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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 1(24화)
7. 공동파를 찾아온 불청객(2)
호북명산, 무당산(武當山).
기식정에서 무허자의 드잡이질―실상은 일방적 구타인―이 있던 그 시간, 얼굴은 물론 옷까지 피로 흥건히 물든 한 사람이 미친듯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 뒤로 예닐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뒤를 쫓았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삼 장 이상을 움직였다.
무림인이라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 사람은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큰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
중원의 고수들 가운데에서도 절정에 이른 고수임에 틀림없다.
사내가 향하는 곳은 무당파(武當派). 그러나 사내가 입고 있는 것은 도복이 아니었다. 피로 얼룩진 사이사이로 보이는 그의 옷은 장포였다.
“후우!”
순간적으로 한 발을 멈추고 큰숨을 토했다. 그의 입가로 계속해서 피가 흘러나왔다. 핏덩이로 보이는 덩어리도 간간히 토해내고 있었다.
“……!”
사내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빛 한 줄기가 그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급히 검을 들어 올렸다.
채앵!
한 줄기 섬광과 동시에 맑고 또랑또랑한 쇳소리가 정적을 깨며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장포를 걸친 사내가 급히 뒷걸음질을 치며 번개처럼 검을 찔러 넣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짜릿한 감촉.
검은 무복을 걸친 사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의 왼쪽 가슴에 세 자가 훨씬 넘는 장검이 박혀 있었다. 장포를 걸친 사내의 검이 뽑힘과 동시에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쿵’ 소리와 함께 선공을 펼친 흑의무복 사내가 쓰러졌다.
장포 사내가 급히 몸을 돌렸다.
전면에서 다시 서너 개의 검광(劍光)이 번쩍였다.
챙챙챙!
다시 또랑또랑한 쇳소리가 났다.
두 명의 흑의 무복인이 외마디를 토하며 다시 쓰러졌다.
“크흑!”
장포 사내의 입에서도 신음이 터졌다. 그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갈라진 장포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적지 않은 양이었지만 사내는 지혈할 시간도 없었다. 그를 향해 다시 빛 한 줄기가 다시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슈칵!
장포 사내의 장검이 반원을 그리며 하늘을 가름과 동시에 혈예(血霓=핏빛 무지개)가 흩뿌려졌다.
그제야 사내는 손가락으로 혈도를 짚어 피를 막았다.
다시 무당파를 향해 달렸다.
흑의 무복인들이 그 뒤를 미친듯 쫓았다.
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사사, 사형!”
해검지 앞에서 경비하던 무당파 순찰당 소속 망요가 함께 있던 망진을 급히 불렀다. 함께 경비를 서던 망진 도인과 그의 사제들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망요가 손을 들어 가리킨 곳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달려오고 있었다.
망진이 급히 허리에서 장검을 빼 들었다.
“망요는 장로님을 모셔오게. 나머지는 모두 나를 따라라.”
“예, 사형!”
대답과 동시에 망진과 그의 사제들이 검은 그림자를 향해 달려갔다.
그들을 발견한 듯 그를 향해 달려오는 검은 그림자는 점점 빨라졌다. 망진을 비롯한 무당파 도인들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경공을 펼치며 달려오는 검은 그림자의 주인공. 이제껏 그렇게 빠른 사람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말로만 듣던 육지비행술(陸地飛行術)이 아닐까 싶었다.
검을 들고 있는 오른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옆에 있는 사제 십여 명과 함께 그림자를 향해 마주 달려갔다.
사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내는 한 손을 들어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더욱 걸음을 빨리했다.
태산이 무너지듯 사내는 쓰러졌다. 급히 들고 있던 장검을 검갑에 넣고 양손으로 사내의 상체를 들어 올렸다.
피칠갑 된 사내의 모습.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가만 놔둘 수는 없었다.
“이보시오.”
망진이 사내를 흔들며 말했다. 사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부상을 당한 사내를 그냥 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내를 양손에 안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내공을 끌어올려 주변을 살폈다. 혹, 사내를 해치려는 자들이 근처에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인근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오시지요!”
망진의 한마디에 흑의 무복을 걸친 다섯 명이 풀숲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들 모두 복면을 하고 있었다.
망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무당파에 해를 가할 인물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선의로 이곳을 찾았다면 복면을 할 리 없었다.
“꺼져!”
복면인의 입에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
‘보통은 아니다.’
망진을 비롯한 무당파 제자들 모두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곳은 무당산이다. 더구나 복면인의 숫자는 다섯에 불과했다.
“돌아가시……!”
스칵!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복면인의 검이 날아들었다.
망진은 급히 뒤로 물러섰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서늘한 기운.
고개를 숙였다.
도복이 길게 잘려 나갔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가 조금 전 펼친 것은 무당파 절기 가운데 하나인 유운신법(流雲身法)이다. 비록 양손으로 사내를 안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일검에 도복 자락이 잘려 나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놀람도 잠깐.
조금 전 일검을 날린 복면인이 다시 그의 가슴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신법을 펼치기도 전에 복면인의 검은 벌써 턱밑에 도착해 있었다.
다행이라고 할까?
검이 향한 곳은 망진이 안고 있는 사내였다.
순간!
사내의 손에 들린 검이 번개가 되어 복면인을 향해 나아갔다.
“크아―악!”
복면인이 한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단말마를 토하다가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언제 일어났는지 조금 전까지도 자신이 안고 있던 사내가 장검을 든 채 자신의 앞에서 복면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망진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사내가 언제 일어나 복면인에게 검을 날렸는지 보지도 못했다.
처음 보는 검법이다. 그리고 그 위력은 엄청났다.
더구나 사내는 정상이 아니다. 복면인을 노려보는 중에도 사내의 몸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만약 멀쩡한 몸이라면?
고개를 흔들었다.
상상도 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급히 허리에서 장검을 빼 들었다. 다른 제자들 역시 청강장검을 빼 들고 전면의 복면인들을 노려보았다.
휘―잉!
팽팽히 대치한 그들 사이로 바람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이 신호인 듯 복면인 넷이 사내와 무당파 제자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들 모두 벙어리인 듯 흔한 기합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은 날카로웠다.
“크흑!”
검을 미처 피하지 못한 도인 한두 명이 신음을 토하며 뒤로 물러났다.
일방적인 흑의인의 공격.
흑의인들의 공격에 무당파 제자들은 반격 한 번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연신 뒤로 물러났다.
무당파 망 자 항렬 제자들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망진 도인마저 그들의 공격에 연신 뒷걸음질을 쳐야만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흑의인에게 공격을 펼치는 인물은 그들에게 쫓기던 사내 한 명뿐이었다.
흑의인의 목에 박힌 검을 빼내며 그대로 몸을 돌려 무당파 제자들을 공격하는 세 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핫!”
사내의 입에서 터진 기합 소리가 무당산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몸을 가누지 못하던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무당파 제자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것은 그들을 구하기 위한 사내의 배려였다. 무당파 제자들을 공격하던 흑의인들이 일제히 몸을 돌렸다.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흑의복면인들의 움직임.
원하던 바였다.
슈슈슉!
몸을 돌리는 흑의인들의 목을 향해 사내의 검이 연속으로 날아들었다. 흑의인 두 명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꾸루룩!”
마지막 흑의인의 입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장검 한 자루가 자신의 목에 박힌 채 파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그것이 흑의인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
“커헉!”
흑의인의 죽음을 지켜보던 사내의 입에서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지막 힘을 다해 흑의인 세 명을 제거했지만 그 역시 온전하지는 못했다. 사내의 아랫배 한복판에는 흑의인의 것으로 보이는 장검 한 자루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대협!”
망진 도인이 급히 사내에게 달려갔다.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거거, 검왕(劒王)!”
검왕이라는 한마디와 함께 사내는 정신을 잃었다.
* * *
가부좌를 틀고 반개한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노인.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몸에서는 범인들이 근접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노도인은 중원 도인들 가운데 가장 도력이 높다는 무당파 장문인, 검왕 공수 진인(空手眞人)이다.
중원제일검이라 불리는 무당파. 그곳의 장문인답게 공수 진인의 검술은 극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 의하면 마존과도 겨룰 수 있다고 알려진 인물. 실력으로만 따진다면 이존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그가 사왕에 머물러 있는 것은 그의 항렬이 이존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다경 가까이 움직이지 않던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
“누구냐?”
“장문인, 망연입니다.”
공수 진인의 대답이 있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도인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시중 드는 도인이었다.
망 자 항렬 가운데 최고수로 알려진 인물.
망연이 무허자를 보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냐?”
“장문인 해검지에 있던 제자들이 외인과 부딪혔습니다.”
“외인과 부딪치다니 싸움이라도 일어났단 말이냐?”
공수 진인이 잠시 말을 멈추고 망연을 바라보았다. 귀로 듣기는 했지만 망연의 말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허허허, 간이 큰 사람이로구나. 그래, 어떤 자들이더냐?”
“아직 놈들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들 모두 복면을 하고 있었습니다. 방금 공심자 장로께서 놈들의 시신을 수습해 복면을 벗겨보았지만 그들 모두 처음 보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허허, 목숨을 가볍게 생각한 시주들이로구나. 어찌 목숨을 그리 가볍게 여긴단 말인고.”
“장문인, 그렇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제자들과 시비를 벌인 자들은 고작 다섯에 불과했는데 열댓 명이 넘는 제자들이 밀렸다고 합니다.”
“뭐 밀려? 조금 전 그들은 모두 죽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그, 그게…….”
망연이 말꼬리를 끌며 공수 진인을 보았다.
공수 진인이 망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망연은 입구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나갔다.
공수 진인의 눈이 점점 커졌다.
망 자 항렬의 제자는 무당파의 중추가 되는 제자들이다. 그들이 비록 절정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강호에서 고수라는 소리를 듣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망진은 그들 가운데에서도 손꼽히는 고수다. 그런 망진이 있었음에도 불과 다섯 명에게 밀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결론은 제자들은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부상을 당했고 부상당한 외인 한 명이 그들을 제거하고 제자들을 구했다는 말이었다.
절정고수 다섯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세력이 등장한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수 진인이 더 궁금해한 것은 제자들을 구했다는 사내였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제자를 공격한 자들의 실력은 절정을 넘은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부상당한 몸으로 해치웠다면 당금 무림에서 이왕사존오귀 또는 그들과 버금가는 은거고수다.
공수 진인이 그렇게 생각에 잠긴 사이 망연의 설명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처사께서 정신을 잃으며 검왕을 찾았다 하옵니다.”
“나를?”
“예, 장문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사내의 정체가 궁금했던 차였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약선전으로 갈 것이니 따르거라.”
“예, 장문인.”
망연이 급히 공수 진인의 뒤를 따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