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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 1(25화)
7. 공동파를 찾아온 불청객(3)


“장문인을 뵈옵니다.”
약선전에 속한 무당파 제자들이 일제히 공수 진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래, 전주는 어디에 있느냐?”
“예, 공화 장로는 지금 안에서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뫼시겠습니다.”
제자의 뒤를 따라 약선전으로 들어갔다.
수십 개의 방 가운데 한 곳으로 안내했다. 방으로 들어선 공수 진인의 눈에 약선전주 공화자(空華子)가 보였다.
자리에 누운 사람의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신중하게 상처들을 살피던 공화자가 공수 진인을 보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저 살피게.”
“예, 장문인.”
공화자가 다시 자리에 앉아 상처를 살피며 금창약을 발랐다. 성한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대부분이 검흔(劍痕)이었지만 몇몇 곳은 짐승의 발톱에 당한 것처럼 살점이 뜯어져 나간 흉악한 모습이었다.
거의 반 시진이 지나서야 금창약을 모두 바를 수 있었다.
응급처치를 마친 공화자가 장문인, 공수 진인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그래, 상태는 어떠한가?”
“제자들은 다행히 회복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렇지만 처사는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긴 저렇게 많은 상처를 입었는데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사내의 몸을 보면서 어느 정도 짐작했다. 온몸이 난자당한 그가 온전하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장문인, 외상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외상은 능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온몸에 상처가 있기는 하지만 사혈을 베거나 찔리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내상입니다.”
“내상?”
“예, 심맥 이십여 곳이 끊어졌습니다. 더구나 서너 곳을 제외한 나머지 심맥은 오래전에 끊긴 것 같습니다.”
“그럼 십여 곳이 넘는 심맥이 끊어진 상태에서도 한참을 살았단 말인가? 그게 가능한가?”
“소림의 대환단이나 본파의 태청단 같은 영약을 복용했다면 모를까…….”
“태청단? 그것이면 고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당장 태청단을 가져오게. 이 처사 덕에 우리 제자들이 살 수 있었다 들었네.”
“저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금 상태로는 그것마저 불가능합니다. 물론 숨을 조금 더 붙어 있게 할 수는 있겠지만 처사를 살려낼 수는 없습니다.”
“허허, 안타까운 일이로고. 후우―!”
공수 진인이 한숨을 내쉬고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
사내의 얼굴을 본 공수 진인의 몸이 흠칫거렸다.
온몸은 물론 얼굴까지 온통 상처투성이인 사내는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공수 진인이 황급히 양손으로 사내의 몸을 받쳐 들었다.
“화화, 환귀(幻鬼)!”
휘익!
공수 진인이 급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사제, 어서 태청단을 가져오게, 어서!”
“예?”
“어서 태청단을 가져오라니까!”
“예, 장문인.”
무당파 약선전주 공화자가 황급히 밖으로 달려 나갔다.

* * *

“가평, 나도 이제 제자가 생겼다 이거야.”
기분이 좋았다.
마존이 가르치는 유심에 비한다면 한참 모자르는 제자였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정식제자가 생겼다는 것은 무허자에게 기쁜 일이었다.
술이라도 한잔할 생각으로 전력을 다해 행운유수(行雲流水)를 펼쳤다.
순식간에 암자에 도착했다.
“이봐, 가평이―!”
목이 터져라 가평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이런 육시랄! 아직도 지랄발광인게야.”
그대로 몸을 돌려 유심이 무공을 수련하는 바위를 향해 달렸다.

무허자가 예상한 대로 유심은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발을 움직이고 몸을 흔들며 손을 뻗었다. 비록 모든 숫자를 밟지 못했지만 자신이 낮에 밟았던 삼십오까지 계속해서 밟고 또 밟았다.
그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졌다.
처음 이곳에 다시 와 움직일 때만 해도 한 번 마치는데 일각 가까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은 긴 호흡 한 번 끝낼 시간이면 모든 것이 끝났다.
멀리서 몸을 숨긴 채 그를 바라보는 마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유심은 벌써 쾌섬 제삼식 섬전무인을 이성가량 익히고 있었다.
의귀라 불린 유심의 아버지 장연걸이 꼬박 일 년을 익힌 뒤에 얻은 성취가 쾌섬 제일식 사광탈혼 삼성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성취다.
그것은 유심의 무재가 그만큼 뛰어난 때문이기도 하지만 쾌섬이라는 무공의 특성 때문이다.
본래 쾌섬은 실존무공으로 초식이 없었다.
마존은 검으로 찌르는 동작들 모두를 이어 붙여 일식 사광탈혼을 만들었다. 간간이 휘두르는 동작이 나오는 것은 동작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돌과 나뭇가지는 상대의 움직임을 뜻하는 것이다.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몸과 발이 움직이고 그런 상태에서 가장 빠르게 상대를 찌르는 수법. 그것이 바로 사광탈혼이다. 날아드는 돌멩이와 나뭇가지 하나하나를 빠르고 정확하게 찌르는 그 자체가 사광탈혼의 진정한 오의다.
초식을 알고 그것을 익히며 초식의 오의를 깨달아 가며 성취를 이루는 일반 무공과는 달리 쾌섬 제일식 사광탈혼은 돌과 나뭇가지를 찌르고 숫자 하나하나를 밟을 때마다 그 움직임은 이미 대성한 것이고 성취 또한 늘게 되는 것이다.
일백구식육 개의 숫자를 모두 밟음과 동시에 사광탈혼이라는 초식은 완성되고 완성과 동시에 대성하는 것이다.
이식 쾌검비천도 마찬가지다. 사광탈혼과 차이가 있다면 찌르는 것이 아니라 휘두르는 동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삼식 섬전무인은 다르다. 섬전무인은 사방에서 밀려드는 적들을 단 일격에 사라지게 하는, 그야말로 정확한 초식(招式)이다.
삼식, 섬전무인에는 네 개의 변초(變招)가 숨겨져 있다. 첫 번째가 사에서 오로 움직이는 사이에 펼쳐진다. 그리고 두 번째는 삼십오에서 삼십육으로 움직일 때, 세 번째가 백이십육에서 백이십칠로 움직일 때,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가 백구십이에서 백구십삼으로 움직일 때다.
유심은 두 번째 변초에서 막힌 것이다.
“이봐, 가평이―!”
무허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곳에서 무허자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가평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미친듯 달려오는 무허자의 모습으로 보아 큰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탁!
가평이 가볍게 발을 내리찍는가 싶더니 그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무슨 일인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던 무허자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그의 옆에 가평이 있었다.
“뭐야? 간 떨어질 뻔했잖아.”
고함부터 질렀다.
가평이 귀를 막으며 슬쩍 옆으로 물러났다.
무허자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한 번 더 노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유심은 그의 못소리를 듣지도 못한 듯 여전히 바위를 밟으며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부러움을 넘어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허자가 재빨리 돌멩이 하나를 들었다.
“이이, 이보게!”
가평이 황급히 말려 보았지만 돌멩이는 벌써 날아간 뒤였다.
쌔액!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돌멩이는 유심의 턱 밑까지 도착했다. 그 모습에 당황한 것은 무허자였다. 당연히 피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유심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자신을 닦달할 가평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저저, 저런 미련한 놈!”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
캉!
쇳소리가 들렸다.
‘엉?’
이상했다.
얼굴에 돌을 맞았다면 비명이 들려야 하는데 귀를 파고든 소리는 비명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천천히 눈을 떴다.
유심이 자신을 보며 능글능글 미소 짓고 있었다.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울화가 치밀었다. 유심이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슈슈슉!
근처에 있던 돌멩이를 쓸어 한 손 가득 움켜쥐고는 하나씩 계속해서 날렸다. 그러나 유심의 몸에 맞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유심은 자신의 몸을 훨씬 벗어나는 돌멩이까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부숴 버리고는 무허자에게 다가왔다.
“어르신까지 이렇게 도와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망할 놈. 입 닥치고 후아주나 가져와!”
“예? 후아주요?”
유심이 놀란 듯 되물었다. 지난 삼 년간 두 사람의 술 심부름을 맡아왔지만 후아주를 찾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좋은 일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예, 어르신!”
두 사람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 * *

“후아주를 찾으시는 것을 보니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 모양이네.”
유심이 후아주 한 병을 옆구리에 차고 혼잣말을 하며 투벅투벅 걸었다.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암자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불빛을 보니 주귀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쯤 굼벵이같이 왜 이렇게 늦느냐고 투덜거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마음이 급했다.
발걸음을 재촉하던 유심이 다시 걸음을 늦췄다.
주변에서 전해지는 낯선 기운들.
동물의 기운은 아니다.
그렇다면…….
모르는 척 암자로 걸어가며 주변의 기운을 찬찬히 살폈다.
한둘이 아니다. 그가 느낀 것만으로도 열 명이 넘었다. 그들 모두 지금과 같은 상황에 잘 훈련된 듯 숨 죽이고 있었다.
천천히 허리에 차고 있는 단도로 손을 가져갔다. 단도를 잡았다. 마치 한몸인 듯 잔도 자루는 유심의 손에 착 감겼다.
순간.
휘릭!
검은 그림자 하나가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쌔액!
이른 아침 창문을 열었을 때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처럼 유심의 얼굴을 향해 빛이 날아들었다.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유심을 향해 날아드는 빛 한 줄기. 그것은 달빛을 받은 서슬 퍼런 장검이었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았다. 지난 삼 년간 유심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수없이 보아 왔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것은 검이 아니라 돌멩이 나뭇가지라고 스스로를 향해 주문을 걸었다.
눈앞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단도를 힘껏 내찔렀다.
“커헉!”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유심이 놀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의 단도에 심장이 찔린 사내 한 명이 눈을 부릅뜬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반쯤 앞으로 나가다가 멈춘 장검이 들려 있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단도를 빼냄과 동시에 사내의 가슴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놀랄 시간도 없었다.
“어르시―인―!”
암자를 향해 달리며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스스슥!
암자를 향해 달리는 유심의 전면에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나며 유심을 향해 검을 찔러 갔다.
그들은 흑의 무복을 걸치고 있었다.
검봉(劍鋒)은 벌써 유심의 턱 밑까지 도착해 있었다.
‘그렇군.’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유심을 향해 날아드는 검.
낯설지 않았다.
지난 삼 년간 가평이 그에게 날렸던 수많은 돌멩이들과 나뭇가지는 지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단도를 들고 날아드는 검봉을 쳐냈다.
채쟁챙!
쇳소리와 함께 단도와 검들이 부딪치며 불꽃이 솟구쳤다.
흑의무복인들이 놀란 듯 흠칫하며 검을 회수하려는 순간. 유심의 단도가 그들의 목젖을 꿰뚫었다.

“사사, 사광탈혼!”
숲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또 다른 흑의무복인의 입에서 외마디가 흘러나왔다.
“각주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옆에 있던 무인의 물음에도 흑의무복인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유심을 보았다.
자신의 수하들을 공격하는 유심의 움직임은 사광탈혼이 분명했다. 오래전 사광탈혼을 본 적이 있었다.
“저저, 저것은……?”
복면 사이로 드러난 흑의인의 눈이 더욱 커졌다.
방금 자신의 수하를 베어낸 수법은 쾌검비천이었다.
“혹시?”
흑의 복면인의 머릿속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몇 년 전 성도에서 마존의 제자가 나타났다는 말이 있었다.
‘사실이란 말인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만약 그가 마존의 제자라면 마존의 행방을 알 수 있게 될지도 몰랐다. 마존은 그가 반드시 없애야 할 인물이다.
약 일 갑자 전, 그는 동료 세 명과 함께 마존을 공격했지만 그를 없애지 못했었다.
눈을 부릅뜨고 유심을 보았다.


<『단칼』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