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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1(2화)
1. 힘찬 날갯짓(2)
스칼의 시야를 괴롭혔던 빛이 사라지고,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한 마을. 사람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명력이 넘치는 마을이었다.
―트라톤 왕국의 페일 마을입니다.
메시지가 그의 귓가에 울리면서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려 준다.
“드디어 게임이 시작된 건가? 과정이 꽤 짧군.”
캐릭터 생성 과정에는 신체의 일부를 성형할 수 있는 과정이 있었지만, 그는 귀찮은 것들을 모두 스킵해 버려서 성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캐릭터를 생성시켰다.
어차피 그에게는 성형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현실 세계의 천우는 외모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외모는 평균 이상. 윤기가 넘치는 흑발과 빛나는 눈동자, 뚜렷한 이목구비는 어떤 사람이라도 그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처음에는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돈을 모으라고 했지?”
인터넷에 널려 있는 정보들은 레벨 5까지 마을의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돈을 모으라고 말해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무기를 지급해 주지 않는 언리미티드 월드 때문에 초반에 열심히 퀘스트를 수행해야만 기본적인 장비를 구할 수 있었다.
스칼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 본다.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완벽한 감각들. 최고의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언리미티드 월드답게 움직임이 아주 부드러웠다. 마치 현실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움직임에 그는 작게 감탄했다. 이런 게임이 구현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그였기에.
“자! 퀘스트를 수행하러 가 볼까?”
약 20여 분 동안 여러 가지 시스템을 체크해 본 결과, 그는 대부분의 인터페이스를 확인할 수 있었다.
―캐릭터 이름:스칼 ―성향:중(中)
―레벨:0 ―직업:무직 ―종족:인간
―능력치
힘:10, 민첩:10, 지능:10, 지혜:10, 체질:10, 매력:10
―특수 능력치:정보 없음
―체력/마력:100/100
―장착하고 있는 장비:정보 없음
이것이 현재 스칼의 기본 능력치. 아직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은 그의 능력치는, 보잘것없는 초보자의 능력치 그대로였다.
스칼은 비록 수학에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게임에 문외한은 아니다. 그 덕분에 그는 빠른 속도로 언리미티드 월드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기초 지식을 완벽하게 습득했다. 아버지가 남겨 둔 지식을 직접 몸으로 익히기만 하면 되니, 꽤 간단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초보자들이 할 수 있는 작업은 간단하다.
퀘스트를 받아서 NPC들의 심부름을 한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빠르게 돈을 벌던가. 몇몇 퀘스트들은 경험치와 돈을 한꺼번에 주기도 하지만, 초보자들의 퀘스트들은 대부분 경험치만 준다. 즉, 레벨을 올리려면 퀘스트, 돈을 벌려면 아르바이트인 것.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미량의 경험치를 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초보자들이 아르바이트로 5레벨까지 버틴다.
그것이 정형화되어 있는 언리미티드 월드의 공략법이었지만, 스칼은 좀 다른 선택을 하려 한다.
“돈과 경험치 모두를 주는 퀘스트를 받는 거야.”
아버지가 남겨 준 정보에는 초보자 마을에서 할 수 있는 퀘스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비록 단편적인 정보들뿐이었지만, 그것들의 제목에서 누가 퀘스트를 주는지 대강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정보에는 아직까지 유저들이 발견하지 못한 특별 퀘스트들이 몇 개 숨어 있어서, 그의 성장을 돕기에는 충분하리라.
스칼이 선택한 퀘스트는 바로 ‘촌장의 궁금증’이라는 퀘스트.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보상으로 상당한 양의 경험치와 함께 연계 퀘스트로 이어진다고 한다.
연계 퀘스트의 보상이 거대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므로, 스칼은 곧바로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마을 내에서는 지도 시스템이 지원되기 때문에 촌장의 집에는 쉽게 갈 수 있었다.
뚜벅.
“실감 나는 감각이라서 정말 좋아.”
자신의 발걸음 소리를 듣던 스칼이 살짝 웃는다. 이렇게 생생한 감각이라니? 현실과 별다를 바 없는 이 감각은 그를 만족시킨다. 항상 수학 문제만을 풀어 왔던 그에게 이런 달콤한 휴식은 상당한 만족감을 준다.
비록 이곳에 접속한 것은 아버지의 유언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였지만, 첫 접속한 느낌은 아주 달콤했다.
촌장의 집을 가면서 마을 곳곳을 둘러보자 유저들 간의 실랑이도 들려왔다.
“이 자식아! 이 퀘스트는 내가 먼저 받은 거야!”
“퀘스트에 순서가 어디 있어? 해결한 사람이 먼저인 거지.”
페일 마을이 가장 열약한 환경으로 뽑히는 이유. 그것은 마을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퀘스트의 양이 한정이 되어 있고, 자칫하다가는 다른 유저에게 퀘스트를 뺏길 수도 있다는 것!
매일같이 한정 퀘스트가 생성되면, 그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 많은 유저들이 빠른 속도로 그것을 수행한다.
한정 퀘스트인 만큼 보상도 한정이 되어 있어서 정해진 숫자의 유저들이 퀘스트를 완료하게 되면, 그 퀘스트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퀘스트를 가지고 싸우는 유저들이 꽤 많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스칼은 촌장의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누구시오?”
안에서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문이 열렸고,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 위에 ‘촌장’이라는 글이 떠오른 것을 보니 촌장임이 틀림없었다.
스칼은 곧바로 정중하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행자, 스칼이라고 합니다.”
“끄응. 여행자? 자네도 이방인이로군. 이방인에게 할 부탁 따위는 없으니 이만 돌아가게.”
아마 촌장은 매일같이 퀘스트를 받기 위해서 자신의 집 문을 두드리는 이방인. 즉, 유저들이 싫은 모양이었다.
스칼이 자신을 소개하자마자 축객령을 내리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렇지만 스칼은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고, 곧바로 다음 대사를 이어 갔다.
“혹시 촌장님께서는 무엇인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그의 말을 듣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촌장.
“으응? 자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자네, 어디서 날 보았었나?”
“하하! 초면입니다. 저는 다만 촌장님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한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 혹시, 그 궁금증을 제가 풀어 드릴 수 있을지요.”
“아마 안 될 것이네. 여태껏 많은 이방인들이 내 호기심을 풀어 주려고 했지만, 하나같이 질린 표정으로 내 부탁을 거절했었지.”
아마도 촌장은 자신의 집을 찾아온 유저들에게 퀘스트를 준 적이 있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퀘스트가 완료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퀘스트를 받은 유저들 모두가 실패했다는 소리!
과연 어떤 난이도를 가지고 있기에 유저들이 모두 실패했을까?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보상이 커지는 것은 아주 당연한 비례의 법칙이다.
그렇기에 스칼의 눈은 더욱 빛났다.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일단 우리 집에 들어오시게나. 허어, 내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했었나? 처음 보는 이방인이 내 속을 다 알아차리다니…… 그것참, 신기한 일이로군.”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으로 들어간 촌장은 모를 것이다. 스칼의 얼굴에 떠오른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를 집 안으로 안내한 촌장은 곧바로 스칼을 의자에 앉혔다.
“스칼이라고 했었지?”
“예.”
“그래, 자네의 말대로 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어. 그것은 바로 한 책에 대한 궁금증이지.”
촌장은 벽과 붙어 있는 서재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왔다. 명색이 촌장이라서 그런지 그의 서재에는 꽤 많은 수의 책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가 꺼내 온 책은 표지가 온통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가득했다.
“이것은 1서클 마법서라네. 나는 이 마법서로 마법을 사용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 자네가 도와줄 수 있겠는가?”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촌장의 궁금증
등급:D
내용: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한 페일 마을의 촌장은 누군가로부터 1서클 마법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책의 내용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서, 그는 마법서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이방인을 필요로 합니다. 자! 당신의 능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힌트는 마법서 안에 존재합니다.
단, 제한 시간 2분 안에 궁금증을 해결해야 합니다. 2분을 초과하면 촌장은 당신이 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보상:미량의 경험치, ‘촌장의 궁금증2’ 퀘스트 부여.
“얼마든지요.”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스칼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칼이 퀘스트를 수락하자 촌장은 일말의 기대감을 품으며 책을 스칼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촌장으로부터 책을 건네받은 스칼은 곧바로 책을 펼친다.
“…….”
잠시 흐르는 침묵. 그의 반응에 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도 힘들겠지? 휴우…… 마법서가 그렇게 어려운가? 이방인들이 아무 말 없이 포기할 정도라면…….”
아니, 아니다. 지금 스칼이 가만히 있는 이유는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도 당황스러워서 그러는 것이다.
그의 앞에 모습을 나타낸 책의 내용, 그것은…….
“수학 문제?”
그렇다! 1서클 마법서 안에 있던 것은 수학 문제! 그것도 고등 수학에서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차방정식 문제였다.
다만 일반적인 이차방정식과는 달리, 상당히 복합적으로 꼬여 있는 문제. 즉, 심화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제야 스칼은 어째서 유저들이 이 퀘스트를 포기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떤 미친놈이 게임 안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싶겠냐?’
즐기기 위한 게임인데, 수학 문제를 풀고 싶을 유저 따위는 없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공부하고 싶은 녀석들 나오라고 하면 아마 한 명 나올까 말까 할 것이다.
게다가 이런 문제를 2분 안에 풀라고 한다면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겠지.
솔직히 말해서 스칼 또한 문제를 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게임 안에서는 최대한 수학을 숨겨 두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마법서를 잡고 있던 스칼의 귀에 메시지가 울렸다.
―마법서의 특수 옵션을 발견하셨습니다. 마법서에 적혀 있는 문제를 푸실 경우, 그 마법서에 저장되어 있는 마법에 한정해서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단, 마법사가 아니시기 때문에 사용되는 마력의 양은 2배가 됩니다. 그리고 마법서의 풀이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시에 풀이를 본 사람도 마법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이것이 공략 방법이었구나. 으응? 그런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호오! 수학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니.’
스칼은 꽤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법서에 나온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도 마법의 사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구나 다 문제를 풀어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 않는가? 그야말로 밸런스 파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금 그의 앞에 적혀 있는 문제는 1서클 마법서이며, 총 9서클까지 존재하는 마법서들 중에서 가장 하위에 속해 있는 마법서다.
2서클 마법서는 1서클 마법서보다 훨씬 어려운 수학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데, 게임에서 그런 문제를 풀 별종은 그리 많지 않다.
있다 치더라도 한계가 있는 법.
그리고 마법사가 아닌 다른 직업이 마법을 배울 경우에 받는 패널티는 상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법서의 수학 문제를 풀어서 마법을 사용하려는 유저는 없었다. 있다고 쳐도 필즈 메달 수상자인 스칼을 따라올 사람은 없으리라.
촌장이 묻는다.
“풀어 주겠지?”
“풀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 혹시 펜 있으십니까?”
“여기 깃펜이 있네.”
<깃펜>
내용:아무런 특징이 없는 평범한 깃펜이다.
촌장으로부터 깃펜을 건네받자 간단한 아이템 설명이 나온다. 그냥 평범한 깃펜. 깃펜을 든 스칼은 아주 빠른 속도로 문제를 풀어 갔다.
그에게 있어서 이런 이차방정식 문제는 누워서 떡 먹기.
암산으로 풀어도 금방 답이 나왔지만,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풀이 과정을 써야 하는 듯싶었다.
다른 사람이 그의 암산을 이해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꼬여 있는 이차방정식을 2분 안에 풀라니? 유저들이 기겁할 만하겠어. 초보자 마을의 유저들은 모두 다 돈을 벌려고 이를 갈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풀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겠지.’
그들은 그들이고, 스칼은 스칼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풀리는 하급 문제에 벌벌 떨 필요가 없었다. 다만 문제 푸는 과정을 일일이 표시해야 하는 것이 귀찮을 뿐이다.