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제황 1권(12화)
6장 황실 회의(1)


-1-

한 달의 둘째, 넷째 주 월요일(마도 제국의 시간 표기법을 대륙 공동 사용, 1분=60초, 1시간=60분, 1일=24시간, 1주=월화수목금토일(7일), 한 달=29∼31일, 1년=12개월(364∼365일), 1세기=100년)마다 황금 탑의 중층부에 있는 거대한 회의실에 키즈 제국의 귀족들이 모인다.
여기 모이는 귀족은 모두 영지 자작, 계승 백작 이상의 계급을 지닌 자들로 멀리 변경백도 통신 마법이나, 이능을 통해서 회의에 참석한다.
견고한 성체와 화려한 금장식, 동방과 서양의 문장과 그림, 조각상들로 어느 제국보다 특이하면서도 키즈 제국만의 동서양의 일체를 만들어 낸 화려한 금을 기반으로 세련되고, 깔끔한 느낌의 내부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회의실의 내부는 펴진 부채꼴의 형태(국회의사당)를 하고 있었고, 그 부채의 중심 부분은 당연하게 황제가 앉는 곳이었다.
황좌(皇座)의 뒤편에는 키즈 제국을 뜻하는 국기가 있었다.
네모 중앙에 커다란 황금 검이 있고, 그 검을 둘러싼 황금별 일곱 개가 감싸고 있는 형태의 국기다.
붉은 바탕은 용맹, 용기, 전사를 일곱 개의 별은 카론 랜드의 시초가 된 일곱 드래곤 슬레이어를, 황금 검은 영원과 승리를 뜻하는 국기가 황제의 뒤에 걸어져 있었다.
웅성웅성.
사람이 모이면 당연하게 소음이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더욱이 이들은 자기 자랑에 미쳐 있는 귀족들이 대다수였기에 그러한 경향이 더 강했다.
칭찬과 덕담, 자기 자랑이 한데 어우러진 소란이 한참을 이어졌다.
“하하, 카로스 백작님 어젯밤 저희 저택을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 가족들 모두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뭘요. 저희 가족들이야 말로 즐거웠습니다. 특히, 요리사가 만들어 준 메인 요리와 디저트가 무척 맛있더군요.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아들과 딸들이 디저트가 맛있다고 부러움을 표현했습니다.”
“입맛에 맞으셨다니, 정말 기쁩니다. 나중에 요리사에게 말하여 그 디저트를 꼭 선물하고 싶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좋아하겠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면 저희 요리사의 특별 요리도 대접하고 싶은데, 이번 주에 있는 파티에 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영광입니다. 카로스 백작님, 저희 가족들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백작들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회의에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견학을 하기 위해 모여든 귀족 가문의 후계자들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케일 형! 신상 키메라 샀다면서!”
“정보도 좋다. 맞아, 자쿨라 세 마리를 샀지.”
“3대 3 경기 보낼 거구나!”
“아니, 일단 일대일 보내 보고, 실력이 괜찮으면 단체전에 넣으려고.”
“형, 나 한 마리만 빌려 주라!”
“뭐?! 네가 사!”
“에이, 형. 너무 튕기지 말고, 대신 내가 저번에 산 하프 엘드 빌려 줄게, 그걸로 마음껏 가지고 놀아.”
“웃기지 마, 나도 사려고 하면 하이 엘프도 살 수 있어! 그리고 너 빌려 가서 뭐하려고? 설마 또 살육 체스하려고 그러냐? 아서라, 아버지들 수준은 되어야 살육 체스에서 제대로 둘 수 있다는 것도 모르냐, 그냥 가지고 있는 걸로 노예 체스나 해.”
“노예 체스는 검쟁이들만 하는 거야, 형.”
두 청년이 말하는 것은 노예 전투를 뜻하는 말이었다.
노예 전투는 귀족들 사이에서는 인기를 얻은 게임으로 특히 엄청난 돈과 돈이 오가는 내기였고, 극한의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이다.
모드는 일대일, 3대 3, 10대 10, 20대 20, 100대 100 등등 공평한 숫자로 싸우게 하는 게임이었다.
그중에서 체스는 단순하게 치고받는 싸움에서 벗어나 노예를 커다란 강화 유리 상자에 집어넣고 체스말 표시를 임의로 정하여 움직이는 싸움이었다.
룰은 체스와 동일하였다.
각각 16개씩 말을 놀리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말이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것과 일반 체스는 말이 서로 교차하는 순간 뒤늦게 자리를 점한 말이 상대편의 말을 죽이는 것에 반해, 이 체스는 교차되는 체스의 말끼리 싸우게 하여서 이기는 쪽이 상대편의 말을 회수할 수 있는 경기였다.
초반에는 이 문제로 말이 많았다.
꼭 내 말이 죽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의견을 수립하여 체스를 두 가지 나누었는데, 주인의 뜻에 따라 승부에서 승리한 노예 살육을 정하는 노예 체스와 무조건 상대를 죽이는 살육 체스였다.
청년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노예들과 노예 전투의 일정을 잡거나, 어디어디의 예쁜 귀족가의 딸의 생일잔치, 혹은 으레 그렇듯 야한 농담이나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그러던 순간.
빰바밤! 빰빰빰빰빰!!!
요란한 나팔 소리와 함께 귀족들의 움직임 일체 멈추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드디어 황제의 등장이었다.
스르르륵.
기름칠을 얼마나 심하게 했는지 족히 5m는 되는 거대한 문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열렸다.
그리고 남색 머리와 눈동자를 지닌 황제가 걸어 들어왔다.
황제의 뒤에는 당연하게 1황자 레이온과 2황자 로엔하르트가 함께 들어와 황좌에서 조금 떨어진, 크리온 에멘로스프 대공보다 낮은 공작들이 앉는 자리에 착석하였다.
방금 전까지의 시끄러움이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침 삼키는 것도 없는 고요함 속에서 뚜벅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내며 황실의 나이 어린 집사가 들어왔다.
계승 백작 이상의 계급을 지닌 귀족들과 그 후계자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이 황실 회의에 유일하게 단승 백작의 후계자로 참석한 이 어린 집사.
소년이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였다.
귀족들의 시선이 황제에게 모여들자,
황제는 어린 집사에게 손을 움직였다.
어린 집사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들고 있던 박(악기)을 꺼냈다.
박은 박달나무 여섯 조각으로 되어 있는, 폈다가 한꺼번에 서로 부딪히게 하면 ‘딱’ 하는 소리가 나는 음악을 지휘하는 악기인데, 여기서는 조금 다르게 사용됐다.
촤라락.
박이 펴지고.
촤라락.
다시 모으면서 박달나무가 하나로 합쳐졌다.
딱!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나며 황실 회의 전체에 울릴 때, 사람들의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어린 집사는 박(악기)을 가지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고, 키즈 제국의 현 재상 역할을 역임하고 있는 슈마허가 일어나 말했다.
“그럼, 황실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한쪽 무릎을 황제에게 꿇고 고개를 숙였다.
회의실에 모여 있던 150명이 넘는 귀족들이 착석하고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슈마허처럼 충성의 예를 보였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크리온 에멘로스트 대공도 현자 리드미스 라플라스도 레이온 키즈도 로엔하르트 키즈도.
모두 하나같이 경건하고 절도 있는 자세로 황제의 부름을 기다렸다.
잠시 뜸을 들인 로스만 황제는 무거운 중저음으로 말했다.
“……시작하라.”
황실 회의가 시작되었다.

-2-

황실 회의에 안건은 당연하게 국가적인 문제들이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그렇게 시간을 많이 뺏는 일들이 아니었다.
어쩔 때 한 번씩 좀 길어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그러한 경우였다.
오전 10시경에 시작한 회의가 일반적인 안건(토지, 세금, 대륙 팔강과의 연회, 마도 제국 무역, 초한국 무역, 무율 제국 무역, 밀 생산량, 농업, 가축 생산량, 몬스터, 마물 포획량) 의례적인 보고가 이어졌고, 그 모든 보고가 슈마허와 황제 사이에서만 이루어질 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들러리였다.
슈마허는 오전의 회의가 끝났다는 것을 알렸다.
“휘유, 오늘은 오후도 하는가 봐.”
“회의가 끝났다는 말이 없으니, 하는 거겠지.”
귀족들은 저마다 분분히 일어나 점심을 먹기 위해 움직였다.
황실의 요리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만든 맛있는 요리들이 점심 특선으로 나왔다.
참새구이, 사슴돼지 통구이, 녹용 한약, 돼지코 상어 지느러미 수프, 얼룩 복어 회, 황금 젖소의 황금 우유, 루비 오리 고기, 다이아몬드 전갈 튀김, 소시지 땅콩, 초코 꽃술, 바질리스크의 눈알 구이, 메두사 뱀 양념구이, 히드라 탕수육, 악마 곰 발 바닥 꿀 요리, 황금 젤리, 무지개 팝콘.
귀족들도 구하려고 하면 구할 수 있는 식재료들이었지만, 여기 모여 있는 150명 전원을 먹일 수 있을 만한 양을 구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
그런데 제국의 황실은 가능했고 그 맛은 집에 먹던 것과는 차원이 틀렸다.
역시나 마도 제국의 조리 아카데미에서 박사 학위까지 딴 조리사들다웠다.
마도 제국에 있는 조리 아카데미는 요리를 배우는 곳으로 아카데미의 6년 요리 과정을 배우고 졸업하면 학사이며, 석사 학위를 배울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그리고 4년의 석사 과정을 무사히 거치면 박사가 되는 시험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박사 시험까지 통과하면 박사 학위를 가진 조리사가 될 수 있었다.
총 10년, 나중에는 시험 통과까지 체계적으로 조리사를 박사까지 따면 제국에서 서로 모셔 가려고 난리인 직업이 바로 박사 학위를 딴 조리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조리사들의 요리답게 대단히 경탄할 만한 맛을 뽐내었다.
“마, 맛있다!”
“저, 정말 맛있군!”
“이, 입 안에서 살아 있어!”
“으윽! 목이 터질 거 같아! 방금 식도를 타고 넘어간 고기가 터질 듯이 용솟음쳐!”
“우오오오오오!”
“와아아아아아!!!”
체면도 잃어버리게 하는 맛있는 요리들이었다.
식사가 끝이 나고, 후식을 즐기며 황실 궁중 악사단의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그들은 기분 좋은 오후를 시작하였다.
오후 2시쯤 되자 배도 꺼지고, 낮잠도 어느 정도 잔 귀족들이 다시 본 회의장으로 모였다.
푹신한 의자와 포근한 배, 낮잠을 잤음에도 솔솔 오는 잠의 유혹이 귀족들의 온몸을 수마의 늪 속으로 빠지게 하였다.
너무나 피곤한 귀족들, 그들의 정신이 팍 깨어난 소리를 슈마허가 하였다.
“이번 의제는 반란군에 대한 의제입니다.”
웅성웅성.
시끌시끌.
벅적벅적.
수군수군.
황제는 자신들끼리 말을 속삭이는 귀족들을 보며 손을 움직여 박을 든 어린 집사에게 손짓하였다.
그 손짓이 어떤 말인지 알아들은 어린 집사가 박을 펼쳤다가 다시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