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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평소 같으면 소란스러웠을 만청루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 외에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마치 시간이 정지라도 한 것처럼 저마다 멍하니 혼이라도 빠진 듯 한 사람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바로 반 식경 전에 환한 웃음을 머금고 발걸음도 가볍게 들어선 소천 때문이었다.
“이상합니다.”
“뭐, 뭐가 말이냐?”
조심스럽게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리는 소천의 말에 단주인 장신건의 말투는 어느새 존대에서 하대로 바뀌어 있었다.
소천이 어린 나이를 내세워 하대를 해 달라 청한 것이다. 처음에는 죽어도 그리할 수 없다 고집을 피웠지만, 예의까지 들먹이는 소천의 말에 결국은 모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이쪽만 보지 않습니까?”
“그 이유를 모른단 말이냐?”
물론 소천은 그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모르는 척 수줍은 척할 뿐이다.
“너 때문이다. 네가 지나치게 아름다워 모두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이지.”
“말도 안 됩니다. 저는 여자가 아닙니다. 아름답다니요.”
신건의 말에 저마다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소천은 민망하고 난처하다는 듯 붉어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일행뿐 아니라 객잔 여기저기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후훗, 소천은 너무 자신을 모르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게. 이리 몰라서야 어디 불안해 밖에 내놓을 수가 있나?”
“그, 그만 놀리십시오. 민망합니다.”
“아하하하하~!”
소천이 더는 들을 수 없다는 듯 신건을 향해 살짝 눈을 흘겼다. 더 이상은 놀리지 말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런 모습조차 사랑스러우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오히려 일제히 웃음을 터트리는 일행들 때문에 소천은 속으로는 오만 욕지거리를 뱉으면서도 겉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그 미소에 객잔 전체가 술렁거린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때 몇몇 사내들이 소천이 있는 자리로 다가왔다.
하나같이 비단옷을 걸친 걸로 보아 제법 있는 집안 자제들인 것 같았지만, 난데없이 나타난 사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뻔히 아는 단원들 눈에는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혹 남궁세가 분들이 아니신지요?”
“그렇소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생은 이곳 패천방(覇天幇)의 소방주로 남석용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태안 현감의 자제인 반태명 공자십니다.”
예상했던 대로 사내들은 태안에서 알아주는 집안의 자제들이었지만, 결코 육대세가의 하나인 남궁세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특히 패천방은 중립으로 백도에 더 가깝다고 해도 이렇듯 당당히 남궁세가를 상대로 친한 척을 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예의에 어긋난 일이었다.
그럼에도 사내들이 다가왔다는 건 목적이 소천에게 있다는 뜻이다. 단지 남궁세가를 무시할 수 없어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 소천을 훑어 내리면서도 나름대로 예의를 차리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용건이오?”
자신들이 먼저 정중히 인사를 건넸음에도 대놓고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용건을 묻는 신건의 말에 사내들의 미간이 살풋 찌푸려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상대가 남궁세가인 이상 대놓고 내색할 수도 없다.
“태안에 귀한 분들이 찾아주셨는데 응당 인사를 올리는 게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해서 허락만 하신다면 저희 집에 초대하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만…….”
예의를 가장해 말로는 단원들에게 동의를 얻는 것 같으면서도 사내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은 소천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 시선이 얼마나 번들거리며 욕정을 드러내는지, 일행들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우리 남궁세가는 작은 은원이라도 함부로 맺지 않소.”
딱 잘라 거절이다. 그리고 보란 듯이 무시하며 시선까지 돌리는 일행. 그 모습에 그나마 병아리 눈물만큼 갖추던 예의까지 홀라당 던져 버린 남석용은 송충이 같은 시커먼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무리 남궁세가라지만, 예의가 너무 없는 거 아니오? 그래도 우리 패천방이 백도와 가깝거늘 이리 무시하다니!”
남석용의 말에 신건을 비롯한 단원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작 예의가 없는 게 누구란 말인가.
“지금 우리를 상대로 시비 거는 건가? 그렇다면 당당히 검을 뽑아라. 내 진정한 예의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지!”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신건은 남석용을 향해 어느새 평대도 아닌 하대로 대했다.
그런 신건의 말이 끝나자마자 일제히 분노를 드러내는 단원들의 몸에서 스멀스멀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단순히 남궁세가의 낮은 직급의 무사들이라고만 생각했던 사내들은 압박해 오는 날카로운 기세에 움찔거리며 한 발짝 물러났다.
만약 이들이 신건과 단원들이 입고 있는 경장 소매 끝의 푸른색의 의미를 알았다면, 이렇듯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지함 덕분에 잘하면 이곳에서 팔 한 짝은 내놓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다 일이 이 지경까지 왔는지, 사내들의 얼굴에 얼핏 후회가 스쳤다.
그러나 이제 와서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 그렇다고 버티자니 수적으로나 기세 면이나 무공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그렇게 사내들이 이도 저도 못하고 팽팽하게 늘어진 긴장감에 등 뒤로 식은땀만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그만들 두십시오.”
짧은 말에 불과하지만, 소천의 한마디는 한순간에 고조된 긴장감을 말끔하게 해소시켰다.
그와 동시에 일제히 소천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소천은 보란 듯이 환하게 웃으며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런 소천을 따라 일행들은 일제히 몸을 일으키고, 남석용은 얼떨결에 소천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 이보시오!”
“무슨 짓이냐?! 당장 비켜라!”
신건이 언제 빼 들었는지 날카로운 기를 흘리는 검을 남석용의 목에 겨누었다.
그에 화들짝 놀라 한 발 물러나는 남석용이 다급하게 변명의 늘어놓으려 할 때 소천이 한발 더 빨랐다.
“공자께서는 할 말이 많으신 것 같으니 먼저 제 질문에 답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 답을 하면 내 초대에 응해 주시는 거요?”
“진실된 답을 하신다면 응당 응해야겠지요.”
“좋소! 질문하시오! 내 한 치도 거짓 없이 답하리다.”
‘지랄! 생긴 건 꼭 날제비같이 생긴 게 꼴값도 가지가지 하고 자빠졌네!’
“하면 공자의 말씀을 믿고 질문하겠습니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하며, 군자는 형벌을 생각하고 소인은 은혜만 생각한다 했습니다. 공자께서는 군자입니까, 소인입니까?”
“그, 그건…… 다, 당연히 군자요!”
소천의 질문이 뭘까를 두고 일제히 호기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군자 타령을 하는 소천의 물음에 모두가 당황했다.
이런 식으로 질문한다면 백이면 백, 군자라고 대답하지, 소인배라고 대답할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해에 밝으며, 군자는 어느 경우나 태연자약하고 교만하지 않은 반면 소인은 언제나 교만하고 태연하지 못해 근심 걱정으로 지낸다 했습니다. 공자는 어느 쪽이십니까?”
“그, 그야 당연히…… 군자요…….”
“그렇습니까? 하면, 군자는 자기에게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 구하며, 군자는 작은 일은 알지 못해도 큰 것을 맡을 수 있고 소인은 큰 것은 맡을 수 없어도 작은 일은 알 수 있습니다. 이 물음에도 공자께서는 당연히 군자라 답하시겠지요?”
“그, 그렇소만.”
소천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늘어놓는지 몰라도 소천의 말이 이어질수록 남석용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더불어 지켜보는 다른 이들은 대답하는 남석용을 뻔뻔하다 여겼고, 그 일행들까지도 헛기침을 연발하며 은근히 시선을 피했다.
“군자는 쉬운 것에 처하면서 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일을 행하며 요행을 바라고, 군자는 남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남의 악함을 탓하지 않으나 소인은 이와 반대이지요. 군자는 자신의 무능을 탓해 괴롭게 여기고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괴롭게 여기지 않으나, 소인은 자신의 무능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탓하지 않으며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 괴롭게 여깁니다.”
“도,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오?!”
계속해서 군자 타령을 하는 소천의 말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결국은 남석용이 더는 들을 수 없다는 듯 막았다.
소천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더 이상은 떳떳하게 군자라고 대답할 배짱은 없었다.
그런 남석용의 모습에 소천은 일순 웃음을 거두고 가만히 시선을 맞추며 조용히 붉은 입술을 열었다.
“진정한 군자란, 의로 바탕을 삼고 예로 행동하며 겸손함으로 나오고 믿음으로 이룬다 했습니다. 공자께서는 진정한 군자라 생각하십니까?”
“그, 그건…….”
“군자지교 담여수(君子之交 如妊水)라, 만약 공자께서 진정한 군자라면 어찌 초대를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 진정한 군자라면 요행을 바라고 예를 강요하지는 않겠지요?”
소천의 물음에 남석용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더 고집을 피웠다간 자신이 소인배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결국, 남석용은 낮게 침음성을 흘리며 한발 물러났다. 그 모습에 소천이 빙긋 웃으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살짝 고개를 숙인 후 자리를 떠났다.
뒤로 청궁단의 단원들이 일제히 따르고, 그렇게 소천 일행이 모두 빠져나가고야 비로소 객잔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 * *
“단주, 단현입니다. 어찌합니까?”
“객잔을 알아봐.”
“알아보는 거야 문제가 안 되지만.”
군성은 말끝을 흐리며 난감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소천이 타고 있는 마차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뒤따라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태안 만청루를 나설 때는 따르던 이가 몇 명뿐이었는데 곡부와 제녕을 거쳐 오면서 지금은 삼십 명이 넘어섰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같이 마차를 어렵지 않게 쫓아올 수 있을 정도로 고강한 무공을 보유한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목적이야 뻔했고, 만약 합심이라도 해 작당 모의라도 벌인다면 단원들만으로는 그들을 온전히 막아 내기 벅찰 것이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별다른 사고가 없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조석변개와 같아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다른 단원들을 부르는 게 어떻겠습니까?”
“안 돼. 사사로운 일에 청궁단을 끌어들일 수는 없다.”
“그건 그렇지만, 소천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물러설 수 없다면, 우리가 목숨 걸고 지키는 수밖에.”
신건은 못마땅한 얼굴로 뒤를 힐끔 돌아보며 단단히 각오라도 다진 듯 중얼거렸다. 이에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형형한 기세를 내뿜었다.
처음부터 물러설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은 도중에 멈출 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는 기호지세나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무슨 대단한 일을 벌인 거라고 각오까지 다지는 건지 어찌 보면 상당히 어이없는 상황이다.
“소천, 밤길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오늘은 이곳에서 쉬어 가는 게 좋겠다.”
“괜찮겠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가져라.”
살짝 얼굴만 내밀고 걱정스럽게 묻는 소천의 물음에 신건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얼굴에는 떠나지 않은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만약에라도 소천을 지켜 내지 못한다면 신건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단순히 소천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일부러 쉬엄쉬엄 천천히 움직였기에 그 함께한 시간이 비록 길지 않았다고는 하나 그동안 소천의 학식이나 기품, 순수한 마음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고, 그에게는 한 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신비로운 아름다움마저 있었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사명이라 여긴 청궁단의 단주로서의 공무마저도 내팽개치고 소천의 옆에 있기를 원하고 있을까.
어쩌다 이렇게까지 빠져들었는지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의문 자체를 품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말이었다.
다만 확실한 건 소천이 사내라는 걸 알고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 헤어 나올 수 없는 뚜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하아, 이래서야 나중에 발길이 떨어질지 모르겠구나.’
신건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차를 힐끔거렸다. 이곳 단현만 지나면 곧바로 하남성에 들어서는 것이다.
게다가 하남성에 들어서면 개봉은 지척이다. 그리되면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할 것이고, 그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신건은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신건이 혼자 열심히 앞날을 걱정하고 있을 때, 마차가 단현 내에서 제일 큰 객잔인 한향각(漢香閣) 앞에 멈춰 섰다.
그와 동시에 일행을 비롯한 뒤따라오는 이들까지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그 모든 시선이 자연스럽게 마차로 모여들고 있었다.
“소천.”
신건이 소천을 부르며 마차 문을 열자 깨끗한 백삼을 걸친 소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은은하게 퍼지는 향. 옷자락 스치는 소리 외에는 일절 침묵이 맴돌았다. 마차에서 내려선 소천이 신건과 단원들을 돌아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뒤따르던 무리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객잔 주변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일제히 헉― 소리를 내며 다급하게 숨을 삼켜야 했다.
‘훗, 이놈의 인기란. 쯧, 그나저나 저 개 떼들은 어떻게 처리하나? 조만간 사고 좀 칠 것 같은데 개봉까지 끌고 갈 수도 없고. 에구, 골치야. 영감 말대로 면사라도 뒤집어쓰고 다녀야 하나?’
속으로는 연방 투덜거리면서도 소천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객잔 안은 사람들로 바글거렸지만, 소천이 들어선 순간부터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똑같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힐끗 쳐다본 후 곧장 이 층으로 올라간 일행은 군성이 미리 준비해 놓은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일 층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흘러나오고 그중 몇몇은 황급히 이 층으로 따라 올라왔지만, 뒤따라온 삼십여 명의 사내들로 인해 개 쫓기듯 쫓겨나야 했다.
그렇게 소천 일행을 비롯해 같은 시선, 같은 목적만을 가진 이들만이 이 층 자리를 차지한 채 소천의 옥음이나 미소가 한 번이라도 흘러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켜라! 나는 이 층에 만나 볼 사람이 있다!”
“하지만 대협, 지금 자리가 없어서.”
“아, 그놈 참 말 많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 층이 소란스러워지고 찰나 후 6척 반은 넘어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이 층으로 올라왔다.
“아! 장 형! 여기 계셨구려! 이게 얼마만이오?”
“아니, 황보 형! 여긴 어쩐 일이오?”
사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한달음에 다가오자 신건은 놀란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아하하, 내 성무에 잠시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남궁세가 분들이 누군가를 호위한다기에 이리 달려온 거 아닙니까. 그런데 장 형인 줄은 몰랐습니다. 한데 이분이 바로 그…….”
“소천, 이분이 철룡이라 불리는 황보세가(皇甫世家)의 소가주시다. 중원칠룡(中原七龍)의 한 분이지.”
“위명이 자자하신 분을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소생 능소천이라 합니다.”
철룡 황보규영. 후기지수 중 가장 뛰어난 일곱 명을 중원칠룡이라 명명했고, 황보규영이 그중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육대세가의 하나인 황보세가의 소가주로 부친이자 가주인 권왕(拳王)에 필적할 만큼의 신력을 타고난 무시 못 할 인물이다.
성격은 단순하고 성급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호방하며 황보세가의 가전무공인 권법뿐 아니라 검법에도 조예가 깊은 편이다.
또한,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반면 작은 시비에도 한바탕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여 일전불사(一戰不辭)로 통하기도 했다.
그런 황보규영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난데없이 떠도는 소문 때문이었다. 나라를 뒤흔드는 경국지색에 버금가는 천하제일미가 나타났다는 소문 말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처음에는 무림삼봉(武林三鳳)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은 없을 거라 여겼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게다가 천하제일미를 호위하는 이가 남궁세가 무사들이라는 말에 더 이상 머뭇거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소문의 실체를 눈앞에서 확인한 규영은 저절로 벌어지는 입을 다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넋 빠진 듯 소천만을 보고 있었다.
“황보 형? 황보 형!”
“아! 자, 장 형? 뭐라고 했소?”
“나 참, 천하에 황보 형도 정신을 못 차릴 때가 있구려?”
“아하하, 그런가.”
신건의 웃음 섞인 핀잔에 겉으로는 아닌 척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지만, 실제 규영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동안 무림에서 가장 뛰어난 세 명의 미인을 직접 확인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소문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거기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지나치게 자극적인 체향은 이 층에 올라온 순간부터 코를 벌름거리게 했으나, 정작 자신은 그 행동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규영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바로 소천이 남자로서‘소생’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소개한 점을 말이다.
“초면에 실례가 되는 줄은 알지만, 내 딱 까놓고 말하겠소! 나는 황보규영으로 황보세가의 소가주요! 보시다시피 신체 건강하고 집안 내력 좋고, 인물도 이만하면 준수하다고 생각하오만?”
“에? 아, 예. 그리…… 보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