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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기
<목차>
프롤로그
1. 아기가 생긴 날
2. 비가 내리다
3. 고요한 폭풍
4. 정적
5. 안개가 걷힐 때
에필로그
유현수 외전
/(1)/
프롤로그
지금 나는 황급히 달리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지금은 퇴근시간이기 때문에 도로가 막힐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뛰는 게 빨랐다. 여름 티셔츠 한 장에 하늘색 반바지 차림, 그리고 삼선 슬리퍼만 신고 나와서 그런지 통풍은 잘된다. 물론, 그 바람이라는 것이 미적지근해서 기분은 좀 나쁘지만 말이다.
후끈한 열기를 가진 바람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스쳐 나는 뛰었다.
그리고 이내, 전화로 들은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색색의 간판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청소년들의 출입도 허가해 준다던 고마운 노래방의 간판이 오늘은 이리도 미워 보일 수가 없다. 확, 그냥 뽀사버릴까 보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아싸, 질러봐!] 라는 간판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두 다리를 박차고 계단을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노래방 주인아저씨를 제치고서 나는 [6]이라고 적힌 방문을 확, 열어젖혔다. 문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쾅!
“현수야!”
그와 동시에 안에 있던 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우리, 우리 현수 어디 있어!
“형!”
갑자기, 품에 묵직한 것이 뛰어들었다. 익숙한 체향이 확 끼쳤다.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보다 10센티는 더 큰 녀석이 내 품에 파고들며 가슴에 머리를 기댄다.
에구에구, 우리 애기. 얼마나 무서웠으면.
“현수야, 괜찮아? 어디 아픈 곳은 없고?”
끄덕끄덕. 대답도 못 하고 끄덕이는 고개에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상에, 얼마나 무서웠으면 애가 이럴까. 정말이지 가여워 보였다. 그리고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고등학교 2학년이나 된 녀석에게서 이런 귀여움이라니. 이건 반칙이지 않은가. 아니, 반칙이기 이전에 신이 내게 내려주신 선물일지도!
“현수야, 고개 들어봐. 얼굴 좀 보자, 응?”
타이르듯 말하자, 녀석이 머뭇머뭇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올려다보는 눈빛에는 상처 받은 기색이 가득하였다. 강아지같이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고서 ‘위로해 줘’라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아아, 예쁜 것. 귀여운 것! 이 형을 죽이려는 거냐!
이제는 사내의 티가 물씬 나는 날카로운 턱과 뺨을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녀석이.
“혀엉…….”
하며, 힘없이 나를 불렀다. 나까지 눈물이 왈칵 치솟을 것 같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는 녀석을 내 품에 꽉, 끌어안고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는 녀석들을 째릿, 노려보았다. 그중에는 내가 알고 있는 놈들도 있었다. 더군다나 내 친구 녀석들도!
“누구야.”
나의 질문에 단체로 동그랗게 눈을 뜬다. 그리고 현수와 나를 번갈아 보며 눈을 깜빡여댔다. 그에 열이 확 치솟는 것 같았다.
어쭈, 모른 척하겠다. 이거지?!
“누가, 우리 현수 괴롭혔어?!”
사실 물어볼 것도 없었다. 나는 그중에 한 녀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 친구 놈인 상권이었다. 뺨이 부어오른 채, 입술까지 찢어져 있었다. 저만하면 충분한 증거물이었다.
후배 녀석들 노는 데 따라간다고 설칠 때부터 알아봤어. 쥑일 놈!
“야, 박상궈어언!”
모르는 척, 시치미 떼고 있으면,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아, 아니, 나는……. 시끄러워! 이, 나쁜 놈!! 야!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듣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훈장까지 달고 있는 주제에! 그, 그러니까, 이건!!
상권이 놈과 내가 서로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발악을 하다가, 이내 씩씩거리며 멈췄다. 여전히 현수는 내 품 안에서 바르르 떨고 있었다. 우리 현수, 많이 여린데. 감히, 감히 네가! 우리 아기에게 상처를 줘?!
“현수한테 뭐라 그런 거야?!”
“야! 그전에, 넌 이, 이 상처들이 안 보이냐?!”
“현수가 괜히 때렸겠어? 너, 뭐라 그랬어!!”
“우아─ 진짜, 너무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어!!”
“시끄러!!”
그 때, 내 고함에 놀랐는지 현수의 몸이 흠칫, 굳었다가 풀렸다. 아니,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그만, 아차 싶어서 현수를 내려다보았다.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미안해. 현수야, 형이 소리 질러서 놀랬지?”
도리도리. 녀석이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 귀여워.
현수의 머리를 한참 쓰다듬고 있자, 녀석이 빼꼼 고개를 들이밀었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 보였다.
뺨을 감싸 쥐자 녀석이 내 손을 부드럽게 쥐었다. 그 행동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이 다음에 할 행동이 예상이 갔다.
“혀엉, 나 배고파. 밥 먹자. 응?”
해맑게 웃으며 내게 말하는 현수 녀석. 가끔씩, 날 달래기 위해 쓰는 녀석의 수법이었다. 아아, 오늘도 그냥 넘어가야 하는 건가.
아, 어찌 이 아이를 싫어할 수 있단 말인가! 이 귀여운 생물체를!
비록, 주위 놈들은 쩌적 굳어 버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키가 백팔십이 훌쩍 넘는 것 또한 상관없다. 내게는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일 뿐이었다.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현수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래그래. 우리 현수 배 많이 고프겠다. 가자, 집에 가서 밥 해줄게.”
그 때, 상권이 녀석이 헛웃음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하! 얼씨구, 장관이로세.”
그에 나는 혀를 베에― 내밀며 말했다.
“부러우면, 너도 좀 귀엽게 굴어 봐.”
“너, 너너넌! 저, 저게 귀엽냐? 저게 귀여워?! 난 끔찍하다!”
뒷골을 잡고 외치는 상권의 말에 나는 현수를 스윽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내 품에서 빠져나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는 놈은 누가 봐도 멋있는 남자였다. 물론, 나에게는 예쁘기 그지없지만.
내가 바라보자, 현수도 함께 고개를 내려 나를 보았다. 깜빡깜빡 여닫히는 까만 두 눈동자가 맑았다.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귀엽구만, 뭘.”
상권이 아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엽지 않은 건가? 어째서? 귀여운데. 이렇게 귀여운 애가 세상에 어딨다고!
혼자 자면 무섭다면서, 아직도 내 방에 베개를 들고 찾아오고. 배고플 때는 내 허리를 꽉 껴안은 채 밥 달라며 칭얼거려. 조금이라도 내가 지쳐 보이면, 어깨를 주물러 주며 나밖에 없다고 속삭여 주지. 내가 위험할 때는 쏜살같이 달려와 지켜 주려고 하고. 얼마나 귀엽냐. 집에서는 애교도 부리는걸?
응? 응? 하면서 보채는 게 얼마나 귀여운데!
“……형? 인우 형?”
“아, 응?”
현수가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꽤나 오래전부터 부르고 있었던 모양인지,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얼굴은 불안해 보였다.
나는 녀석의 미간을 살살 문질러 펴 주었다. 그렇게 인상 그으면 안 돼, 현수야아─ 하는 말도 같이. 그러자 녀석이 배시시, 웃는다. 정말이지, 예쁘게도 웃는다. 우리 아기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음? 그냥, 네가 너무 예뻐서. 헤헤.”
그 말에 주위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우리는 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주위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현수가 예쁘게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가방 가지고 나갈 테니까, 먼저 나가 있어.”
“나, 혼자?”
그러다가 상권이가 너 때리면 어떡하려고.
걱정스러운 내 기색을 읽은 모양인지 현수가 또 웃는다. 그러고는 괜찮다며 날 달래 준다. 정말이지 착하고 예쁜 동생이다. 녀석이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차마 그 뜻을 배반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래방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잠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박상권. 학교에서 보자.”
넌, 뒈졌어.
─달칵.
현수는 멀어지는 인우의 등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돌아보는 그 눈은 차가웠다. 감정 하나 들어차지 않은 얼음 같은 눈. 인우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예쁜 미소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하지만 한두 번이 아닌 듯, 그 표정은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들 또한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다. 언제나 이렇다는 듯,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좀 전의 유현수 쪽이 더 이상했다. 그들은 그렇게 웃는 그를 본 적이 없으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은 더더욱 몰랐다.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만 같았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쪽은 상권이었다. 그는 경악하며, 인우에게 전화를 하려 했다. 하지만 현수가 한발 빨랐다. 그는 상권의 휴대폰을 낚아채 바닥에 내던졌다.
“그럼 안 되지. 페어플레이. 응?”
씨익, 미소를 지었지만, 역시 그것도 인우가 좋아하는 미소는 아니었다. 사악한 악마. 이것 외에 그에게 붙일 수 있는 말이 있을까.
“너, 너! 인우가 너 이러는 건 아냐?!”
“왜? 말해 주기라도 하려고? 그런데, 어쩌지. 인우 형은 내 말만 믿을 텐데?”
맞는 말이다. 도대체 콩깍지가 어떻게 씌었는지, 현수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친구를 상권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고아원 때부터 함께했다더니 아주 제대로 씌인 모양이었다.
상권은 차마 반론하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렸다. 현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소파 위에 올려져 있던 자신의 가방을 어깨에 들쳐 멨다. 인우가 왔으니, 더는 이곳에는 미련이 없었다. 그가 관심이 있고 집착하는 건 오직 연인우밖에는 없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자신의 형에게로 가야 했다.
그는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다 뭔가가 생각났는지 상권을 돌아보았다. 보기 좋은 입술이 열리며 당부, 아니 경고했다.
“한 번만 더, 함부로 말하면 죽여 버릴 테니까 알아서 처신해.”
달칵. 문이 닫혔다.
하지만 상권은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자신의 잘못을 집어낼 수가 없었다. 그는 현수를 열 받게 할 만한 말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그저 현수가 좋아할 만한 인우 얘기밖에 한 기억이 없다. 저토록 열을 내는 이유를 알 턱이 없었다.
그 때, 다시 문이 열렸다.
빼꼼. 현수가 안을 들여다보며 일갈했다.
“인우 형,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 네 거 아니니까.”
다시 닫혔다.
상권은 붕어마냥 입을 뻐끔거리며,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이내 외쳤다.
“아아악! 연인우, 유현수우─!”
1. 아기가 생긴 날
나는 건물 밖에서 현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후끈하게 덮치는 열기에 티셔츠의 윗부분을 잡고서 펄럭였다. 폭염이라고 뉴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데 과연, 장난이 아니었다. 잠시만 서 있었을 뿐이거늘 벌써 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티셔츠가 젖어서 몸에 들러붙는 기분은 과히 좋지 않았다.
후우. 나는 숨을 불어내며 다시 한 번 열을 식히기 위해 손부채질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땀만 더 날 뿐 더위는 가시질 않았다. 나는 거의 울상이 되다시피 해서 “더워, 더워.”를 연발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피식 웃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 그런 그들을 비웃었다.
참 나, 사람이 더워하는 거 처음 봐? 자기네들도 더우면서!
그러곤 다시 고개를 돌려 부채질을 시작했다. 팔이 아팠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뜨거운 숨이 목 안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거리는 열기로 후끈거렸다.
그 때, 내 뺨 위로 무언가가 닿았다.
“앗, 차거!”
녹아내리는 얼음마냥, 표면에 방울방울 차가운 물기를 묻히고 있는 음료수 캔이었다. 고개를 들자 현수가 씨익 미소 짓고 있다. 개구쟁이 같았지만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이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덕분에 뺨의 열기도 어느 정도 식었고 말이다. 나는 두 손으로 음료수 캔을 꼭 쥐었다.
“아, 고마워. 언제 나온 거야?”
“형이 ‘더워, 더워’ 하고 있을 때?”
그러면서 또 웃는다. 에구에구, 귀여운 것. 너니까 이 형 놀려도 봐 주는 거야 하며, 볼을 꼬집자 녀석이 아프지도 않으면서 아픈 척을 하며 울상을 짓는다. 뺨을 감싸며, 형. 나 상처 받았어. 하며 짐짓 슬픈 얼굴을 하는 녀석이다.
하여간 가끔씩 이렇게 능구렁이 같아질 때가 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비집고 새어 나왔다.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곤, 나는 걷기 시작했다. 현수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여름의 열기로 끈적한 몸이지만, 그래도 곁에 현수가 있으니 달라진다. 시원한 감각이 몸 안을 배회하는 것처럼 어느새 열기도 사라져 버린다.
내가 캔을 따지도 않은 채 여기저기에 갖다 대며 열을 식히고 있자, 현수가 캔을 빼앗아 갔다. 그러고는 톡! 캔을 따서 내게 건넸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음료수를 목 안으로 넘겼다. 아, 시원하다.
<목차>
프롤로그
1. 아기가 생긴 날
2. 비가 내리다
3. 고요한 폭풍
4. 정적
5. 안개가 걷힐 때
에필로그
유현수 외전
/(1)/
프롤로그
지금 나는 황급히 달리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지금은 퇴근시간이기 때문에 도로가 막힐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뛰는 게 빨랐다. 여름 티셔츠 한 장에 하늘색 반바지 차림, 그리고 삼선 슬리퍼만 신고 나와서 그런지 통풍은 잘된다. 물론, 그 바람이라는 것이 미적지근해서 기분은 좀 나쁘지만 말이다.
후끈한 열기를 가진 바람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스쳐 나는 뛰었다.
그리고 이내, 전화로 들은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색색의 간판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청소년들의 출입도 허가해 준다던 고마운 노래방의 간판이 오늘은 이리도 미워 보일 수가 없다. 확, 그냥 뽀사버릴까 보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아싸, 질러봐!] 라는 간판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두 다리를 박차고 계단을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노래방 주인아저씨를 제치고서 나는 [6]이라고 적힌 방문을 확, 열어젖혔다. 문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쾅!
“현수야!”
그와 동시에 안에 있던 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우리, 우리 현수 어디 있어!
“형!”
갑자기, 품에 묵직한 것이 뛰어들었다. 익숙한 체향이 확 끼쳤다.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보다 10센티는 더 큰 녀석이 내 품에 파고들며 가슴에 머리를 기댄다.
에구에구, 우리 애기. 얼마나 무서웠으면.
“현수야, 괜찮아? 어디 아픈 곳은 없고?”
끄덕끄덕. 대답도 못 하고 끄덕이는 고개에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상에, 얼마나 무서웠으면 애가 이럴까. 정말이지 가여워 보였다. 그리고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고등학교 2학년이나 된 녀석에게서 이런 귀여움이라니. 이건 반칙이지 않은가. 아니, 반칙이기 이전에 신이 내게 내려주신 선물일지도!
“현수야, 고개 들어봐. 얼굴 좀 보자, 응?”
타이르듯 말하자, 녀석이 머뭇머뭇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올려다보는 눈빛에는 상처 받은 기색이 가득하였다. 강아지같이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고서 ‘위로해 줘’라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아아, 예쁜 것. 귀여운 것! 이 형을 죽이려는 거냐!
이제는 사내의 티가 물씬 나는 날카로운 턱과 뺨을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녀석이.
“혀엉…….”
하며, 힘없이 나를 불렀다. 나까지 눈물이 왈칵 치솟을 것 같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는 녀석을 내 품에 꽉, 끌어안고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는 녀석들을 째릿, 노려보았다. 그중에는 내가 알고 있는 놈들도 있었다. 더군다나 내 친구 녀석들도!
“누구야.”
나의 질문에 단체로 동그랗게 눈을 뜬다. 그리고 현수와 나를 번갈아 보며 눈을 깜빡여댔다. 그에 열이 확 치솟는 것 같았다.
어쭈, 모른 척하겠다. 이거지?!
“누가, 우리 현수 괴롭혔어?!”
사실 물어볼 것도 없었다. 나는 그중에 한 녀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 친구 놈인 상권이었다. 뺨이 부어오른 채, 입술까지 찢어져 있었다. 저만하면 충분한 증거물이었다.
후배 녀석들 노는 데 따라간다고 설칠 때부터 알아봤어. 쥑일 놈!
“야, 박상궈어언!”
모르는 척, 시치미 떼고 있으면,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아, 아니, 나는……. 시끄러워! 이, 나쁜 놈!! 야!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듣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훈장까지 달고 있는 주제에! 그, 그러니까, 이건!!
상권이 놈과 내가 서로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발악을 하다가, 이내 씩씩거리며 멈췄다. 여전히 현수는 내 품 안에서 바르르 떨고 있었다. 우리 현수, 많이 여린데. 감히, 감히 네가! 우리 아기에게 상처를 줘?!
“현수한테 뭐라 그런 거야?!”
“야! 그전에, 넌 이, 이 상처들이 안 보이냐?!”
“현수가 괜히 때렸겠어? 너, 뭐라 그랬어!!”
“우아─ 진짜, 너무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어!!”
“시끄러!!”
그 때, 내 고함에 놀랐는지 현수의 몸이 흠칫, 굳었다가 풀렸다. 아니,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그만, 아차 싶어서 현수를 내려다보았다.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미안해. 현수야, 형이 소리 질러서 놀랬지?”
도리도리. 녀석이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 귀여워.
현수의 머리를 한참 쓰다듬고 있자, 녀석이 빼꼼 고개를 들이밀었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 보였다.
뺨을 감싸 쥐자 녀석이 내 손을 부드럽게 쥐었다. 그 행동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이 다음에 할 행동이 예상이 갔다.
“혀엉, 나 배고파. 밥 먹자. 응?”
해맑게 웃으며 내게 말하는 현수 녀석. 가끔씩, 날 달래기 위해 쓰는 녀석의 수법이었다. 아아, 오늘도 그냥 넘어가야 하는 건가.
아, 어찌 이 아이를 싫어할 수 있단 말인가! 이 귀여운 생물체를!
비록, 주위 놈들은 쩌적 굳어 버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키가 백팔십이 훌쩍 넘는 것 또한 상관없다. 내게는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일 뿐이었다.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현수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래그래. 우리 현수 배 많이 고프겠다. 가자, 집에 가서 밥 해줄게.”
그 때, 상권이 녀석이 헛웃음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하! 얼씨구, 장관이로세.”
그에 나는 혀를 베에― 내밀며 말했다.
“부러우면, 너도 좀 귀엽게 굴어 봐.”
“너, 너너넌! 저, 저게 귀엽냐? 저게 귀여워?! 난 끔찍하다!”
뒷골을 잡고 외치는 상권의 말에 나는 현수를 스윽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내 품에서 빠져나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는 놈은 누가 봐도 멋있는 남자였다. 물론, 나에게는 예쁘기 그지없지만.
내가 바라보자, 현수도 함께 고개를 내려 나를 보았다. 깜빡깜빡 여닫히는 까만 두 눈동자가 맑았다.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귀엽구만, 뭘.”
상권이 아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엽지 않은 건가? 어째서? 귀여운데. 이렇게 귀여운 애가 세상에 어딨다고!
혼자 자면 무섭다면서, 아직도 내 방에 베개를 들고 찾아오고. 배고플 때는 내 허리를 꽉 껴안은 채 밥 달라며 칭얼거려. 조금이라도 내가 지쳐 보이면, 어깨를 주물러 주며 나밖에 없다고 속삭여 주지. 내가 위험할 때는 쏜살같이 달려와 지켜 주려고 하고. 얼마나 귀엽냐. 집에서는 애교도 부리는걸?
응? 응? 하면서 보채는 게 얼마나 귀여운데!
“……형? 인우 형?”
“아, 응?”
현수가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꽤나 오래전부터 부르고 있었던 모양인지,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얼굴은 불안해 보였다.
나는 녀석의 미간을 살살 문질러 펴 주었다. 그렇게 인상 그으면 안 돼, 현수야아─ 하는 말도 같이. 그러자 녀석이 배시시, 웃는다. 정말이지, 예쁘게도 웃는다. 우리 아기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음? 그냥, 네가 너무 예뻐서. 헤헤.”
그 말에 주위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우리는 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주위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현수가 예쁘게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가방 가지고 나갈 테니까, 먼저 나가 있어.”
“나, 혼자?”
그러다가 상권이가 너 때리면 어떡하려고.
걱정스러운 내 기색을 읽은 모양인지 현수가 또 웃는다. 그러고는 괜찮다며 날 달래 준다. 정말이지 착하고 예쁜 동생이다. 녀석이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차마 그 뜻을 배반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래방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잠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박상권. 학교에서 보자.”
넌, 뒈졌어.
─달칵.
현수는 멀어지는 인우의 등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돌아보는 그 눈은 차가웠다. 감정 하나 들어차지 않은 얼음 같은 눈. 인우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예쁜 미소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하지만 한두 번이 아닌 듯, 그 표정은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들 또한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다. 언제나 이렇다는 듯,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좀 전의 유현수 쪽이 더 이상했다. 그들은 그렇게 웃는 그를 본 적이 없으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은 더더욱 몰랐다.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만 같았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쪽은 상권이었다. 그는 경악하며, 인우에게 전화를 하려 했다. 하지만 현수가 한발 빨랐다. 그는 상권의 휴대폰을 낚아채 바닥에 내던졌다.
“그럼 안 되지. 페어플레이. 응?”
씨익, 미소를 지었지만, 역시 그것도 인우가 좋아하는 미소는 아니었다. 사악한 악마. 이것 외에 그에게 붙일 수 있는 말이 있을까.
“너, 너! 인우가 너 이러는 건 아냐?!”
“왜? 말해 주기라도 하려고? 그런데, 어쩌지. 인우 형은 내 말만 믿을 텐데?”
맞는 말이다. 도대체 콩깍지가 어떻게 씌었는지, 현수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친구를 상권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고아원 때부터 함께했다더니 아주 제대로 씌인 모양이었다.
상권은 차마 반론하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렸다. 현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소파 위에 올려져 있던 자신의 가방을 어깨에 들쳐 멨다. 인우가 왔으니, 더는 이곳에는 미련이 없었다. 그가 관심이 있고 집착하는 건 오직 연인우밖에는 없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자신의 형에게로 가야 했다.
그는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다 뭔가가 생각났는지 상권을 돌아보았다. 보기 좋은 입술이 열리며 당부, 아니 경고했다.
“한 번만 더, 함부로 말하면 죽여 버릴 테니까 알아서 처신해.”
달칵. 문이 닫혔다.
하지만 상권은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자신의 잘못을 집어낼 수가 없었다. 그는 현수를 열 받게 할 만한 말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그저 현수가 좋아할 만한 인우 얘기밖에 한 기억이 없다. 저토록 열을 내는 이유를 알 턱이 없었다.
그 때, 다시 문이 열렸다.
빼꼼. 현수가 안을 들여다보며 일갈했다.
“인우 형,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 네 거 아니니까.”
다시 닫혔다.
상권은 붕어마냥 입을 뻐끔거리며,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이내 외쳤다.
“아아악! 연인우, 유현수우─!”
1. 아기가 생긴 날
나는 건물 밖에서 현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후끈하게 덮치는 열기에 티셔츠의 윗부분을 잡고서 펄럭였다. 폭염이라고 뉴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데 과연, 장난이 아니었다. 잠시만 서 있었을 뿐이거늘 벌써 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티셔츠가 젖어서 몸에 들러붙는 기분은 과히 좋지 않았다.
후우. 나는 숨을 불어내며 다시 한 번 열을 식히기 위해 손부채질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땀만 더 날 뿐 더위는 가시질 않았다. 나는 거의 울상이 되다시피 해서 “더워, 더워.”를 연발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피식 웃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 그런 그들을 비웃었다.
참 나, 사람이 더워하는 거 처음 봐? 자기네들도 더우면서!
그러곤 다시 고개를 돌려 부채질을 시작했다. 팔이 아팠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뜨거운 숨이 목 안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거리는 열기로 후끈거렸다.
그 때, 내 뺨 위로 무언가가 닿았다.
“앗, 차거!”
녹아내리는 얼음마냥, 표면에 방울방울 차가운 물기를 묻히고 있는 음료수 캔이었다. 고개를 들자 현수가 씨익 미소 짓고 있다. 개구쟁이 같았지만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이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덕분에 뺨의 열기도 어느 정도 식었고 말이다. 나는 두 손으로 음료수 캔을 꼭 쥐었다.
“아, 고마워. 언제 나온 거야?”
“형이 ‘더워, 더워’ 하고 있을 때?”
그러면서 또 웃는다. 에구에구, 귀여운 것. 너니까 이 형 놀려도 봐 주는 거야 하며, 볼을 꼬집자 녀석이 아프지도 않으면서 아픈 척을 하며 울상을 짓는다. 뺨을 감싸며, 형. 나 상처 받았어. 하며 짐짓 슬픈 얼굴을 하는 녀석이다.
하여간 가끔씩 이렇게 능구렁이 같아질 때가 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비집고 새어 나왔다.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곤, 나는 걷기 시작했다. 현수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여름의 열기로 끈적한 몸이지만, 그래도 곁에 현수가 있으니 달라진다. 시원한 감각이 몸 안을 배회하는 것처럼 어느새 열기도 사라져 버린다.
내가 캔을 따지도 않은 채 여기저기에 갖다 대며 열을 식히고 있자, 현수가 캔을 빼앗아 갔다. 그러고는 톡! 캔을 따서 내게 건넸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음료수를 목 안으로 넘겼다. 아,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