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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변했어요







1화

프롤로그. 그것은 갑작스럽게


간만의, 단잠이었다.
어찌 된 셈인지 몸이 개운했다. 언제 잠에 빠져들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눈을 뜨자마자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로 행복했다. 인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물론 눈을 뜬 곳이 평소 그녀가 잠을 청하던 곳은 아니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런 치렁치렁한 공주풍 레이스가 달려 있는 침대에서 눈을 감을 만큼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하여간 서지훈 악취미는 알아줘야 해.’
영화 촬영 중 잠깐 눈을 붙인 자신을 옮길 사람은 매니저인 지훈뿐이었다. 인영은 기분 좋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지훈에게 자신은 이런 아기자기한 것들을 싫어한다고 말해 줘야겠다 여겼다. 그녀는 평소처럼 일어나자마자 화장대로 향하기 위해 발을 떼었다.
‘어라?’
뭔가가, 평소와 달랐다. 이상했다. 머릿속은 더할 나위 없이 맑은데 몸이 기이할 정도로 무거웠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인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조금 더 빨리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 헉!”
심장이 쿵쿵거렸다. 몇 걸음 옮기지 않았는데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곧, 화장대 앞에 선 인영은 숨을 고르며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어?”
인영은 거울 속에 비친 낯선 여인을 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동안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있는 힘껏 소리쳤다.
“뭐, 뭐야 이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인영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인영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다 말고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꿈일 거야. 꿈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뺨을 세게 꼬집었다.
“윽!”
그녀의 입술 사이로 낮은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아팠다.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라고 여기기엔 너무도 생생한 고통이 그녀를 찾아왔다.
인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떴다.
“……!”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 자신의 얼굴이 비칠 것이라 여겼다. 거울 속 낯선 여자가 아닌, 대한민국 모든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장인영의 아름다운 얼굴로 돌아와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절망스러웠다.
그녀의 모습은 단 한 군데도 변하질 않았다.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완벽한 S라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웬 D라인의 여인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상을 쓰는 것까지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소름 끼칠 정도 무서워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뭐, 뭐야 이 뚱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chapter 1. 낯선 곳, 낯선 몸, 낯선…… 얼굴


[장인영.
이름만 들어도 많은 남자들의 가슴을 세차게 흔들어대는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우연히 연예계에 데뷔했다. 청순함과 섹시함이 공존하는 매혹적인 마스크 덕분에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한 메디컬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배우를 꿈꾸던 사람이 아니었기에 어색한 연기로 ‘얼굴만 예쁜 배우’라는 신랄한 비판을 받았었다. 그에 독기를 품은 것인지 차기작인 조선시대 기생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끈]에서는 신인답지 않은 안정적 연기를 보여 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 후 출연하는 드라마나 영화, CF가 모두 대박을 친 덕분에 그녀는 순식간에 업계의 ‘흥행 보증수표’로 등극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배우, 당대 최고의 여배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인 등등의 타이틀까지 얻게 된 그녀는 데뷔 후 줄곧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중이다.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몇 안 되는 여배우 중 하나인 그녀는, 내년 개봉 예정인 영화 [러브 신드롬]에서 잘나가는 정형외과 의사 역할에 캐스팅되어 촬영에 매진하고 있다.]

연예계에 통 관심이 없는 사람이 ‘대체 장인영이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얼마 전 출간된 매거진에 실린 이 기사를 보여 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7년 전, 말 그대로 혜성같이 나타나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여신 중의 여신.
데뷔한 이래 그 흔한 스캔들 한 번 없어 남자들에겐 ‘성역’이라 불리고, 여자들에겐 동경의 대상이 된 여인.
모두 단 한 사람, 올해 스물일곱의 장인영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우연히 제게 내려온 황금 동아줄을 놓치지 않고 단단히 잡아 초고속 신분 상승한 인영은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그녀에게 좋은 유전자만 골라서 물려준 부모님들께 너무도 감사했고, 뜨기 힘들다는 이 바닥에서 이를 악물고 견뎌 냈던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생각하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던 장인영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달콤한 잠에서 깨기 전까지는.
“말도…… 안 돼…….”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꿈이 아니었다.
“하!”
멍이 들 정도로 세게 꼬집어 봐도 찌릿하기만 할 뿐, 거울 속 제 모습은 변하질 않았다. 거울을 노려보고 있는 커다란 얼굴의 소유자가 날카롭게 외쳤다.
“진짜……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이건!”
170cm에 52kg이라는 모델 부럽지 않은 완벽 몸매는 대체 어디 가고 162cm 정도 되어 보이는 키에 적어도 80kg은 육박해 보이는 뚱뚱한 여인이 난데없는 고성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 웬 말이냐.
인영은 비틀거리다 중심을 잡기 위해 화장대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다 거울 속에 비친 퉁퉁한 제 얼굴을 발견하곤 미간을 찌푸렸다.
“제기랄!”
그녀는 정신 나간 여자처럼 짜증이 가득한 고성을 지르며 화장대 위의 화장품들을 밀쳐 버린다.
와장창!
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장품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하아, 하아…….”
인영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화장품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떨궜다.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감정 때문인지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이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상황이 다른 누구도 아닌 인영에게 일어날 줄이야, 어디 그녀가 예상이라도 했겠는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구……!”
자신이 ‘장인영’이 아니었다고 치부하기엔 27년간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다. 그렇다면 거울 속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인영은 슬쩍 고개를 들어 거울 속의 뚱뚱한 여인네를 노려보며 외쳤다.
“너, 누구야 정말!”

* * *

“젠장할!”
인영이 눈을 뜬 지 어언 2시간 정도가 흘렀다.
지난 2시간 동안, 아무리 부정하고 외면해 보아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다시 잠을 자면 원래대로 돌아와 있지 않을까 싶어 억지로 예의 그 침대에 누워 봤지만, 안타깝게도 눈을 뜬 그녀를 반기는 것은 날씬한 장인영이 아닌 뚱뚱한 이름 모를 여인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통 설명할 수 없는, 아닌 밤중의 홍두깨 같은 일이 발생했다. 인영이 처한 현실을 증명해 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 인간이 아닐 것이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황당무계한 일. 한마디로 장인영의 영혼은 타인의 몸에 깃들어 있는 상태였다.
빙의憑依.
아마 이보다 더 그녀의 상황을 딱 맞아 떨어지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후우, 후우.”
몸부림을 쳐 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인영은 난장판이 된 바닥을 내려다보며 침대에 앉아 가쁜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일단, 정리를 해 보자. 장인영.”
인영은 현 상황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는지…… 생각을 해 봐야 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지만 좌절하고만 있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인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어떻게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오게 된 건지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 촬영을, 하고 있었지.”
함께 영화 촬영을 했던 유명 여자 아이돌 그룹 Red Fox의 리더 윤수희가 거지 분장은 못 하겠다며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 잠깐 쉬기 위해 밴으로 향했어. 지훈 오빠랑 은주가 자리를 피해 줬지.”
잠깐의 휴식 시간이었지만 잘 자라며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던 두 사람의 얼굴 역시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눈을 감는 순간 블랙홀로 빠져들듯 잠이 들었다. 너무 지쳐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꿈을 꾸었던 것 같기도 한데, 무슨 꿈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개운한 마음으로 다시 눈을 떠 보는 순간…….
“끄아악!”
이런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장면까지 떠올려 봤지만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올 정도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인영의 잘못이라면 촬영 중에 잠시 눈을 붙인 것뿐.
“아니 잠깐!”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소리를 지르다 불현듯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행동을 멈췄다.
“내가…… 이 여자의 몸에 들어왔다면…….”
인영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려 갔다.
“그럼 내 몸은? 내 몸은 누가 갖고 있다는 거야!”
제기랄!
말이 끝나자마자 인영은 반사적으로 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세 겹으로 접혀 있던 두툼한 뱃살이 출렁거렸다.
달칵!
타타타!
“응? 이게 무…… 어머, 사모님!”
방문을 열고 드디어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한 인영을 반긴 것은 인상이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인영은 낯선 몸으로 처음 마주친 여자를 향해 말을 하려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충격을 받고 굳어 버렸다.
‘사……모님?’
뚱뚱하고 못생긴 걸로도 모자라 결혼까지 했다고?
입술이 파르르 떨려 왔다.
“몇 시간 전에 요란한 소리가 들리던데…… 별일은 없으셨죠? 허락 없이 들어오지 말라고 하셔서 들어가지 못했는데…….”
인영이 경악하다 못해 할 말을 잃은 사이, 그녀를 안쓰럽다는 눈으로 지켜보던 아주머니는 말을 이어 나갔다. 잠시 후 그녀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기…… 그 ‘사모님’이라는 말, 말이에요……. 그거 혹시 저를 가리키는 말인가요?”
현재 인영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이 몸은 거구이기는 하지만 아직 어린 티가 난다. 나이를 귀신같이 맞히는 장인영이 장담하건대 이 여자는 분명 자신보다 어릴 것이다. 그런 여자를 향해 벌써부터 ‘사모님’이란 호칭을 사용하다니.
인영은 제발 이 여자가 ‘기혼’만큼은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아주머니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예. 당연히 사모님을 가리키는 말이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주머니는 인영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대답을 늘어놓는다. 그녀가 좌절했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사모님…… 왜 그러세요? 낯빛이 좋지 않으세요.”
“…….”
“사모님?”
“전……화기.”
“네?”
“전화기 좀, 쓸 수 있을까요?”
인영은 애써 현실을 외면하며 말을 돌렸다. 낯선 사람 대하듯 자신을 대하는 인영을 보고 의아함을 느끼던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알겠다고 대답하며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얼마 후 아주머니가 무선 전화기를 들고 돌아오자 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각인된 익숙한 번호를 눌러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Rrrr. Rrrr.
‘서지훈! 좀 받아!’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미칠 지경이다. 인영은 호흡이 점점 가빠지는 것을 느끼며 도통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통화 연결음만 듣고 있었다.
―뚝.
‘아!’
―고객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삐 소리가 들리면…….
“젠장!”
자신의 매니저인 지훈의 직통 핸드폰으로 전화를 열 통씩이나 걸어 보았지만 모조리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될 뿐이었다. 은주, 소속사 사무실 전화, 사장님, 스텝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인영이 상스러운 소리를 내뱉자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아주머니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인영은 어두워진 얼굴로 결국 종료 버튼을 누른 후 아주머니에게 전화기를 건넨 다음 말했다.
“저…… 여기 컴퓨터가 있는 방이 어디죠?”
느낌이 좋지 않았다. 지훈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징조다. 게다가 그녀의 소속사 전화마저도 불통이라는 것은 꽤 큰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려 주는 단적인 예였다.
“컴퓨터요?”
정말 재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라면, 어쩌면 인터넷에서 그 일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영의 말에 아주머니는 정말로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그녀를 서재로 짐작되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인영은 적응이 되질 않는 손으로 본체의 전원 버튼을 누른 후 잠시 기다렸다.
몇 분 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인터넷을 켠 그녀의 눈에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자리 잡고 있는 익숙한 이름이 들어왔다. 마우스 왼쪽 버튼을 몇 번 클릭하자 그와 관련된 여러 기사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속보] 배우 장인영, 영화 촬영 중 돌연 혼수상태에 빠져……!
[속보] 한국 최고의 여배우 장인영, 우리 곁을 떠나나…….
인기 배우 J씨, 식물인간? 아니면 뇌사 상태?
배우 장인영, 촬영 중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장인영 소속사 DN엔터테인먼트, “아직 지켜보는 단계. 성급한 보도는 자제 요망.”
…….

“안 그래도 이 일로 전국이 시끄럽더라구요. 사모님께서 장인영 씰 참 좋아했는데…… 안타깝게 됐네요, 그쵸?”
인영은 넋을 잃은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아주머니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됐다고?’
혼수상태, 식물인간, 뇌사 상태, 사망 등등.
하나같이 음울한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는 기사를 보던 인영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사모님, 괜찮으세요?”
옆에 서서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말을 건네 왔다. 하지만 인영은 대꾸할 생각도 못 하고 기사만 읽어 내렸다.
다행히 정확한 진단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확실히 자신의 몸 상태가 촌각을 다툴 만큼 위급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잔인한 일이다. 여태껏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이제야 겨우 편해지려는데,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신이 존재한다면, 꼭 물어보고 싶었다.
‘대체…… 내가 댁한테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런 가혹한 벌을 내리는 거죠?’
라고.
식물인간이라니, 뇌사 상태라니……!
무엇 하나 인영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게 없었다.
잠깐 잠에 빠져들었을 뿐인데 27년간 아름답게 갈고 닦고 온 자신의 몸을 빼앗기고 이런 뚱뚱한 여자의 몸 안에 들어왔다. 그것도 모자라 튼튼함 하나로 연예계에서 7년을 버텨 온 건강한 신체가 위태롭단다. 전국이 인영의 생사에 대한 화제로 시끄럽다고 하니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믿지 말자. 그래,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지 말자, 장인영.’
언론은 아주 사소한 것도 과장되게 부풀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인영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겨우 붙잡았다.
지금은 지훈과 연락이 되지 않고 소속사의 전화도 불통인 상황이었지만 언젠가는 닿게 될 것이라 여겼다. 직접 제 몸의 상태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언론이 무어라 떠들어 대든 눈썹 하나 꿈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고 나서야 그녀는 겨우 앉아 있던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수 있었다.
“하아…….”
인영은 비틀거리는 그녀를 부축해 주는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원래 눈을 떴던 방으로 돌아왔다. 난장판이 된 방을 보고 눈을 크게 뜬 아주머니가 방을 치우려고 호들갑을 떨어 댔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인영은 청소를 하겠다는 그녀를 방 밖으로 내보냈다. 머뭇거리던 아주머니가 문을 살짝 닫고 밖으로 나가자 인영은 그녀를 지탱하고 있던 다리의 힘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쿵,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인영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출렁거리는 엉덩이가 마침 바닥을 굴러다니던 화장품에 닿았다.
“윽!”
인영은 온몸으로 퍼지는 충격에 미간을 찌푸리며 엉덩이 근처를 응시했다.
그러다 돌연,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
그제야 진정으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타인의 몸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그녀의 혼이 들어와 있는 커다란 몸이 화장품을 누른 충격은, 너무도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낯선 곳,
낯선 몸,
그리고 낯선 얼굴.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