄 건 다 해 주는 성격 때문인지 가슴 안쪽은 갈수록 간질간질했다.
“으- 정말 미치겠다고!”
그때를 떠올리는 나도 바보가 따로 없다.
……그만 생각해야지.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진강우가 일하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웃기게도 그가 얼마나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을까 싶어서, 변태처럼 또 설레고 두근거렸다.
편의점 안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금방 진강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아까 생각하다 만 그에게 건넨 커플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다. 그립톡뿐만이 아닌 또 다른 아이템이었는데 가령,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그의 손목에 착용된 실 팔찌가 바로 그것이었다.
여전히 첫 인사말은 뻔뻔하게 내 쪽에서 먼저 건넸다.
“강우 씨, 저 왔어요. 오~ 이렇게 보니까 팔찌가 정말 강우 씨랑 잘 어울리네요.”
“아, 네. 뭐.”
역시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진강우가 너무 귀여워서 놀리고 싶어졌다.
……안 돼. 참자, 참아.
나는 양쪽 손목에 그가 착용한 것과 똑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실 팔찌를 앞으로 내보이며 물었다.
“저도 착용해 볼까 하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둘 중에 하나만 골라 주실래요? 강우 씨는 왼쪽? 아니면 오른쪽?”
양팔에 각기 다른 실 팔찌를 끼고선 그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음…….”
진강우는 심각한 표정을 하고 턱을 괴어 가면서까지 고민했다. 진지한 그의 모습에 괜스레 웃음이 터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골랐는지 굵다란 손가락이 한쪽을 콕 집어 가리켰다.
“오른쪽보단 왼쪽이 낫네요. 심차연 씨는 붉은색보단 파란색이 잘 어울려요.”
“네?”
‘삼차연, 너는 파란색이 어울려. 그게 좀 더 너다운 색이야.’
……아아.
바보같이 현재의 그와 회귀 전 그의 모습이 겹친 채로 어른거렸다. 당황했지만, 침착하려 노력했다. 나는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파란색을 보면 파트너 적의 진강우가 떠올랐다. 그게 너무 그리워서 코끝이 살짝 시큰거렸다.
“고, 고마워요. 그럼 파란색으로 할게요.”
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습관처럼 오른쪽 귀에 달린 파란색 피어싱을 만지작거리며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회귀 전 진강우는 활짝 미소 짓는 얼굴을 무척 좋아했으니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그의 옆에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
커플 아이템인 실 팔찌를 차고, 오늘도 진강우를 만나기 위해서 그가 일하는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줄기차게 찾아온 끝에 나는 비로소 새로운 진강우와 친해질 수 있었다. 늘 그랬듯이 그는 책 한 권을 든 채로 핸드폰에 의지하여 무엇인가 열심히 시청 중이었다. 나는 고민만 하다가 슬며시 다가가 집중하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강우 씨?”
“아, 심차연 씨. 또 오셨네요.”
“네. 그런데 뭘 그렇게 집중해서 보시길래 사람이 들어오는 줄도 몰라요?”
“아……그게.”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평소와는 다르게 시선을 회피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내가 재차 물으려고 할 때였다. 그가 틀어 놓은 핸드폰에선 어느 누가 보더라도 심각해 보이는 내용이 흘렀다.
-속보입니다. 최근, 부쩍 에스퍼 각성이 늘어남에 따라서 정부에선 이를 막고 제어할 수 있는 가이드 인력을 징용하기로 발표했습니다. 적어도 이르면 다음 주 안에,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해당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가이드로 발현하는 경우 기관으로 이동하여 임의적 테스트를 거친 뒤 가이딩 실습을 일정 기간 진행하며…….
“…….”
뉴스에 나온 내용을 듣고 나자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두 눈만 깜빡이며 허무맹랑한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가이드 인력 충원이라 하면, 내가 회귀 전 기억하는 가이드 프로젝트를 의미하는 듯했다. 물론 익히 예상했던 부분이었으니 이 정책에 대한 발표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내가 의아했던 점은 정책 발표에 대한 부분이 아니었다. 여태껏 알던 정부의 발표 시기와는 기간이 너무 많이 앞당겨져 버렸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대체 왜? 설마 내가 강제 회귀를 하고 순리대로 흘러가야 할 시간을 틀어 놓은 탓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랬다. 진강우와 나는 원래대로라면 지금 시점에서 서로 몰랐어야 했다. 각자 서로의 위치에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게 맞는 이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로 시간이 틀어지다니.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저, 저기 강우 씨.”
“심차연 씨는 에스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내 물음을 자르고 들어온, 진강우의 뜬금없는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에스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이런 말은 갑작스레 왜 물어보는 걸까 싶었지만 나는 최대한 정직하게 답하려고 기를 썼다.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여태까지 쌓아 왔던 관계가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을 알았다. 이 때문에 나는, 천천히 침착하게 조심스러운 말을 얹었다.
“저는 에스퍼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멋지고 강하고. 그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잖아요.”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 음. 네, 그렇겠네요.”
말을 하다 만 진강우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는 얕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표정을 슬슬 살폈다. 그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희게 질려 있었는데,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도대체 왜?
나는 회귀 전 진강우가 에스퍼로 각성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늘 불안정한 생활에 버거워했고, 힘겨워했으니까.
항상 집에 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로 마치 저승사자처럼 날 노려보곤 했다. 꼭 집어삼킬 듯한 그 어둠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건 우울한 눈을 하고 평생 외롭게 살았던 사람의 비참한 감정이었다.
진강우와 소중했던 3년 후 기억을 떠올리자 다시금 심장이 저렸다. 그는 절대 모를 것이다. 내가 어떻게 너를 찾아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지금 왜 이렇게 불안감에 떨고 있는지. 나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어긋나고 틀어져 버렸다는 것조차도. 더 틀어지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를 만난 이상 행동을 멈출 수가 없다는 사실도.
나는…… 진강우를 또 한 번 잃고 싶지 않았다. 기껏 힘들게 찾았는데. 그건 죽어도 싫다. 하지만 그를 포기해야 하는 때가 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가 없으면 내가 살아갈 이유 따윈 없을 텐데. 불안해. 너무 불안해서 미칠 것 같다.
“저기요, 심차연 씨. 전화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벨 소리도 듣지 못한 내게, 진강우가 요란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못 이겨서 어깨를 툭툭 쳐 왔다.
“네? 아, 받아야죠. 받을게요.”
이상하게도 멈출 수 없는 싸한 기운에 절로 손이 떨려 왔다. 이런 나를 그가 이상하게 여기지 않도록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멋대로 운명을 틀어 버리면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버린다고.
“여보세요.”
-저기 심차연 씨 되십니까?
“네, 제가 심차연인데, 누구시죠?”
-아, 저는…….
불안감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한번 찾아온 악몽은 멈추지 않고 여러 번이고 내 목을 옥죄였다. 귓가에는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우습게도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손을 벌벌 떨며 옆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진강우가 눈을 크게 뜨며 날 응시하고 있었다. 아직도 내 귀에는 잔인한 말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아아, 왜 어째서…….
“심차연 씨?!”
“아, 안 돼…… 이러면 안 되는데…!”
일순 눈 앞이 아찔해졌다. 친동생의 비보. 단 한 마디만 들었음에도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재앙에 숨이 막혀 왔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진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여러 번 뒤흔들어 깨워 댔다.
편의점 바닥은 짜증 날 정도로 차가웠고, 이 암울하고 축축한 상황과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아, 이런 게 아닌데.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동생이 왜 지금…….
귓가에는 여러 번 굵은 음성이 웅웅 울려 댔다. 나를 일깨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
이리저리 몸이 흔들렸다. 옆에서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고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만, 삐- 하며 긴 이명만 머문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서 여러 번이나 꺽꺽거렸는데, 이 상황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멍청하게 눈물만 뚝뚝 흘렀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내 손을 꽉 움켜쥐며 진강우는 연신 나의 이름을 불렀다. 심차연 씨. 차연 씨. 여러 번 목이 터져라 부르는 음성을 들으며 온몸에선 힘이 쭉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나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그지없이 나약해서 목 뒤로 넘어가는 숨을 겨우 가다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힘겹게 손을 들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쪽으로 뻗어 보았다. 금방 대기하고 있던 그의 손에 닿았다. 아아…… 내 곁엔 진강우가 있구나. 하는 작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심차연 씨. 괜찮아요. 내가 옆에 꼭 있어 줄 테니, 숨 천천히 쉬어요.”
내 손을 꽉 쥔 진강우의 말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극도로 노력하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여기, 조금만 흔들리지 않게 가 주세요!”
“강우…… 씨.”
매일 불러도 그리운 이름이었다. 계속 입안에 맴돌아서 나를 힘들게 하는 이름. 그의 이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를 너무나도 아프게 했다. 힘을 짜내어 외친 이름에 이상한 감정이 벅차올랐다.
이 아픈 마음이 모든 게 틀어져 버린 갑작스러운 동생의 운명 때문인지, 진강우 너 때문인지 정말로 모르겠어.
그가 나를 부드럽게 쳐다본다. 예쁘게 두 눈을 휘어 웃으며 땀 때문에 얼룩진 내 이마에 커다란 손을 얹었다. 차가운 감각이 삐- 하는 이명을 드디어 멈추게 해 주었다. 진강우의 체온은 뜨거운 날 내리는 달콤한 단비 같아서 너무나도 시원하고 행복감을 만끽하기엔 차고 넘쳤다.
“계속 곁에 있어 줄 테니 안심해요.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날 믿어요.”
“흐으…….”
“울지 말고. 아니, 그냥 울어. 괜찮으니까, 울어요.”
그의 말이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인 줄 안다.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하는 그를 바라보며 무서움을 떨쳐 내려고 손만 꽉 잡았다. 회귀 후에도 진강우를 지키긴커녕 안 좋은 모습만 보여 주는 듯해서 고통에 찬 쓴맛이 넘어왔다.
아아, 역시 나는 안 될 것 같아. 이 사람만 보면 머릿속이 멍해지고 너무 마음이 아파. 강우 씨.
‘미안해요. 내가 못나서 정말 미안해.’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힘을 짜내어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여태껏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들을 떠올려 봤지만, 결국 마지막은 진강우가 이별을 고하는 슬픈 장면만이 펼쳐졌다. 나는 도돌이표처럼 끔찍하게 반복되는 기억을 이기지 못하고 힘겹게 두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