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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락원
실락원 (1화)
Prologue
검은 비가 내렸다.
거리는 전쟁이 지나간 듯 무너져 있었고,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무겁게 내리는 빗줄기는 소리를 동반하지 않고 시계(視界)를 가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존재하는 것은 검은 그림자와 거친 숨소리.
「어서…….」
그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벽 아래에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 그의 시선은 석상처럼 서 있는 남자만을 향하고 있었다. 손을 뻗고 싶었지만 형체만 간신히 유지한 채 끊임없이 비와 섞여 검은색의 액체가 흐르고 있는 팔은 남자에게 다가갈 힘을 잃은 지 오래였다.
「어서…….」
거친 숨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소리가 되지 못한 말이 남자를 향했다.
「너의 손으로…….」
이제 곧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바랐던 순간이. 이기적이라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다 해도 할 수 없다. 어차피 그 하나만을 위해 모든 죄를 저질렀다. 비록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어서…….」
마침내 남자의 손이 움직였다. 미동도 않고, 석상처럼 굳어 있는 남자의 움직임과 동시에 라이플이 빛나기 시작했다.
웅―
검은 하늘.
검은 비.
그 속에 빛을 발하는 유일한 것.
남자의 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방전이 끝났음을 알리는 듯 라이플의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남자의 얼굴을 따라 흘러내리는 비가 굳어지기 시작한 피를 씻어 내렸다. 남자의 검은 눈에 빛이 잠시 스쳤지만 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꽉 다문 입매가 더 굳어졌을 뿐.
「카…….」
그는 남자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리고…….
서력 2057년.
에덴 동쪽 지구.
강렬한 빛의 폭발과 함께 발생한 의문의 사고로 E―E4H로 명명된 섹터(Sector)의 일부가 붕괴되었다. 사망 1명, 부상 1명의 경미한 인명 피해를 일으킨 사고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그대로 잊혀졌다.
검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피처럼 검붉은, 차가운 비였다.
여호와께서 카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 (1)
그가 돌아온다.
공기가 술렁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그 소식에 쏠렸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의 표정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카인.”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섹터에 들어서자 노아가 다가왔다.
“괜찮아?”
노아가 카인을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뭘?”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모를 리가 없었다. 기숙사에서 나왔을 때부터 섹터에 도착할 때까지 귀에 가장 많이 들려온 것이 그 이름이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수군거리다가 카인이 나타나면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마치 카인의 반응을 살펴보려는 듯, 의문을 가득 담은 눈동자로.
“…….”
카인이 대답 없이 걸어가기 시작하자 노아는 뒤처질세라 열심히 따라갔다. 평소와 다름없이 무심하게 걸어가는 카인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졌다.
“벌써 3년이 지났어. 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 해도 이제는…….”
“노아.”
카인이 멈췄다. 그리고 노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검은색의 깊은 눈동자가 서늘한 빛을 띠고 노아에게 향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 네가 신경 쓸 그 어떤 일도. 누가 돌아오든 말든 내가 상관할 바 아니야.”
“하지만 카인…….”
싸늘한 목소리로 할 말을 마친 카인은 몸을 돌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니잖아! 카인, 자신을 속이지 마!”
노아는 안타까움에 소리쳤다. 하지만 카인이 사라진 자리에는 허무한 외침만이 맴돌 뿐이었다.
하얀 빛이다.
끝없이 펼쳐진 하얀색.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무기질의 공간.
그 가운데 그가 앉아 있었다.
카인.
저주받은 아이.
거부당한 아이.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 카인.
카인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웅크리고 앉아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오롯이 서 있는 하얀 문. 벽도, 무엇도 없이 문뿐이었다. 문 뒤에는 카인이 있는 이곳과 마찬가지로 하얀 공간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알고 있다.
저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저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단 한 사람.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절대 오지 않을 테니까.
카인은 눈을 감았다.
[테스트 종료입니다. 카인 베네스. 기체에서 이탈해 주십시오.]
감정을 가지지 않은 목소리가 귀에 울리자 카인은 눈을 떴다. 헤드기어를 벗는 것과 동시에 기체가 밀려났다. 0.5초의 시간을 두고 실제의 시각과 청각이 돌아왔다. 카인은 정신을 차리려는 듯 머리를 작게 흔들며 기체에서 내렸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 감각은 결코 좋아할 수가 없다. 신체의 통제를 빼앗겼다가 자신에게 돌려지는 느낌. 가장 원초적이고 당연한 소유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몸을 다른 이가 통제하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능력 개발을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이 시간이 카인에게는 최악이었다.
[카인, 내 방으로.]
감상에 잠길 틈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 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둥글게 원형으로 된 훈련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카인의 교관이자 상관인 루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형의 표정 없는 얼굴이 똑바로 카인을 향하고 있었다. 2층 높이 정도라면 얼굴이 안 보일 수도 있건만, 늘 그렇듯이 생각을 알 수 없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의 얼굴만은 눈에 정확하게 들어왔다.
‘욕심낼 수 있다면…….’
카인은 머리를 흔들었다.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귀 안에 남아 있다. 또 꿈을 꿨던 것일까.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기억조차 하기 싫은 어떤 일을. 이래서 이 시간이 싫은 것이다. 기체를 이용한 훈련은 건드리고 싶지 않은 것까지 건드리니까.
카인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훈련실 밖으로 나왔다.
“훈련은 어떤가?”
방은 그 주인의 성격을 나타내듯 차가울 정도로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카인이 들어왔음에도 말없이 서류만 보던 남자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지나가듯 무심하게.
적어도 사람이 얘기할 때는 얼굴이라도 보는 것이 예의일 텐데, 이 남자, 루 A. 엘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마음 내키면 몇 시간이라도 세워 놓을 사람이었다.
“……별다를 것 있겠습니까.”
카인의 대답에 루는 피식 웃었다. 으레 형식적으로라도 나와야 하는 대답이 카인에게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즐거웠다. 짜증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것 역시 그의 마음에 들었다.
루는 고개를 들어 표정 없는 얼굴로 서 있는 카인을 바라보았다. 한때는 믿음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따라다니던 소년이 이제는 감정이 없는 검은 눈동자로 마음속의 분노를 숨기며 평정을 가장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시간이 너무 흘러 버린 것일까.
루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능력 계발을 원치 않는가, 카인 베네스?”
성까지 붙여 부르는 것도 그 얼굴이 굳어지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일지 몰랐다. 누가 듣는다면 악취미라 핀잔을 주겠지만 루는 자신의 즐거움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쥐어짠다고 나왔다면 이미 예전에 바닥났을 겁니다.”
“S랭크 입에서 나올 만한 소리는 아니군.”
“…….”
카인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서운하겠지만 당분간 랭크 조정은 없으니 안심해. 쥐어짜든 어쨌든, 여전히 테스트 성적은 좋으니까.”
“……유감이군요.”
카인은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사치스러운 소리라고 하겠지만 정말로 카인은 섹터를 싫어했다. 에덴이라 불리는 이곳을, 낙원이라 이름 지어진 실험장을. 이곳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살인이라도 저지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불행히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내가 왜 불렀는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
“…….”
카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잘해 줘.”
눈앞에서 은은한 미소를 띠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왜 하필 접니까?”
“우리 섹터에 현재 상주하고 있는 다른 S랭크가 있나? 모두 파견 나가고 자네뿐이라고 알고 있는데. 설마 A랭크에게 S랭크를 상대하라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3년 만에 돌아오는 자신의 파트너를 모른 체하겠다는 건가?”
“…….”
섹터의 규칙도 규칙이지만 하위 등급이 상위 등급을 상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에덴의 등급제는 매우 까다로워서 여러 가지 테스트와 훈련을 마친 끝에 결정되었다. 때문에 등급이라는 것은 보통의 노력이나 재능으로 넘기 힘든 것이었다. 한 번 정해진 등급이 끝까지 간다는 것이 불문율 아닌 불문율이었다.
“파괴하는 눈과 치유하는 손이라 불리던 자네들을 보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달리 있단 말인가? 지난 3년 동안 파트너가 없었던 이유를 모르지는 않을 테니. 노아와 같은 경우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겠지.”
카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 한구석에 죄의식으로 간직하던 것이 헤집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고 거슬리게 만드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루의 방식이었다.
“……명령이십니까?”
루는 대답 대신 싱긋 웃었다.
카인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언젠가, 저 웃는 얼굴을 일그러지도록 만들어 주리라.
카인은 굳은 얼굴로 경례를 했다.
“명령, 수행하겠습니다.”
“아침에는 미안했어.”
정신없고 짜증났던 하루가 끝날 무렵,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불쑥 노아가 말했다. 파트너가 없는 카인과 파트너가 파견 나가 있는 노아. 일시적이었지만 파트너가 된 적도 있었던 터라 두 사람은 하루 종일 함께 지낼 때가 많았다. 함께 훈련받고 함께 교육도 받았다.
그러나 오늘은 아침에 있었던 일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노아는 하루 종일 말이 없었다. 이대로 하루를 보내는가 생각했지만, 늘 그렇듯이 먼저 사과를 한 사람은 노아였다.
“……아니야.”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말한다는 것을 카인은 알고 있었다. 가끔은 그런 노아의 성격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없는 솔직함이, 미안한 것은 분명하게 사과하는 것이 노아의 장점이었고, 카인이 부러워하는 것이기도 했다.
금발에 초록 눈동자, 전형적인 코카소이드의 모습을 한 노아의 솔직함은 카인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안타까움이 담겨 있는 얼굴로 사람을 바라볼 때면 순수란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오래전에 천사라고 불리던 존재들이 어쩌면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카인은 생각하곤 했다.
“나는 너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 하지만 네가 내 친구이듯 그 녀석도 내 친구야. 아무 말도 없이 떠났다지만 이제 그가 돌아오니까, 이야기하면 되잖아. 서로 이야기하면 이해 못할 일은 없어. 적어도 난 그가 돌아오는 것이 기뻐.”
붉어지기 시작한 눈가에 작은 상처 자국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흥분하거나 얼굴이 붉어지면 나타나는 상처였다. 마치 낙인처럼.
“노아, 난…….”
“억지로 강요는 안 해. 하지만 잘 다녀왔냐고 인사는 할 수 있잖아. 어차피 같이 지낼 텐데. 그다음에 화해든 뭐든 천천히 하면 돼.”
“……그래.”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카인은 대답했다. 아마 저 상처가 있는 한 자신은 노아를 거스르기 힘들리라.
“아벨이 갑자기 떠났을 때 카인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아.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반드시 이야기하고 오해를 풀어야 해.”
오해라…….
카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오해는 없었다. 너무도 명확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떠났다는 사실. 이유도, 원인도 이야기하지 않고 말 그대로 어느 날 아침, 훌쩍 그가 떠나 버렸던 것이다.
그는 떠났다.
자신을 배신하고.
그 사실만이 카인에게 남아 있었다.
“……내가 원했던 건 아니었어.”
그것은, 시간이 흘렀지만 기억과 전혀 다름없이 빛의 색을 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그리운 목소리. 잊었다고 생각하고, 또 잊기 위해 노력했지만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그 목소리.
“얼굴도 보지 않을 거야?”
약간은 책망 어린 부드러운 목소리에 카인은 천천히 돌아섰다. 제발 착각이길 바랐지만 아마색의 머리가 부드럽게 바람에 날리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푸르른 향을 내며 그가 서 있었다.
“오랜만이야, 카인.”
부드럽게 웃으면서.
“……아벨.”
카인은 천천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3년 만에 부르는, 3년 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이름. 결코 다시 입에 담고 싶지 않았던 그 이름이 실체를 띠고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다.
* * *
[이니그마 신드롬(Enigma Syndrome)의 진행 단계는 잠복기, 발병기, 진행기, 사망기, 4단계로 나누어집니다. 발병기와 진행기의 특징은 일종의 백화현상으로써…….]
랩(lab) 안은 어두웠다. 전방에 있는 모니터의 빛이 사람들의 얼굴을 푸르게 만들었다. 모니터는 시시각각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며 변하고 있었다. 헤드셋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부드럽게 설명을 계속했다.
[원인도, 치료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신드롬이 발병한 사람들은 알비노처럼 점점 하얗게 된다는 것, 그리고 능력자보다 월등하게 이상 능력을 보인다는 것, 사망기에 들어섰을 때는 발병기와 정반대로 완전히 검게 변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신드롬이 발병하는 순간부터는 인간으로서의 인격도, 지능도, 이성도 없습니다. 오직 남은 것은 파괴 본능과 광기……. 신드롬 발병자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모니터에는 하얗게 변해 천사 같은 모습의 사람이 있었다. 하얀 배경에 그보다 더 하얀 이가 약간 위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창이 나 있는지 얼굴 위로 빛이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애달픈 모습이었다. 다가올 운명을 알고 있는 듯 너무나 처연하게 보였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발병기를 거쳐 진행기에 이른 이들의 모습은 마치 천사와도 같습니다. 하얀…… 성스러울 정도로 하얀 빛…….]
설명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금발이라고 생각되는 머리카락이 살짝 움직였다.
[그래서 이 신드롬 발병자들을 엔젤이라고 부릅니다.]
갑자기 빛이 들어왔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던 카인은 헤드셋이 아니라 귀로 직접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부드럽게 웃고 있는 얼굴은 카인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돌아온 사람들은 카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낯익은 얼굴들이, 하지만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 자신의 앞에 나타남에 따라 카인의 기분은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이번에 다시 에덴으로 전근 오게 된 마키엘입니다. 모르는 얼굴도 많지만 아직 아는 얼굴도 남아 있군요.”
마키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금발 남자의 시선이 잠시 카인에게 머물다 지나갔다. 그 시선이 두 줄 앞에 앉아 있는 아벨에게 머물렀을 때, 그가 살짝 미소를 띠는 것이 카인의 눈에 들어왔다.
아벨이 돌아올 때 그 역시 돌아온 모양이었다. 전날 아벨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아벨의 담당 교관이자 상관인 그가 같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