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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고개
스무고개 (1화)
01. 출가하다 (1)
달이 평소보다 더 시리게 보였다. 손을 가져다 대면 그대로 손끝부터 얼어 버릴 것 같다고 멍하니 생각했다. 밤의 놀이터는 굉장히 고요했다. 낮에는 그리도 북적거리던 것이 거짓인 것마냥. 땅을 휩쓰는 바람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곳에서 나는 가만히 눈을 내리 감았다.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거기에 산통을 깨는 소리가 하나.
“젠장! 빌어먹을 새끼! 거기에 처박혀 있지 말고 나오란 말이야!”
거 참 시끄럽네. 고상하게 명상도 못 하게 하다니. 나는 한숨을 짜게 내뱉으며, 미간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감은 눈을 뜨지는 않았다. 짖어 대는 멍멍이쯤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알 게 뭔가. 발악을 하든 울든,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 왜냐하면 저놈은…….
“치사한 새끼. 구석에 숨어 있지 말고 나오라고!”
일순, 바람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감았던 눈을 슬쩍 떠서, 고개를 돌리자 찌그러진 음료수 캔이 나뒹굴고 있었다. 내가 조금만 옆으로 움직였다면, 뺨이 길게 그어졌을 거다.
나는 천천히 녀석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의 몸이 흠칫, 크게 떨렸다.
그래, 왜냐하면 저놈은 곧 죽을 거거든. 감히 내게 쓰레기를 던져? 뒷목을 긁적이며 비스듬히 기울어 있던 상체를 바로 했다. 덩치도 산 만한 녀석이 시선 하나에 움찔거릴 거였다면 음료수 캔 따위를 던지면 안 되는 거였다.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었다면 말이지.
그때였다. 누군가가 내 앞을 막고 섰다. 눈을 치켜뜨고 살펴보니 같은 학교 후배였다.
“선배가 직접 나서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녀석은 분명, 오티 때 내 술을 엄청 받던 놈이 아닌가. 죽어도 내 옆에 앉아서 떨어지질 않았던 게 떠오른다. 뭐, 나한테 잘 보이려고 이러는 것 같은데. 나도 딱히 잔챙이를 상대로 손을 더럽히고 싶진 않고.
나는 한숨을 짧게 쉬곤,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았어. 너한테 맡길게. 대신, 실패하면 알아서들 해라.”
나는 손을 휘적휘적 흔들며, 무리로부터 빠져나왔다. 딱히, 놈들이 저 녀석을 어찌하든 알 바 아니고. 서 있어 주기만 해도 좋다고 하니까, 나왔을 뿐이다. 대학생이나 돼서 쌈질이라니. 참 어지간히도 할 일 없는 놈들인가 보다. 뭐, 조폭 집안의 막내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나름 얌전하게 지냈다. 분명, 우리 집안은 세간에서도 알아주는 조폭 집안이긴 하지만. 조폭이라는 건, 길거리 양아치들의 싸움과는 다르다. 그러니, 고등학교에서 싸움을 일으킬 생각도 없었고. 솔직히 유치했다. 하지만, 고등학교라는 게 어디 본인의 생각만으로 돌아가는 곳이던가. 내가 조폭 집안의 막내라는 걸 안 놈들은, 언제나 싸움을 걸어 왔고. 받아 주다 보니, 어느새 정점을 찍었다 이 말씀. 그리고 그 전설은 내가 대학생이 된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문제인 거다. 하아.
나는 조용한 거리를 터벅터벅 걸으며, 블랙 멘솔을 입에 하나 물었다. 자욱한 연기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후우─”
그때 지척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떼어 냈다.
“왜 왔어?”
맡기라고 할 땐 언제고, 내 뒤를 졸졸 따라오냐. 나는 쫓아오는 놈을 힐끔 보다, 발걸음을 늦추었다. 너무 빨리 걸어가니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해서였다. 녀석은 화색을 띠며 내 옆에 따라붙었다.
“본가에 가시는 겁니까?”
“그럼 내가 갈 데가 어디 있냐?”
본가는 무슨 본가. 우리 집이지. 애초에 내가 자취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시 블랙 멘솔을 물고 바라본 하늘은 여전히 새카맣다. 도시에서 별을 보겠다는 것도 우습지만, 어떻게 된 게 하나도 없을까. 형한테 그냥 도시 다 밀어 버리라고 할까.
나는 훅훅 연기를 내뱉다 말고, 담배를 다시 떨어뜨렸다. 이거 이제 질린다. 담배를 바꿀까나. 슬쩍 옆으로 넘겨주자, 민혁이 받아 들며 자신의 입에 문다. 그것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찝찝하지도 않나 보다. 남이 빨던 거를 입에 물고. 주머니를 손에 찔러 넣고 걷는 거리에서는 우리 둘의 발걸음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내가 입을 다물어 버리자, 민혁이도 말이 없다. 평소에는 재잘재잘 잘도 떠드는 놈인데, 분위기라도 잡으려는 건지.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바이크를 타고 도착한 곳에는 높은 담이 드높게 쌓여 있었다. 잘빠진 검은 몸체에서 몸을 내리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손목시계를 바라보자, 시간은 어언 열두 시가 다 되어 간다. 망했다, 라는 글자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이다. 일찍 들어오라고 그리도 신신당부를 했건만, 열두 시라니. 유리구두 던져 놓고 온 신데렐라 아니, 동급생 한 명을 떡으로 만들고 온 신데렐라도 아니고.
나는 큰 대문에 맞지 않게 조그마한 초인종을 꾹 눌렀다. 그러자, 한 번도 채 울리지 않았는데 초인종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목소리조차 제대로 듣지 않고 말했다.
“열어.”
달칵, 하고 잠금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끼익-하는 귀 아픈 울림을 담고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육중한 문은 마치 성을 연상시켰다. 우리 집 식구가 워낙 많기 때문에 집이 큰 건 이해가 간다만, 이 문은 좀 거슬린다. 경첩이 낡은 걸까.
이윽고 문이 모두 열리고, 내가 한 걸음 안으로 내딛기 무섭게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다녀오셨습니까, 막내도련님!”
덩치 큰 아저씨들의 존대를 받는 거야, 어린 시절 부터의 일이었던지라 익숙하다만. 이 굵직한 목소리만큼은 아직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한밤중에 떠나가라 인사들을 하시다니. 잠도 없으신지. 물론, 나를 기다려 준 건 고맙지만. 나는 대답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옆에 다가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시작되는 잔소리.
“늦으셨습니다.”
익숙한 체향이 희미하게 풍겼다. 어린 시절부터 보모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나를 보살폈던 사람이다. 꽤 고마운 사람이지만, 잔소리가 심한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었다. 안 그래도 통금시간이 지나는 바람에 심란해 죽겠는데.
나는 퉁명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할 일이 있었어.”
“고등학생이 이 시간까지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토록 흐트러진 옷차림이라니…….”
여전히 앞을 보고 있지만, 그의 말은 쉬는 법이 없었다. 하여간, 잔소리를 한번 시작하면 끝이 없다니까. 나는 속으로 한숨을 꾸역꾸역 삼키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하지만,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이 남자는, 내가 두 번 걸을 때 한 번 걸어서 나를 바짝 쫓아왔다.
“복장이 너무 불량하십니다. 또 어디에서 싸우고 오신 겁니까? 이대로 안으로 들어가시면 곤란합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도련님께서는 조직 일만으로도 충분히 벅찰 거란 말입니다. 굳이, 멋모르고 날뛰는 어린애들 치기 어린 싸움에 가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짹짹짹짹. 아, 거 참 말 많네. 나는 결국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제야, 그 또한 말을 멈추고 더불어 걸음 또한 멈춘다.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상아.”
“…….”
“잔소리.”
“……예.”
짧은 말이었지만, 그는 용케 알아들었다. 하지만, 얼굴을 보아하니 아직 할 말이 아주 많이 남은 모양이다. 그러나 어쩔 건가. 나는 그의 상관이나 마찬가지다. 감히 내 말에 거역할 텐가. 나는 등을 홱 돌리며, 걷기 시작했다. 드넓은 정원의 돌담을 하나하나 밟으며, 천천히 거대한 건물의 앞으로 다가갔다.
서양식과 동양식이 묘하게 섞인 저택. 집안의 구조는 서양식이거늘, 창문이나 문은 동양식이다. 이건 다 우리 부모님 덕분이다. 서양식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동양식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맨 처음에는 건물 디자인 건으로 몇 번이고 싸웠다고 들었다. 그 탓에 이혼까지 고려할 정도로. 그 말을 들었을 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래도 싫지 않다. 어찌 되었건 이 집은 부모님이 계셨다는 증거.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주신 재산 중 하나이니 말이다.
상은 “실례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내 앞에 섰다. 그러곤 도어 록을 밀어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여덟 개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이윽고 도어 록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집에 먼저 들어간 것은 상이었다. 나는 잠시 문 밖에서 상황을 지켜볼 요량이었다. 우선은 지은 죄가 있으니 말이다. 무슨 죄? 통금시간 어긴 죄.
“막내도련님께서 막, 도착하셨습니다.”
아니, 그 ‘막’이라는 단어는 딱히, 붙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지. 이렇다 할 변명도 뭐도 붙이지 않는 상이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온다. 너무 솔직해, 너무!
“들어오라고 해.”
나는 잠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목소리를 듣자 하니, 왠지 무사히 넘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지나치게 가라앉지도 않았고, 평소랑 똑같았다. 우리 큰형은 평소엔 괜찮은데, 한 번 화나면 동생이라 할지라도 썰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하지만, 그런 큰형의 교육 방침에는 그다지 불만이 없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읜 우리를 이렇게까지 키워 주고, 젊은 나이에 무거운 사업을 이어받게 된 건 큰형이니까.
가지런히 정리된 쌍쌍의 신발들 옆에 내 신발을 조심히 벗어 놓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란히 나열된 신발들을 보고 있자면, 큰형의 성격이 익히 짐작이 된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이 그어 놓은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가진 성격. 완벽주의자의 성향은 이쪽을 피곤하게 만든다. 나름, 큰형의 병이라면 병이었다. 뭐, 우리를 키우다가 저리 되어 버린 성격이니, 어쩔 수는 없다마는.
“다녀왔습니다.”
시큰둥하니 인사를 하고서 고개를 든 나는 그만, 숨을 흡, 들이쉬고 말았다. 큰형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소파에는 예상외의 인물들이 껴 있었다. 둘째 형과 셋째 형까지 있었을 줄이야. 분명히, 집에 없거나 잠을 자고 있어야 할 인간들이 어째서?!
“늦었다?”
도운이 형이 소파에 몸을 묻으며 질문 같지도 않은 말을 물음표까지 붙여 가며 내뱉었다. 나는 딱히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 집의 둘째인 저 인간은 나를 갈구는 것을 삶의 낙으로 아는 인간이다. 뭐, 그렇다고 우리 사이가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냥 어렸을 때부터 자주 투닥거려 왔다. 나는 도운이 형을 무시한 채, 앞으로 척척 걸어가 남은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그러자 그가 뺨을 씰룩거렸지만, 그뿐이었다. 도운이 형은 나를 자주 괴롭히려 들지만, 이래저래 따져 가며 사람을 귀찮게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유치한 놀음이나 다녀온 거냐.”
딱히, 묻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입을 일자로 꾹 다물고서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이 집의 장남인 선우환에게는 그 어떠한 말도 통하지 않는다. 그의 말이 곧 규칙이자, 법이었다.
“그렇게나 몸을 사리라 말했는데도, 내 말은 듣지도 않는구나.”
“몸을 사리고 말고 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방심을 하면, 아무리 작은 개라고 하여도 목덜미를 물어뜯는 법이지.”
동생을 훈계한다기보다는 쓸 만한 조직원을 가르치는 듯한 어투였다. 그 목소리에 소름이 끼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형이라 하여도 긴장한 모습 따위, 남에게 무릎을 꿇을 만한 허점 따위 내비치고 싶지 않았다.
“방심 따위 한 적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물러 보입니까?”
억누른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담겨져 있었다. 약간의 반항과도 같았다. 큰형은 반항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그 말을 다시 주워 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순식간에 거실의 분위기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모두가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큰형의 주위에서 맴돌던 분위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미안하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큰형은 아직도 나를 어린애로 보고 있다. 이제는 스물한 살이 된 나를. 어엿한 성인이 된 나를 말이다!
“선우연.”
마침내,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짧기도 길기도 한 정적은 드디어 끝이 났다.
“……예.”
심호흡을 하느라 답이 조금 느리게 나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단지, 이 집의 장남인 선우환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만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나의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일 뿐.
“너는 스스로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나.”
낮은 울림. 하지만, 그것은 몸을 말고서 누워 있던 맹수가 일어서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그 맹수가 나에게 달려들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가라앉은 시선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열 받았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쉽게 굽힐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나는 입꼬리를 비죽 끌어 올리며 말했다.
“적어도 빠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외모도 오케이. 성적도 오케이. 운동 신경도 오케이.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않아? 더불어 집안도 좋지. 그때였다. 큰형이 입꼬리를 스르륵 말아 올렸다.
“웃기는군.”
형의 낮은 웃음소리에, 모두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젠장, 엿 됐다. 저 인간을 웃게 만들다니. 나는 엉덩이를 조금 뒤로 빼 슬금슬금 움직였다. 여차하면, 이층으로 뛰어 올라가야 했다. 주위를 둘러보자 셋째 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둘째 형은 입모양으로 ‘차라리 빌어라.’라고 말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이 통했으면 벌써 했지!
도운 형이 눈짓을 했다.
‘신호하면 튀어라.’
‘…….’
‘나중에 갚아라.’
눈짓과 입 모양으로 여러 말이 오고 갔다. 나는 소파의 팔걸이를 붙잡았다. 한쪽 발은 이미 계단을 향해 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큰형의 움직임만을 좇고 있었다. 그의 팔이 소파 뒤의 벽으로 갔다.
동시에 우리들의 눈은 삽시간에 커졌다. 도운 형은 숨을 잘못 들이마신 것인지 헛기침을 했고, 셋째인 현이 형은 체념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선우환이 손에 든 것은 장검이었다. 언젠가, 큰형의 생일선물로 누군가가 준 적이 있었다. 날카롭게 잘 벼린 칼날과 꼼꼼하게 세공된 아름다운 손잡이는 거의 예술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문제는 저것이 진검이라는 것.
“어리석은 놈. 네 녀석은 허점투성이다. 여차하면, 금방 죽여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으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환에게서 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서 난 것이었다. 제정신이냐는 도운 형의 시선이 따라왔지만, 나는 더 이상 참고 싶지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형을 피해 위로 도망가려 했지만. 허점투성이라는 말에, 금방이라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약하다는 말에, 자존심에 금이 가고 말았다. 열 받는다. 나는 선우가의 선우연이다. 나는 홧김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동시에.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목 언저리가 뜨거웠다. 도운 형과 현이 형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
“형님!”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도운 형과의 약속에 따르면, 분명히 도망을 가야 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을 뿐더러 애초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형의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검날이 내 목 언저리를 누르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눈을 굴려 턱 밑에서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녀석들 손에 죽을 바에는, 이곳에서 죽어라.”
저것이 과연, 동생에게 할 수 있는 말일까. 나는 이 상황 속에서도 멍하니 그런 생각만을 했다.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들도 깜짝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하지만, 차마 이쪽으로는 오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누가 선우가의 장남을, 흑혈파의 보스를 말릴 수가 있을까.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그런 짓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고개를 들자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는 한 쌍의 눈동자가 보였다.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눈이었다. 정말로 죽일 생각일지도. 하긴, 큰형이라면 그러고도 남지만.
그때, 새하얀 손이 환이 형의 손을 덥석 잡았다. 뼈대가 굵은 큰형의 손과는 대비되는 손이었다. 셋째 형, 현이 형이다.
“형님, 내려놓으십시오.”
“말로 하면 되잖아! 연이 녀석도 반성하고 있을 거라고. 응?”
조용조용한 현이 형의 목소리와 애써 웃음 짓는 도운 형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려왔다. 하지만, 난 두 사람의 노력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죽일 건가요?”
신기하게도 목소리가 침착하게 나왔다. 아마도 죽음이라는 것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긴장했던 근육들도 느슨하게 풀어졌다.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 갔다.
“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빌어! 무릎 꿇고 빌라고!”
힐끔, 눈동자만 굴려 도운 형을 보자, 아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입술을 깨물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가 발을 동동 구르다가. 할 수 있는 몸짓은 다 한다.
그때, 현이 형이 나를 불렀다.
“연아.”
그가 나를 부르는 일은 지극히 드물었다. 정말로 볼 일이 있거나, 아무 말 없이 내 눈만을 바라볼 때. 지금은 후자였다. 그는 다른 사람의 눈을 보고서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가 있다. 물론, 상세하게 읽어 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렴풋이 짐작을 하는 것이었다.
이내, 그가 고개를 돌렸다.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죽이면, 죽을 테냐.”
“설마요.”
내가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있나. 자살 희망자도 아니고. 검에 힘이 들어갔다. 붉게 배어 나오는 피가 뜨거웠다. 짙은 피 냄새가 스며들자,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졌다.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뜨며, 손을 들어 날을 잡았다. 꽉 잡고서 옆으로 치워 내자, 아무 말 없이 검을 거두어들인다. 더 커질 것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도운 형의 눈이 더 커지고 있었다. 저러면, 눈 아플 텐데 말이다. 물론, 지금은 내 머리가 더 어지러워서 신경 써 줄 겨를이 없지만.
“큰형님 말씀이 맞아요. 전, 약합니다.”
바닥으로 뚝뚝 피가 떨어졌다. 누군가가 지혈을 하겠다며 달려왔지만, 손을 들어 막았다.
“그러니, 더 강해질 겁니다. 큰형님이 살려 주셨다는 건, 아직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죠?”
큰형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집을 나가겠습니다.”
아, 말하고 나니까 후련하다. 나는 씨익 웃으며 좌중을 훑어보았다. 자, 다들 나의 큰 포부에 박수를 치거라.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멍하니 입을 벌리고서 어버버거리는 도운 형을 중심으로 다시 한숨을 쉬는 현이 형 그리고 헉! 헉! 하고 도미노처럼 연달아 들리는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에, 오히려 내가 벙찌고 말았다. 내가 집 나간다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평소의 몇 배는 더 인상을 험악하게 구긴 큰형이 으르렁거리듯이 물었다.
“집을…… 나가?”
대체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네. 나는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나갈…….”
“야, 너! 너너너, 미쳤어?! 하도 맞아서 머리가 돌았냐?”
이왕이면 단어 선택 좀 잘 해 주지. 돌았냐가 뭐냐, 돌았냐가.
여전히 벌린 입을 다물 줄 모르는 도운이 형. 나를 가리킨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거기다 대고서 대답해 줄 만한 말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아니.”
솔직히, 돈 것도 미친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왜 가출이야!”
그 말에는 조금 인상이 찌푸려졌다. 여태까지 내가 한 말을 뭐로 듣고! 가출이라니!
“말조심해. 출, 가하는 거야.”
가출과 출가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세상모르는 어린 것들이 반항심을 가지고서 무작정 집을 나가는 것은 가출. 반면에 출가라는 것은 뜻을 가지고서 집을 떳떳하게 나가는 것이다. 고로, 나는 뜻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니 출가라는 말씀이다. 그런 심오한 것을 가출이라 정의하다니.
“출가?”
다시 한 번 낮은 음성이 귓가를 때렸다. 큰형의 눈썹이 살짝 위로 치켜뜨여 있었다. 이해를 못 하겠다는 눈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또 무슨 사고를 치려는 거냐.’가 정확했다. 이 집의 사람들은 나를 너무 신뢰하질 못한다. 내가 무슨 잘못을 그리 했다고.
“예. 말씀드렸잖습니까. 강해지겠다고요.”
“길바닥을 구르며 실력을 쌓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요즘 들어 생각하는 거지만, 가끔 큰형의 말이 조금 험해질 때가 있는 것 같다. 길바닥을 구르다니, 그것 말고도 좋은 단어가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여러 인간들이랑 싸워 보는 것만큼 좋은 경험이 없으니까요.”
“죽으러 가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이마에서 힘줄이 돋아날 것 같았다. 입가에 잔 경련이 일어났다. 안면 근육이 굳을 준비를 하는 것인지 자꾸만 씰룩거렸다.
아니, 뭐 이딴 경우가 다 있냔 말이다. 선우가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막내가 모두를 위해 뜻을 품고 나가겠다는데 대체 왜 말리는 거냐고! 그 옛날, 홍길동도 자신의 뜻을 가지고 출가를 했는데 왜 나는 못 해!
“왜 자꾸 죽는다고 단정을 짓는 겁니까! 실력을 쌓아서 돌아오겠다고 했잖습니까!”
“너 같은 녀석이 가 봤자, 결과는 뻔하다. 얌전히 집에 있어.”
“언제는 죽인다면서요.”
“죽여서라도 나가지 않는다면, 그리 하마.”
……이건, 뭐. 벽에다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 안 통하잖아.
냉정하게 등을 돌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다 나왔다. 이번에는 둘째 형도 셋째 형도 도와줄 마음이 없는지 다 같이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큰형을 향해서 잘했다는 눈빛을 날리고 있었다. 난, 이제야 현이 형이 날 말리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차피 큰형이 막을 테니까 굳이 나설 이유가 없었던 거였다. 약았어.
도운 형이 이쪽을 힐끔 돌아보더니 쌩하니 등을 돌렸다. 애써 모르는 척하려는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그럼, 그만 들어가서 잠이나 잘까?”
“…….”
현이 형도 나를 힐끔 돌아보았지만, 이렇다 할 말은 없었다. 눈물겨운 우애야, 눈물겨운 우애. 동생이 집 나가려는 걸 한뜻이 되어서 막으려 하다니. 나는 큰 뜻이 있는데 말이지. 치사하게.
나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서 그 자리에 섰다. 도운이 형이 자러 가자고 눈치를 보내왔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오기라도 부리는 수밖에 없었다. 쀼루퉁하게 눈을 흘기며 큰형을 노려봤다.
“……!”
아씨, 눈 마주쳤어.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형은 검을 제자리에 갖다 두더니, 내게로 한 걸음씩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한 걸음씩 물러났다.
“연.”
“예, 예?”
끼기긱, 하고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큰형이 내 앞에 서 있는 탓에 숨을 멈추고 말았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이 인간은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교육을 받으면 이렇게 되는 것일까. 아버지가 항상 큰형이 교육받을 때는 얼씬도 못 하게 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어깨에서 꺄르르 웃으며 놀았던 기억밖에 없다. 오히려, 그런 나를 가르친 건 형들이었다.
“나와 같이 자고 싶은 게 아니라면, 들어가라.”
“…….”
젠장, 비겁하게 그딴 협박을 쓰다니. 치졸한 악마 같으니라고.
“선우연.”
“…….”
씨이, 들어가면 될 거 아냐!
결국에는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인간은 힘이 있고 봐야 하는 거다. 젠장.
다음 날. 선우가는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그 중심에는 이 집의 둘째인 선우도운이 있었다. 도운은 다급한 발걸음으로 이층에서 내려왔다. 그 뒤에는 당연히 셋째인 선우현이 따라 오고 있었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이 웬일인지 조금 찡그려져 있었다.
“형! 젠장, 환이 형!”
“무슨 일이냐.”
잠이 별로 없는 선우환은 아침 일찍부터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평소, 그가 즐겨 마시는 에스프레소였다. 한 손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신문이 들려 있었다. 여유로운 모습이 그가 어떤 자인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듯했다.
도운을 뒤따라온 현이 입을 열었다.
“큰일 났습니다, 형님.”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선우환은 그제야 시선을 돌려 그 둘을 바라보았다.
도운이 손을 부들부들 떨며 환에게 새하얀 무엇인가를 넘겼다. 옆면이 듬성듬성한 것이 대충 찢은 공책인 듯했다.
“흠.”
이게 뭐냐 라는 식으로 짧게 소리를 내던 그는 이내 종이를 펼쳤다. 그러고는 금세 집 안에는 무겁디무거운 정적이 돌기 시작했다. 환의 표정이 무섭게 구겨지고 이내,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찻잔이 바닥을 뒹굴었다.
“이, 이……!”
그 선우환의 입에서 나온 글자는 단, 한 글자뿐이었다. 평소 주변 사람들을 꼼짝도 못하게 하던 그 화술은 전혀 발휘되지 못했다. 도운과 마찬가지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은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 싸한 정적을 견딜 수 없었던, 도운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아악! 이, 미친놈!”
현의 입에서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이 터져 나오고.
“하아.”
드디어 환의 입에서 분노가 터져 나왔다.
“선우여어언─!”
그의 손에 들린 종이가 팔랑팔랑 날갯짓을 하며, 쏟아진 커피 위로 떨어졌다. 갈색으로 물들어 가는 그 종이에는 누가 쓴 것인지 특별히 확인할 것도 없이 단, 한 줄의 글밖에는 없었다.
‘찾을 수 있으면, 찾아보던가. ㅗ’
세 형님의 예쁨을 받는 선우가의 막내, 선우연. 뜻을 가지고 드디어 집을 나가다. 아니, 가출하다.
***
겨울의 밤하늘은 굉장히 맑았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날인 건지 유난히도 달이 밝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며 굉장히 심사가 뒤틀리는 기분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기분은 우중충하다 못해 비까지 내리고 있었기 때문.
지금 나의 신세를 말하자면, 강남의 청담동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가련한 청년 되시겠다. 기세 좋게 나온 결과치고는 굉장히 처량했다. 기세등등하게 가출 아니, 출가를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나에게는 갈 곳이 없었다. 너무도 급한 마음에 돈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고, 너무너무 급한 마음에 휴대폰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 또 문제였다.
결국, 결론은 내가 병신이라는 것이었다. 에휴.
“아, 춥다.”
전혀 추운 것 같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정말로 춥긴 추웠다. 숨을 내쉴 때마다 나오는 뽀얀 입김이 그 증거였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신세가 아닐 수 없었다. 간혹, 뒤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던 고양이와 두 눈이 마주칠 때면 그 기분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고양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고양이의 음식을 뺏어 먹을 마음도 없었다.
“야옹.”
가끔, 고양이가 나를 향해서 울었다. 마치, 그것이 ‘그러고 있지 말고, 너도 같이 뒤지지?’라는 것처럼 들려왔다. 결국에는 그 소리가 날 너무 비참하게 만들어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아, 왜 자꾸 불러! 안 뺏어 먹을 거라고! 뒤지지도 않을 거야, 너 혼자 뒤져!”
“…….”
“…….”
“……냥.”
왠지 머쓱해졌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고양이가 고개를 팩, 돌리며 지은 표정이 가관이었기에. 고양이의 눈에도 미친놈으로 보이는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대로 고양이를 동무 삼아 겨울에 얼어 죽는 게 아닐까. 괜히 나온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집으로 다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들어갈 만한 배짱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들어가 맞아 죽을 바에야, 나 차라리 고양이와 함께 최후를 맞이하리라.
아니아니, 그 무슨 약해 빠진 소리냐, 선우연! 너는 당당하게 집을 나왔어! 편지도 써 놓고 왔잖아?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다고! 강남의 골목 어귀에서 사망이라니, 그런 것은 사양이야. 잠 잘 곳이라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나는 허리를 펴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는 법.
나는 여전히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보마. 잘 있어라.”
“야옹.”
오냐, 인사 해 줘서 참으로 고맙구나.
나는 그렇게 발걸음을 돌려 골목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당차게 소리친 나의 최후는 꽤나 비참했으니. 나는 걸음을 얼마 내딛지도 못하고, 30분 후 다시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늘이 정녕, 나를 버릴 생각인가 보다. 나는 팔을 공중으로 뻗었다. 손바닥에 새하얀 것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금세 녹아 사라졌다.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던 눈은 어느 새 굵기도 커져서는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어린 것들은 눈 온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정녕, 이대로 나는 강남 거리에서 얼어 죽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