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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 현수! 그게, 아기의 이름인가 보다! 원장 선생님이 아기를 현수라고 불렀으니까. 분명히 아기 이름은 현수인 거다.
나는 들뜬 얼굴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친구들에게로 고개를 돌려 아기를 소개했다.
“자아, 우리 꼬맹이들. 새 친구, 현수다. 유현수. 다들, 친하게 지내야 한다. 알았지?”
유현수. 그게 이름이구나.
나는 들뜬 기분으로 아기를 바라보았다. 아기는 뭐가 뭔지 모르는지 눈만 크게 뜨고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나는 빨리 아기의 이름을 불러 주고 싶어졌다. 가슴 언저리가 따뜻해지고 북받쳐 올라 어쩔 줄을 몰랐다.
“자, 다들 현수에게 인사ㅎ…….”
“─현수야, 사랑해!”
나는 결국,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의 소망을 실현시키고 말았다. 원장선생님의 말을 기다릴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기에 나는 우선, 내뱉고 본 것이었다.
그러고는 답싹, 현수를 껴안아 주었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두근거리는 심장의 느낌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아가야, 아가야. 이제부터 네 이름은 현수래. 유현수.
현수야, 현수야. 앞으로 형아가 꼭 지켜 줄게. 우리는 이제부터 쭉 함께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같이 있는 거랬으니까. 우리는 절대 떨어지지 말자.
“절대, 떨어지지 말자. 현수야.”
부비부비, 뺨을 부비며 그렇게 말했다. 속마음이 말로 새어 나왔지만, 상관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때, 느낄 수 있었다. 아주 미약하지만, 처음으로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말이다.

하늘도 높고 바람도 시원한 어느 가을 날, 선생님들이 바리바리 짐을 싸고 계셨다. 차곡차곡 김밥이 담긴 도시락을 종이 가방에 넣고, 우리들의 옷 하나하나까지 점검하셨다.
오늘은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아주 어린, 동생들은 남겨두고서 자기 발로 걸을 수 있는 친구들은 모두 소풍을 가게 되었다. 장소는 산. 우리와 함께 가시는 선생님은 총, 다섯 명. 나머지, 세 명의 선생님은 남아서 동생들을 돌보신다고 하셨다.
친구들은 모두 들떠 있었고, 그것은 나도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옆에 찰싹, 찹쌀떡 마냥 붙어 있는 현수의 손을 꼭 잡고서 연신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현수는 아직도 입을 열지 못하는 건지 말은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진척은 보였다. 처음에는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인지 간단한 상황 파악도 사람들의 말도 잘 못 알아들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비록, 말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지만, 적어도 모든 것을 알아듣고 이해하는지, 간혹 고개도 끄덕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많은 발전이었다.
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현수 옆에서 ‘오늘은 소풍을 간대. 김밥도 먹고, 재밌게 놀기도 할 거래.’ 하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현수가 날 빤히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동그란 것이 정말이지 예쁘고 귀여웠다. 아아, 우리 아가는 아마, 천사일 거야. 아마도 날개를 잃어버려서 그런 날씨에 떨고 있었던 게 아닐까. 왠지 일리 있는 말 같았다.
“자자, 다들 줄 제대로 서세요. 우리가 가는 곳은 이, 근처에 있는 산이니 오르기도 쉬울 거예요. 여러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반드시 선생님의 말을 잘 듣고 행동하셔야 해요! 아셨죠?!”
제대로 듣고 있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 결국 선생님은 마지막에서 소리를 높이셨다. 하지만 여전히 시끌벅적.
결국 우리는 그렇게 들뜬 상태로 출발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현수와 나는 버스에서도 같이 앉았다.
달리는 버스는 경쾌했고, 불어오는 바람은 포근했다. 정말이지 즐거운 소풍이 될 것 같았다. 나는 현수의 손을 꼭 잡은 채 재밌게 놀다오자고 속삭여 주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설레는 소풍. 현수도 싫지는 않은지 가는 내내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랬었는데.
“현수야! 현수야!”
나는 내 품 안에 늘어진 현수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뜨거웠지만, 그것보다는 현수가 우선이었다. 지금, 내가 아니면 현수를 보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현수의 얼굴에 묻은 흙을 연신 털어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품에 안고 토닥이며 몇 번이고 현수의 이름을 불렀다. 괜찮다고. 누구에게 속삭이는지도 모를 말을 하였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자, 암담하기만 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생각도 나질 않는다. 단지, 현수가 떨어지려던 그 순간만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다.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어찌해야 할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단지 엉엉 울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주저앉은 흙바닥이 차가웠고, 우리를 에워싼 공기가 시렸다. 전해지는 온기라고는 꼭 붙어 있는 서로의 몸뿐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너무 오래 걸어 발이 아픈 듯, 자꾸만 멈춰 서려고 하는 현수가 가여워서 나는 잘못된 행동인 건 알지만, 잠시 쉬기로 했었다. 우리는 가장 맨 앞에서 앞서 갔었기 때문에 조금 쉰다고 해도 뒤처지지는 않았다.
다시 일어섰을 때에는 다행히, 대열이 눈앞에 보였고, 우리는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현수가 그만 발을 헛디뎌 버린 것이었다.
다리 근육이 굳었는지, 잠시 비틀거리던 현수의 몸이 기우뚱, 기울었고, 나는 다급히 현수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구르기 전, 찰나의 시간. 나는 현수를 품에 꼭 안고서 최대한 보호하려 했었고. 대부분의 것들은 내 몸에 치이거나 부딪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은 이 상태였다.
현수는 충격을 받은 건지 눈을 뜨지 않았고, 나는 현수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가을이라 그런지, 해가 짧아 숲 속은 어두워졌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섭고 무서웠다. 주위에서 주는 공포보다, 이대로 현수가 눈을 뜨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 사실이 너무도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극도의 공포에 몰린 기분이 어떤 건지 실감이 났다.
그 때, 나의 품에서 꼼지락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현수야!”
다행히도 현수가 눈을 떴다. 어지러운 듯이 미간을 조금 찌푸렸지만, 다행히 이상은 없는 듯했다. 나는 눈물과 함께 한숨을 토해 냈다. 정말 다행이었다.
“……?”
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게로 손을 뻗어 왔다. 그러고는 슬며시 이마 주위를 쓸고 지나갔다.
자신의 손가락을 본, 현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나 또한 현수가 한 것처럼 나의 머리에 손을 대었다. 뜨겁고 미끈한 것이 만져졌다. 손을 내려 보자, 새빨간 피가 묻어나 있었다. 어지럼증이 밀려드는 기분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너무도 다급하고 무서운 마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 탓에 긴장이 풀린 지금, 모든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당황한 현수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괜찮다며 웃어 주었다. 그러고는 불안해하는 그 몸을 꼭 안아 주었다.
“아가야. 형아, 괜찮아. 안 아파. 형아는 무적이니까, 괜찮아. 괜찮아. 현수야. 형아, 하나도 안…… 아파.”
관자놀이를 타고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뺨을 타고 뚝뚝 새빨간 것이 방울방울 웅덩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말을 할 수 없는 현수는 당황했는지 색색, 날카로운 숨소리만 냈다. 현수의 자그마한 손이 나를 꼭 붙잡았다.
─콰쾅!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갈수록 태산이라고. 천둥소리까지 들렸다. 그러고는 곧장 비가 쏟아져 내렸다. 이번 여름에는 비가 적게 오더니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기라도 하는 듯이 빗줄기는 거셌다.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는 아무런 빛도 없었다. 탁한 구름으로 가로막힌 하늘에는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음습한 어둠. 그리고 들려오는 빗소리, 천둥소리. 내 품에서 들려오는 자그마한 현수의 숨소리.
“하아, 하아.”
입에서 뜨거운 숨이 흘러나왔다. 머리가 아팠다. 어지러웠다. 두 눈이 감기려 했다. 또다시 깜짝 놀란 현수가 품에서 빠져나와 내 얼굴을 보았다. 나는 힘겹게 웃어 주었다.
우리 아가, 겁주면 안 되니까. 현수는 아프면 안 돼.
“현수야, 어디 아픈 곳은…….”
도리도리.
현수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스스로 내 품에 뛰어들어 나를 꼭 껴안았다. 마치 자신의 체온으로 덥혀 주려는 듯이. 떨고 있는 내 몸을 진정시켜 주려는 듯이.
현수의 어깨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차갑게 젖어 있던 옷섶이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현수는, 울고 있었다.
나는 현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버릇처럼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현수야. 형이 있잖아. 형아가 지켜 줄게. 괜찮아.”
되풀이 되는 말. 그 말은 마치, 스스로를 향한 다짐처럼 내 가슴에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현수의 울음소리가 갈수록 커져 갔다. ‘엉엉’이 아닌 ‘색색’하는 날카로운 숨소리. 목소리를 잃어버린 현수는 울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너무 안타까워, 나는 품에서 울고 있는 현수의 머리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약속처럼 나는 말했다.
“현수야, 현수야. 사랑해. 형아는 현수를 사랑해.”
콰콰쾅!
번쩍하는 하늘과 함께, 또다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 그리고…….
“……ㅇ.……ㅎ……아……아……혀……혀ㅇ……아. 형……아.”
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색색거리던 숨소리가 어느새 엉엉,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로 바뀌어들고, 눈물에 젖어 든 현수의 목소리가 내게로 들려왔다.
“형아, 형아! 욱, 우으으, 형아아!”
처음으로 듣는 현수의 목소리였다.
혹시라도 내가 저 멀리 사라져 버릴까, 애타게 나를 부르는 현수의 목소리는 내가 상상해 왔던 것보다 훨씬 더 고운 목소리였다.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나를 껴안은 손에는 더욱더 힘이 들어갔다.
절대 떨어지지 말자는 서로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처럼. 현수는 나를 부르짖으며 나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인우 형아─!”
결국 나는 현수가 부르는 나의 이름을 들으며, 그 자리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던 정신을 까무룩, 놓아 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 날로부터, 삼 일 후. 나와 현수는 안전히 고아원으로 돌아와 있었다. 우리를 찾아 헤맸던 선생님들과 경찰 아저씨들에게 현수의 울음소리가 들렸는지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들께 들었던 말이지만, 현수는 경찰 아저씨들이 나를 데려가려 할 때, 필사적으로 나를 지키려 하였다고 한다. 경찰 아저씨들이 나쁜 사람들인 줄 안 모양인지, 나를 꼭 붙잡고서는 데려가지 말라고 엄청 크게 소리를 질렀단다. 그중 한 분은, 현수에게 물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뒤늦게 도착하신 선생님들이 현수를 달랬고, 나는 무사히 이송되었다.
내가 정신을 놓은 그 삼 일 동안. 현수는 내게서 단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밥을 먹으라는 선생님의 말도 듣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려는 것을 겨우 타일렀다고 하셨다. 그것도 계속 그러고 있으면 내가 미워할 거라는 말로 말이다.
다행히도, 외상이 심각하지는 않았던 나는 삼 일 만에 눈을 뜰 수 있었고, 내 옆에서 나를 꼭 붙든 채 잠이 든 우리 아가를 볼 수 있었다.
한 손은 내 허리를 꼭 껴안고, 다른 한 손은 내 손을 꽉 붙잡은 우리 아기는 내가 깨어나자마자, 일생, 처음으로 보는 환한 웃음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것도 내 품에 뛰어드는 것과 함께.
아, 물론 정말이지 감격스러운 한마디도 함께였다.
“형아! 사랑해!”
지금도 생각하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세월이 빠르게 흘러, 현수와 내가 초등학생의 나이가 되었을 때다. 아마, 현수가 열 살이었으니, 나는 열두 살이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애매한 날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날은 갑자기 선생님들께서 내게 처음 보는 옷을 입혀 주시고 처음 보는 신발을 신겨 주신 날이었다. 요즘 들어 나는 처음 보는 새 물건을 많이 받고 있었다. 그것도 항상 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서 말이다.
어느 날은 아주머니 혼자 오시다가도 어느 날은 아주머니랑 아저씨, 그리고 누나와 형들도 같이 오기도 했다. 모두가 몰려들어 나를 빤히 쳐다보며 꺅꺅거릴 때에는 절로 뒷걸음을 칠 정도로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딱히 내게 나쁜 감정이 없다는 걸 알아서일까. 진심으로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요즘, 좀 난감했다. 현수가 토라진 듯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도대체 내 잘못이 무엇인지 몰라 고민만 했다. 현수는 말문을 열게 된 이후로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고, 나와도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친구가 생겼다 하여 현수가 날 내버려 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였고, 이제는 고아원 내에서도 그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더불어 현수는 원래가 그 쪽으로 끼가 있는 아이였는지, 고아원 내 아이들 사이에 군림을 하기 시작했다. 동기가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이상하게도 친구들이 현수를 따르고 현수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친구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어서 기쁘다는 현수의 말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다들 현수가 예뻐서 그런가 보다.
그리고 사건은 그런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터졌다. 위에서 말했던 대로 선생님들이 내게 새 옷을 입혀 주었던 그 날 말이다.
“우리, 인우는 좋겠네. 새 옷도 입고!”
“그러게. 어쩜, 인우는 선이 가늘고 예뻐서 환한 옷이 너무 잘 어울린다니까!”
샛노란 셔츠를 입고 베이지색 재킷을 걸쳐 주었다. 그러고는 꺅꺅거리는 모습들이 왠지, 내가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도대체가 왜 이러나 싶어서 묻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 무슨 날 이예요?”
그러자, 돌아오는 답이란 이런 것이었다.
“응! 인우에게 아―주 좋은 날!”
그러니까 무슨 날.
초등학생에게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듣냔 말이야.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나는 그냥 체념하고는 그들이 입혀 주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현수가 보이질 않던데, 얘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람. 혹시, 벌써 독립?!
에이, 설마.
“그러고 보니, 요즘에 현수랑 같이 안 다니네? 둘이 싸웠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선생님 중 한 분이 그렇게 물어 왔다. 나는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어머, 웬일이니! 하며, 호들갑이다. 하지만 이내 나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는 다들 입을 딱, 다물었다.
그치만 어떡해. 정말 모르겠는걸. 난 평소 때처럼 대해 줬단 말이야. 내 사랑이 식었을 리는 절대 없다고.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때 어떤 선생님께서 혹시, 하며 중얼거리셨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어서 뱉어라!
“혹시 말인데요. 현수, 눈치챈 게 아닐까요? 원래부터가 눈치가 빠른 애였잖아요.”
“아, 그럴 수도 있겠다. 매일같이 오셨었으니까.”
“형이랑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아는 순간, 충격 받은 걸 수도.”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글쎄요. ……남자의 감?”
“…….”
자기네들끼리 떠들더니 다시 내 옷매무새를 고쳐 주기 시작했다. 나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 나한테도 좀 가르쳐 달라고! 짚이는 게 있으면, 말해 달란 말이야아!
“자, 다 됐다.”
그리고 때마침 덜컹! 하며 문이 열렸다. 들뜬 기색의 선생님 한 분이 서 계셨다.
“지금 막 도착하셨어요! 준비는 다 됐어요?”
“응. 완벽해.”
“우와! 우리, 인우 예쁘다!”
예쁘고 나발이고, 좀 가르쳐 달라구요. 나는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왠지 물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르쳐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묻고 싶은데, 정말로 묻고 싶은데. 머리가, 이성이 그것을 막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방패막이였던 것 같다. 이 고아원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방패막이.
결국 나는 선생님들의 손을 꼭 잡고서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마당에는 요즘 들어 자주 보았던 차 한 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여전히 요즘 들어 자주 보는 한 가족이 있었다.
그들이 나를 보더니 반갑다며 달려왔다.
나를 가장 좋아하는 어떤 누나가 가장 먼저 나를 꼭, 껴안았다.
“인우야, 안녕? 누나 안 잊어버렸지?”
나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누나.”
“인우는 벌써 고학년인데, 어쩜 이렇게 예뻐? 보통, 이 정도 나이 되면 징그러워서 싫은데. 저것들도 그렇고.”
누나가 뒤에 서 있는 형들을 가리켰다. 형들은 고등학생이었다.
형들이 우리가 뭐 어때서! 라며 발악했지만, 누나는 무시했다. 정말이지 무서우면서도 멋있는 누나였다.
그중, 키가 큰 형이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갈수록 무거워지네, 이 녀석! 너도 남자라는 거냐?”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형이 말했다. 아직 이름은 외우질 못했다.
“남자는 무슨, 여자라고 해도 믿겠네. 난, 보통 초딩들 싫었는데 말이지.”
누나가 형의 말에 손가락을 척, 들고는 무슨 논리나 공식이라도 되는 양 말했다.
“우리, 인우는 예외지.”
그러자, 형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하면서.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 따라 왜들 이렇게 들떠 있는 걸까. 나만 그 이유를 모르니, 왠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바동거리며, 형에게 내려 달라 말했고, 형은 군말 없이 나를 내려 주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