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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1
네메시스 1(1화)
Prologue(1)
“아버지! 이런 종이 쪼가리만 남겨 놓고, 하나뿐인 자식을 남겨 두고 떠나도 됩니까?”
한 청년이 먼 곳으로부터 날아온 편지를 손에 든 채 소리를 질렀다.
“젠장, 젠장! 아버지에게 떳떳하게 나설 수 있는 아들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청년의 목소리는 서서히 갈라져 갔다. 편지를 읽은 그의 마음은 이미 메마른 대지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쏴아아.
잠잠하던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그 비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울고 있던 청년의 눈물과 섞여서 무엇이 눈물인지, 무엇이 비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당신에게…… 이것을 보여 드리려고 열심히 노력했었는데!”
청년의 손에는 하나의 메달이 쥐어져 있었다. 그 메달의 이름은 필즈 메달. 40세 이전의 수학자들 중 최고의 수학자에게만 수여된다는, 수학계의 노벨상이었다.
그런 필즈 메달이 어찌하여 청년의 손에 쥐어져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청년은 2022년 필즈 메달 수상자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강천우. 대한민국이 낳은 희대의 천재이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학자다. 21살이라는 나이에 세계 7대 수학 난제 중에 하나를 해결한 그는, 그야말로 인류가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천재임이 분명했다.
통상적으로 세계 7대 수학 난제는 재능이 있다고 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천우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학적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단 한 존재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했다. 그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해 준 이유.
그 존재는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세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과학자, 강수혁이다. 그가 유명해진 이유는 혼자서 가상현실을 창조해 낸 것!
그 가상현실은 바로 전 세계에 몰아닥친 돌풍, 언리미티드 월드. 덕분에 강수혁은 단번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가 되었고, 엄청난 명예와 재산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천우의 정체는 강수혁의 사생아다.
강수혁은 천우의 어머니에게 꽤 많은 돈을 주며 외국으로 도피시켰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죽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도피 과정에서 천우가 태어났다.
하지만 미국 생활 도중에 병을 앓고 있던 천우의 어머니가 죽었고, 그때 천우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났다. 처음으로 만난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에 오열하며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이후로 1주일간, 그들 부자는 함께 지내며 서로에 익숙해져 갔다.
‘……멋지게 컸구나.’
그것이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했던 첫 번째 말.
딱 1주일 뒤 아버지는 돌아갔고, 결국 천우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그것이 아마 그가 8살 때였을 것이다.
수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그는 얼마 안 가 유명한 수학자의 눈에 들어 엄청난 성장을 보이며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나갔고, 결국 21살에 세계 7대 난제를 풀어 버리는 최고의 천재로 성장했다.
그것이 그의 짧은 인생 이야기.
그는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수학을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것이다.
“아버지, 아들이 잘되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하늘나라로 가신 겁니까? 예?”
그에게 인정을 받고, 아들로서의 도리를 하면서 살아가고자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요, 아버지. 당신의 유언이 이것이라면 그 유언을 받들겠습니다. 이것이 먼저 가신 아버지에게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아들로서의 도리겠지요.”
천우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가 결코 밉지 않았다. 자신을 버린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 분명 죽은 목숨이었으리라.
천우는 빗물 속에서 서서히 젖어 가는 아버지의 유언장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내 아들, 천우에게.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해 다오. 어렸을 때 너를 버린 이 아비는 천벌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네가 혼자서 훌륭하게 커 준 것에 하늘에 감사드린다.
지금 나는 유언장을 쓰고 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신세라서 말이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르는구나.
그때의 1주일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에라도 당장 너와 함께 지내고 싶지만, 이 빌어먹을 명예라는 것이 그것을 허락해 주지 않는구나.
염치 불구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만든 언리미티드 월드를 지켜 달라는 것이다.
이미 언리미티드 월드에는 네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그 시스템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설명하기가 힘들구나.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처럼 훌륭한 수학자로서의 삶을 이어 나가도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비로서 부탁한다.
나에게 있어서 너만큼 중요했었던 언리미티드 월드를 부디 지켜 다오. 그 세계를 위협하는 자들의 정체를 밝혀서 그곳을 지켜 다오.
네게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는 못난 아비의 부탁이라서 거부할지도 모르겠지. 하나 나는 네가 그곳을 지켜 주었으면 하고 바라 본다.
마지막으로 이것을 너에게 알려 줘야겠구나.
널 사랑했다. 진심으로.
“…….”
이것이 그의 아버지가 남긴 유언장. 세상에 남은 아버지의 마지막 흔적이다. 그 흔적을 손에 움켜쥔 천우는 천천히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부탁하신 마지막 소원, 반드시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천우는 아버지가 만든 언리미티드 월드에 접속하고자 마음먹었다. 존경했던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부탁을 반드시 들어 드리고 싶었다.
천우는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당신이 애정을 쏟아부었던 그것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편하게 쉬시지요.”
어쩌면 그의 아버지는 하늘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약간의 위안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가 남긴 거대한 흔적.
지금, 그 아버지의 아들이 그 흔적을 지키기 위해서 움직였다.
1. 힘찬 날갯짓(1)
언리미티드 월드에 접속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지만, 접속기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매우 비쌌다.
물론 게임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면 구매하지도 않겠지만,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색다른 매력은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던 사람들조차 끌어들였다.
언리미티드 월드가 세계를 중독시킨 이유는 바로 싱크로율!
가상현실 게임이 등장하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는 예측을 뛰어넘고 2021년에 오픈된 언리미티드 월드는 불세출의 귀재인 강수혁의 등장 덕분에 가상현실은 보다 빠르게 인간 사회에 출현했다.
“이제…… 시작해 볼까?”
현재 천우는 외국인으로 대한민국에 들어와 있는 상태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수학자 최고의 명예인 필즈 메달을 수상한 지금, 그는 수학에 손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설사 있다고 해도 아버지가 그에게 당부한 유언을 수행한 뒤에나 수학자로서의 삶으로 돌아가리라.
아버지가 보낸 유언장에는 언리미티드 월드에 대한 각종 정보가 들어 있는 웹하드의 아이디가 적혀 있었다.
강수혁은 웹하드에 자동정보저장 시스템을 연동함으로써 실시간으로 정보가 저장될 수 있게 만들었다.
덕분에 천우가 앞으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접속기가 도착하는 동안에 천우는 웹하드에서 간단한 정보를 열람했다. 어디서 시작하는 것이 좋은지, 어떻게 성장하는 것이 좋은지.
아버지가 남겨 주신 웹하드에는 요긴한 정보가 많았다.
아직 공개가 안 된 던전, 왕국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들 같은 정보들.
쉴 새 없이 정보를 열람한 끝에 얻은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아버지가 남겨 준 모든 것에는 일정한 자격 조건이 필요했다.
즉, 힌트는 그가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비밀 던전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면 그 비밀 던전을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를 직접 받아야 한다.
단편적인 정보만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이 아버지가 남겨 주신 웹하드의 유일한 단점이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처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땐 허탈하기도 했던 천우. 게임을 구해 달라고 부탁한 아버지가 이렇게 단편적인 정보만 기록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가고 아쉬웠지만, 곧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버지는 게임의 밸런스를 생각하신 것이다.
“후우.”
한 번 심호흡을 해 본 그는 곧바로 접속기에 접속한다. 접속기의 모양은 캡슐. 캡슐 뚜껑을 열고 들어가서, 뇌파를 접속시켜 주는 해드셋을 쓰면 접속이 이루어진다.
그는 곧바로 언리미티드 월드에 접속했고, 곧 접속이 이루어졌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은 무한의 세상, 언리미티드 월드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원 확인 결과, 아직 등록되어 있는 계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 캡슐에 장착되어 있는 1년 정액권으로 신규 계정을 생성하시겠습니까?
언리미티드 월드는 접속기 값을 제외하고도 계정비를 내야 한다.
1계정 1캐릭터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도 하다.
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신규 계정을 생성합니다. 신원은 1년 정액권을 통해 파악이 되었으므로 곧바로 캐릭터 생성 과정에 들어갑니다.
잠시 눈앞의 모든 빛이 사라졌다가,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순식간에 변하는 공간을 보며 천우는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현존하는 과학을 무시하는 기술력이야. 이것이 아버지 필생의 역작이란 말인가?’
내심 그의 아들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졌다.
목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캐릭터를 생성합니다. 종족은 인간 이외의 총 4종류의 종족이 존재하며,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족 이름을 말씀하시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나열됩니다.
“인간을 선택하겠습니다.”
―인간은 평균적인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종족인 만큼 언리미티드 월드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직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단, 이종족의 특수 직업은 얻을 수 없으니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무난하게 인간을 선택한 천우. 이종족의 특수 직업이란 간단하다. 언리미티드 월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이종족은 4종류. 엘프, 다크엘프, 드워프, 오크. 판타지 세계관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종족들을 기본 선택할 수 있다.
언리미티드 월드가 한국에 널리 퍼진 판타지 소설의 세계관을 따르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천우는 그들 중에서 가장 평범한 인간을 택했다. 다른 종족에 비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아버지가 물려주신 정보로 할 수 있는 일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캐릭터의 이름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름이라…… 스칼.”
그는 어렴풋이 자신이 다른 게임에서 사용했던 아이디를 떠올렸다. 유명한 수학자인 파스칼의 이름 중 뒤의 두 음절을 그대로 가져다 쓴 스칼. 꽤 부르기 편한 이름이라서 자주 애용했던 이름이다.
―캐릭터의 이름은 스칼입니다. 한 번 정하신 이름은 절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도 스칼로 이름을 정하시겠습니까?
“예.”
―성공적으로 캐릭터가 생성되었습니다. 유저님의 캐릭터 명은 스칼이며, 인간입니다. 초기 캐릭터 생성지는 랜덤으로 정해집니다.
뚜루룩.
갑자기 그의 앞에 주사위가 돌려졌다. 그 주사위에는 초보자들의 마을이 적혀져 있었고, 곧 주사위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주사위에 적힌 이름은 트라톤 왕국의 페일 마을.
‘초보자들이 가장 활동하기 어렵다는 마을이라고 하던가?’
초보자 마을 중에서 가장 조건이 열악하다는 페일 마을이 걸리자 속으로 입술을 깨무는 천우. 이제부터는 스칼로 불러야 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어쨌든 스칼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운이 안 좋아.”
―초기 접속 시 초보자를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캐릭터 생성 2주일 동안은 초보자 지역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고레벨 유저가 도와주려고 해 봤자 초보자 지역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고레벨 유저들도 초보자 지역에 들어오지 못하고.
초보자 마을에서 벗어나는 레벨 20까지는 유저 사이의 교환도 불가능하다. 조직적으로 초보자 마을에 돈을 유통해서 초반부터 현질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뭐, 레벨이 많이 차이 나면 파티 경험치를 배분하지 못하는 시스템도 마련되어 있기도 해서 언리미티드 월드에서는 편법이 먹히지 않는다.
―튜토리얼을 거치시고 게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곧바로 게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곧바로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미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스칼이 짧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곧바로 트라톤 왕국의 페일 마을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파아앗.
다시 한 번 빛이 그를 감싼다.
‘시작이다.’
드디어 시작이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한 부탁을 시작하는 것이.
스칼의 입에는 꽤 여유로워 보이는 미소가 자리 잡았다.
‘아버지가 걱정했던 것이 무엇이었던 간에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은 들어 드리겠어.’
결연한 의지가 그의 얼굴에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