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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체른의 서 1(25화)
10. 꼬리 밟기(2)
“밤사냥.”
작은 그 한마디와 함께 붉은빛에 의해 생겨난 그림자들이 흩어지며 날아올랐다. 그것은 수많은 검은 올빼미 떼였다.
“……!”
밤까마귀들은 자신들을 덮쳐 오는 올빼미 떼에 급히 몸을 날렸다. 하지만 몇몇은 피하지 못하고 그 올빼미들에 잡혔는데, 그들은 얼마 안 가 수없이 많은 발톱에 갈기갈리 찢겨 그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게 변했다.
“어딜 가려고!”
물론 그렇다고 피한 밤까마귀들이 무사한 건 아니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카인의 주먹 한 방에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고,
“오랜만에 과녁 훈련인가?”
쉴 새 없이 꺼내 던져 대는 레논의 표창들에 제물이 되어 땅으로 추락했다. 물론 카인과는 달리, 레논의 표창은 정확히 급소를 맞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표창을 맞고 땅으로 떨어진다면 십중팔구 크게 다치거나 목이 부러져 죽을 것이었고, 그것이 아니라면 행동이 둔해져 올빼미 떼나 카인에게 당할 것이었다.
땅으로 떨어질 때 비교적 균형을 잘 잡았거나 부드러운 곳에 떨어진 덕분에 운 좋게 목숨을 건졌다 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남방의 식인목(食人木) 아폴트렌스. 그 아가리로 먹이를 취하소서.”
레이나가 불러낸 커다란 입을 지닌 수많은 가지들을 지닌 식인목의 먹이가 될 뿐이었다. 태양신의 눈에 들만큼 아름다운 여인. 신의 질투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그녀가 스스로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겠다’는 저주를 품고 변했다는 아폴트렌스. 그 식사 모습은 전설처럼 너무도 두려운 모습이었다.
“훗.”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남은 밤까마귀들이 슈펜트를 향해 몸을 날렸다.하지만 슈펜트는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달빛이 구름이 가려진 순간.
“아바돈의 식탁.”
그의 눈동자가 빛을 잃고, 완전히 어둠이 깔렸을 때.
우걱우걱.
처참하고 끔찍한 소리들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마침내 달빛을 가린 구름이 사라지고 다시 빛이 찾아왔을 때, 더 이상 밤까마귀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치이, 벌써 끝난 거야?”
“슈펜트 님께서 이 정도 자들에게 밤사냥과 아바돈의 식탁까지 쓰시다니. 뭔가 좋으신 일이라도 있으신가 보죠?”
“맞아. 오라버니께서는 어지간하면 큰 술법 안 쓰는데…….”
“훗.”
슈펜트는 다른 이들의 의아함을 뒤로한 채 다시 몸을 돌려 철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다른 이들에게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꽤 재밌는 사냥을 하게 될 것 같거든.”
* * *
타오르는 모닥불 위에서 돼지 한 마리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식욕을 돋우는 바비큐 냄새가 진동하고, 옆에서는 이상한 풀들을 넣은 정체불명의 액체가 끓여지고 있었다.
“…….”
그러나 정작 기간테스는 그 정체불명의 액체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걸로 보였다.
그는 연신 국자로 그 액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뭔가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풍기는 역한 냄새에 네른은 그저 무슨 주문이나 실험용 약품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으응…….”
꽤 떨어져 있는 네른조차 그 이상한 냄새에 절로 코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주문에 걸려 그저 꼭두각시일 뿐인 마을 사람들조차 슬금슬금 그 액체에서 멀어지고 있겠는가. 그것은 그 몸에 남아 있는 일말의 생명으로서의 본능이었다.
“…….”
하지만 그 액체 바로 앞에서 정통으로 냄새를 맡고 있는 기간테스의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조금의 찡그림조차 없이 그는 진지하게 뭔가를 하고 있었다.
“…….”
기간테스는 이내 품 안에서 또 다른 풀들을 꺼내 액체 속으로 넣었고, 그러자 새하얀 연기 같은 것과 함께 냄새가 한층 역해졌다.
“저, 저기…….”
네른은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코를 막은 채 기간테스 곁으로 걸어갔다.
“아,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식사를…….”
네른이 다가가자 기간테스는 들고 있던 나무국자를 내려놓고는 그 옆 식칼을 들고는 바비큐 쪽으로 걸어가려 했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네른은 곧 그를 잡았다.
고작 몇 걸음에 불과했지만 이상하게 이 역한 냄새 속에서는 한 걸음도 걷기가 어려웠다. 마음 같아서는 아까 있던 곳에서 기간테스를 부르고 싶었지만, 그 진지한 태도와 익숙하지 않은 이 상황 때문에 힘들게 여기까지 온 네른이었다.
“……?”
“…….”
자신을 바라보며 의문을 표하는 기간테스의 얼굴에 네른은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그의 표정은 신에 가까운 자라 하기에는 조금 뭐랄까 안 어울리는 표정이었다.
“저기, 대체 이건 뭐고 지금 뭐하는 거야?”
네른은 정체불명의 액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실험용 약품이라거나, 주문의 매개체, 아니면 하다못해 어떤 비밀스런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간테스가 내놓은 대답은 그 어떤 것과도 맞지 않았다.
“저녁 식사입니다만……?”
“……?!”
네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설마 이 정체불명의 액체가, 생명체라고 하기도 힘들어진 저들의 마지막 본능이 필사적으로 피하려 하고 있는 이 액체가, 뭔가 어느 금지된 주문서에나 적혀 있을 거 같은 이 액체가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은 아닐 거라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다.
“이거… 스프야?”
“네.”
기간테스의 그 대답에 네른은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아침에 차라고 가져온 냉수 비스무리한 그걸 보았을 때부터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설마 이런 종류의 이유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니, 아침에는 너무 혼란스러워 딱히 그렇게 뭔가를 생각할 여력이 그때는 없었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
“……?”
네른은 뭔가 아주 이질적인 혼란을 느꼈다.
네체른의 서를 쓰면서 느꼈던 정신이 아득해지거나, 뭔가 다른 게 들어오는 그런 혼란이 아니라, 머릿속 톱니바퀴들이 갑자기 톱니가 다 사라진 매끄러운 원형이 되어서 미친듯이 공회전을 하더니 갑자기 그 원에 무지개 색깔이 입혀지는 듯한 그런 혼란 말이다.
“기간테스?”
“네.”
태초의 유사신. 신에게 가장 가까운 자. 최소한 이 지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존재, 하물며 마법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드래곤보다도 더 상위급 존재. 지금 눈앞에 있는 바로 그런 자가 미맹(味盲)이라니.
“저, 저기 기간테스. 이거 먹어 본 적 있어?”
“예. 과거 네체른과 여행할 때 항상 만들어 먹던 스프입니다.”
네체른과 여행. 상당히 충격적인 단어들의 조합이었지만 네른은 그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이, 이게 맛있어?”
“맛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양면에서는 효율적인 스프입니다.”
“아, 아니. 이거 먹고 무슨 느낌이 나냐고.”
“저는 아무 느낌도 없습니다. 사실 전 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역시나. 네른은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 그럼 냄새는?”
“저는 후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네른은 뭔가 자신이 이 상황에서 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이 유사신에게 어긋나 있는 부분을 고쳐 주지 않으면 앞으로 큰일이 날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저, 저기, 그럼 네체른도 이거 먹었어?”
“예. 그리 많이 먹지도 않았고, 식사 자체를 별로 즐기지도 않는 듯했지만 그래도 영양을 생각해서 제가 한 접시씩 꼭 먹였습니다.”
“아, 아무 말도 없었어?”
“예. 다만 스프를 먹은 뒤로는 식욕이 돋는지 이후 고기 구이들을 가득 먹더군요.”
“…….”
네른은 어쩌면 사상 최악의 마왕이라 불리는 네체른이 그렇게 된 게 이 스프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액체 때문이 아닐지 정말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아, 이제 다 된 것 같군요.”
대체 뭘 보고 완성이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액체 중간에 거므스름한 기포가 두어 방울 정도 올라오자 기간테스는 접시와 국자를 집어 들었다.
“자, 제가 떠 드리겠습니다. 드시지요.”
기간테스가 국자를 그 스프라 우기고 있는 액체에 집어넣자 네른은 갑자기 베테르의 실험실에서 실험에 쓰고 남은 몬스터의 시체를 처음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가 생각났다.
10분 내로 치우지 못하면 그걸 불에 구워서 먹이겠다는 그 협박 때문에 그는 온 손에 상처가 나는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그 시체를 치웠다.
그리고 지금은 바로 그때보다 조금 더 심각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단지 몬스터 시체라는 것에서 거부감이 들었을 뿐이지 불에 굽는다면 일반적인 고기나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이건 먹었다가는 그 다음부터는 미각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 아냐. 난 스프는 절대 안 먹어! 옛날 내가 살던 우리 마을에서는 스프를 먹는 게 엄청난 모욕이야!”
그딴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문화를 가진 마을은 듣도 보지도 못했고, 애초에 노예시장과 베테르의 실험실에서 유년을 보냈던 그에게 우리 마을이라고 칭할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굳이 찾자면 잡아먹힐 뻔했다가 스스로 멸망시켜 버린 샨 마을이 있긴 해도 말이다.
“…….”
기간테스는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네른은 그런 기간테스의 모습에 아무리 그래도 방금 전 자신의 대답이 너무 얼토당토 안 한 거였나 하며 숨을 죽였다. 그런데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례를 범할 뻔했군요. 앞으로 유의하겠습니다.”
그러고는 기간테스는 들었던 접시와 국자를 내려놓더니 손짓으로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럼 이건 저들에게 주도록 하고, 멧돼지 구이는 괜찮으시겠습니까?”
“어, 어. 멧돼지는 괜찮아.”
“그럼 저쪽으로 가시지요.”
“어, 어.”
네른은 너무 다급해서 아무렇게나 지껄인 그 대답을 그가 믿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비록 고양이 쥐 생각하는 꼴이지만,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너무도 불쌍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고 적어도 자신은 저 액체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을 쓸어내렸다.
“자아, 드시지요.”
“아, 고마워.”
멧돼지 구이 쪽에 도착한 기간테스는 발라낸 멧돼지 살을 네른에게 건넸다. 그러나 그것을 먹으면서도 그의 눈은 자꾸 아까의 그 정체불명의 액체로 향했다.
“…….”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 액체가 담긴 접시를 든 채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명령과 본능에 갈등하고 있는 거였다.
“컥.”
생존 본능이 비교적 약했는지 몇 명이 스프를 겁 없이 마셨는데, 칼에 찔리고 상처가 나도 아무런 반응도 없던 그들이 약하게나마 구역질을 해 대는 그 모습에 네른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입에 감사했다.
되는 대로라도 핑계를 대서 말이지, 안 했다면 그는 꼼짝없이 스프를 먹어야 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신경, 즉 맛을 느낄 수 없게 된 거나 다름없는 저들조차 저런 반응을 보이는데 멀쩡한 자신이 먹었다면 과연 이후 생활이나 가능했을지 싶었다.
<『네체른의 서』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